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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희란 아기-변기자(재일교포 동화작가)
유미는 3학년에 올라갈 봄에 도꼬에서 오카야마현의 세토나이카이(바다 이름)가 바라다 보이는 시골로 이사왔습니다.
무엇이든 알아보기를 좋아하는 유미는 이제부터 살게 될 집 주위를 ´빠르´라는 개를 데리고 자꾸 돌아 다녔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길로 학교에 가기로 하였습니다. 집에서 나와 바닷가를 따라 조금 가다가 건널목을 건너 그리 가파르지 않은 비탈길을 올라가기로 하였습니다.
비탈길 한쪽은 밭이고 다른 한쪽은 언덕이었습니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세토이카이는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비탈길 양쪽에는 예쁜 들꽃들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새 학교에 가는 첫날. 유미는 엄마와 함께 갔습니다.
비탈길 한 가운데 쯤에는 집 한 채가 오똑 서 있었습니다. 집이라고는 해도 언제 무너질지도 모르는 산비탈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듯한 보잘 것 없는 집이었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살고 있는 듯, 하얀 빨래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기저귀 같았습니다.
´아기가 있는 모양이지?´
그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빨래를 걷고 있는 한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그 할머니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목소리는 잘 들렸습니다. 무슨 노래인지는 잘 몰랐지만(좋은 노래구나)하고 감탄하면서 비탈길을 내려갔습니다.
그 후부터 유미는 아침, 저녁으로 그 할머니의 노래를 듣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조금 부르다가는 창문 쪽을 돌아보고 또 부르다가는 돌아보면서 부릅니다. (별난 버릇을 가진 할머니)라고 유미는 생각하였습니다.
새 학교도 잘 알게 되고 친구들도 생겼지만 유미는 여전히 학교에 오갈 때에는 혼자서 비탈길을 걸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빨래를 널고 있는 할머니와 눈길이 마주쳤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꾸벅 숙였습니다. 할머니는 살짝 웃었습니다.
그 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길가에 피어 있는 빨강, 하양, 노란 꽃들을 많이 땄습니다. 머리를 묶었던 리본으로 꽃을 묶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네 집 빨래 장대 밑에 살짝 놓아두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유미가 지나가자 할머니는 빨래를 널면서 손을 흔들었습니다. 유미도 손을 흔들었습니다.
할머니와 사이가 좋아진 유미는 발길을 멈추고 할머니의 노래를 듣게 되었습니다. 할머니의 노래는 언제나 똑같은 노래였습니다.
유미는 그러는 동안 할머니의 노래를 다 외워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피리로 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음악 시간이 있었던 날 유미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할머니의 노래를 부르며 비탈길을 내려갔습니다.
그 날도 할머니는 마침 빨래를 걷고 있었습니다.
유미의 피리 소리를 들은 할머니는 유미에게
˝이리 온. 이리 온.˝
하고 손짓하였습니다. 유미는 「솔솔미파솔 라라솔……」 피리를 불면서 할머니에게 다가갔습니다.
할머니는 빨래들을 재빨리 집안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오두막 같은 입구의 풀 위에 유미와 나란히 앉았습니다. 유미의 피리 불기가 끝나자 할머니는 짝짝 손뼉을 치며 칭찬해 주었습니다.
˝참 잘도 부는구나. 언제 외웠니?
할머니가 물었습니다.
˝날마다 듣고 외웠어요.˝
유미는 늠름한 얼굴로 대답하였습니다.
˝학교는 몇 학년이지?˝
˝3학년이예요.˝
˝이름은 뭐지?˝
˝유미.˝
˝유미?˝
˝그래요.˝
˝아하하하……. 할머니는 유희란다.˝
˝어머나!˝
유미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때 할머니는 무엇을 생각해 낸 듯 벌떡 일어났습니다. 중얼중얼하면서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소중하게 손바닥에 얹어서 나왔습니다. 그것은 언젠가 유미가 들꽃들을 묶었던 리본이었습니다. 유미는 블라우스 윗주머니에 리본을 넣으며 이상하게 여겼던 점을 할머니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할머니 집에 아기가 있나요?˝
할머니는 유미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으응 있고 말고. 예쁜 아기가 있단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어디요? 아기를 좀 보여 주세요.˝
유미가 졸랐습니다.
