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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능금 초롱이
가을이 왔어요. 햇빛이 물빛 잠자리 날개처럼 가슬가슬했어요.
햇빛은 털보할아버지 과일가게에도 찰랑찰랑 소리 없는 밀물처럼 밀려들었어요.
털보할아버지 과일가게에는 능금, 감, 배, 대추, 감귤 등 온갖 과일이 여기저기서 들어왔어요.
털보할아버지는 과일 중에서도 능금을 제일 좋아했어요. 능금이 뭐냐고요? 능금은 사과의 다른 이름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능금이라는 이름을 알고는 있지만 사과라고 부르지요? 그런데 털보할아버지는 반대예요. 꼭 능금이라고 불러요.
털보할아버지는 마음에 드는 능금에게 이름 붙여주기를 좋아했어요.
˝어따, 그 놈 빛깔 참 곱다. 붉지도 않고 푸르지도 않구나. 마치 귀여운 아기 볼 같네. 넌 ´아기볼´ 해라.˝
털보할아버지는 대구에서 온 잘 익은 부사를 상자에서 꺼내 진열대 위에 올려놓았어요.
부사는 요즘 사람들이 가장 즐겨 먹는 능금 중의 하나예요. 아마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이라죠?

털보할아버지는 다음 상자를 열었어요. 국광이 든 상자였지요. 국광도 능금의 한 종류예요. 국광은 껍질이 아주 새빨갛지요. 너무 빨개서 검은빛이 다 돌 정도랍니다.
˝그 놈 참 잘 익었다. 그래 능금이라면 이렇게 붉은 빛깔을 가져야지. 넌 ´아침해´ 해라. 동산 위에 불끈 솟는 붉은 ´아침해´라, 참으로 멋진 이름이지?˝
털보할아버지는 국광에게 ´아침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어요.

털보할아버지는 마지막 능금 상자를 열었어요. 못 생기고 푸른 능금이 나왔어요.
요즘은 과일가게에 잘 나오지도 않는 인도라는 능금이었어요. 인도는 껍질에 사람들의 얼굴에 박힌 주근깨 같은 검고 흰 작은 점이 많았어요.
인도는 털보할아버지 농장에서 직접 따 온 것이었어요. 보기는 마치 익지 않은 것처럼 푸른색이에요.
인도는 겉으로 보기엔 마치 모과 같아요. 어떻게 보면 색깔도 칙칙하고 초록빛이어서 볼품이라곤 없었어요.
다른 과수원에서는 오래 전에 모두 베어 버린 인도가 열리는 나무를 털보할아버지는 아직도 기르고 있어요.
보기엔 그래도 아주 달고 향기가 좋아서죠.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인도가 야물고 겉보기가 별로 안 좋다는 이유로 찾지 않아요. 인도가 열리는 나무들은 다른 과수원에서는 찾아볼 수 없게 된 거예요.
털보할아버지는 푸른 능금에게 ´초롱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어요.
아기볼과 아침해는 초롱이가 능금인 줄을 몰랐어요.
털보할아버지는 아기볼, 아침해, 초롱이를 가지런히 진열했어요.
참 털보할아버지가 능금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이야기 안 했죠? 털보할아버지는 능금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요. 에이, 사과가 무슨 말을 하느냐고요? 글쎄 그거야 털보할아버지 외에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죠.
털보할아버지가 막 진열을 끝내고 손님을 기다리기 시작했을 때였어요.

