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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승 컴퓨터 다운됐네” < 임정진 > |  | |
| “저승 컴퓨터 다운됐네”
(2003.01.09) 임정진 지음
“오늘의 뉴스. 염라대왕님이 계속적인 두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부하들은 대왕님의 두통약을 구하기 위해 애쓰고 있으나 아직 약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저승 뉴~스~ 오지랍 기자였습니다.”
저승 사자 두 마리가 그 뉴스를 들었다. 둘은 한때 대왕님의 애완 동물이었으나 너무 늙어서 은퇴했다. 청사자와 황사자는 대왕님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으므로 이번 기회에 대왕님께 은혜를 갚고 싶었다.
“원인을 알아야 고치는 법도 알게 되는 거야.”
“맞아. 네 말이 맞아.”
청사자의 말에 황사자가 맞장구를 치고 둘은 대왕님께 달려갔다.
“어서들 오너라. 오랜만이구나.”
“무슨 걱정이 있으신지요? 저희가 도와드리려고 왔습니다.”
염라대왕님은 한눈에 보기에도 아주 수척했다. 황사자와 청사자는 오래 전에 그러했듯이 대왕님의 양쪽 무릎에 각각 갈기털을 비비면서 대왕님께 인사를 했다.
대왕님은 매우 기뻐하면서 마음 속을 털어놓았다.
“내가 말이지. 머리가 아프단다. 우리 저승 컴퓨터의 데이터 베이스에 자꾸 치명적인 오류가 생기고 있거든.”
“무슨 오류인데요? 제가 당장 가서 한 입 물어주겠습니다. 고얀 것들.”
컴맹인 황사자가 열을 냈다. 그러나 청사자가 얼른 황사자를 뜯어말렸다.
“혹시 해커가 침입한 것인가요?”
“아니야. 그게 아냐. 이승의 사람들이 말이야. 그것도 젊디 젊고 어리디 어린 사람들이 무고한 생명체를 너무 많이 죽이는 거야. 하루에만도 수천 명씩 죽이는 사람도 허다하다니까. 그러니 죄를 기록하는 파일이 무지막지하게 용량이 커졌어.”
“으악~ 전쟁이 났군요.”
겁많은 황사자는 꼬리를 엉덩이 밑에 깔았다.
“그것도 아냐. 자세히 알아보니 진짜 생명체를 죽이는 건 아니고 컴퓨터 속의 게임 안에서 그러는 거야.”
대왕님의 대답에 청사자는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그건 가짜잖아요. 그 기록들은 삭제하면 되지요. 진짜로 누굴 죽이는 게 아니거든요.”
청사자는 마음이 개운해졌다. 그런 거라면 뭐가 걱정인가. 청사자도 역시 매일 쥐 잡기 게임에서 화려한 승률을 올리고 있지 않은가. 쥐꼬리 휘돌려 던져 죽이기 분야에서는 거의 환상적인 솜씨를 보이고 있는 청사자였다. 치즈 폭탄을 아파트 계단 밑에 교묘하게 설치하여 쥐 일가족 몰살시키기와 쥐 수염 뜯어버린 후 어둠 속에 몰아넣어 괴롭히기, 송곳으로 쥐꼬리 찌르기의 고난도 단계까지 청사자는 멋진 솜씨를 보이고 있었다. 쥐 굴을 함락시키기 위해 필요한 아이템들도 상당히 확보한 상태라서 청사자는 자기의 솜씨에 자부심까지 갖고 있었다.
그러나 대왕님은 계속 어두운 얼굴이었다.
“그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란다. 비록 화면 속에서 죽이는 거지만 생명체를 죽이고 싶어하는 마음은 진짜 사람의 마음이거든. 나쁜 마음도 분명히 죄거든. 그러니까 그 기록들이 있어야 나중에 그들이 저승에 오면 죄를 심판할 수 있단 말이지. 그리고 우리 저승 컴퓨터들이 실제의 살생과 사이버 살생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적도 많아. 그러니 내가 머리가 안 아플 수가 있겠니?”
대왕님의 말에 청사자는 오금이 저려왔다.
‘앗. 죽이고자 하는 마음은 죄구나…. 큰일이다.’
청사자는 자기의 죄를 씻기 위해서라도 무언가 좋은 방법을 연구해야만 했다.
대왕님이 두통에 좋다는 태극 무늬 머리띠를 두르고 나서 보니 황사자는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아니 왜 우니? 너도 게임에서 생명체를 죽였니?”
“아니요. 그게 아니고요. 게임 속에서 그렇게 많이 생명체가 죽다니. 너무 불쌍하잖아요. 흑흑흑. 그들도 죽으면 저승에 오나요?”
그 말을 들은 대왕님 또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맞다. 우리 컴퓨터가 그 수많은 사이버 생명체들이 죽을 때마다 그걸 다 기록하는 모양이다. 아이고. 그러니 만날 다운이 되지. 아이고 머리야….”
청사자는 마음이 급해졌다. 얼른 좋은 방법을 마련해야 했다. 천하에 무서운 게 없는 대왕님이 울다니. 이건 저승의 명예가 달린 위기였다.
“복제를 하는 겁니다. 인간 복제하듯 컴퓨터를 복제하면 됩니다.”
“으잉? 그래? 그럼 한 열 놈쯤 복제를 해야 될거야. 그래야 용량 문제가 얼추 해결될 것이야.”
청사자는 황사자의 도움을 받고, 대왕님의 염력을 빌려 저승 컴퓨터를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
“야호, 이제 내 두통이 다 나을 모양이다. 고맙다, 청사자야.”
청사자는 훈장을 받고 황사자는 호박떡을 선물로 받고 돌아갔다.
그러나 석달이 조금 지나자 모든 컴퓨터들이 다시 다운되었다. 이번에는 더욱 심각한 상태였다.
대왕님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목숨을 기록하는 장부를 들여다보았다. 거기엔 컴퓨터의 목숨도 적혀 있었다. 얼마 전만 해도 분명히 3년 넘게 남은 목숨이었는데 언제 고쳐 적었는지 ‘석달 반’이라고 되어 있었다.
“여봐라~ 어찌 컴퓨터 수명이 갑자기 십분의 일로 줄어들었는가. 컴퓨터가 죄를 지었는가?”
컴퓨터가 다운되어 주판을 들고 계산하던 부하가 대답했다.
“컴퓨터 목숨은 원래 3년이 남았사오나 여러 개로 복제되어 수명을 나누어 가진 것으로 아뢰오. 다른 형태로 만든 것이면 새롭게 목숨이 부과되오나 복제된 것은 새 수명이 부과되지 않사옵니다. 원래 자기 운명에 딸려나온 목숨을 나누어 가지게 되옵니다.”
“아이고… 머리야.”
대왕님은 다시 태극 무늬 머리띠를 이마에 졸라매고 새로운 방법을 연구해야만 했다. 대왕님 자신을 복제해서 함께 고민하게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오늘의 뉴스. 대왕님은 요즘 새로운 게임에 폭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고 합니다. 그 게임의 이름은 청사자 괴롭히기 게임으로, 청사자 꼬리 잡아 휘돌려 던지기 분야에서 대왕님은 화려한 개인기를 뽐내고 있습니다. 저승 뉴~스~ 오지랍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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