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글 나누기
joungul.co.kr 에서 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떡 벌어진 생일상 ( 임정진 )
떡 벌어진 생일상



임정진 (동화작가)



“야, 내일 네 생일이지? 나 초대 안해? 누구누구 초대할 거야?”

동하랑 난 같은 12동에 살고 클라리넷 학원에 같이 다녀서 방학 때도 자주 만난다.

“미안하지만…, 친척들이 너무 많이 와서 친구들을 부를 자리가 없어. 이해해라.”

“부럽다, 부러워. 친척들이 네 생일이라고 다 오시다니.”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느라 혼났다. 나 참, 아니 무슨 5학년짜리 생일에 그렇게 친척이 많이 오는 걸까? 내 생일에 포항 이모가 보내 준 카드 한 장에 감격했던 게 생각났다. 감격 취소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동하 엄마를 만났다. 동하 엄마는 얼마나 장을 많이 보았는지 쇼핑 백을 다섯 개나 들고 계시다가 우리를 보고 반가워하셨다. 얼핏 보기에도 없는 게 없어 보였다.

“동하야, 이것 좀 하나 들어라. 빠진 거 없나? 아, 녹말가루 안 샀다…. 아유.”

“이거 다… 생일 잔치 상차리는 거야?”

“당연하지.”

맙소사. 동하의 자랑스러운 표정에 질려 난 발을 쿵쿵거리며 우리 집에 들어왔다.

“뭐야? 한상준. 왜 삐졌어?”

엄마는 내 발소리만 듣고도 귀신같이 내 기분을 알아차리신다.

“엄마는 말로만 날 사랑한다고 하지. 이모도 그렇고 할머니도 그렇고. 다 건성이야. 내 생일에 언제 집안 어른들이 관심 가졌어요? 흥! 귀하게 키워야 귀한 사람이 되는 거래요. 뭐.”

“무슨 소리야?”

“내일 동하네 집 좀 가 보세요. 동하가 얼마나 대우 받고 자라는가.”


다음 날, 난 학원에 가면서 일부러 동하네 집이 있는 7층에서 내렸다. 동하네 집은 현관문이 반쯤 열려 있었는데, 현관에 손님들 신발이 얼마나 많은지 문 밖으로 삐져 나올 지경이었고 온갖 음식 냄새가 계속 흘러나왔다. 아침부터 친척들이 다 모인 모양이었다. 슬쩍 들여다보니 거실에 떡 벌어지게 차린 생일상이 보였다. 놀라서 내 입이 떡 벌어졌다. 그 때 마침 동하가 집에서 나왔다.

“어어, 동하야, 같이 가자고….”

“그래. 같이 가자. 난 아침을 너무 많이 먹어 클라리넷 불기도 힘들겠어. 걸어 내려가자.”

“야, 나 같으면 오늘은 학원 안 가고 하루 종일 생일 잔치만 하겠다.”

“뭐 해마다 그러니까…. 별로…. 오늘은 작은 삼촌 안 오셨더라구. 출장 가셨거든. 아마 전화 올 거야.”

“정말? 야, 너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대우를 받는 거야? 비결이 뭐야? 나 좀 가르쳐 줘.”

난 정말 궁금했다. 내 생일에 그렇게 떡 벌어진 생일상을 받을 수 있다면 난 진짜 효도하고 살 거다. 공부도 잘하고… 진짜… 대단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우리 가문이 유난스레 정이 많아서 그렇지. 별거 아냐. 그냥 다같이 밥 먹는 건데 뭐.”

“야, 너 먼저 가. 나 집에 뭐 놓고 왔다.”

난 다시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엄마, 이리 좀 와봐. 빨리…”

나는 설거지하는 엄마를 억지로 끌고 나왔다. 엄마 입도 떡 벌어졌다.

“진짜네… 네가 과장하는 줄 알았더니… 좀 너무 하는 거 아니니? 애 생일에 무슨…”

난 입이 앞으로 한 주먹 나온 채 엄마에게 한바탕 요구 사항을 늘어놓았다.

“집에서 귀하게 대접 받아야 애가 나가서도 귀하게 대접 받는대요. 내 생일에 한 상 떡 벌어지게 차려서 일가 친척들 다 오시라고 해요. 엄마, 요리 강습을 좀 받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 때 엘리베이터에서 커다란 꽃바구니를 든 배달원이 내리더니 동하네 집 앞으로 왔다.

“아니. 꽃바구니까지…” 이제는 나보다 엄마가 더 놀란 모양이셨다.

난 꽃바구니에 달린 리본을 보고 깜짝 놀랐다.

―64회 어머님 생신을 축하 드리며, 작은아들 드림.―

난 엄마가 리본을 보지 못하게 몸으로 막은 다음, 집에 가시라고 떼밀었다. 이러면 내 계획이 다 틀어지는데…

막 뛰어가 다행히 학원 문 앞에서 동하를 붙잡았다.

“야, 너 오늘 할머니 생신이지? 왜 거짓말 했어? 웃기는 놈이잖아.”

“할머니랑 나랑 생일이 같다. 왜? 그래서 난 만날 찬밥이다, 왜? 이제 됐냐? 그렇지 않아도 서러운데 너까지 부채질을 하냐?”

아, 큰일났다. 우리 엄마가 이 사실을 알면 안 되는데…. 불쌍한 동하를 위해 난 용돈을 털어 컵 케이크를 하나 사서 초를 꽂아 주었다.

“너, 안 됐다.”

“괜찮아. 내 동생 생일은 외할아버지 제삿날이야.”

음, 그냥 내 생일은 하던 대로 조촐하게 지내는 게 나을 것 같다. 이제 뭐라고 엄마에게 말하지…

“엄마, 막 자라야 경쟁력 있는 사람이 된대요.”
 
비즈폼
Copyright (c) 2000-2025 by bizforms.co.kr All rights reserved.
고객센터 1588-8443. 오전9:30~12:30, 오후13:30~17:30 전화상담예약 원격지원요청
전화전 클릭
클린사이트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