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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지 빼까리라 카이 ( 심후섭 ) |  | |
| ˝어디 보자, 이제 며칠 남았나? 룰루 룰루루 랄라 랄라라…….˝
웅이는 요즘 신이 났습니다.
˝나는 방학이 되고, 아버지께서는 휴가를 얻으시면 시골 외가에 가기로 하였어.˝
웅이는 반 친구들에게 마구 자랑을 하였습니다.
˝우리 외삼촌이 원두막을 지어 놓으셨대. 이번에 가면 그 원두막에 누워 푸른 하늘을 실컷 바라볼 거야. 흰 구름이 두둥실 떠가겠지. 아!˝
˝야, 정말 신나겠는데!˝
˝그럼, 달력에서 사진으로만 보아오던 원두막에 직접 올라갈 수 있게 되다니!˝
웅이는 잠시도 입을 다물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웅이를 보고 어머니가 한마디하였습니다.
˝야아가 와 이라노? 꼭 뭐 하나 빠진 아이같이…….˝
아버지도 한마디하였습니다.
˝니 그리도 좋나?˝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울에 온 지 이십 년이 다 되어가지만 가끔씩 이렇게 사투리를 썼습니다. 기분이 좋을 때와 옛 친구를 만났을 때에 더 많이 썼습니다.
˝에이, 또 그 사투리!˝
웅이가 역정을 내었습니다.
˝원 별일 다 보겠데이. 나도 고향 생각나서 어릴 때 쓰던 말을 좀 쓰는데 그게 뭐 그리 흉된다고 그라노?˝
그럴수록 어머니는 더욱 짓궂게 사투리를 썼습니다.
이 때, 같은 반에 다니는 진이가 왔습니다.
˝며칠 전에 빌려 간 책 가져 왔어.˝
진이는 웅이가 좋아하는 여학생이었습니다.
˝아이고, 진이 왔나? 내일 학교에서 돌려조도 될낀데 일부러 가지고 왔구만!˝
˝네, 아침에 잊어버릴까봐 보일 때 들고 왔습니다.˝
˝그래, 하긴 그렇구만! 지금 엄마는 뭐 하시더노?˝
어머니는 진이를 보고 계속 사투리로 말했습니다.
웅이가 큰 소리로 끼어들었습니다.
˝어머니, 제발 그만 좀 하세요.˝
˝아이고, 깜짝이야! 와 내가 사투리를 쓰면 니 장가가는데 방해될까봐 그러는 기가? 걱정 말거래이. 어떻게 생긴 내 아들인데 그런 걱정을 다하고 그라노? 안 그렇나?˝
어머니는 웅이와 진이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하였습니다.
진이는 그저 웃기만 하였습니다.
˝아이고, 어머니도 차암!˝
˝야가 뭐라카노?˝
˝어머니, 제발 쪼옴!˝
˝아이고, 야 봐래이. 참 별일이다. 지도 ´차암´, ´쪼옴´하고 이상한 말을 쓰면서 내 보고는 사투리를 쓴다고 야단이네.˝
˝알았어요. 제발 그만 좀 하세요.˝
˝하하하!˝
˝호호호!˝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이윽고 여름 방학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도 휴가를 받았습니다.
웅이네 식구들은 콧노래를 부르며 기차를 탔습니다. 우선 네 시간 가까이 달려 대구에 도착한 다음, 다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남짓 더 달려야 하였습니다.
기차는 이내 한강을 건넜고, 잠시 뒤에는 차창 밖으로 논밭이 마구 달려갔습니다.
기차가 세 번 째인가 네 번째 역에 섰을 때였습니다.
웅이가 역 사무실 옆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아니, 저기 좀 보세요. 밭도 아닌데 수수가 심겨져 있어요.˝
˝어디 보자. 그건 수수가 아니고, 강냉이 아이가? 강냉이?˝
˝네에?˝
˝그래, 강냉이! 차암 너희들은 옥수수라고 배웠겠구나.˝
그 때였습니다.
˝자, 옥수수 왔습니다. 금방 쪄낸 옥수숩니다.˝
기차 안에서 물건을 파는 아저씨가 손수레를 밀며 말했습니다.
˝아이고, 그거 맛있게 생겼네. 그거 얼마니껴?˝
어버지가 지갑을 꺼내며 사투리로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아저씨도 사투리로 대답했습니다.
˝세 송이에 천 원이시더. 단돈 천 원! 농사짓는 분들 고생하는 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이지예.˝
˝그거, 여섯 송이만 주소. 그런데 말씀하는 거 보이께로 갱상도 사람인 모양이제요?˝
˝야, 지야 기차 타고 여기저기 댕기다 보니 온 동네 말 다 주워 듣는 기라요.˝
˝하하하! 하여튼 간에 반갑십니다. 이렇게 고향 사람을 만나다니요.˝
아버지와 그 아저씨는 악수까지 하며 좋아하였습니다.
옥수수는 매우 맛있었습니다.
이윽고 기차는 대구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번에는 버스로 옮겨 타야 하였습니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할머니 한 분이 어머니를 보고 반갑게 외쳤습니다.
˝아이고, 이게 누구고? 자네는 양지말 할매 딸 분이 아이가? 니 분이 맞제?˝
˝야아. 지가 분이구만요. 한실 아지매 아인교?˝
˝그래, 내다. 니 잘 있었나?˝
˝아이고, 그 고우시던 아지매도 이젠 할매가 다 되셨네요.˝
˝그래, 세월 이길 장사가 어디 있겠노? 이제는 이렇게 쭈구렁 방티가 다 됐다 아이가!˝
한실 할머니는 자신의 아랫볼을 집어당기며 눈웃음을 쳤습니다.
