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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수꽃다리 향기는 울 엄마 향내 |  | |
| 삐오- 삐오- 삐오-.˝
119 구조대 자동차의 사이렌 소리가 골목길을 요란하게 울립니다.
˝아저씨, 여기예요 여기! 어서 빨리 오세요!˝
빌딩 옥상에서 조그만 소녀가 119 구조대 자동차를 향해 손을 흔들며 소리를 지릅니다.
˝철탑에서 떨어진 사람이 어디 있니?˝
헐레벌떡 옥상으로 단숨에 뛰어 올라온 119 구조대 아저씨가 숨을 가쁘게 몰아 쉬며 물었습니다.
˝아저씨, 저기요 저기!˝
소녀는 내가 심어져 살고 있는 큰 고무 물통 밑을 가리켰습니다.
˝………?˝
˝아아니! 저건 새 새끼 아니냐?˝
˝네. 까치 새끼예요. 저기 저 철탑 위의 둥지에서 떨어졌어요. 까치 엄마, 아빠인 까달이와 까별이가 구해달라고 저렇게 울고 있지 않아요.˝
˝까까깍! 깍깍깍!˝
까치 두 마리가 철탑 주위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시끄럽게 울어댑니다.
˝얘, 우리는 사람이 떨어진 줄 알았잖니? 이런 것을 신고하면 어떻게 해!˝
119 구조대 아저씨는 몹시 화가 난 얼굴로 말했습니다.
˝아저씨 구해주세요. 까치 엄마 아빠가 저렇게 울고 있잖아요.˝
˝허허허 나 참 기가 막혀서. 119 구조 활동 중에 이런 일을 당해보기는 처음이네. 허허허.˝
˝그러게 말일세. 뭐, 지난번에 벌들이 떼를 지어 동네에 나타났을 때도 우리가 했으니 이번에도 좋은 일 해보세. 자, 비상약 상자를 이리 가져오게. 나 참 원. 하하하.˝
119 구조대 아저씨는 떨어져 다친 새끼를 정성껏 치료하고는 까치 둥우리에 올려놓아 주었습니다.
˝까악 까악 깍깍깍. 까악 까악 깍깍깍.˝
까달이와 까별이는 고맙다는 듯이 119 구조대 아저씨의 주위를 맴돌며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꼬마 아가씨야, 앞으로는 이런 일로 우리를 부르면 안 된다. 알겠지?˝
119 구조대 아저씨는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고는 바쁘게 떠나 가셨습니다.
♤ ♤ ♤
내가 이 어린 소녀를 만난 것은 엷은 자주 빛 작은 대롱 모양의 꽃을 가지 끝에 피우고, 나의 진한 향기를 마음껏 하늘로 풍기고 있던 작년 5월 어느 늦은 봄날이었습니다.
˝어머, 이 향기! 수수꽃다리 향기야!˝
나는 깜작 놀랐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나를 라일락이라 부르지만, 수수꽃다리라고 부르는 아이는 처음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엄마가 좋아 하셨던 꽃향기야!˝
소녀는 코를 갖다대고 나의 향기를 힘껏 들이 마셨습니다.
˝……엄마, ………엄마가 보고 싶어요.˝
내가 살고 있는 빌딩 옥상에는 상자를 이용해서 만든 조그마한 텃밭과 나처럼 커다란 고무 물통에 살고 있는 사철나무가 있습니다. 소녀는 이 옥상의 옥탑을 개조해서 만든 좁은 방으로 이사를 온 것입니다.
5월의 싱그러운 바람과 햇빛을 받고 잎들이 진한 녹색 치마로 나의 몸을 감싸주고 있는 어느 날, 까치 한 쌍이 날아와 소녀가 살고 있는 옥탑 위의 오래된 광고 철탑 사이에 마른 나뭇가지를 물어다 둥근 둥우리를 만들었습니다.
˝깍깍깍깍 깍깍깍깍.˝
˝어머! 까치가 집을 지었네. 반갑다 안녕, 까치야.˝
소녀는 방안으로 달려가 방울토마토를 한 움큼 쥐고 나왔습니다.
˝어제 우리 아빠가 사다주신 것이야. 우리 친구하자. 먹어봐.˝
소녀는 텃밭 옆으로 방울토마토를 살짝 던져 주었습니다.
소녀는 까치에게 까달이와 까별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깍깍깍 깍깍깍 깍깍깍깍.˝
까별이가 철탑 위를 이리저리 날아 앉으며 요란하게 기쁜 소리로 울어댑니다. 둥우리 속에 푸른빛이 도는 초록빛 바탕에 갈색의 얼룩진 점이 있는 알을 까달이가 다섯 개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소녀는 밤마다 달님과 별님에게 예쁜 아기까치들이 알속에서 무사히 나오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달님, 별님 두 손 모아 기도 드립니다. 아기까치들이 무사히 나오게 해주세요.˝
달님과 별님은 아기 알들이 잠들어 있는 둥우리를 환하게 비춰 주었습니다.
˝까까까 까까까.˝
˝깍깍깍깍 깍깍깍깍.˝
까달이와 까별이가 기쁜 소리를 내며 둥우리 주위를 맴돕니다. 아기까치들이 알속에서 모두 잘 나왔기 때문입니다.
까달이와 까별이는 서로 번갈아 가며 부지런히 먹이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소녀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의 그늘 밑에 쪼그리고 앉아 까치 둥우리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보송보송 솜털이 박힌 아기까치들의 머리가 둥우리 밖으로 간간이 보입니다. 소녀는 아기까치들에게 까일이, 까이, 까삼이, 까사, 까오라고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햇볕이 따갑게 비치던 어느날 오후였습니다.
