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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제아(박기범) |  | |
| (창수)는 문제아다. 선생님이 문제아라니까 나는 문제아다. 처음에는 그 말이 듣기 싫어서 눈에 불이 났다. 지금은 상관없다. 문제아라거나 말거나 상관없다. 어떤 때는 그말을 들으니까 더 편하다. 문제아라고 아예 봐주는 것도 많다. 웬만한 일로는 혼나지도 않는다. 그냥 포기한 셈치니까. 잔소리나 듣다가 만다. 애들도 내 앞에서는 슬슬 기기만 한다는 걸 안다. 그러니까 내가 점점 더 문제아가 되어 가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싸움 같은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애들이랑 노는 것만 좋아했다. 그래도 애들 중에서는 내가 깡이 센 편이었다. 지는 것도 싫어했다. 그래서 애들끼리 무슨 시합이 있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깜깜해져도 이길 때까지 했다. 아니면 그 다음날에라도 꼭 이겨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렇다고 무슨 어거지를 쓰거나 우기진 않았다. 그냥 한 판 더 하자는 거였다. 우리가 이길 때까지, 내가 이길 때까지 한 판을 더 하자는 거다. 애들도 그런 나랑 같은 편이 되기를 좋아했다.
나는 키가 중간쯤밖에 안된다. 그리고 몸은 말랐다. 덩치 큰 애들 앞에 있으면, 솔직히 주눅드는 때가 많다. 그런 것처럼, 애들끼리 있을 때 나는 별로 튀는 애가 아니었다. 달리기를 더 잘하는 것도 아니고, 팔씨름은커녕 닭싸움 같은 걸 해도 질 때가 더 많았다. 그래도 난 스스로 내가 깡이 세다고 믿었다. 진짜 내가 깡이 센지 안 센지는 잘모르겠지만, 그래도 난 그렇게 생각했다. 깜깜한 데를 걸어갈 때 겁이 나더라도 겉으로는 절대 티를 안 내려고 했다.
처음에 철봉에 올라갈 때도 그랬다. 몸이 마음대로 되지도 않고, 자꾸 겁만 났다. 그래도 나는 억지로 따라했다. 한 번 그 위에서 몸을 거꾸로 돌리고 나니까, 그 다음부터는 쉬웠다.
한번은 태권도 도장에 다니는 애들이 모래밭에서 우쭐댔다. 덩치도 되게 큰 애들이다. 걔네는 도장에서 배웠다면서 덤블링도 하고, 앞으로 낙법, 뒤로 낙법도 했다. 나는 그날 집에 가서 계속 연습을 했다. 이불을 펴 놓고 그 위에서 될 때까지 했다. 무르팍이 빨개졌다. 엉덩이뼈가 문드러질 것처럼 아팠다. 그래도 다음날 나는 그 애들 앞에서 덤블링과 낙법을 다 해 보였다. 그것도 모래밭이 아니라 그냥 딱딱한 교실 바닥에서 말이다. 나는 깡만 있으면 뭐라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5학년 때다. 그때 학교에는 깡패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 깡패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학교 6학년에 다니는 형들이었다. 애들은 돈을 뺏겼다는 얘기도 했고, 괜히 얻어맞았다는 얘기도 했다. 학교에서 집에 갈 때 주차장 있는 쪽을 지나가면 그 형들이 기다린다고 했다. 애들끼리 우르르 내려갈 때는 괜찮지만, 청소를 하거나 해서 따로 떨어져 가면 위험하다고 했다. 그 쪽 길로 집에 가는 애들은 꼭 뭉쳐서 갔다. 아니면 그 앞을 지날 때면 꼭 후다닥 뛰어서 지나쳤다.
축구를 한 날 저녁인데, 그 날따라 하늘은 일찍 깜깜해졌다. 그런데 애들은 거의 다 집이 나랑 반대쪽이었다. 주차장을 지나가는 사람은 나랑 또 한 명밖에 없었다. 그 애는 무섭다면서 원래 가던 길로 안 갔다. 다른 애들을 따라서 큰 길로 돌아가겠다는 거였다. 나도 속으로는 겁이 났다. 하지만 나는 집에 빨리 가야 했다. 할머니가 드시는 약이 다 떨어져서다. 저녁밥 먹기 전까지 사서 가야 했다. 나는 혼자 가다가 깡패를 만났다. 두 명이었다. 머리를 빡빡 깍은 형과 두꺼비처럼 생긴 형이다. 나는 일부러 못 본 척 했다. 가슴 속은 조마조마 했다. 그 때 잔뜩 배배 꼬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말라깽이. 너 이리 좀 와 봐.˝
나는 계속 못 본 척을 했다. 도망칠까도 생각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 정도 거리에서면 잡힐 게 뻔했다. 나는 그냥 땅바닥만 보면서 앞으로만 걸었다. 주머니 속에 있는 손에서는 땀이 배어났다. 손안에는 할머니 약을 사야 할 돈이 있었다.
