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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시집가지 마(임정진) : 사이버 아동문학관에서 옮겨옴
대청마루엔 용케도 시원한 바람이 잘도 찾아옵니다. 옥분이 누나가 수박을 작게 잘라서 짱아 입에 쏙쏙 넣어줍니다.
˝또 줘˝
짱아 입 속으로 달콤한 수박이 낼름낼름 들어갑니다.
˝퇴-툇툇˝
마당으로 수박 씨 가 우다다다 떨어집니다.
˝내년 여름엔 우리 짱아에게 누가 수박을 잘라주나.˝
˝누군 누구야. 누이지. 또 줘. 아-˝
짱아는 입을 또 크게 아- 벌립니다. 배가 점점 탱탱해졌습니다. 짱아는 그만 벌렁 드러눕습니다.
누나는 수박 담긴 쟁반을 옆으로 치우고 짱아에게 부채질을 해줍니다. 짱아는 곧 잠이 들었습니다. 집 앞 냇가의 버드나무가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낭랑한 물소리를 듣는 여름날이었습니다.



장날에는 짱아의 마음이 아주 바쁩니다.
’오늘은 엿을 사 오실라나. 아니지. 오늘은 아마 간고등어 사 오실거야.’
짱아는 입맛을 다시면서 우물가의 분꽃을 눈여겨봅니다. 분꽃이 피면 누나가 저녁 쌀을 씻습니다. 그 밥이 다 될 때쯤이면 동구 밖에 나가서 아버지의 손에 든 꾸러미 안을 들춰봐야 합니다. 꼴 베러 나간 형보다 짱아가 먼저 아버지를 만나야 합니다. 꼭 그래야 합니다.

누나가 뒤주에서 쌀을 푸는 걸 보고는 짱아는 매미소리를 앞장 세우고 느티나무 아래로 갔습니다. 발돋음을 하면서 고개 너머를 지켜봅니다.
한참 만에 아버지의 누런 삼베 적삼이 나타납니다.
짱아는 먼지를 휘날리며 아버지에게 달려갑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먹을 것은 하나 없고 아버지 등에는 옷감만 가득합니다.
˝아버지. 내 주전부리는?˝
˝집에 먹을게 가득한데 무슨 먹을 걸 또 사오누?˝
˝먹을게 뭐 있다고 그러세요?˝
짱아 입이 앞으로 댓발이나 삐져나왔습니다.
˝텃밭에 가봐라. 애호박에 열무에 상추에 풋고추에 먹을게 지천 아니더냐. 옥수수도 영글었지. 아재 밭에 가면 참외도 주실테고 개울가면 다슬기도 가득할 테고.˝
˝에엥---˝
실망한 짱아는 금방 울먹거립니다. 아버지는 짱아의 손을 꽉 잡고 흔들며 느티나무 그늘 아래를 지나 명아주 크게 자란 둑길로 질러갑니다.
˝옥분이더러 누룽지는 우리 막내 다 긁어주라 해야겠구만. 아버지 기다리느라 이 더운 날 예까지 나온 아기는 온 동네서 우리 짱아 뿐이니까.˝
아무리 그렇게 말씀하셔도 짱아의 툭 튀어나온 입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추석도 아직 멀었는데...벌써 빔 준비를 뭐 하러 한담. 내 주전부리는 하나도 안 사오시구... 이잉.’
색색의 고운 옷감이 짱아는 밉기만 했습니다.
방아깨비 다 놓아주고 난 짱아는 또 배가 고픕니다. 그래서 평상에 누운 채 소리지릅니다.
˝엄마, 나 감자 쪄 줘.˝
˝엄마, 좀 전에 밤나무집 마실 가셨어. 옥분이 누이한테나 말해보던가.˝ 형아가 방안에서 소리쳤습니다. 날도 더운데 형아는 뭘 하는지 늘 문을 닫아 걸었습니다.