˝끼익 끼익 끽!˝
˝칵 칵 칵 칵!˝
갑자기 까치의 울음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습니다. 숙제를 하고 있던 소녀가 깜짝 놀라 뛰어나왔습니다.
˝아앗! 아기까치가 둥지에서 떨어졌네.˝
아기까치 한 마리가 사철나무 통 옆에서 날개를 파닥거리며 울고 있었습니다. 나는 너무 애처로워 나의 부드러운 잎으로 감싸주고 싶었지만, 갈 수가 없어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어머, 날개와 다리를 다쳤나봐. 어떻게 하지?˝
소녀는 어찌할 줄 모르고 발만 동동 굴렀습니다. 까달이와 까별이도 이리저리 날아 앉으며 더욱 더 울어댔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면 돼! 아기까치 까삼아, 조금만 기다려.˝
소녀는 방으로 달려가 전화기를 들고 119 번호를 빠르게 눌렀습니다.
♧ ♧ ♧
날씨가 점점 더워지자 나의 몸은 더욱더 짙은 초록 빛 잎으로 물들이며 나는 소녀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소녀는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물을 나에게 흠뻑 뿌려주었습니다.
아기까치들은 까달이와 까별이가 물어다주는 먹이를 먹고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이제는 엄마, 아빠를 따라 비행연습을 합니다. 철탑에서 옥탑으로 옥탑에서 옥상 텃밭으로 날아 내립니다. 다쳤던 까삼이는 소녀 가까이 날아와 앉아 고개를 까웃 거리며 예쁜 꽁지깃을 아래위로 흔들어대기도 합니다. 아기까치 까일이와 까이는 잘도 날며 콩콩콩 뛰어다니기도 합니다.
까사와 까오는 나의 가지에 날아 앉아 여물기 시작한 콩알만한 나의 열매를 예쁜 부리로 간지럽게 콕콕 찧기도 합니다. 까달이와 까별이 가족들의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소녀의 눈에 갑자기 눈물이 어립니다.
´…엄마, 보고 싶어요.……어서 돌아오세요… 우리도 함께 모여 행복하게 살아요…….´
아침 일찍부터 까치 가족들의 울음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옵니다.
소녀는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왔습니다.
˝깍깍까악, 깍깍까악깍.˝
까달이와 까별이가 옥상 텃밭까지 날아 내려와 반갑다는 듯이 긴 꼬리를 아래위로 흔들어 댑니다.
˝오늘 아침에는 왜 이렇게 시끄럽게들 울어대니 동네 사람들 다 깨겠다.˝
˝까까깍, 까까깍, 깍깍깍깍.˝
까달이와 까별이는 푸드득 날아올라 소녀의 머리 위를 비잉 돌았습니다. 둥우리 근처에 앉아 있던 아기까치들도 힘차게 날아오릅니다.
까달이와 까별이 가족은 옥상 주위를 한 바퀴 더 돌고는 긴 울음소리를 남기고 먼 산이 있는 남쪽으로 멀리멀리 날아갔습니다.
소녀와 나는 까달이와 까별이 가족이 떠난 남쪽 하늘을 매일 바라보았습니다. 낙엽이지고 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이 지나 꽃이 피는 봄이 왔는데도 까달이와 까별이 가족은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는 무심코 둥우리를 쳐다보다 깜짝 놀랐습니다. 긴 나뭇가지를 물고 있는 까달이와 까별이를 발견 했기 때문입니다.
˝아빠! 아빠! 까달이와 까별이가 돌아왔어요! 이리 나와 보세요!˝
나는 소녀의 외침에 깜짝 놀라 둥우리를 바라보았습니다. 정말 까달이와 까별이가 나뭇가지를 물고 둥우리를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까치들이 왔다고? 정말이구나! 네가 그렇게도 기다리고 있더니….˝
˝아빠, 둥지를 다시 고치고 새끼를 낳으려나봐요. 나뭇가지를 물고 왔어요.˝
˝그렇구나. 금년에도 잘 키워야 할텐데…….˝
˝깍깍깍 깍깍깍.˝
까달이와 까별이는 열심히 나뭇가지를 물어다 둥우리를 손질하기 시작했습니다.
˝까아까깍 까아까깍.˝
˝아빠, 까치가 와서 울면 좋은 소식이 들리거나 반가운 손님이 찾아온다고 하던데 우리 엄마 소식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 머지않아 꼭 돌아오실 거야.……어제 엄마가 있는 곳을 안다는 사람을 만나서 모든 것을 용서 할 테니 집으로 돌아오라고 전해달라고 했단다.˝
˝아빠! 정말이에요?˝
˝그럼. 엄마가 돌아오면 우리들도 저 까치 가족처럼 행복하게 살아보자.˝
˝아빠, 고맙습니다! 저도 엄마 아빠의 사랑을 받으며 살고 싶어요.˝
소녀는 아빠의 가슴에 와락 매달리며 수염으로 까실까실한 볼에다 뽀뽀를 했습니다.
˝하하하, 그렇게도 좋으니? 하하하 하하하.˝
˝호호호, 호호호.˝
˝깍깍깍, 깍깍깍.˝
까치 소리와 소녀의 웃음소리가 한데 어울려 푸른 하늘로 울려 퍼집니다.
나는 연보라색 꽃잎을 활짝 터 드리며 진한 향기를 아빠 품에 안겨 있는 소녀에게 마음껏 날려보냈습니다.
˝아아!-- 이 꽃향기는 울 엄마가 좋아하시던 향내야. 아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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