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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2003 불교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목탁 속에 사는 새)

** 불교 신문에도
글나라 제자들이 두 명이나 최종심에 진출했네요.
새해에는 더 노력하길 바랍니다!



[ 2003 불교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



목탁 속에 사는 새


이 경 남



“아빠 힘들어요. 우리 쉬었다 가요.”

새끼 참이가 자꾸 쉬었다 가자고 아빠를 조른다. 아빠 참새 갈마도 더 이상 날갯짓을 할 힘이 없었다. 해는 벌써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래. 저 아래 호숫가에서 잠시 쉬어가자.”

갈마는 참이와 함께 호숫가 정자를 향했다. 정자는 주위가 잔디로 가꾸어져 있었다. 그 아래 농사를 짓던 논은 풀들이 우거진 채 물에 반쯤 잠겨 있었다. 정자에서 시작된 길은 호수를 따라 구불구불하게 산을 향해 있었다. 나무가 쭉 늘어서 있는 모습이 마치 갈마를 부르며 손짓하는 것 같았다. 갈마는 갑자기 그 길을 따라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힘들어하는 참이를 달래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다시 날아 올랐다.

길이 끝나는 곳에는 마치 엄마 품처럼 포근한 절이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갈마는 참이와 함께 잘 곳을 찾았다. 법당을 마주보고 있는 대문사이로 나무에 걸려있는 커다란 목탁이 보였다. 이곳이라면 고양이의 습격도 없고 시끄러운 차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구멍 안에 들어가 앉으니 포근했다. 며칠을 계속 날아온 탓에 갈마는 참이를 안고 금방 잠이 들었다.

“또로록 딱, 또로록 딱”

갈마는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소리에 잠이 깼다. 밖은 아직도 캄캄한데 스님의 도량송 소리가 들린다. 정신이 맑아지면서 며칠전 일이 떠올랐다.

시장 안이었다. 그곳은 항상 먹을 것이 많아서 좋았다. 고소한 기름냄새가 진동하는 그곳은 굳이 바구니까지 눈독을 들이지 않아도 됐다. 바닥에 흘려놓은 것만 먹어도 배가 불렀다. 그날따라 자주 방앗간 앞을 기웃거렸지만 사람들 때문에 가까이 갈 수 없었다. 해질 무렵 마지막으로 배를 채우기 위해 갈마는 가족을 데리고 그곳으로 갔다. 태어난 지 한 달이 갓 넘은 새끼 참이와 생이, 아내 부들은 진열장 주위에서 참깨를 먹고 있었다. 아침부터 조금밖에 먹지 못한 갈마도 배가 고팠지만 주위를 살피기 위해 전선 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고소한 냄새 때문에 더욱 배가 고픈 갈마는 망설이다 진열장 위로 날아갔다. 그리고 바구니 주위에 흩어져 있는 깨를 먹기 시작했다. 순간 진열장 밑에서 검은 물체가 휙 지나갔다.

“짹, 짹”

새끼의 비명소리에 갈마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이미 고양이가 한발로 생이를 찍어누르고 있었다. 놀란 참이가 날아오르며 소리를 질렀다. 곁에 있던 부들이 울부짖으며 고양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갈마도 재빨리 달려들었다. 고양이는 앞발을 날카롭게 세우며 공격을 막아냈다. 갈마와 부들은 온몸의 털을 세우고 부리로 고양이를 향해 공격했다. 그러나 고양이의 날카로운 발톱에 상처만 입고 힘없이 나가 떨어졌다. 고양이는 순식간에 생이를 물고 진열장 밑으로 사라져 버렸다. 갈마는 다시 일어나 고양이를 뒤쫓아 진열장 밑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진열장 밑은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갈마가 밖으로 나왔을 때 부들은 땅에 누운 채 움직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생이와 부들을 잃어버린 갈마는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아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니 온 몸의 힘이 빠졌다. 갈마는 날갯짓을 멈추고 눈을 감은 채 부들과 생이 얼굴을 떠올렸다. 순간 몸이 한없는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째애액, 짹, 째애액짹.”

어디선가 새끼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처음에 헛것이 들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울음소리는 계속 들렸다. 갈마는 순간 또 한 마리의 새끼인 참이를 떠올렸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갈마가 땅으로 돌아왔을 때 참이는 엄마 옆에서 울고 있었다.

‘그래. 참이가 있었어. 혼자 설 수 있을 때까지는 내가 지켜줘야 해.’