˝너, 이자식. 말이 말 같지 않나 보지?˝
그 형들은 이것 저것 트집을 잡았다. 내 어깨를 툭툭 치면서 약을 올렸다. 나는 끝까지 한 쪽 주머니에서만은 손을 빼지 않았다. 돈을 꼭 쥐고 있었다. 그 형들한테 얻어맞는 한이 있어도, 돈을 안 뺏기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형들도 끝까지 내 돈을 뺏으려 들었다.
나는 주먹으로 얻어맞고, 발길에 차일 때까지는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그 형들이 내 손을 주머니에서 억지로 빼내려고 할 때는 힘으로만 버틸 수가 없었다. 나는 두꺼비 같은 형의 입술을 찢듯이 잡아챘고, 빡빡머리 형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그러고는 정신없이 달렸다. 어떻게 집에까지 왔는지 모를 정도였다. 나중에 보니까 내 검지손가락에는 피가 조금 묻어 있었다. 아마 두꺼비 같던 그 형의 입술에서 나온 피였을 거다
다음날에는 학교에 가는 길에서부터 너무 불안했다. 어느 골목에선가 그 형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언제라도 나타나서 복수를 할 것 같았다. 학교에 다 가서도 그런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나는 깡이 많은 척만 했지, 별로 깡이 세지 않았던 거다.
우리반 교실이다. 다행히 학교로 들어갈 때까지는 아무일도 없었다. 그런데 규석이가 나를 불렀다. 규석이는 우리반에서 덩치가 가장 큰 애다. 싸움도 전체 학년에서 제일 잘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어디를 가나 그 애는 대장 노릇을 했다.
˝야, 네가 어제 영만이 형이랑 필성이 형한테 깝죽거렸냐?˝
아마 어제 그 형들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그랬다. 규석이는 학교에서는 안그랬지만, 밖에서는 자기네 동네 형들이랑 잘 어울린댔다. 깡패들 패거리에도 잘 끼는 애랬다. 아마 규석이는 그 형들과 한 패거리였나 보다.
˝너, 죽어볼래? 치사하게 형들을 물어 뜯고, 얼굴에 피를 내?˝
규석이는 다짜고짜 나를 때렸다. 처음에는 정신없이 얻어맞았다. 애들은 구경하면서도 말리지는 못했다. 한참을 때리더니, 그 애가 잠깐 뜸을 들였다. 때리다가 욕을 하다가 그랬는데, 욕을 하는 동안이 뜸을 들이는 거다. 나는 옆자리에 있는 의자를 그대로 집어 들었다. 아무 생각도 안 났다. 의자로 그 애 얼굴을 내리쳤다. 한 번 내리치고 또 내리쳤다. 애들이 말리고 선생님이 뛰어올라 왔다.
나중에야 나는 정신을 차렸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봐도 그건 너무 끔찍했다. 의자에는 쇠몽둥이로 된 다리가 뾰족뾰족 나 있는데, 보통 때 같으면 그걸로 사람을 때릴 거라는 건 상상도 못했을 거다. 그런데 어쨌든 내가 그런 짓을 한 거다. 나는 정신없이 얻어맞고 있었고, 그 애는 더 이상 그만 때리려는 기색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너무 아팠고, 그리고 너무 억울했다. 나는 더 이상 맞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맞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학교에서는 난리가 났다. 규석이는 이가 두 개나 부러졌다. 얼굴도 온통 부어 터지고 피가 나서 엉망이었다. 그 애 부모님은 몇 번이나 학교에 찾아왔고, 선생님들을 닥달했다. 당장 나보고 치료비나 보상금도 다 물어 내라고 했고, 학교에다가 나를 퇴학시키라고 난리였다. 나는 그 애 부모님한테 불려 다녔고, 선생님들한테도 돌아가면서 불려다녔다. 선생님은 애들 앞에서 나를 천하의 악질처럼 몰아붙였다. 집에 와서는 치료비를 구하느라 속상해하는 아빠를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나에게 문제아라는 딱지가 붙은 것은 그 사건이 있은 다음부터다.
