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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숲 속의 신호등 |  | |
| 깊고 깊은 산골에 홀어머니와 단 둘이서 사는 어떤 소년이 있었다.
소년이 사는 마을은 닭 둥우리에 든 알처럼 산으로 둘러쳐 있었다.
산에는 과일과 나물과 약초가 있었다. 꽁지에 불을 단 반딧불과, 냇물에 노니는 물고기와, 나무 사이로 날고 달리는 동물들이 있었다. 아름드리 나무와 향내나는 꽃, 곱게 머리 빗은 잔디 언덕도 있었다. 모든 것이 다 있는 듯 했다. 그런데, 그렇게 보배로운 숲 속에 흉측한 도깨비들이 살고 있었다.
오래 전의 일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산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생겼다. 사람들은 도깨비가 잡아갔다고 했다. 그런 일이 몇 번 있고 난 뒤, 마을 사람들은 도깨비들을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존재로 알았다. 가까운 산에서만 필요한 것들을 구할 뿐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꺼렸다. 그래서 소년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적부터 소년이 사는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다른 마을에 가지 못했다.
구름이 잔뜩 낀 어느 날 오후였다.
소년이 밖에서 신나게 놀다 집에 돌아와 보니 한 분뿐인 어머니가 힘없이 누워 끙끙 앓고 있는 게 아닌가?
˝어머니, 어디가 편찮으세요?˝
흔들면서 물어 보았지만, ´음음´ 하고 신음 소리만 낼 뿐, 아무런 대답도 못했다. 이마는 불덩이 같고, 입고 있는 옷은 물에서 방금 건진 것처럼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소년은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뛰어나갔다.
산골 마을이라 의원이나 약방이 없었다. 환자가 생기면 마을 어른들을 찾아갔다. 마을 어른들이 일러주는 대로 약초를 캐어다가 치료하면 대부분의 병을 몰아낼 수 있었다. 소년이 찾아가려는 곳도 마을에서 제일 어른인 약초 할아버지 댁이었다. 약초에 대해 잘 아는 할아버지라고 해서 약초 할아버지란 이름이 붙었다.
˝약초 할아버지, 엄마가 아프셔요. 빨리 오셔서 고쳐주세요.˝
소년은 마침 약초 망태기를 메고 산에서 내려오는 할아버지를 만나 집으로 모셔올 수 있었다.
집에 들어선 약초 할아버지는 먼저 소년의 어머니 손을 들어 맥을 짚었다.
˝아니 이런!˝
˝왜 그러세요?˝
˝너의 어머니는 도깨비 병에 걸리셨다. 조상 때부터 이 병에 걸린 사람은 고친 적이 없으니 이 약초할애비도 어쩔 수 없겠다.˝
약초 할아버지는 소년의 어머니 손에 생겨난 엽전 크기의 붉은 점을 보여주었다.
˝이 점은 도깨비 산 도깨비나무를 건드렸을 때 생기는 것이란다. 어머니께서 오늘 혹시 산에 올라가지 않으셨느냐?
˝땔감이 떨어졌다고 아침에 나가셨어요.˝
˝저런, 오늘이 그믐인 걸 모르셨단 말이냐! 쯧쯧쯧.˝
약초 할아버지는 혀를 차며 안타까워했다.
소년도 도깨비 병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도깨비들은 마을을 빙 둘러친 도깨비 산 깊은 곳에 산다고 했다. 그 도깨비들이 그믐밤과 보름낮이 되면 도깨비 산의 마을 가까운 곳까지 내려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도깨비 산 도깨비나무에 숨어서 도깨비 병을 옮겨준다는 이야기가 옛날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바로 그믐이다.
˝할아버지 어떻게든 우리 어머니를 고쳐주세요.˝
어머니께서 도깨비 병에 걸리셨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소년은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할아버지 팔에 매달렸다. 약초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안 하시고 소년을 안고서 울음만 달래셨다.
