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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타의 마지막 선물(최창숙) |  | |
| 교실문을 나서는데 흰 눈이 포실포실 떨어졌다. 난 혀를 쏙 내밀어 눈을 받아먹었다.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빨리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면...
유치원에 다닐 때 가짜 수염을 하얗게 붙이고 벨을 누르며 나를 찾는 산타할아버지를 만난 적이 있다. 목소리가 너무 젊어 이상했지만 그 할아버지가 평소 내 나쁜 버릇을 잘 알고 있어 진짜인 줄 알았다.
할아버지는 그 동안 내가 잘못한 것을 낱낱이 열거하며 말했다.
˝네가 기도한 선물은 비스트 월드 세트지만 수학공부 좀 하라고 숫자 판을 가져왔어요. 내년에 엄마 말 잘 듣고 수학공부 열심히 하면 그 때는 달라고 한 선물을 가져다주마.˝
난 얼굴이 빨개져서 내년에는 꼭 착한 아이가 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할아버지는 오냐오냐하면서 같이 사진이나 한 장 찍자고 했다. 난 할아버지 허리를 껴안고 손가락을 V자로 펼치고 사진을 찍었다.
˝바아보! 그 할아버지들은 다 가짜야. 우리 엄마가 팬시문구에 전화해서 산타파티 벌여달라고 하는 거 다 들었어. 그 선물은 엄마가 사 주는 거라구!˝
난 그 날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산타를 돈으로 사는 거라니...
다음날도 아이들은 바보라고 낄낄거리며 놀려댔고 난 산타할아버지는 정말 있다고 소리쳤다. 학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자 엄마는 빙그레 웃으셨다.
˝다남아. 산타할아버지는 정말 있어. 아이들을 사랑하는 하느님이 계시니까. 진짜 산타할아버지도 그런 하느님의 마음을 대신 전달해 주는 사람에 불과해. 요즘은 어린이들이 너무 많으니까 선물의 집 아저씨들이 대신 전해주는 것뿐이지.˝
하지만 내가 이 학년이 되던 해부터 우리 아파트에 정말 산타할아버지가 나타났다.
크리스마스날 아침이었다. 같은 동에 사는 아이들 이름이 적힌 꼬리표를 단 작은 선물들이 정원의 나무에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주렁주렁 선물을 매달고 있는 주목나무에 몰려들어 마법의 과일처럼 열려있는 선물을 땄다. 그리고 등불 켜지듯 잎새 위에 맺힌 빨간 주목열매도.... 입안에 넣으면 달짝지근하고 향긋한 주목냄새가 퍼진다. 난 그게 산타할아버지의 냄새처럼 느껴졌다. 기도한 것처럼 비싼 선물은 아니었지만 누군가가 우리를 사랑하고 그 마음을 나무에 펼쳤다는 것은 정말 기쁜 일이었다. 그 후로 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올해는 어떤 선물을 받을까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우리동네는 시끄러운 곳으로 변해버렸다. 앞쪽 까치마을에 다닥다닥 어깨를 맞댄 기와집 촌이 재개발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부터였다. 어른들은 그 곳에서 왠지 모르게 서로 함성을 질러가며 싸우곤 했다. 그러다가 결국 경찰들이 오고 집에서 못나간다고 대들던 사람들은 매를 맞고 쫓겨나게 되었다.
아파트에 들어서는데 아주머니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이번에 경비 아저씨들을 전부 젊은 사람들로 바꾼다나봐요. 얼마전 요 앞 동에 도둑이 들었을 때도 경비아저씨 행동이 느려서 눈앞에서 놓쳤다잖아요?˝
˝맞아. 경비는 젊은 사람이 해야 돼.˝
난 앞머리에 희끗희끗 흰 눈이 내린 우리 경비 아저씨를 떠올렸다. 어쩌다 엄마가 없어 문이 잠겨 있을 때 찾아가면 라면도 끓여주고 옛 얘기도 재미있게 들려주시는 아저씨였다. 난 뛰어서 우리 동으로 왔다. 엄마가 아저씨랑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아저씨는 엄마에게 경례를 하며 말했다.
˝그 동안 늘 챙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사모님.˝
˝정말 서운해요. 아저씨. 가끔 연락이라도 하세요.˝
난 엄마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며 무슨 일인지 물어보았다.
˝아저씨가 까치 마을에 살았었잖니? 그런데 재개발 공사 때문에 전세 사는 사람들은 돈도 못 받고 다 쫓겨났대요. 그동안 경비실에서 먹고 자고 하셨는데 이젠 경비아저씨들까지 젊은 사람으로 다 바뀐다지 뭐니? 어쩔 수 없어서 시골 내려가 농사지으실 거란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엄마가 없을 때 그럼 난 누구한테 가지???
다음날 현관문을 들어서는데 경비실에서 낯선 얼굴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얌마! 너 누구야? 이 동에 사는 애 맞아?˝
난 엉겁결에 뛰어서 집으로 달려 올라와 버렸다.
방학식 날이었다. 마음이 설레서 아침 일찍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정원의 주목나무가 흔들리고 있었다. 나무에는 알록달록 포장된 선물들이 흐드러지게 열려있었다. 잠시 어리둥절했다. 아직 크리스마스까지는 일주일이나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야호! 소리를 지르며 나무로 달려갔다. 나무 끝에 마지막 선물을 달고 있는 구부정한 아저씨가 내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앞이마를 덮은 흰머리가 언뜻 보였다. 늙은 경비 아저씨인 것 같았다. 아저씨는 얼른 선물을 묶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쏜살같이 어디론가 달려가 버렸다.
˝아저씨이 ! ― ˝
난 아저씨를 따라 뛰었다. 하지만 어느새 아저씨의 모습은 산자락으로 사라져버렸다. 할 수 없이 다시 돌아와 동화속 마술나무가 된 주목을 올려다보았다. 김 다남. 내 이름이 보였다. 난 선물을 따서 풀어보았다. 연필 세 자루가 예쁜 테이프에 묶여 들어있었다. 굴뚝에서 빙그레 웃는 산타할아버지가 그려진 카드를 펼쳤다.
˝안녕, 착한 다남아. 좋은 선물 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올해는 이 곳을 떠난 까치마을 어린이들을 돌보느라고 그랬단다. 이제 아저씨는 시골 아이들을 찾아서 떠난단다. 내년부터는 오기 힘들 것 같다. 하지만 마음은 늘 다남이와 함께 있지. 크리스마스날 눈이 오거나 햇살이 웃거나 그 모든 것이 내가 다남이에게 보내는 선물이니까.˝
난 아저씨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손을 뻗으면 바람 속에서 화안하게 웃고있는, 흰 눈 내린 아저씨 얼굴이 손에 닿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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