학교에서 애들은 나를 슬슬 피했다. 나한테 겁을 내고 있다는 게 척 느껴졌다. 규석이는 다 낫고 나서도, 나한테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규석이말고도 덩치가 크고 싸움을 잘한다고 알려진 애들도 나한테는 틱틱거리는 투의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어느새 애들 사이에서 독종이라고 불리고 있던 거다.
평소에 나랑 장난을 잘 치던 애들도 그 전 같지 않았다. 한 대씩 툭툭 건드리고 조금씩 약올리고 하는 장난도 하지 않았다. 내가 장난을 걸면 그냥 가만히 있었다. 툭 건드리고 도망가면 덤비면서 따라와야 될 텐데, 맞고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애들끼리 웅성거리면서 재미있는 얘기를 하다가도, 나만 그쪽으로 가면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그래서 나는 아무렇게나 애들한테 화풀이를 했다. 그 전에는 안 그랬는데, 애들 트집을 잡으면서 다녔다. 억지로 애들을 불러서 놀아도 그 전 같지 않았다. 애들은 내가 놀자니까 눈치를 보면서 노는 거지, 재미있게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똑같은데, 애들은 나를 다르게 대했던 거다.
선생님도 그랬다. 이제 나한테는 뭘 잘 시키지도 않았다. 내가 뭘 하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뭐라고 말을 해도, 그건 다음부터 고쳐서 잘하라는 얘기가 아니었다. 그냥 짜증내는 거다. 그냥 한번 화풀이로 잔소리한다는 게 느껴졌다. 어떤 때는 정말 벌레를 보는 것처럼 쏘아보기도 했다.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사람들이 왜 나를 이렇게만 대하는지를 모르겠다.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될 수 없었다. 선생님이나 다른 애들이 나한테 붙여 준 문제아라는 딱지는 영영 떼어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억울하고, 화가 나고, 신경질이 났다.
결국 나는 문제아라는 딱지를 떼어 낼 수 없겠다고 생각한 이상, 점점 그 딱지를 이용하는 쪽으로 변했다. 그게 더 편했다. 나는 문제아니까, 나는 문제아라서 어쩔 수가 없으니까, 나는 문제아라서 선생님도 나를 포기했을 테니까, 나는 잘 혼나지도 않으니까, 나한테는 신경도 안쓰니까, 나는 내 마음대로였다. 학교에 늦게 가기도 했다. 청소 시간에는 청소도 안 하고 그냥 집에 와 버렸다. 숙제도 하기 싫었다. 하는 척 마는 척 대충 해 갔다. 선생님은 내 숙제는 제대로 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애들한테도 그랬다. 내가 한 번 인상만 구겨 보이면, 애들이 슬금슬금 눈치만 봤다. 처음에는 그런다는 게 화가 났지만, 이제는 일부러 그런다. 내 마음에 안 들면, 그냥 한 마디만 했다. 그러면 애들은 나한테 맞춰 주려고 했다. 일부러 내 비위를 맞추려 알랑대는 애도 있었다. 그렇다고 그런 애들이 좋지는 않다. 그냥 그러는 대로 내버려 뒀다. 그래도 뭘 시키면 잘 하니까, 그렇 때만 상대해 주곤 했다. 이젠 내가 애들을 무시하게 된 거다. 애들한테는 관심이 없어졌다. 억지로 같이 놀고 싶지도 않았고, 그래 봤자 재미도 없었다. 학교 자체에 별 관심이 없어졌다. 누가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다.
아빠가 다쳤다. 아빠는 도배장이다. 도배장이는 벽지를 바르는 사람이다. 아빠는 일이 있을 때만 나가고, 아니면 시장 아저씨들이랑 어울리면서 술을 먹었다. 그 때는 가을이었는데, 아빠는 매일 일이 있었다. 가을에는 이사가 많아서다.
아빠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아빠한테는 오토바이가 자가용이다. 그렇다고 크고 좋은 오토바이는 아니고, 50씨씨짜리 조그만 오토바이다. 아빠는 보통 우리 집 오토바이를 타고 나갔지만, 그날은 지물포 아저씨네 오토바이 뒤에 타고 갔다. 그런데 지물포 아저씨가 몰고 가던 오토바이가 어떤 회사 버스랑 부딪쳤다. 그 아저씨도 다쳤고, 아빠도 다쳤다.