갈마는 쓰러진 부들이 옆에 앉아 참이만은 꼭 지켜주겠다고 맹세를 했다. 그러나 갈마는 가족을 잃어버린 이곳이 두려웠다. 그래서 참이를 데리고 날아온 곳이 여기였다.

날이 밝자 조용하던 절에 사람들 소리가 들렸다. 갈마는 깜짝 놀라 밖으로 나왔다.

“어머나, 저기 좀 보세요. 목탁 속에서 새가 나왔어요.”

누군가 소리쳤다.

“어디? 정말이네.”

갈마는 얼른 감나무 위로 날아갔다. 그리고 새끼 참이를 향해 소리쳤다.

“참이야, 꼼짝하지 말고 그대로 있어.”

사람들은 신기한 듯 목탁과 감나무 위에 앉은 갈마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갈마는 감잎 사이로 몸을 숨겼다. 잠시 후 사람들이 법당으로 들어가자 갈마는 자신이 있는 곳을 둘러보았다. 잠을 잤던 목탁은 돌계단 앞에 서 있는 감나무에 걸려 있었다. 지난밤에 보지 못했던 연못이 그 아래 있었다. 연못 주위에는 석등이 있고 돌 부처님이 앉아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두 분 이었다. 아버지 부처님은 목탁을 마주보고 있었다. 땅위에 있는 모습이 연못에 그대로 비쳤다. 감나무 위에 앉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새를 잔잔한 물이 감싸주는 것 같았다. 갈마는 참이와 함께 가까운 담장 위로 날아가 햇빛을 쬐었다. 절은 법당과 요사채 뿐이었다. 그리고 법당 오른편에는 지장보살이 서 있었다. 스님처럼 민머리에 오른손에는 지팡이, 왼손에는 어린애를 안고 있었다. 그리고 주위에는 빨간색 턱받이를 한 동자들이 주욱 늘어서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법당 안에서 사람들이 나와 절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주머니 한 분이 지장보살상 앞으로 왔다. 왠지 슬퍼 보였다. 아주머니는 지장보살 앞에 향을 사른 후 앉아서 기도를 했다. 갈마와 참이는 가까운 담장 위로 날아가 기도가 끝날 때까지 지켜보았다. 아주머니는 한참이 지나서야 삼배를 하고 일어섰다. 손으로 자꾸 얼굴을 만지는 것이 눈물을 훔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 갈마는 가슴이 뭉클 해지는 것을 느꼈다.

다음날 잠에서 깨어난 갈마와 참이는 깜짝 놀랐다. 커다란 눈이 구멍 밖에서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갈마는 놀라 떨고 있는 참이를 품에 앉은 채 꼼짝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소리쳤다.

“이것 보세요. 목탁 속에 새가 있잖아요.”

“신기하네. 어떻게 새가 이 안에 들어갔을까?”

“정말 이었네. 어제 있다고 해도 안 믿었는데.”

“스님. 스님. 이것 좀 보세요. 새가 목탁 안에 둥지를 틀었어요.”

누군가 스님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다가온 스님은 목탁 안을 살펴보았다.

“어리석음에서 깨어나라고 목탁을 걸었는데, 새 손님이 오셨네요.”

잠시 후 스님은 두꺼운 종이를 들고 나왔다. 종이에는 ‘손대지 마세요. 목탁 안에 새가 살고 있습니다.’라고 써 있었다. 스님은 종이를 목탁 옆에 걸어주었다.

“그렇게 큰소리로 떠들면 새가 놀라 달아나겠습니다. 다들 다닐 때 조용히 다니도록 하지요.”

스님의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조용히 스님을 따라 법당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갈마와 참이는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감나무 위에 앉아서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숲을 한바퀴 돌고 돌아온 갈마는 지장보살상 앞으로 갔다. 그곳에는 어제 본 아주머니가 먼저 와 있었다. 갈마는 조용히 날아가 아주머니 옆에 앉았다.

‘어떤 기도를 하고 있을까?’

아주머니는 두 손을 합장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 앉아 있던 갈마는 눈을 감고 생이와 부들을 생각했다. 참이는 아직 두려움이 가시지 않은 탓인지 아빠 곁을 떠나지 않고 주위를 맴돌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기도를 마친 아주머니는 옆에 갈마가 앉아 고개 숙이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인기척에 놀란 갈마와 참이는 얼른 감나무 위로 날아 올랐다. 잠시 후 아주머니는 조용히 일어나 삼배를 한 후 절을 내려갔다.