옥분이 누나는 밤마다 친구를 불러 수를 놓습니다.
짱아는 누나 방으로 뛰어들어가 누나의 수틀을 잡아 당겼습니다.
˝이거 좀 그만해. 감자 쪄 줘.˝
˝더러운 손으로 만지지 마라. 시집갈 때 가져갈 거란다.˝
옥분이 누나와 같이 수를 놓던 순심이 누나가 짱아를 밀어냈습니다. 옥분이 누나는 그냥 말갛게 웃고는 부엌으로 내려갔습니다.
누나 방에는 온통 환하게 꽃이 피었습니다. 베갯모랑 수저집, 횃대보도 모자라서 작은 골무위에도 꽃이 피었습니다. 짱아는 그 꽃들을 다 쥐어뜯고 싶었습니다.



˝순심이 누나야는 그만 집에 가라.˝
짱아는 순심이 누나의 수틀을 잡아당겼습니다. 순심이 누나는 홱 돌아앉으면서 야물딱지게말했습니다.
˝싫다. 난 감자 먹고 갈란다.˝
˝누가 순심이 누나한테 감자 준대나?˝
˝네가 감자캤나? 옥분이가 다 캤지. 옥분이 시집가기 전에 짱아네 감자 다 얻어먹고 갈란다.
왜? 그럼 안 되나?˝
˝안돼. 감자 안 줘. 내가 다 먹을 거야. 누가 감자 준대.˝
마루에서 아버지가 그 소리를 다 들으셨습니다.
˝짱아 너 이리 좀 나와 보라. 왜 사내 자슥이 가시내 방에 가서 누이들한테 행패냐. 쪼그만 놈이 버릇없이.˝
이버지께 꾸증을 듣고 짱아는 화가 나 그만 감자도 한 알 안 먹고 그냥 잠을 자 버렸습니다.


큰집에서 할머니가 오셨습니다. 할머니는 술밥과 누룩을 섞고 맑은 물을 길어 부었습니다.
˝할머니. 뭐 하시는 거에요?˝
˝우리 강아지. 궁금한 것도 많구나. 술 담근다.˝
˝할아버지 드릴려고요?˝
˝옥분이 혼인날 써야지. 손님이 많이 오실거다.˝
˝그런 거를 뭐하러 담궈요. 하지 마요.˝
˝좋은 날에 술 없이 무슨 잔치를 하겠냐. 잔치에는 술이랑 음식이랑 넉넉하게 대접하고 그러는 법이다.˝
짱아는 갑자기 땅에 철퍼덕 주저앉아 발을 굴렀습니다. 안 나오는 눈물도 억지로 흘려보려하였습니다.
˝누나 시집보내지 마요. 잉잉잉˝
˝이런 녀석을 보게나. 아니 그럼 니 누이가 처녀귀신이 되어야 좋겠냐.˝
˝남의 집에 가서 누나가 어떻게 살아요?˝
˝짱아야. 네 엄마도 이 할미도 그렇게 시집와서 살았다. 좋은 혼처에 시집가니 잘 살게다.
누나가 잘 되었구나. 그리 생각해라.˝
짱아는 훌쩍훌쩍 울다가 누나 방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짱아는 점점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누나가 시집갈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옥분이 누나는 여러 날을 어머니와 함께 밤 늦게까지 버선을 만들었습니다.
˝바느질을 잘해야 시집가서 잘 산다.˝
어머니는 버선을 만들면서 자꾸만 눈물을 닦았습니다. 누나는 짱아 솜버선도 하나 만들었습니다.
다음 날에는 포근포근한 햇솜을 마루 가득 펼쳤습니다. 누나가 시집갈 때 가져갈 이불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와. 솜이다.˝
짱아는 이불 위에 벌렁 드러누웠습니다.
˝짱아야. 당장 일어나. 얼른. 바늘에 찔릴라. 신랑신부 덮을 원앙금침에 무슨 짓이냐.˝
어머니가 찰싹 짱아 어깨를 때렸습니다. 짱아는 할 수 없이 일어나 엄마 등 뒤에 찰싹 달라 붙었습니다. 그리고 엄마 등에 귀가 있는 것처럼 엄마 등에 입을 대고 말했습니다.
˝엄마, 누나 시집보내지 마.˝
˝뭐라고? 간지럽다. 일하게 저리 가서 놀아라. 바뻐 죽겠구만. 왜 이리 달라 붙고 그러냐.˝
짱아가 울상인 것을 보고 형은 킥킥 웃었습니다.
˝짱아야. 누나가 시집가면 우리는 매부가 생기는거야. 조카도 생기지. 히히히. 넌 안 좋냐?˝
형은 신날지 모르겠지만 짱아는 하나도 신나지 않습니다.
˝옥분이 누나가 다른 집 가서 사는 게 뭐가 좋아? 형은 바보야.˝



