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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랫방 공주 (이규희) |  | |
| 마당의 과꽃들이 활짝 핀 어느 날입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수영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군대 간 막내 삼촌이 쓰던 아랫방에 웬 낯선 아이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얼굴이 하얗고 조그만 여자 아이였습니다.
“엄마, 아랫방에 누가 이사 왔어요?”
“응, 할머니랑 손녀 두 식구뿐이라더라. 아이 아빠가 사고로 죽고 엄마는 멀리 돈 벌러 갔다는구나. 그런데 아이가 약간 시원찮아 보이더라. 너보다 두 살 아래라는데 학교에도 안 다니는 걸 보면. 쯧쯧….”
엄마는 혀를 끌끌 찼습니다.
‘두 살 아래면 2학년이나 되었을 텐데….’
수영이도 아이가 불쌍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수영이가 마당에서 공차기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얘, 거기서 놀지 마. 거긴 내 꽃밭이야!”
갑자기 아랫방 아이가 나와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뭐어?”
수영이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주인집 아이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수영이는 들은 척도 않고 더 힘껏 공을 찼습니다.
“여봐라!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넌 참 고약한 신하로구나!”
아이는 아까보다 더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뭐, 내가 시, 신하라구…?! 야, 네가 무슨 공주라도 되냐, 쳇!”
수영이는 기가 막히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그러자 뜻밖에도 아이는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그래, 난 별나라 공주야! 언젠가 저 먼 별나라에서 신하들이 나를 모시러 오면 내 어깨의 우두 자국을 보여줄 거야. 봐! 이건 바로 내가 별나라 공주라는 표시거든!”
아이는 빨강 스웨터의 윗도리를 어깨까지 늘어뜨려 우두 자국을 보여줬습니다.
수영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건 분명히 불주사 자국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찌나 흉터가 큰지 다른 아이들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마치 별 모양 같았습니다.
“봤지? 그러니까 이제 내 말을 잘 들어야 해.”
“…….”
수영이는 우물쭈물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아이가 어찌나 당당하게 구는지, 진짜 별나라 공주인지도 모른다는 바보 같은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나, 자전거 태워줘!”
아이는 쪼르르 마당에 세워 놓은 자전거의 뒷자리에 올라탔습니다.
“그, 그래 알았어.”
수영이는 마치 귀신에 홀린 듯 자전거 페달을 밟았습니다.
“아, 기분 좋아!”
아이는 마치 황금마차를 탄 공주처럼 좋아하였습니다.
그 날 저녁 수영이는 아랫방 할머니랑 엄마가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즈이 엄마가 늘 그랬거든. 넌 별나라 공주인데 실수로 우리 집으로 떨어진 게다. 그러니 나중에 별나라 궁전에 가면 잘살게 될 거라고. 아마 집이 워낙 가난하니까 희망을 심어주려고 그랬던 게지. 하지만 그 후 즈이 엄마가 집을 나간 뒤 애가 점점 이상해졌다우.”
수영이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에도 자기를 신하처럼 막 부려먹어도 기분 나쁘지 않았습니다. 진짜 공주님을 모시는 신하처럼.
며칠 후, 학교에 다녀온 수영이는 자기도 모르게 아랫방 창문을 바라보았습니다. 날마다 수영이가 돌아오는 기척이 들리면 아이가 쪼르르 창문으로 내다보곤 했거든요. 하지만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 어디 갔지?”
수영이는 둘레둘레 아이를 찾았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나, 여기 있어!”
뜻밖에도 지붕 위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이는 옥상처럼 생긴 지붕 위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밖으로 난 층계를 딛고 거기까지 간 것입니다.
“아니, 거긴 왜 올라갔니? 다치면 어쩌려구?”
수영이는 부리나케 쫓아 올라갔습니다.
“이렇게 높은 데 있으면 별나라 신하들이 금방 나를 찾을 수 있을 거야.”
아이는 수영이를 보며 과꽃처럼 방긋 웃었습니다.
수영이는 자기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지붕 위에 오도카니 앉아 별나라 신하를 기다리는 아이가 마냥 가여웠습니다.
“그래도 여긴 위험해. 내려가자, 어서!”
수영이는 아이의 손을 잡고 조심조심 층계를 내려왔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던 수영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집 앞에 앰뷸런스가 서 있고 사람들도 웅성웅성 야단이었습니다.
“글쎄, 별나라에서 누가 데리러 올 테니 불을 환하게 켜야 한다며 성냥불을 켰다지 뭐예요. 다행히 수영이 엄마가 빨리 발견했으니 망정이지 집을 홀랑 태울 뻔했대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아이래요.”
수영이는 후닥닥 안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 때, 마악 아이가 어떤 아저씨의 품에 안겨 아랫방을 나오는 게 보였습니다. 아이의 할머니도 훌쩍훌쩍 울며 따라 나왔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해님처럼 환했습니다.
아이는 수영이를 보자마자 떨리는 소리로 외쳤습니다.
“봐! 내 말이 맞지? 별나라 신하들이 나를 데리러 왔어! 난 이제 별나라로 가는 거야. 참, 그동안 나를 잘 보살펴줬으니 상을 줘야지!”
아이는 손에 꼭 쥐고 있던 노란 은행잎 한 장을 건네줬습니다.
“그래, 넌 진짜 공주님이야, 아랫방 공주!”
수영이는 은행잎을 손에 쥔 채 중얼거렸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별나라에서 하루빨리 건강해지기를 빌었습니다. 어느새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르 흘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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