며칠이 지나자 아침이면 목탁 안을 들여다보며 신기해하던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목탁 앞에서 사람들은 하나 둘 절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목탁 옆을 지나칠 때는 조심조심 발소리를 죽이며 걸었다. 지장보살 앞에서 하는 아주머니의 기도는 계속 되었다. 그 곁에서 갈마도 같이 기도를 했다. 참이는 아빠 갈마와 같이 기도를 하기도 하고 지장보살 주위를 맴돌며 놀기도 했다. 배고프다고 투정을 하는 참이를 위해 갈마는 기도를 빨리 끝내고 숲으로 먹이 사냥을 나가기도 했다. 날이 지날수록 갈마는 숲으로 가는 날이 많아졌다. 참이는 아주머니 곁에 앉아 아빠가 오기를 얌전히 기다렸다. 기도를 마친 아주머니는 한참동안 물끄러미 참이를 바라보더니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내 아이도 너처럼 예쁜 새가 되었을까?”

아주머니는 눈에 눈물이 고이자 길게 한숨을 쉰 후 하늘을 쳐다보았다.

다음날 기도를 마친 아주머니는 어린 참새를 위해 좁쌀을 조심스레 주위에 뿌려 주었다.

“이리 와서 맛있게 먹으렴.”

갈마가 조심스레 다가가 좁쌀을 먹자 나무 위에서 놀고 있던 참이도 내려와 앉았다.

기도는 몇 달 동안 계속되었다. 참이는 아주머니와 갈마가 기도하는 동안 담장 위에서 햇빛을 쬐거나, 감나무에 앉아 조용히 둘을 지켜보곤 했다. 숲 속을 돌아다니며 사냥을 하다가도 기도가 끝날 시간이면 어김없이 지장보살상 앞으로 날아왔다. 그리고 갈마와 함께 아주머니가 주는 좁쌀을 가까이서 받아먹었다. 아주머니와 참이가 함께 있는 시간이면 갈마는 마음놓고 혼자 숲 속을 날아다녔다.

어느 날 기도를 마친 아주머니가 물었다.

“너는 누구를 위해 기도하니?”

“…….”

“여기에 오는 많은 사람들이 죽은 아기를 위해 기도하러 온단다. 병이 나거나 사고로 죽은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어버린 아이들이야. 햇빛을 보지 못하고 죽어간 아이들 영혼이 저승으로도 가지 못하고 울고 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갈마는 이상한 눈빛으로 아주머니를 바라보았다.

‘왜 이런 말씀을 하실까?’

“나도 태어나지 못하고 죽어버린 내 아이를 위해 기도한단다. 결혼한 지 십 년 만에 생긴 아이라 얼마나 가슴 설레며 기다렸는데…”

아주머니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훔쳤다.

“그런데 몸이 약해서 그만 뱃속에 있는 아이를 지키지 못했어. 다음에는 꼭 건강한 엄마에게서 태어나 사랑 많이 받으며 살아가라고 기도하는 거야.”

“…….”

갈마는 아주머니를 처음 봤을 때 왜 슬퍼 보였는지 알 수 있었다.

“그동안 너희들을 보면서 많은 위안을 받았단다. 혹시 내 아이가 너희처럼 새로 다시 태어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

아주머니는 갈마와 참이를 한참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아주머니의 눈에서는 눈물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다.

“오늘 백일 기도가 끝났단다. 그동안 너희들과 정도 많이 들었는데.”

아주머니는 마지막으로 좁쌀을 뿌려 주었다. 참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맛있게 먹었지만 갈마는 먹을 수가 없었다.

“여기 오는 많은 사람들이 너희들을 보고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나처럼 말이야.”

아주머니는 전보다 더 천천히 정성을 들여 삼배를 올린 후 절을 내려갔다. 갈마와 참이는 일주문까지 아주머니를 배웅했다. 아주머니를 태운 차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내려갔다. 갈마는 둥지로 돌아왔지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주머니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쪽이 뻥 뚫려버리는 것 같았다. 참이도 아주머니가 떠난 걸 아는지 풀이 죽어있었다. 갈마는 지금이 이곳을 떠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떠나면서 남긴 말이 자꾸 귀에 맴돌았다.

‘많은 사람들이 너희보고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구나.’

그러고 보니 지장보살상 옆에 늘어선 동자상들이 모두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갈마는 부들이와 번갈아 알을 품으면서 가졌던 설레임과 솜털도 없는 벌거숭이에 눈도 뜨지 못하던 새끼들이 태어났을 때의 기뻐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고양이에게 생이와 부들을 잃고 죽음을 생각했을 때를 떠올렸다. 갈마는 둥지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달빛에 비친 아버지 부처님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부처님의 모습은 항상 웃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갈마는 순간 부처님의 얼굴에서 슬픔을 감춘 채 새끼에게 웃는 모습만을 보여왔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새끼를 구하기 위해 싸우다 죽은 부들이와 백일동안 기도를 하던 아주머니의 모습도 보이는 듯 했다. 그리고 목탁 앞에서 절을 하는 사람들도 떠올랐다.

