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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광주매일신춘문예당선작-장미 요정(김희철)
말간 햇살이 부챗살처럼 퍼져 나오고 있었어요. 햇살을 먹고 수많은 꽃봉오리들이 개켜둔 꿈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햇살이 쏟아지면 유난히 수줍음 많은 요정은 슬그머니 몸을 숨겨 버렸습니다.
˝어서 장미 요정을 찾아 주세요. 햇살이 떠오르면 더욱더 저를 찾기가 힘들어져요. 햇살에 저는 완전한 장미로 변해 버리니까요.˝
아직도 꿈 속에서 속살거리던 장미 요정의 음성이 귓가에 남아 있습니다. 민수는 장미를 속속들이 살펴보았습니다. 이마에서는 어느덧 이슬 같은 땀방울이 맺혔습니다.
민수네 엄마 아빠는 동네 앞의 커다란 비닐 하우스에 예쁜 장미꽃들을 가득 키우고 있습니다. 민수는 엄마 아빠가 아름다운 꽃을 수십 만 송이씩 가꾸어서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동네 앞 들판은 온통 비닐 하우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는 비닐 하우스들이 바람에 일렁이면 바닷가에 서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비닐 하우스 속으로 들어서는 것은 마치 바다 속에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울긋불긋한 장미꽃들은 먼 남쪽 바다 속의 산호 숲처럼 화려하게 피어 있습니다. 볼품 없는 하우스가 꽉 찬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산호 숲 속을 엄마 아빠는 돌고래가 헤엄치듯 오가며 일을 하십니다. 그렇지만 하우스 안은 목욕탕의 뜨거운 물 속에 들어간 것처럼 덥습니다. 장미는 그렇게 땀방울을 먹고 쑥쑥 자라나 한꺼번에 눈부신 꽃망울을 터뜨립니다. 꽃이 피어날 때면 엄마 아빠의 얼굴에도 탐스러운 꽃이 피어납니다. 사람들은 수많은 장미들이 피어 있는 하우스 안을 장미 동산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제는 민수가 장미꽃 사이를 돌고래가 되어 이리저리 헤집고 다녔습니다. 이를 본 엄마가 걱정을 했습니다.
˝민수야. 조심해라. 꽃봉오리는 슬쩍만 건드려도 부러지잖아? 가시에 찔리고 말이야 도대체 무얼 찾겠다는 거야? 잃어버린 것이라도 있니?˝
˝꿈 속에서 본 장미 요정을 찾아야겠어요. 수많은 장미 중에서 한 송이만이 장미 요정이랍니다.˝
˝헛것을 본 거야. 설령 요정이 있다손 쳐도 이 많은 장미 속에 숨어 있는 요정을 어떻게 찾아내겠니?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괜한 억지 부리지 말고 집에 가거라.˝
엄마는 찌푸린 얼굴로 아빠에게 투덜거렸습니다.
˝여보. 민수가 이상한 소리를 해요. 글쎄 장미 동산에서 장미 요정을 찾는다고 벌써 며칠째 헤매 다니고 있어요. 내일은 어디 병원에라도 데리고 가서 진찰을 받아 보도록 합시다.˝
처음 민수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웃으며 ´어디 한번 찾아보아라´ 하던 아빠도 심각한 표정으로 민수를 말렸습니다.
˝너 장난으로 그러는 것 아니구나. 민수야. 장미 요정 같은 것은 세상에 없단다.˝
그럴수록 민수의 귓가엔 꿈 속에서 보았던 장미 요정의 목소리가 메아리쳐 왔습니다. 비록 꿈이지만 요정을 밤마다 만나다보니 금세 친해졌습니다. 꿈 속에서 만난 요정은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민수는 비닐 하우스 앞에서 요정과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모두는 저에게 장미 요정이라고 부르지요. 흐드러지게 피어난 장미꽃이 연상된다며 그렇게 부르고 있어요.˝
이윽고 하늘 저쪽에서 뿌옇게 동이 터 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정은 얼굴을 찌푸리며 근심스런 표정을 지었습니다.
민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장미 요정을 요리조리 살폈습니다.
˝어디 몸이 아프세요?˝
˝아니요.˝
˝무슨 걱정거리라도?˝
장미 요정은 고개를 떨구며 나지기 말했습니다.
˝사실 전 인간이 아니랍니다. 해가 뜨면 꽃이 되고 해가 지면 인간이 되니까요. 해가 떠오르면 수천 송이의 장미가 피어 있는 곳에서 한 송이 장미가 되어 버리지요. 수천 송이의 장미 중에서 제가 숨어 있는 진짜 장미를 찾을 수만 있다면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누구도 찾아내지를 못하고 있어요. 아니 제 말을 처음부터 믿지를 않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그지없이 답답한 밤 생활만 한답니다.
장미 요정은 슬픈 눈으로 민수를 바라보았습니다. 민수는 요정의 맑은 눈망울 속에 비친 세상으로 구출해 주고 싶었습니다.
˝세상에 그런 슬픈 사연이 있다니 믿을 수가 없군요. 제가 기필코 장미 요정을 찾아내어 인간이 되게 하겠어요.˝
˝이번이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제가 순수한 영혼을 가진 사람 꿈에 나타나 이렇게 하소연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랍니다.˝
민수는 우쭐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장미 요정은 꼭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거예요.˝
˝그럼 전 이만…….˝
햇살이 비치자 요술처럼 장미 요정은 수천 송이가 피어 있는 장미 동산으로 사라졌습니다.
민수는 요정을 잡으려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민수야! 어서 일어나거라.˝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꿈이었습니다. 너무나 생생하여 도무지 꿈 같지가 않았습니다. 민수는 장미 요정의 부탁을 꼭 들어주고 싶었습니다.