드디어 함이 들어왔습니다. 온 집안이 들썩들썩합니다. 함진애비는 맛있는 음식상을 대접받았습니다. 함 속에는 고운 옷감과 혼서지. 노리개가 들어있었습니다.
˝칫, 시시하다. 떡이랑 엿은 안 들었어.˝
몰래 함 여는 것을 구경한 형은 삐죽거렸습니다. 그래도 집안에 맛있는 음식이 많으니 짱아는 조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누나는 며칠째 볼이 빨갛습니다. 하룻밤만 자면 누나는 진짜로 시집갑니다.
짱아는 누나 방에 들어가 손그림자를 만들어 달라고 졸랐습니다. 누나는 손을 호롱불 앞에대고 벽에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었습니다.
˝이거는 뭐게?˝˝
˝여우˝
˝잘 아네. 이제 짱아가 만들어봐 누나가 맞출게.˝
˝싫어.˝
그림자 놀이가 오늘 밤은 이상하게 하나도 재미없었습니다.
˝누나. 시집가면 언제 다시 와?˝
˝글쎄...잘은 모르지만. 내년 할머니 생신 때는 올 수 있을테지.˝
˝그럼 난 누나 쫓아갈래.˝
˝업어달라고?˝
˝아니. 이제 업어달라고 안 할거야. 누나 힘들면 내가 도와줄게. 내가 물도 길어다주고 마당도 쓸고 그럴게.˝
˝우리 짱아가 다 컸네.˝
누나가 이번엔 기러기 그림자를 만들었습니다. 벽에 비친 그림자 기러기가 호롱불에 흔들렸습니다. 누나 눈에서 눈물을 흔들렸습니다.
˝옥분이는 그만 자거라. 짱아 이리 나와. 네 누이가 발 뻗고 자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큰어머니가 짱아를 옥분이 누나 방에서 억지로 끌어냈습니다.



