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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함박눈이 내리던 날-배용길
분이는 집이 몹시 가난하였다. 그래서 복도나 교실을 맨발로 다니고 있다.
더울 때나 추울 때나 실내에서는 발가락을 다 내놓은 채 걸어다니고 있다.
다른 아이들이 눈총을 주거나 손가락질하며 수근거리는 소리도 분이는 못본 척, 못 들은 척한다.
분이는 이 세상에서 실내화 없이 맨발로 다니는 아이는 자기뿐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분이는 비온 후 맑게 갠 파아란 하늘빛, 그런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무지개빛을 가진 메기 입처럼, 널찍한 볼 위에 예쁜 꽃모양이 그려져 있는 털실내화를 신고 싶었다.
아홉 살 난 분이에게 소원이 딱하나 있다면 그런 털실내화를 신고 싶은 것이다.
며칠 전 분이는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이웃 반의 복도를 지나치다가 예쁜 털실내화를 신은 여자 어린이를 보았다.
가닥머리를 예쁘게 땋아 내린 그 여자 어린이는 빨간색과 노란색, 초록색이 어우러진 털실내화를 신고 나비처럼 사뿐사뿐 걸어가고 있었다. 분이는 복도를 걸어가면서도 그 아이의 실내화만 내려다보았다.
고개를 돌려 그 아이의 털실내화를 보며 걷다가 분이는 그만 다른 아이와 부딪혀 실컷 욕을 얻어먹었다.
분이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엄마에게 졸라댔다.
˝엄마, 나도 예쁜 실내화 하나 사 줘,응? 다른 애들은 다 실내화를 신고 다닌단 말야.그리고 어떤 애는 너무너무 예쁜 털실내화를 신고 다닌단말야. 나만 매일 맨발로 다니니까 창피해서 죽겠단말야.˝
˝얘, 분이야, 정말 미안 하구나! 그러나 너도 잘 알다시피 지금 우리는 아빠도 없이 근근이 살아가고 있지 않니? 먹고 살기도 바쁜데, 실내화가 문제니? 교실바닥이 마룻바닥인데 맨발로 좀 다니면 어떠니? 발이 더러워지면 물에 깨끗이 씻으면 되고, 조금만 참으면 엄마가 예쁜 실내화 하나 사줄게. 형편이 나아질 때까지 조금만 참아 다오.˝
엄마는 측은한 표정으로 분이를 달랬다. 분이는 차마 엄마에게 사 달라고 더 이상 조르진 못했다.
아홉 살난 분이지만 단 두 식구인 엄마와 함께 매일 보리밥만 먹고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분이를 무릎 위에 앉혔다.
그리고 분이는 두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시더니 분이의 두 손을 꼭 쥐고 말했다.
˝분이야, 몇 달동안 오래 참았구나! 엄마가 여덟 밤 자고 털실내화 사줄게!˝
˝정말?˝
엄마는 입가에 살며시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야,신난다!˝
어느 새 분이의 얼굴에 뒤덮였던 먹구름은 다 걷히고, 밝은 해가 활짝 웃고 있었다. 벌써 털실내화를 발에 신은 것처럼 마음이 들떠 있었다.
분이가 여덟 손가락을 다 헤아리던 날, 엄마는 참말로 시장에서 예쁜 털실내화를 사 오셨다.
빨간 꽃잎과 노랑,초록 꽃잎이 아로 새겨진 폭신폭신한 털실내화였다.
분이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져보는 털실내화였기에 보물처럼 조심스럽게 다루었다. 잠자기 전에는 먼지를 탁탁 털고 흙이 묻었을 때는 젖은 물걸레로 깨끗이 닦아 머리맡에 얌전히 놓고 잤다.
어떤 때는 엄마가 아기를 품에 안고 자 듯 분이는 털실내화를 가슴에 꼭 껴안고 잠을 자는 일도 있었다.
분이가 털실내화를 갖고 학교에 갔을 때였다. 그날 분이는 신났었다.
나비처럼 날아갈 듯 몸이 가벼웠다.
참새처럼 폴폴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분이는 털실내화를 꺼내 신었다. 털실내화는 너무도 부드럽고 포근했다. 어느 새 아이들의 눈길이 분이의 털실내화로 모여졌다.
˝분이야! 너 털실내화 어디서 났니?˝
분이의 짝궁인 철수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물었다.
˝우리 엄마가 사 줬다.!˝
분이는 신이 나서 얼른 대답했다.