‘그 때문이었을까?’

갈마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달빛 속에 빨간 턱받이를 하고 있는 동자상의 미소가 어렴풋이 보인다. 갈마는 슬퍼 보이는 그 미소를 보며 다짐했다. 언제까지나 이곳에 남아있겠다고.


<동화 당선소감>

아이들을 위한 글쓰기 갈수록 어려움 느껴...

내가 대원사를 처음 찾은 건 아주 오래 전이다.
그곳은 여느 절과는 달리 은은하게 티벳풍의 명상음악이 흐르고, 곳곳에 작은 수자상들이 모셔져 있었다. 게다가 법당 안에 있어야 할 목탁은 나무에 걸려 새 둥지가 되어 있었다. 뭔가 말할 수 없는 느낌이 가슴에 꽉 차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도 그때의 여운을 찾아 몇 번을 더 찾았다. 새는 한 달 정도 그 안에 머물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목탁 안에 빈 둥지만 남아 있다. 그러나 언젠가 다시 돌아와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처음 동화를 쓰기 시작하면서 내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을 위한 글을 쓴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된다. 이번을 계기로 나태해지는 나 자신을 추스르고, 열심히 노력하는 초발심으로 돌아가리라 다짐해본다. 그리고 모든 분들에게 감사 드리고 싶다.


<동화 심사평>

인연이야기 서사·서정적으로 풀어

들어 온 작품 중에서 다섯 편을 골랐다.
‘탄광촌에 내리는 눈’, ‘목탁 속에 사는 새’, ‘한 우물이래요’, ‘내가 꿈나무래요’, ‘빨간 털옷 입은 병아리’다.
‘빨간 털옷 입은 병아리’는 건영이의 이미지가 제다로 그려지지 않았다.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아이가 병아리를 사서 할머니의 꾸중을 듣지 않으려고 상희 집 앞에 둔 것도 그렇다. 또 끝에 가서는 병아리 박사라고 한 말도 자연스럽지 않다. 이야기를 끌어가는데 급급하다보니 이런 일이 생긴다.
‘내가 꿈나무래요’는 소재의 참신성에 주목했다. 그런데 그런 소재의 참신성을 감동으로 이어가지 못했다.
‘한 우물이래요’는 너무 큰 주제를 동화로 다루다 보니 교훈적으로 변하고 상투적으로 보인다. ‘천주교와 불교의 차이점은 무엇이고 같은 점은 무엇이며 이런 종교들이 갈등을 넘어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 하는 문제는 더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다. 그런데 그런 깊이 있는 성찰이 없으면 ‘종교는 궁극적으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같다’는 상투성으로 끝나고 만다. 이 작품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머지 ‘목탁 속에 사는 새’와 ‘탄광촌에 내리는 눈’을 두고 고민을 했다. 우열을 가리기에는 각각 장점들이 있어 힘들었다. ‘목탁 속에 사는 새’는 불교의 인연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인연이란 인간과 인간만이 맺는 것이 아니고 인간과 자연, 동물과 인간, 인간이 만들어놓은 구조물과 날짐승 등 폭넓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서사성과 서정성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불교의 인연을 이야기 하다보니 이야기는 이야기다라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는 단점도 가지고 있다. 필연성보다는 우연성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탄광촌에 내리는 눈’은 탄광촌의 정경과 함께 예슬이 가족의 삶을 따뜻하게 그리고 있다. 탄을 캐던 아버지가 진폐증에 걸려 탄을 캐던 일을 그만 두고 보일러실로 옮기지만 진폐증이 폐암으로 변해 죽음을 앞에 두고 있다. 예슬이 어머니는 붕어빵장사를 해 그런 남편에게 고기를 사다주며 가정을 이끌고 있다. 이렇게 어려운 가정과 폐촌으로 변해버린 탄광촌을 예슬이의 가족들의 슬프고 아름다운 삶으로 고발하고 있다. 그 속에서 예슬이는 살고 있으면 이웃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 속에도 삶이 있고 그 삶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작품도 알고 불교도 알아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는 ‘목탁 속에 사는 새’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당선작으로 뽑힌 분이나 투고를 해주신 분들의 성취를 빈다.


== 윤 기 현 (동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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