옥분이 누나의 혼인날입니다. 드디어 그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아침 일찍 짱아는 저절로 눈이 떠졌습니다. 아침부터 지짐 부치는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합니다.
고기국 냄새도 납니다. 새 술도 거르고 닭도 여러 마리 잡았습니다. 유과에 떡에 먹을 것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도 짱아는 하나도 먹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누나는 아주 예쁘게 단장을 했습니다.
˝잘 살아라. 잘 살어.˝
어머니는 자꾸 그 말만 했습니다.
˝누나야. 시집 안 가면 안되나? 응?˝
짱아는 자꾸 그 말만 했습니다. 옥분이 누나는 아무 말 없이 눈만 깜빡거렸습니다.
˝아이고 색시가 곱기도 하네.˝
상주댁은 누나의 머리를 곱게 빗어주었습니다.
˝나도 이럴 때가 있었는데...˝
양주댁은 누나의 얼굴에 분을 발라주었습니다.
짱아는 서러웠습니다. 이제 누나가 없으면 누가 짱아를 업고 개울을 건네주고 감자를 삶아 주고 옥수수알을 먹기 좋게 낱낱이 뜯어주고 잠자기 전에 소피를 보라고 일러주고 겨울에 추울 때면 신발을 아궁이 위에 미리 올려놓아 데워주고 누가 짱아의 더벅머리를 빗겨주고 밤에 측간에 갈 때면 호롱 들고 따라와서 앞에서 기다려 줄 것인지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신랑이 도착하였다고 마당이 시끄러워졌습니다. 짱아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 누나를 뺐어가 는지 보려고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마당에 나가보니 살구나무집 단이가 구경을 왔습니다.
˝어. 넌 언제 왔냐?˝
짱아는 부리나케 부엌에 달려가 큰어머니한테 떡을 얻어 단이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떡 더 먹고 싶으면 말해. 우리집에 떡 무지 많아. 부침개도 많아.˝
˝짱아야. 니네 옥분이 언니 참 이쁘다.˝
˝히히. 떡 맛있지? 응?˝
단이가 떡을 먹는걸 보니 짱아는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단이가 매일 올 수 있게 누나가 매일 시집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신랑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는 것도 잊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단이의 새 댕기가 아주 예뻤습니다.
˝너 댕기 곱다.˝
˝우리 삼촌이 개성서 사다주셨다.˝
˝그래? 맨날 그거 해라. 되게 이쁘네.˝
˝시집가니까 좋네. 옥분이 언니 되게 이쁘네. 이쁜 옷도 입고.˝
˝내가 크면 너한테 이쁜 옷을 사 줄게. 내가.˝
˝피---진짜?˝
˝그럼. 내가 우리 누이 꺼보다 백배 더 이쁜 거 사줄거다.˝
그 말을 들은 단이가 얼굴이 빨개지더니 짱아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실은....난 나중에 너한테 시집갈거다.˝ ˝정말?˝ 짱아는 눈이 둥그래졌습니다. 입이 크게 벌어졌습니다.




혼인식이 끝나고 두 밤을 잔 누나와 매형은 드디어 개성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틀동안 짱아는 단아랑 들로 산으로 다니면서 노느라고 누나 얼굴도 잘 못 보았습니다. 막상 가마타고 누나가 떠난다고 하니 짱아는 놀라서 달려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멍하니 가마를 바라보았습니다. 가마는 생각보다 크지 않아서 그 안에 들어앉으면 누나가 아주 답답할 것 같았습니다. 형아는 눈이 빨갛게 되어서는 왼손 가운데 손가락을 오른손으로 비틀면서 아버지 뒤에 서 있었습니다.
새 신랑은 짱아에게 말했습니다.
˝꼬마 처남도 못 보고 가는 줄 알았네. 꼬마 처남. 같이 가지. 누나 없으면 못 산다면서?˝ 짱아는 매형에게 꼬마 소리를 듣자 기분이 나빴습니다. 짱아는 바지를 추켜 올리며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안 가요. 나한테도 시집올 색시가 있거든요.˝
짱아의 말에 다들 놀랐습니다.
˝옥분이 누나. 잘 가. 잘 살어. 조카 낳으면 내가 업어줄게.˝
˝짱아가 다 컸네.˝
큰어머니가 그렇게 말하자 어머니와 누나가 마주 보고 웃었습니다.
만수 아범이 누나가 만든 물건들이 든 고리짝을 지고 앞장섰습니다. 이불은 성현이 아재가지고 나섰습니다. 누나와 매형은 어른들에게 인사를 한 후 집을 나섰습니다.


˝잘 살거라. 잘 살어.˝
모두들 그렇게 말했습니다.
짱아는 누나가 마을 밖으로 가는 것을 오래오래 보았습니다.
형아는 누나가 집 밖으로 나서자마자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어머니는 오래오래 소리내지 않고 울었습니다.
아버지는 오래오래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하늘엔 낮달이 말갛게 떠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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