할머니는 「이 다음에」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던 사흘 뒤였습니다. 유미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비탈길을 올라가자 할머니 집 쪽으로 구급차가 ´삐뽀삐뽀´ 하면서 내려왔습니다. 유미는 급히 길을 피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생각이 나서 할머니 집 쪽으로 헐레벌떡 뛰어갔습니다.
언제나 열려있던 창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빨래들만 하늘하늘 나부끼고 있었습니다. 학교가 끝나자 유미는 또 헐레벌떡 할머니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할머니는 언젠가 유미와 나란히 앉았던 집 앞의 풀 위에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할머니…….˝
유미는 할머니 곁으로 달려갔습니다.
할머니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고 언제나 부르던 그 노래도 부르지 않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입원했단다…….˝
˝누가요?˝
˝우리 집 예쁜 아기가…….˝
그러는 사이에 할머니의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할머니의 슬픈 얼굴을 보고 있으니까 유미까지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둘이서 가만히 있으면 더욱 슬퍼질 것 같아서 마침내
˝할머니 집 아기는 몇 살이죠?˝
하고 엉뚱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이제 곧 마흔 세 살.˝
하고 할머니는 이상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유미는 깜짝 놀라 할머니의 얼굴을 빤히 쳐다 보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엄마하고 같은 나이의 아기란 있을 수 없어…….)
유미의 의아해 하는 얼굴을 보고 할머니는 자기 옆자리에 앉으라고 풀 위를 툭툭 두들겼습니다. 유미가 자리에 앉자 할머니는 먼 하늘을 바라보면서 띄엄띄엄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유미야, 네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말이다 일본 사람이 조선에 와서 조선 사람을 부하로 만들었단다. 일본의 관리들이 와서 뽐냈단다. 조선사람의 이름을 모두 일본 이름으로 바꾸게 하고 조선말을 가르치면 안 돼. 조선사람은 모두 일본사람이 되라고 명령했단다. 조선 땅의 논도 밭도 다 일본사람의 것으로 만들었어요. 할머니의 집 밭도 일본사람한테 속아서 빼앗겼단다. 할머니의 남편도 밭일을 하고 있을 때, 무서운 일본 사람이 찾아와서 억지로 트럭에 싣고 일본까지 끌고 갔단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어. 히로시마에서 일본이 전쟁을 하기 위해 총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고 편지를 했어요. 할머니는 서둘러 히로시마에 갔지만 원자 폭탄이 떨어져 할아버지는 그만 죽고 말았단다. 아이고 아이고.˝
할머니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땅바닥을 탁탁치면서 울었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할머니는 아기를 낳았단다. 봄에 태어났기 때문에 춘이라고 이름을 붙였지. 춘희가 빨리 자라기를 빌면서 할머니는 부지런히 힘껏 길렀단다. 그러나 할머니의 뱃속에서 원자 폭탄을 맞은 춘희는 자라지 않았어. 지금도 아기란다. 기저귀가 필요해. 그래도 예쁜 아기란다. 언제나 빨래를 널 때 창문으로 자고 있는 춘희를 본단다. 조선 노래를 불러 주면서…….˝
유미는 가슴이 철렁하였습니다.
(아 그랬었구나……. 그래서 할머니의 아기는 마흔 세 살이었구나…….)
할머니는 ´후우´ 하고 길게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래. 아침에 창문으로 춘희를 보니까 벌벌 떨기 시작했어. 서둘러 언덕 아래쪽 담배 가게에서 구급차를 불러 주어서 병원에 갔단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유미가 들었던 어떤 이야기보다 슬픈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유미는 미도리짱과 토모짱에게 할머니한테서 들었던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세 아이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이번 일요일엔 춘희상의 병원에 가서 할머니가 언제나 부르고 있던 노래를 피리로 불러 주자.˝
오늘도 세 아이가 연습하는 피리 소리가 노을진 파도 위로 ´솔솔미파솔 라라솔´하고 흘러갑니다.
할머니의 고향 노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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