˝방법이 있긴 하지만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으니까.˝
약초할아버지 설명에 따르면 도깨비 산, 도깨비 성, 도깨비 왕의 호르륵 소리를 들어야만 도깨비의 도술이 풀려 병이 낫는단다. 소년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적부터 전해오는 말씀이었다. 하지만, 그 동안 도깨비 병에 걸렸던 마을 사람 중에 그 병을 고쳐서 나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할아버지가 집에 돌아가신 후 고개를 두 무릎에 파묻고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기 같은 어린아이는 도깨비 산 도깨비 왕의 호르륵 소리를 가져올 수 없을 것 같았다. 옆에서 들리는 어머니의 앓는 소리에 소년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 아팠다.
˝어머니를 위해서는 용기를 내야 돼 !˝
병간호를 하느라 밤새 한잠도 못 잔 소년은 이와 같이 다짐하고 새벽같이 일어났다. 그리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동이 틀 무렵이 되어 소년은 장승이 있는 산 어귀에 다다랐다. 마을 사람들이 도깨비 산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려고 세워놓은 도깨비 모양의 장승이었다. 그곳에서 가쁜 숨을 돌리면서 잠깐 쉬려고 할 때였다.
˝펑 !˝
갑자기 박 터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흰 연기가 무럭무럭 일더니 흰머리에 흰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할아버지가 흰 도포 자락을 날리며 나타났다. 소년은 옛 이야기에서 들은 산신령님의 모습과 똑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네가 왜 여기에 왔는지 잘 알고있다. 어머니의 병을 고치고 싶어서겠지?˝
˝예 그렇습니다. 산신령님, 도깨비 산, 도깨비 성, 도깨비 왕의 호르륵 소리를 가져오려면 어떻게 해야되는 지 알려주세요.˝
˝네 효심이 갸륵하다만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위험한 일인데 그래도 해 보겠느냐?˝
˝어머니의 병을 고치는 일이라면 제 목숨도 아깝지 않습니다.˝
˝네 용기가 가상하여 세 가지를 알려주겠다. 첫째, 도깨비들은 말을 거꾸로 하는지 바로 하는지를 보고 도깨비인지 아닌지를 알아낸다. 둘째, 제일 먼저 만난 도깨비한테서만 도깨비 왕이 있는 곳을 물을 수 있다. 셋째, 도깨비 산, 도깨비 성, 도깨비 왕의 호르륵 소리는 도깨비 왕이 사라질 때 남기는 소리다. 이 세 가지를 잊지 않으면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이다.˝
산신령은 이 말을 마치고 처음처럼 ´펑´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숲 속은 도깨비 뱃속처럼 컴컴했다. 소년은 가시나무가 나타나면 가시나무를 헤치고, 바위가 나타나면 바위를 넘고, 냇물이 나타나면 냇물을 건너서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갔다. 팔 다리가 가시에 찔리고, 무릎이 바위에 부딪쳐 멍들고, 온 몸이 물에 젖었지만,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겨냈다. 컴컴한 숲 속에서 며칠을 헤맨 끝에 숲 속 빈터를 발견했다. 빈터에는 도깨비 성이 있었다.
도깨비 성 곳곳에서 도깨비들이 성을 지키고 있었다. 도깨비들의 움직임을 살펴보던 소년은 벌렁거리는 가슴을 쓰다듬으며 마음을 굳게 먹었다.
˝어머니를 위해서는 용기를 내야 돼 !˝
소년은 도깨비성의 성문을 향해 힘차게 걸어갔다. 성을 지키던 도깨비 하나가 소년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
˝냐구누?˝
투박한 도깨비의 외침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지만, 산신령님의 첫번째 말을 떠올리면서 침착하게 대답했다.
˝다비깨도큰장가서에계세˝
도깨비가 놀란 얼굴을 하자, 산신령의 두번째 말대로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냐느있디어은왕비깨도?˝
소년의 재치있는 말에 속은 도깨비는 소년에게 도깨비 왕이 있는 방을 알려주었다.
도깨비 왕은 잠들어 있었다. 북실북실한 털과 긴 손톱을 가진 도깨비 왕의 손에는 도깨비 방망이가 들려있었다. 소년이 살금살금 다가가자 잠이 깨었는지 하품을 하면서 손을 번쩍 쳐들고 기지개를 켰다. 이 때를 놓칠세라 재빠르게 도깨비 방망이로 도깨비 왕을 내리쳤다. 도깨비 왕이 사라지는 주문을 외우면서 말이다.