˝너 어디서 왔니? 너도 사과니?˝
아침해가 아기볼에게 아주 거만하게 물었어요.
˝뭐야? 나더러 사과냐고? 조그만 게 못하는 소리가 없어. 그래, 난 사과가 아니고 능금이다, 어쩔래?˝
아기볼이 화를 냈어요. 여차하면 싸움이라도 한 판 벌릴 것 같았어요.
˝공연히 화는 내고 그래?˝
아침해가 찔끔했어요.
˝미안해. 넌 얼굴이 붉은 것도 아니고 흰 것도 아니어서 물어 본 거야? 근데 넌 어디서 왔니?˝
아침해가 물었어요.
˝난 여기서 별로 멀지 않은 산촌에서 왔어. 앞뒤로 산이 빙 둘러 선 산 마을이었지. 산이 높아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는 마을이었어. 마을 앞으로 맑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지. 그 마을은 산 속이라 낮과 밤의 기온 차이가 심했어.˝
아기볼은 고향의 이야기를 했어요.
고향은 낮과 밤의 기온 차이가 크다는 것을 내세웠어요. 낮과 밤의 기온 차이가 큰 곳에서 자란 과일은 맛이 좋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사과가 익을 무렵 장사꾼들이 산 마을에 몰려왔어요. 사과를 사 가기 위해서였지요.
˝이 곳은 산 속입니다. 낮과 밤의 기온 차이가 크지요. 그래서 우리 농장 사과는 살이 연하고 부드러우면서 달답니다.˝
사람들이 능금을 사러 올 때마다 주인은 밤낮의 기온 차이가 크다는 말을 잊지 않았어요.
˝주인은 공장에서 나오는 비료를 쓰지 않으셨어. 산에서 나는 풀을 베어 썩힌 거름과 닭똥을 나무 밑에 넉넉하게 넣어 주셨어. 그래서 나무들이 아주 건강했어. 거기다 내가 열렸던 사과나무는 매우 젊었어.˝
아기볼은 과수원 주인이 사과 사러온 장사꾼들에게 하던 이야기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늘어놓고 있었어요.
˝부사는 네가 왔다는 그런 산 속 마을에서 나지 않아도 달고 살이 연하며 시원해. 그래서 사과의 참 맛을 모르는 사람들이 좋아하지. 사과가 많이 달다고 좋은 건 아냐.˝
아침해가 말했어요.
˝달지 않으면 사과가 고소하다는 말이니 뭐니? 단 게 좋은 거야.˝
아기볼이 말했어요.
˝단 게 좋다면 엿이나 사탕을 먹으면 그만이지 뭐 하러 사과를 먹니? 사람들이 뭐 달디단 꿀 찾아다니는 벌인 줄 아니?˝
아침해는 아기볼을 빈정거렸어요.
˝하하하 아침해야 넌 아무래도 달지 않은 능금인가 보구나.˝
˝왜 그런 생각을 하는데?˝
˝능금이 달아야 한다는 말에 그렇게 아니라고 우기려고 드니 하는 말이지.˝
˝나도 달아. 달단 말야.˝
˝알았어. 그런데 넌 어디 있는 어느 과수원에서 왔니?˝
아기볼이 물었습니다.
˝응 나는 바다가 바라보이는 산기슭에 자리잡은 과수원에서 왔어.˝
아침해가 말했어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기슭? 그런 곳에선 유자나 감귤이 많이 나온다고 털보할아버지가 말씀하셨잖아?˝
아기볼은 조금 전에 들은 털보할아버지의 말이 생각나서 말했어요.
˝물론이지. 그러니까 내가 위대한 능금이라는 거 아냐? 능금나무를 심어만 놓으면 달고 맛있는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그런 곳이 고향이라면 조금도 유명할 거 없잖아? 난 바다 속에서 아침해가 불끈 솟으면.....˝
아침해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이었어요.
˝하하하.˝
아침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기볼이 까르르 웃었어요
˝왜 그래?˝
˝너 지금 제 정신이니? 뭐 바다에서 해가 솟는다고?˝
˝그럼 해가 바다에서 솟지 들에서 솟니?˝
˝해는 동산 위에 솟는 거야.˝
˝말도 안 돼. 해는 바다에서 솟아 바다로 지는 거야.˝
˝아냐, 동산 위에서 솟아 서산으로 지는 게 해야.˝
아기볼과 아침해는 티격태격 다투고 있었어요.
˝시끄러워. 쓸데없는 거 가지고 싸우지 마. 해가 동산 위 떠서 서산으로 지든 바다에서 떠서 바다로 지던 그게 무슨 상관이야.˝
듣고만 있던 초롱이가 말했어요.
˝야, 능금들 이야기에 네가 왜 나서니?˝
아기볼이 얼굴을 찌푸렸어요.
˝뭐야, 능금 이야기에 내가 왜 나서느냐고? 너희들 눈엔 내가 능금으로 안 보이니?˝
초롱이는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네가 무슨 능금이니?˝
아침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어요.
˝능금 아니면 뭐로 보이니?˝
˝너 모과 아냐?˝
˝모과 모과라고? 난 모과가 아냐.˝
초롱이가 말했어요.
˝모과가 능금 진열대에 왜 얹히니? 나도 당당한 능금이야.˝
˝능금은 무슨 능금이니 빨갛지도 않은데.˝
˝빨간 건 옷 아니니? 너희들이나 나나 옷만 벗으면 다 똑 같은 색깔이야. 알겠어?˝
초롱이는 버럭 화를 냈어요.
˝그럼 넌 익지 않은 능금이구나. 얘 익지도 못한 주제에 시장의 진열대에까지 나와 앉으면 어떡하자는 거야.˝
˝난 다 익은 사과야.˝
˝나 참.....˝
아기볼과 아침해는 아무래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어요.

그때였어요.
아줌마 한 분이 아들을 데리고 털보할아버지 과일가게로 다가왔어요.
˝어, 파란 사과네. 요즘 이 파란 사과 찾기 힘들던데 이거 얼마예요?˝
아줌마가 물었어요.
˝엄마 이건 사과 안예요. 엄마는 선생님이 돼 가지고 사과와 모과도 구별 못하셔요?˝
앙기 말했어요.
˝하하하. 모과? 얘야 이건 모과가 아니라 능금이란다. 아주 달고 향기롭지.˝
털보할아버지가 아이에게 말했어요.
˝이래도 내가 능금 아니란 말야? 빨갛다고 다 능금 아닌 것처럼 빨갛지 않다고 능금 아닌 것도 아니란 말야.˝
초롱이는 아기볼과 아침해를 번갈아 바라보며 픽 웃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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