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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름다운 모습
바람이 얼음처럼 파란 하늘을 쓸고 지나갔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에 서 있던 플라타나스 나무에서 갈색 낙엽들이 우수수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렸다.
여기 저기 길바닥에 뒹굴던 낙엽들은 바람에 밀려 흩어져 갔다.
어떤 것은 공중으로 휙 날았다가 뱅뱅 돌면서 떨어지기도 하고 어떤 것은 하수구 밑으로 사정없이 쳐 박히기도 하였다.
현이는 그런 장면을 볼 때면 왠지 자꾸만 서글퍼졌다.
´낙엽이 저렇게 떨어지면 아빠 엄마는 또 얼마나 고생을 하여야 할까?´
발끝에 채이는 낙엽을 발로 툭 찼다.
발 밑에 밟히는 나뭇잎에서는 바스락 소리가 났다.
´하필이면 그 많은 직업 중에서 환경 미화원이 뭐람.´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쨍 소리를 내며 깨어질 것만 같이 맑다.
다시 힘없이 걸었다.
저 앞에 한 무더기의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걸어가고 있다.
다른 날 같으면 따라 잡아 같이 이야기라도 하면서 가겠는데 오늘은 그 게 아니었다.
늘 살얼음을 딛는 것처럼 조마조마하던 게 어제 결국 아이들에게 들켜버린 것이다.

˝현아, 오늘은 엄마가 바빠서 안 되겠다. 네가 아버지 점심 좀 갖다 드리고 오렴.˝
차라리 끝까지 거절했어야 했다.
그러나 늘 바쁘게 사시는 엄마의 청을 차마 거절할 수 없어 엄마가 싸주시는 점심 보따리를 들고 아버지에게 갔다.
˝오늘은 현이가 점심을 가져 왔구나. 같이 먹지 않을래?˝
아버지는 먼지가 뽀얗게 묻은 얼굴로 웃었다. 먼지가 묻어서 그런지 하얀 이가 더욱 하얗게 보였다.
˝전 나중에 집에 가서 먹을래요.˝
아버지가 낙엽과 나뭇가지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태우면서 점심을 잡수시는 동안에 현이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서성거렸다. 혹시 누가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였다.
낙엽 타는 냄새가 고소하고 그윽했다.
´낙엽 타는 냄새가 좋은데......´
현이는 눈을 지그시 감고 코를 흥흥거렸다.
˝얘, 현아, 너 여기 웬일이니?˝
반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어느 새 현이 바로 앞에까지 와 있었다.
낙엽 타는 냄새를 맡느라고 잠시 잊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 정신을 차리고 있었더라면 아이들이 오는 것을 보았을 것이고 그러면 나무 뒤에라도 몸을 숨겼을 것이다.
˝응? 응, 응......˝
현이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현아, 이 것 가져가거라.˝
저 쪽에서 점심을 끝낸 아버지가 불렀다.
아버지가 입고 있는 진 주황빛 옷이 왜 그렇게 선명하게 보이는지 현이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하필이면 그 때 아버지께서 부르실 게 뭐람.´
˝누구니?˝
아이들의 질문에 현이는 모기 만한 목소리로,
˝응, 우리 아버지......˝
하고 말끝을 흐렸다.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몰려갔다. 그 중에는 소식통이라고 알려진 수다쟁이 민수도 있었다.

˝현이 아버지는 청소부더라.˝
학교에 나가니 아이들 사이에 벌써 그런 말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청소부가 뭐니? 무식하게끔. 요즈음은 환경 미화원이라고 부르는 거야.˝
환경 미화원---.
요즈음에 와서 그래도 대우해 준다고 이렇게 고쳤다고 하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쉽게 말하면 청소원이었다.
날마다 먼지 뽀얗게 뒤집어쓰고 빗자루로 거리를 쓸어내야 하는 청소원.
그랬다.
현이 아버지는 청소원이었다.
현이는 늘 그게 불만이었다.
˝하필이면 청소원이에요?˝
가끔씩 화가 날 때마다 엄마에게 이렇게 불만을 터뜨리면 엄마는 우울한 얼굴을 지으며 ,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아버지를 이해해야 한다. 아버지는 그 일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어. 직업에는 귀천이 없는 거야. ˝
하고 말씀하시곤 하였다.
엄마는 가끔씩 아버지가 바쁘실 때마다 같이 가서 도와드리곤 한다.
그러나 현이는 그 때 까지는 아버지 근처에 가 보지 못했다.
용기가 없어서일까?
누가 볼까 봐 부끄럽다.
아버지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일을 하는 게 늘 조마조마 했다.
그런데 결국은 아이들의 눈에 뜨인 것이다.
˝아버지, 다른 일 하시면 안 돼요?˝
언젠가 아버지에게 이런 말을 했다가 크게 꾸중을 들었다.
˝난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도 늘 감사하고 있단다. 내가 건강하지 못해서 이 일도 할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또 내가 아무리 일을 하고 싶어도 이런 일이나마 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되고?˝
현이는 일부러 발끝에 걸리는 낙엽을 툭툭차면서 천천히 걸었다.