˝맨날 맨발로 다니더니 웬일이야? 네 엄마가 사 줬다는 게 정말이니?˝
뒤에 앉은 순이가 끼여들면서 좀 못 미덥다는 듯이 물었다.
˝응, 정말이야. 우리 엄마가 장사해서 돈벌어 사준거야.˝
˝정말 예쁘구나!˝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칭찬을 해 주었다.
˝너희들 왜 웅성거리니?˝
언제 오셨는지 선생님이 교탁 앞에 서 계셨다.
˝선생님! 맨발로 다니던 분이가 털실내화를 신고 왔어요.˝
˝그래? 어디,나도 한번 보자꾸나.˝
선생님이 분이가 있는 곳으로 오셔서 분이의 실내화를 내려다보셨다. 분이는 부끄러워 발을 의자 밑으로 감추어 버렸다.
˝분이야! 어디 발을 이리 좀 내보아라.˝
그래도 분이는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선생님이 앉아서 분이의 발을 끄집어 내었다.
˝야, 분이의 털실내화가 참 예쁘구나. 어제까지 맨발로 다니는 걸 보고 얼마나 마음이 안되었던지,선생님이 하나 사주려고 했는데.이젠 늦었구나!˝
선생님은 안됐다는 듯 어두운 표정을 잠시 지으셨으나 곧 밝게 웃으셨다.
˝분이야! 털실내화 신으니 발도 따뜻하고 매우 편하지?˝
선생님은 분이의 털실내화를 톡톡 가볍게 다독거리며 물으셨다.
˝네.˝
분이는 모기 만한 소리로 대답했다.
˝분이야! 이것 누가 사줬니?˝
˝엄마가예.˝
˝그래? 분이는 참 좋겠다. 이런 예쁜 털실내화를 사 주시는 엄마가 계시니.분이는 아빠가 안계신다고 그랬지?˝
˝네.˝
˝분이야! 이런 예쁜 털실내화를 사 주신 어머니께 효도를 다해야 한다. 봐라,선생님의 실내화를 !˝
선생님은 갑자기 신고 계시던 분이 앞에 내보였다. 아! 그런데 선생님의 실내화를 얼마나 오래 신으셨는지 때가 꾀죄죄하게 묻은 플라스틱 실내화였다. 발걸이 부분이 금이 가 있어서 얼마 안 가 찢어져 못쓰게 될 것만 같았다.
˝선생님! 이 실내화는 사신지 얼마나 되었어요?˝
개구쟁이 순호가 물었다.
˝응,그러니까 이 학교에 처음 오던 해에 산 것이니 벌써 3년이 지났구나!˝
선생님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씀 하셨다.
˝나도 분이처럼 예쁜 실내화가 신고 싶구나.˝
분이의 실내화에서 손을 떼신 후 허리를 펴고 일어서시면서 분이를 쳐다보며 말씀하셨다.
그날 학교에서 돌아와 잠자리에 누은 분이는 머릿속이 좀 복잡했다.
´분이야,선생님은 이런 꾀죄죄한 실내화를 신고 있는데 너만 좋은 실내화를 신고 있을래?´
´분이야,네가 선생님의 털실내화 한 켤레 안 사 줄래?´
´분이야,너는 욕심쟁이구나!선생님보다 더 좋은 실내화를 신고 있으니 말이다.´
등등 선생님이 ´나도 분이처럼 예쁜 실내화가 신고 싶구나!´
하신 말씀이 분이의 마음과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오랫동안 맴돌면서 분이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선생님의 실내화 한 켤레를 사 드리라고 할까?´
´아니야,우리는 아직도 꽁당 보리밥을 먹는 가난뱅이야.혼자 고생하시는 우리 엄마께 그런 소리를 어떻게 해!´
그날부터 분이는 가끔 밤에 잠꼬대를 하는 버릇이 생겼다.
겨울 방학이 얼마 남지 않은 몹시 추운 어느 날 아침이었다.
˝얘, 분이야. 학교 가자!˝
˝왜 그래. 엄마도?˝
˝그래, 오늘은 너의 선생님 만나 뵙고 인사를 드려야겠다. 너를 학교에 맡겨 놓고 한 번도 인사를 드리지 못했는데, 오늘은 선생님께 인사 한번 드리고 오련다.˝
˝정-말?˝
˝정말이고말고. 자, 빨리 가자. 선생님께 아침 일찍 인사드리고 와야 나도 장사 나갈 게 아니니?˝
분이는 엄마의 손을 잡고 학교로 향했다. 분이 엄마의 다른 손에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조그만 물건이 들려 있었다. 예쁘게 포장한 것을 보면 선생님께 드릴 선물인 것 같았다.분이와 분이엄마는 마침 교실 앞에서 교실문을 들어서시는 선생님과 마주쳤다.