아빠는 허리 수술을 해야 했다. 어렵고 비싼 수술이다. 할머니는 날마다 여기저기에 돈을 빌리러 다녔다. 고모한테도 전화를 했고, 작은 할머니네도 전화를 했다. 할머니는 맨날 병원에 왔다갔다했다. 집에다 밥을 해놓거나, 돈을 빌리러 다니거나, 아니면 병원에 가 있었다. 밤에는 아빠를 돌보면서 병원에서 잤다.
우리 집엔 엄마가 없다. 엄마는 벌써 죽었다. 엄마는 많이 아팠는데, 병원에도 제대로 못 가 보고 죽었다고 했다.
할머니는 정신이 없어서, 반찬 같은 것도 잘 못해 놓았다. 사실 아빠 병원비 때문에, 뭘 사다 먹을 돈도 거의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라면을 끓여 먹거나 아니면 물에 밥을 말아 먹었다. 집에는 늘 혼자 있게 되었다. 밤에도 혼자 잤다. 학교에도 별로 갈 마음이 없었다. 며칠 동안 학교에는 가지도 않고, 그냥 집에만 있었다.
나는 신문 배달을 시작했다. 나라도 돈을 벌어서 할머니한테 주고 싶었다. 신문 보급소에 처음 갔을 때는 소장 아저씨가 없었다. 형들만 왔다갔다했고, 신문지 냄새가 머리를 핑 돌게 했다. 나 같은 초등학생도 시켜 줄지가 궁금했지만, 걱정 없었다. 신문 보급소에 있는 봉수 형이 말을 잘 해줬다. 마침 보급소에는 빈 자리가 있었다. 나는 며칠 동안은 계속 따라다니기만 하면서 보고 배웠다. 배달해야 할 집들을 다 외울 때까지는 일주일도 넘게 걸렸다. 어떤 때 신문을 돌리다가 한 집이라도 빠뜨릴 때면, 보급소 아저씨들이 막 야단했다. 게다가 봉급에서 천 원씩을 깍는댔다. 그럴 때마다 봉수 형이 잘 도와줬다. 요령도 가르쳐 줬고, 위로도 해줬다. 봉수 형은 학교에는 안 다니지만, 나이는 중3 나이다.
내가 신문 배달 일을 하는 건 아무도 몰랐다. 할머니도 몰랐고, 아빠도 몰랐다. 물론 학교에서도 몰랐다. 내가 새벽에 신문을 돌리고 집에 들어오면, 그 때서야 할머니가 아침밥을 하러 오는 거다. 나는 쭉 자고 있던 것처럼 일어났다.
봉수 형이랑은 금방 친해졌다. 봉수 형은 아예 보급소에서 살고 있었다. 보급소 옆에 딸린 방에 살면서 검정 고시 학원에 다녔다. 하루는 내가 보급소로 낮에 놀러 간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봉수 형한테 혼이 났다. 여태껏 몇 번이나 학교를 빼먹었냐면서 막 야단을 치는 거였다. 나는 야단을 맞아도 봉수 형이 좋았다. 나를 정말로 걱정하는 마음에서 야단을 쳤기 때문이다. 봉수 형은 학교에 다니고 싶어도 못 다니는 애도 많다면서 나를 나무랐다. 나는 학교를 빼먹지 않겠다고 봉수 형과 약속을 했다.
나는 봉수 형이랑 한 약속 때문에 학교에 다시 나갔지만, 학교는 여전했다. 선생님은 그동안 뭐 했냐고 물어봤지만, 나는 말을 하기가 싫었다. 아빠가 다친 것도, 신문 배달을 하는 것도 말하지 않았다. 중간 중간에 하는 말이 너무 기분 나빴기 때문이다.
˝내가 무슨 죄가 있길래, 너 같은 애가 있는 반을 맡았냐?˝
˝너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애냐? 나도 모르겠다. 제발 올해에는 더 이상 사고만 치지 마라.˝
봉수 형만 아니었다면, 나는 학교를 정말 그만둬 버리고 싶었다. 학교는 꼬박꼬박 나갔지만, 공부 시간에는 제일 뒷자리에서 잠을 잤다. 새벽에 잠을 못 자니까 자꾸 눈이 감겼다. 한 번 책상에 엎드려서 잤는데,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무런 눈치도안 보고, 계속 잠을 잤다.
나는 봉수 형한테 오토바이 타는 법도 배웠다. 봉수 형은 오토바이를 타면서 신문을 돌렸다. 나는 그 때까지 유모차를 뒤집어 놓은 것 같은 손수레를 끌면서 신문을 돌리고 있었다. 그 손수레에다 신문을 가득 싣고 낑낑대면서 다니니까 무척 힘이 들었다. 고갯길로 된 골목길에서는 넘어진 적도 있다. 힘만 드는 게 아니라, 시간도 너무 오래 걸렸다.