<2>

아버지가 청소원이 된 것을 딱 한 번 후회한 적이 있었다.
새벽에 오는 전화는 언제나 별로 반갑지 않은 소식을 전해 온다.
며칠 전 그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따르르릉-----
전화벨은 고요한 때이면 더 소란스러운 소리로 울었다.
˝뭐요? 사고? 그래서? 오우, 부처님, 맙소사......˝
수화기를 내려놓는 아버지의 손이 벌벌 떨고 있었다.
˝무슨 일이대요?˝
엄마와 나는 아직도 잠에서 덜 깬 조심스런 눈으로 쳐다보았다.
˝박씨가, 박씨가 사고로......˝
아버지는 엄마가 떠다 준 냉수로 목을 축이고는 겨우 입을 뗐다.
박씨 아저씨는 아버지 이웃에서 역시 청소원으로 일하고 있던 친구였다.
아저씨가 새벽에 일을 하다가 과속으로 달리는 차에 무참하게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 아이들이 불쌍해. 꼭 참새 새끼들처럼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누굴 믿고 살아간단 말이고......˝
그 아저씨 장례식에 참석하고 돌아온 아버지는 좀처럼 입에도 대지 않던 술을 드시고 잔뜩 취해서 돌아왔었다. 그리고는 우리를 보고 또 울었다.
아버지의 검은 얼굴에 흘러내리는 눈물이 몹시 진하게 느껴졌다.
그 뒤로 아버지는 어깨에 힘이 없었다.



<3>

현이로서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아버지의 일이 불만이었다.
선생님이 장래에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아이들에게 묻던 날도 현이는 아버지 생각을 했다.
아이들이 모두 자기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봐라. 이거 우리 아버지가 외국에 갔다 오시면서 사 왔다.˝
옆에 있는 짝 경수가 사장인 자기 아버지가 외국에 갔다가 사왔다면서 샤프 연필이랑 볼펜 자랑을 할 때에도 아버지 생각이 났다. 연필은 멋진 디즈니 그림이 있었고, 볼펜은 몸체에 투명 유리 속으로 고릴라가 자동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었다.
경수는 현이에게 한 번 만져 보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현이를 힐끗 보는 눈빛은 언제나 몹시 경멸하는 것 같았다.
´우리 아버지도 사장이나 하셨으면......´
이따금 길에서 자기 아버지와 엄마 사이에서 나란히 손을 잡고 걸어가는 것을 볼 때에도 아버지 얼굴이 떠올랐다.
현이에게는 아직까지 그런 기억이 한 번도 없었다.
현이의 기억 속에 있는 엄마와 아버지의 얼굴은 언제나 검으틱틱했고 그 위에는 언제나 뽀얀 먼지가 덮여 있었다.



<4>

˝난 아버지 아침 가지고 나갈 테니까 넌 천천히 나오너라.˝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엄마가 먼저 아버지 아침을 싸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예, 다녀 오세요.˝
이 인삿말도 언제나 힘이 없었다.
학교 길은 아이들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로 가득 찼다.
´엄마는 빠른 걸음으로 아버지에게 가셨겠지. 아버지는 그날처럼 낙엽과 나뭇가지를 한 곳에 모아 불을 놓고 낙엽 타는 냄새를 맡으며 아침을 잡수시겠지. 엄마는 그 옆에서 밥 잡수시는 아버지 시중을 들던가 아니면 아버지가 쓸던 빗자루를 들고 아버지 대신 길을 쓸고 있을 것이고......´
발걸음이 무거웠다.

아침 자습이 끝나고 협의회 시간이었다.
˝오늘 선생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하고 또, 행복해 보이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선생님이 출근을 하는데 길옆에 어떤 청소원 부부가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어요.˝
´아.´
현이는 입 속으로 나지막한 신음 소리를 냈다.
이따금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다.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라는 뜻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재미도 있었고 듣고 나면 무엇인가 남는 게 있어서 아이들은 참 좋아했다.
그런데 오늘 선생님의 이야기 속 주인공은 환경미화원이란다.
현이는 선생님이 출근하면서 만난 분이 아버지와 어머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현이의 아버지가 그 일을 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몰라도 아이들은 선생님의 그 말씀이 떨어지자 현이 쪽으로 고개를 힐끗 돌렸다.

선생님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낙엽을 태우는 파르스름한 연기가 소롯이 피어나는 길옆에서 아버지인 듯한 사람이 밥을 잡숫고 있더라구요. 아버지가 숟가락으로 밥을 뜨면 그 옆에서 어머니인 듯한 분은 김치를 쭉쭉 쪼개서 밥숟가락 위에 척척 걸쳐 놓아주는데 그 밥을 잡수시는 분이나 옆에서 시중을 드시는 분이나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었어요. 저 밀레의 저녁 종 보다도 더 진한 감동을 받았어요. 아마 밀레가 그 모습을 보았다면 우리는 또 다른 명화 한 폭을 가질 수 있었을 지도 모르지요. 우리 사람들 중에는 진정한 행복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현이는 처음에는 선생님의 말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행복이라면 친구인 경수네처럼 돈 많은 부자이지 그런 모습이 뭐가 그리 대단한 행복이란 말인가. 더구나 현이가 늘 불만으로 여기던 청소원인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우리는 대개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천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 분들이 있기에 얼마나 깨끗한 환경 속에서 살아갑니까? 자기가 맡은 일을 떳떳하게 할 수 있는 그런 분들이야말로 진정으로 행복을 가꾸어 나가는 분들일 겁니다. 나는 정말 고개를 숙여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이야기는 진심이었고 표정은 진지했다. 꾸밈이 아니었다.
´행복을 가꾸는...... ?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게 가장 보람있는 일.......?´
현이는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다시 한 번 중얼거려 보았다.
현이는 뭔가 막혔던 것이 조금씩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선생님의 말이 무슨 뜻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차츰 눈앞에서 아른아른 잡히는 것이 있었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어쩌면 그 장면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을지도 몰라. 아버지 ,엄마는 그 순간을 가장 행복하게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고......아버지, 어머니, 이제부터는 아버지의 직업을 부끄러워하지 않겠습니다. 자랑스럽게 생각하겠습니다.´
눈을 꿈벅거렸다.
눈에서 뜨거운 것이 자꾸만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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