˝선생님,안녕하세요?˝
˝응,그래,분이니?˝
˝선생님,안녕하십니까? 저는 분이 에미올시다. 한번 찾아뵙지도 못하고 이제야 찾아뵙게 되어 죄송합니다. 용서하십시오.˝
˝아이고! 분이어머니, 안녕하십니까?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자, 교실로 잠깐 들어오십시오.˝
˝아닙니다, 선생님. 저는 또 장사를 나가야 하기 때문에 가 봐야 합니다. 선생님,이것은 조그만 제 성의입니다. 작지만 받아주십시오.˝
˝아니, 이게 무엇입니까 이러실 필요가 없는데요.˝
˝선생님,이건 털실내화입니다.˝
˝네? 털실내화라구요?˝
˝몇 달 전 어느 날인가,우리 분이가 밤에 잠꼬대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처음엔 대수롭잖게 여겼기에 무슨 소린지,왜 그러는지 몰랐었는데 그 뒤 잠꼬대를 매일 밤 자주 하는 게 아니겠어요? 어느 날밤엔 잠꼬대가 몹시 심해 식은 땀을 흘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잠꼬대하는 말을 유심히 들어 그 말을 대충 엮어 보니 ´엄마 ,우리 선생님께 털실내화 한 켤레´라는 내용인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 때부터 선생님이 신으실 만한 큼직한 털실내화를 한 켤레 사 드려야 하겠구나 싶어 부지런히 일을 했습니다.요즈음은 떡장사가 잘 안 된답니다.맛있는 과자가 많이 개발되어 쏟아져 나오니 떡을 사 먹는 사람이 무척 줄어들었습니다. 이 집 저집 다니면서 고생스럽게 떡장사를 하여 마련한 부족한 털실내화이오니 받아 주십시오. 우리 분이를 가르쳐 주시는 고마우신 선생님을 이제야 찾아뵙게 되어 죄송합니다.
우리 분이의 잠꼬대를 들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양심의 가책이 되었는지 모른답니다.선생님! 우리 분이 잘 부탁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분이 어머니!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고맙게 잘 신겠습니다.˝
선생님은 고맙다는 말을 하시면서 반갑게 그 선물을 받으셨다. 선생님은 그 선물을 받아 풀어 보시더니
˝야,참 예쁜 털실내화구나!˝
하시며 신장 위에 올려 두셨다.
분이는 아침마다 신장 위에 올려진 선생님의 털실내화를 보았다.선생님은 아끼시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 신고 계신 실내화가 다 떨어지면 신으시려는 것인지,그 털실내화를 신지 않으시고 신장 위에 올려 놓으신 채 그냥 두었다.
˝분아! 엄마가 선물해 드린 실내화를 선생님이 잘 신고 계시니?˝
˝응.˝
엄마가 가끔 물으실 때마다 분이는 힘없이 대답을 했다.
아침부터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어느 날이었다.눈길을 밟으며 떡을 팔고 온 분이의 엄마가 그 날 저녁 방문을 들어서시더니 갑자기 방바닥에 쓰러지셨다. 기침이 심하게 하시고 나중엔 간간히 피를 토하셨다. 밤새도록 뜬 눈으로 분이가 간호한 보람도 없이 엄마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런데 선생님이 아침에 출근하여 구두를 벗고 실내화를 신으려는 순간 플라스틱 발걸이가 뚝 끊어지고 말았다.
선생님은 분이 엄마가 사주신 털실내화를 찾았다. 그러나 눈에 뜨지 않았다.
˝얘들아, 여기 신장 위에 있던 선생님 실내화를 누가 치웠니?˝
˝잘 모르겠는데요.˝
˝어제까지 거기에 있었는데....˝
˝분이 왔니?˝
˝분이가 아까 잠깐 보였었는데...˝
˝그래?˝
분이의 책상에는 분이도 분이의 책가방도 보이지 않았다.
´오늘 분이네 집에 가정 방문해야겠는 걸. 점점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얘들아! 국어책을 펴서 오늘 배울 데를 한번 읽어 보아라.˝
˝네, 선생님.˝
아이들의 글 읽는 소리가 교실 구석구석에 조용히 퍼지기 시작하였다. 선생님은 창밖을 내다보았다.
창밖에는 아침부터 함박눈이 소리없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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