˝엄마, 장미 요정을 찾아 주세요? 꿈 속에서 분명히 저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장미 요정은 햇볕이 비치면 장미로 변한다고 말했어요.˝
˝이제 그 소리는 그만해. 동네 사람들 보기가 창피하구나. 세상에 요정이란 없단다.˝
민수는 하우스 안으로 뚜벅뚜벅 들어갔습니다. 장미꽃들이 아름다움을 서로 견주며 활짝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저를 구출해 주는 사람을 찾고 싶었어요. 어서 제가 된 장미를 찾아 주세요. 햇살이 비치기 전에 찾으면 사람이 될 수 있는데…….˝
어젯밤 꿈 속에서 만난 요정의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요정의 모습을 생각하자 민수는 또다시 숨이 턱 하고 막혔습니다. 요정의 해맑은 미소가 인간 세상에 전혀 찌들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민수는 요정이 변한 한 송이의 장미를 찾아내기 위해서 발이 부르트도록 여기저기 살펴보았습니다.
꼭두새벽부터 해가 떠오를 때까지 장미 하우스를 헤집고 다니는 날이 계속되자 사람들은 이러쿵저러쿵 손가락질을 하며 수군거렸습니다. 민수는 여기저기 장미 가시에 찔려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떠오르는 밝은 햇살 때문인지 눈이 부셔 꽃들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어서 빨리 제가 된 장미를 찾아 주세요.˝
민수의 이마에서는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혔습니다. 어느덧 눈에서는 요정의 애타는 마음이 눈물 되어 흘러 나왔습니다.
커다란 비닐 하우스가 바람에 몸을 부풀리며 민수를 위로하고 있었지만 민수는 애꿎은 장미 이파리만 따내고 있었습니다.
요정이 된 장미는 쉽게 찾아지지 않았습니다. 해가 떠오르면 요정은 완전한 장미가 되어버려 또다시 하루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장미 요정을 찾지 못하고 며칠이 지났습니다. 참으로 오랜 시간이었습니다. 민수는 꿈 속에서 다시 요정을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도하며 잠이 들었습니다.
˝아! 사람들이 살고 꿈꾸는 세상은 정말 멋져 보여요. 저도 장미꽃이 아닌 사람으로 태어나서 아름다운 꽃을 보며 환히 웃고 싶어요.˝
˝그렇게 반은 장미로 살아가는 것도 좋지 않습니까? 진한 향기도 날마다 맡을 수 있고요.˝
장미 요정은 끝내 울음보를 터뜨렸습니다.
˝향기에 중독 되어 있어 향기를 맡을 수도 없어요. 사람들은 저의 겉모습과 향기에 취하여 벌떼처럼 모여 들지만 아직까지 다른 장미꽃들 속에서 찾아내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요. 기필코 장미 요정의 눈물을 닦아줄게요.˝
˝하지만 서두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빨리 찾다가는 영원히 저를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오래오래 저를 지켜만 봐 준다면…….˝
민수는 자리를 박차고 한달음에 장미 동산으로 달려갔습니다. 희뿌연 어둠 속에서 수많은 장미들이 살랑살랑 고개를 흔들며 인사를 했습니다. 어쩌면 끝내 요정을 찾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민수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장미의 가시에 찔려 따끔거렸지만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장미 요정을 구출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아침 햇살에 이슬이 맺혀 빛을 발할 때면 꽃봉오리 가득 눈물을 흘리는 장미가 있었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하우스 안의 모든 장미가 환히 웃고 있는데 한 송이 장미만이 이슬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민수는 코앞에서 장미를 들여다보았습니다. 분명히 한 송이 장미만이 송알송알 이슬을 머금고 있었습니다. 민수는 인간이 되기를 그리워하는 장미 요정이 흘리는 눈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정이 흘리는 눈물을 닦아 주고 싶었습니다.
말간 햇살에 반짝이는 이슬이 아침 햇살에 은구슬처럼 매달려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장미 요정이 인간이 되어 달려오는 것만 같았습니다.
꽃잎에 맺힌 이슬처럼 요정의 목숨도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어서 소녀를 구출해 주세요라고 수천 송이의 장미들이 안간힘으로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보면 볼수록 은구슬은 장미 요정의 눈물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요정이 인간 세계를 그리며 흘리는 눈물 같아 보였습니다. 햇살에 비친 투명한 구슬은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민수는 수많은 장미 중에서 어떻게 한 송이만이 총총 이슬이 맺혀 있을까를 골똘히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무릎을 치며 벌떡 일어났습니다. 장미 요정과 하우스 앞에서 밤을 세워 이야기했으므로 요정만이 이슬에 젖어 있었던 것입니다. 수천 송이의 장미 중에서 이슬이 맺힌 장미가 바로 요정이었던 것입니다.
민수는 그 장미꽃에 대고 나직이 속삭였습니다.
˝이 장미가 요정이란 걸 알아냈어요. 이제 완전한 인간으로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민수의 눈에 이슬 같은 눈물이 맺혔습니다.
˝얘가 이제 헛소리를 하며 울기까지 하네.˝
엄마의 한숨 섞인 걱정으로 바라보자 민수는 장미에게서 눈을 떼어냈습니다.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다시는 장미 요정을 찾지 않을 거예요.˝
˝정말이니?˝
˝예. 드디어 장미 요정을 찾았거든요.˝
민수는 고개를 돌려 장미 봉오리 쪽을 보았습니다. 은구슬이 햇살에 말간 기쁨을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 날 밤 민수는 며칠 만에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언제나처럼 환한 웃음을 머금은 장미 요정이 나타났습니다.
˝수많은 장미꽃들 속에서 저를 찾아 완전한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여 주었듯이,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저를 찾아내 주리라 믿어요.˝
민수는 장미 요정이 사람으로 태어났으리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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