˝그래도 한실 아지매는 근력이 좋으시네요. 이렇게 대구까지 나들이도 하시고……. 우리 어매는 엄두도 못 내실 일인데…….˝
˝그래도 양지말 할매는 밭일 다 하신다. 눈이 약간 어두워서 혼자서는 차를 못 타실 뿐이제…….˝
˝야아.˝
어머니는 대답을 하다 말고 눈시울을 붉히며 차창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웅이는 슬그머니 어머니 손을 잡았습니다.
그러자 한실 할머니가 웅이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아이고, 요기 니 새끼가? 참말로 잘 생겼데이. 그래, 니 멫 살이고?˝
˝열한 살입니다.˝
˝곧 청년이 되겠구만.˝
한실 할머니는 웅이의 손을 잡고 흔들었습니다.
웅이는 얼굴을 붉혔습니다.
버스는 몇 번이나 사람을 내리고 다시 태웠습니다.
˝자아, 인제 고만 내릴 준비를 하거래이. 다 와 간다.˝
한실 할머니가 재촉을 하였습니다.
˝보자, 저기 밭에 너거 어매가 꼬치를 따고 계시네. 잘 보이지도 않을 낀데…….˝
한실 할머니가 웅이 어머니를 보고 말했습니다.
˝맞데이. 우리 어매다. 어매, 어매!˝
어머니는 신발이 벗겨지는 것도 모르고 밭으로 내달렸습니다.
˝어매, 내다. 분이다. 분이! 그 동안 잘 있었나?˝
˝분이라고? 서울 사는데…….˝
˝그래, 서울에서 친정 왔다카이.˝
어머니가 목청을 높였습니다.
˝오야, 오야! 나는 괘안타. 그래, 김서방하고 아이들도 왔제?˝
˝야아.˝
웅이도 외할머니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그래, 그래. 내 강생이, 잘 있었드나?˝
외할머니의 손톱 밑에는 풀물이 검게 배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손바닥이 몹시 거칠었습니다.
그래도 웅이는 외할머니의 손을 꼭 감싸 잡았습니다.
˝오냐, 자 그만 집으로 가자.˝
˝네에.˝
식구들이 모두 외가에 모였을 때에는 어느 새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습니다.
˝원두막에는 내일 낮에 가기로 하고 오늘은 마당에서 밥을 먹도록 하자.˝
외삼촌이 웅이를 보고 말했습니다.
˝네에.˝
˝야아, 멍석 위에서 밥을 먹어본 것이 몇 해 만인고?˝
어버지가 멍석을 손을 어루만지며 말했습니다.
저녁 밥상에는 삶은 옥수수도 있었고, 감자떡도 있었습니다.
˝아, 배 불러!˝
웅이는 배를 두드렸습니다.
밥을 다 먹은 다음에는 마당에 누워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마당 구석에는 모깃불이 타고 있었습니다.
´저 파르스름한 연기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혹시 하늘로 올라가 하늘이 되는 건 아닐까?´
웅이는 이렇게 생각하며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습니다.
˝우와, 저 별 좀 봐라. 저렇게 많을 줄이야!˝
그러자 웅이 옆에서 부채질을 하던 외할머니가 거들었습니다.
˝별이 억수로 많제, 그쟈?˝
˝네에? 억수로 많다고요? ´억수로´가 무슨 뜻인데요?˝
˝쌔삘랬다는 것 아이가?˝
˝네에, 쌔삘랬다고요?˝
˝그래, 쌔삘렀제.˝
˝점점 더 모르겠어요.˝
˝아니, 쌔삘랬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리겠다고? 아이고, 야들이 서울에서 살디만은 시골말을 다 잊아뿌린 모양일세. ´쌔삘랬다´는 ´수두룩 빽빽하다´, 즉 ´한거석이다´라는 말이제.˝
˝아이고, 할머니. ´수두룩 빽빽´은 그런대로 짐작이 가는데, ´한거석이다´는 무슨 뜻인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아이고, 야들이 자주 안 봤디만은 허깨비 다 된네. 도무지 말귀를 못 알아듣네. ´한거석이다´는 ´한마당 가득 차 있다´는 말이제. 그러니깨로 ´천지 빼까리로 있다´, 이 말 아이가. 이제는 알겠제?˝
˝네에? 아이고!˝
웅이는 덮어놓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할머니를 더 힘들게 해서는 안되겠다 싶어서였습니다.
웅이는 외할머니의 손을 잡아 흔들었습니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오야, 오야! 내 느그들 많이 보고 싶었데이. 지난 겨울 추위에는 별일 없었제. 나는 방 따시게 잘 잤고, 밥도 잘 묵었으이깨로 걱정할 필요 없데이. 그런데 건너말 작은 할배 제사 때에는 눈이 많이 와가주고 못 가 봤는게 걸린다. 너희들은 잊어뿌지 마라. 내가 죽더라도 달력에 똥글뱅이 쳐놓고 할배 제사 때에 가봐래이. 만약에 못 가 보더라도 날짜만은 잊아뿌지 마라. 날짜마저 잊아뿌면 정말 안 되는기라. 음음…….˝
외할머니는 말끝을 흐렸습니다.
˝아이고, 우리 어매 한잠 드셨데이. 웅이를 친손잔 줄 알고 건너말 작은 할배 제삿날 이야기를 하시다니……. 아이고, 할마시가 이제는 정신이 오락가락한데이.˝
어머니는 홑이불을 안고 나와 외할머니에게 덮어주었습니다.
여름밤은 점점 깊어가고 있었습니다.
별똥별 하나가 밤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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