˝도깨비 왕 사라져라 뚝딱!˝
˝호르륵!˝
소년이 주문을 외우자 신기하게도 호르륵 소리만 남기며 모래땅에 물 스미듯 도깨비 왕이 사라져 버렸다.
소년이 외운 주문은 산신령의 세 번째 말을 지킨 것이었다. 그리고, 도깨비 방망이 사용법을 알게 된 것은 어머니 덕분이었다. 도깨비 방망이를 두드리면서 소원을 말하면 무엇이든 이루어준다는 어머니의 옛날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년이 두리번거리며 도깨비 왕이 사라진 자리를 살펴보니 조그만 나무도막 한 개가 놓여있었다.
˝아하, 이게 바로 도깨비 산, 도깨비 성, 도깨비 왕의 호르륵 소리인 모양이구나.˝
소년은 나무도막을 주워서 주머니에다 넣었다.
성에서 나온 소년이 숲 속으로 막 들어서려 할 때였다. 산신령이 다시 나타났다.
˝얘야, 지금 숲 속에는 도깨비들이 우글거리고 있단다. 함부로 들어가지 말거라.˝
˝그믐은 지났고, 보름이 되려면 아직 멀었는걸요?˝
˝네가 도깨비 왕을 사라지게 한 것을 알고는 도깨비들이 화가 나서 보름과 그믐 뿐 아니라 이제부터는 일년 내내 도깨비 나무에 들어가서 병을 퍼뜨리기로 했단다.˝
˝어떻게 하지요? 산신령님.˝
˝네가 성에서 가지고 온 나무도막의 납작한 쪽을 불면 지금까지 찾아다닌 도깨비 산, 도깨비 성, 도깨비 왕의 호르륵 소리가 나올 것이다. 그 소리에는 도깨비의 도술을 푸는 힘이 있어서 어떤 나무가 도깨비 나무인지 알게 해 줄 것이다. 도깨비 나무만 피해서 가면 집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소년은 도깨비 산을 향해 서서 도깨비 성에서 가지고 나온 나무도막을 힘껏 불었다.
˝호르륵!˝
신기하게도 나무도막에서 도깨비 왕이 사라질 때 났던 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더욱 신비한 일은 숲 속의 나무마다 빨강 노랑 녹색 세 빛깔의 등불이 매달려 반짝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등불은 소년이 다가가면 말을 하듯이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다.
빨강 등불은
˝나는 도깨비 나무, 거기 서라 아이야.˝
노랑 등불은
˝나는 노랑 도깨비 돌아가거라 아이야.˝
녹색 등불은
˝나는 어머니 나무 날 따라오너라 아이야.˝
소년은 세 빛깔의 등불 모두 갖고 싶었다. 어둡고 컴컴한 밤의 숲 속에서 금빛별처럼 하나둘 반짝이며 빛나는 나무의 불은 어느 것이나 아름다웠다. 등불의 노래 소리에 취해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녹색 등불 앞에서 퍼뜩 어머니 생각이 나서 멈춰 섰다.
˝어머니를 위해서는 정신을 차려야 돼 !˝
정신을 차린 소년은 산신령의 말대로 도깨비 나무들을 피해 녹색 등불만을 따라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소년은 어머니의 병을 도깨비 산, 도깨비 성, 도깨비 왕의 호르륵 소리로 고쳐드렸다. 마을에는 소년의 용기를 칭찬하는 소리가 자자했다.
그 후로 마을에서 도깨비 병에 걸린 사람은 소년이 가져온 도깨비 산, 도깨비 성, 도깨비 왕의 호르륵 소리로 고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을 사용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소년이 돌아올 때 만들어 놓은 신호등을 잘 살펴보고 다니면 병에 걸릴 염려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이 갖게 된 또 하나의 선물은 숲 속 깊은 곳을 지나 숲 밖 이웃 마을까지 오가는 길을 갖게 된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소년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적부터 소년이 사는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다른 마을에 가지 못했지만, 소년이 도깨비성에 다녀온 후로는 단 한 사람도 다른 마을에 안 가 본 사람이 없게 되었다.
소년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아마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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