형은 처음에는 안 가르쳐 주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여러 가지 까닭을 설명하면서 졸라 댔다. 아빠가 다친 얘기도 했고, 돈을 더 많이 벌고 싶다는 얘기도 했다. 집에는 아빠가 타던 오토바이가 있다는 얘기도 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 손수레를 끌고 다닐 때보다 신문을 두 배는 더 많이 돌릴 수 있을 거였다. 힘도 더 적게 들고, 똑같은 시간에 신문도 더 많이 돌릴 수가 있다. 이런 얘기로 형을 졸랐다. 그래서 봉수 형은 오토바이를 가르쳐 줬다.
사실 우리 집에 있는 50씨씨짜리는 오토바이 축에도 못낀다. 타 보니까 자전거보다 더 쉬웠다. 이제 나는 오토바이를 타면서 신문을 돌렸다. 다른 동네까지 더 맡아서 두 군데를 돌렸다. 그랬지만 한 동네를 돌릴 때만큼밖에 힘이 안들었다.
두달이 지났을 때, 할머니한테 돈을 내밀었다. 내가 번 돈이다. 할머니는 고맙단 말도 안 했다. 그렇다고 야단치지도 않았다. 그저 내 머리만 쓰다듬어 내리면서, 불쌍한 내 새끼, 불쌍한 내 새끼, 했다.
그 동안 학교에서 나는 점점 더 문제아가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신문 돌리는 일이 끝나면 학교로 바로 가야 했다. 그러는 바람에 그대로 오토바이를 탄 채 가야 했다. 그전부터 학교에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애들이 많이 있었다. 자전거를 세워 놓는 곳도 있다. 그런데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 것이다. 아무래도 자전거보다는 눈에 많이 띄었다. 소리도 시끄러웠고, 모양도 눈길을 많이 끈다. 한 번씩 지나갈 때마다 동네 사람들이나 애들이 꼬나보면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 학교에서는 누가 뭐라 하든 상관하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나는 교장 선생님한테까지 불려갔다.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에 다니는 것 때문이었다. 교장실에서도 나는 이미 문제아였다. 교장 선생님이 폭주족이 어떻느니 하면서 얘기를 꺼냈다.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자랑하고 싶다거나 멋부리면서 으스대고 싶은 마음 같은 건 하나도 없었다. 그러기는커녕 솔직히 창피하기만 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처음부터 나를 그런 식으로 생각한 거였다. 이미 그렇게 취급을 받으니까 나한테는 더 이상 아무런 말이 들여오지 않았다. 그 다음부터는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다. 단 한 번만이라도 나를 문제아로 취급하지 않고 대했다면, 나는 달랐을거다. 봉수 형처럼 말이다. 나는 그 다음에도 계속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지금 나는 6학년이다. 속으로 나는 6학년이 되기를 기다렸다. 새 선생님을 만나고,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면 뭔가 다를 거라고 기대했다. 예전처럼 보통 아이로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바람 역시 깨져 버렸다.
6학년이 되자마자 담임 선생님은 나를 교무실로 불렀다. 선생님 책상에는 생활 기록부도 있었고, 상담 카드도 있었다. 선생님이 한 첫마디는 내 기대를 모두 허물어 내렸다.
˝네가 그렇게 유명한 하창수냐? 5학년 때는 여자 선생님이라서 네 멋대로였지만, 나한테는 어림도 없다. 어려운 문제 있으면 선생님한테 찾아와라. 하지만 사고만 쳐봐. 용서 없는 줄 알아.˝
나는 화가 났다. 곧 속에서는 웃음이 나는 것도 같았다. 아마 나에 대해서는 5학년 때 선생님이 자세히도 설명해줬나 보다. 6학년 선생님한테도 이미 나는 문제아가 된 거다. 나한테 제일 어려운 문제는 나를 문제아로 바라본다는 거다. 그런데 어려운 문제 있으면 찾아오라고 말을 하니, 나는 웃음이 나왔다.
나는 나를 문제아로 보는 사람한테는 영원히 문제아로만 있게 될 거다. 아무도 그걸 모른다. 내가 왜 문제아가 되었는지, 나를 보통 아이들처럼 대해주면 나도 아주 평범한 보통 애라는 걸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딱 한 명 있다. 봉수 형이다.
박기범 동화집(1999), 문제아, 창작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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