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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 햇살이 오르거든 - 홍기 지음 |  |  |  | 
 |  | 스님은 부스스 눈을 떴습니다. 창호지 문이 조금씩 밝아 오고 있습니다. 온몸이 뻐근하고 무겁습니다. 어제 먼 길을 다녀온 탓일 것입니다.
 며칠을 두고 벼르던 탁발(중이 마을로 다니며 동냥함)을 어제 다녀왔습니다. 쌀이 다 떨어졌기 때문이지요. 자신만 같으면 한 사나흘 굶어도 괜찮겠는데 아이를 생각하니 그냥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산을 내려갔습니다.
 이곳 암자로부터 가장 가까운 마을이 삼십 여리 됩니다.
 키 작은 관목 숲을 헤치고 길 없는 길을 따라 이십 여리 내려가야 네 집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 나오지요. 그 곳 사람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탁발을 하려면 큰 마을로 가야 하는데, 그러자면 다시 십 여리를 더 가야지요.
 그러니까 어제는 꼬박 팔십 여리를 걸은 셈입니다. 여기저기 쏘다닌 거리까지 다 합치면 그것보다 훨씬 더 먼 길이었지요. 더구나 돌아오는 길엔 무거운 짐을 한 짐 잔뜩 지고 왔으니 몸이 뻐근하고 무거운 것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방에서 나와 암자 옆 작은 언덕으로 갔습니다. 그 곳에 서면 건너편 계곡이 한눈에 보입니다. 허리를 쭈욱 펴고 아래를 내려다 보았습니다. 계곡은 보얗게 피어오르는 안개와 거무스레한 어둠속에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있습니다.
 고개를 돌리니 눈 가득 검은 나무들이 다가섭니다. 줄기와 잎과 가지가 하나의 그림자로 보입니다.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며 서 있는 사람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그렇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예불을 드리고 있습니다. 산도 나무도 개울도 그리고 송이버섯처럼 웅크리고 앉은 작은 암자도.
 보얗게 피어 오르는 안개는 그들이 사른 향불일 것입니다.
 가끔씩 ´뚜욱뚜욱´ 하는 나무들의 기지개 소리는 물론 서툴게 쳐대는 목탁 소리일 거구요.
 문득 새벽 예불을 드려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칩니다.
 바삐 언덕을 내려가다가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오늘 예불은 걸러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예끼! 이 게으른 녀석!˝
 부처님의 호령 소리가 귓가에 맴돕니다.
 어깨가 움찔 떨립니다.
 ˝헹! 나무라시라면 나무라시라지, 뭐!˝
 예불을 드리지 않기로 마음을 굳힙니다.
 언덕을 내려와 개울을 따라 걸었습니다.
 ˝온 세상에 두루 평화가 가득하게 하소서.˝
 개울물 소리가 기도 소리처럼 들립니다. 그렇습니다. 개울은 슬픔에 잠겨 있을 이 세상의 그 누군가를 위해 밤새워 기도하고 있습니다.
 잠을 실컷 자고 일어나 투정을 부리고 있는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서로 의지하며 사랑하게 하소서.˝
 입 속으로 조그맣게 중얼거려 봅니다.
 정말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탁발을 나가서 본, 나날이 찌들어 가는 세상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늘 가슴 한 켠에 슬픔으로 자리잡고 있던 터입니다.
 한참 더 내려가다가 발길을 돌려 암자로 돌아왔습니다.
 아이의 방문 앞에 섰습니다.
 앙징스런 고무신 두 짝이 조금 흐트러진 채로 댓돌 위에 놓여 있습니다. 허리를 굽혀 신을 가지런히 놓습니다.
 요즘 녀석의 영혼이 갓 내린 눈처럼 깨끗하다는 걸 문득문득 느끼곤 합니다. 그래서 깜짝깜짝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지요. 무어라고 설명할 길은 없지만 녀석에겐 분명 사람의 향기가 납니다.
 모든 사람의 본래 모습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모두들 힘겨운 세상살이를 겪으며 차츰 그 빛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생각할수록 아이가 대견합니다.
 녀석과 만난지도 벌써 강산이 한 번 변한다는 세월이 되었습니다.
 그 날도 탁발을 하고 있었습니다. 겨울 채비로 양식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지요. 누구에게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산 속 깊이 사는 사람에겐 겨울을 날 양식이 무척 중요합니다. 눈이 내리면 꼼짝할 수 없거든요.
 쓰레기장 옆을 지날 때입니다. 어디선가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다가가 보니 태어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은 듯한 갓난아기가 강보에 쌓인 채로 쓰레기더미 위에 버려져 울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누군가 어디에 잠시 다녀오려고 그 곳에 놓아 둔 거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찾아가기를 기다리며 멀찍이 떨어져 앉아 지켜보았지요.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는데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도 많았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해는 넘어가고 하늘에선 하얀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아기를 데려가기로 했습니다. 아기와 그 사이에 이어져 있는 질긴 인연의 끈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던 거지요.
 강보 안에서 작은 쪽지가 나왔습니다.
 -만약 이 아이를 발견하시는 분이 있다면 거두어 주십시오.-
 ˝발견하시는 분이 없다면 버리기라도 할 작정이었남?˝
 작은 소리로 투덜거리며 아이를 안고 밤길을 걸어 암자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벌써 십 년 세월 저쪽의 일입니다.
 스님은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 주지 않았습니다. 글씨도 가르치지 않고 기도하는 방법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말도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생각들이 스스로에게 말이며 글이 될 거라 여겼습니다.
 스님은 진심으로 아이의 영혼이 세상의 거친 말이나 글 또는, 사람에게 편리하게 짜 맞춘
 틀에 더렵혀지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풀과 나무가 흙의 품 속에서 생명의 싹을 튀우듯, 벌과 나비가 꽃의 향기를 맡고 힘을 얻듯, 그렇게 자라나기를 바랐습니다. 거름도 필요없고 김을 매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물론 꿀을 떠서 좋은 그릇에 담아 먹여 줄 필요도 없을 거구요.
 말하자면 있는 그대로 그냥 살아가게 하는 거지요. 그것이 아이를 위한 가장 좋은 길일 것입니다.
 ˝에헴.˝
 스님은 큰 기침을 하였습니다.
 그래도 안에서는 기척이 없습니다. 보통 때 같으면 문이 열리며 맑은 목소리의 인사말이 떼구르르 굴러 나올텐데요.
 스님은 아이를 깨우지 않기로 했습니다. 지난 저녁 자신을 기다리다 잠이 늦었지요. 예불도 거르기로 했으니까 실컷 자도록 내버려 둘 작정입니다.
 암자의 옆 모퉁이를 돌아갔습니다.
 널찍한 텃밭 가득 갖가지 채소가 어둠을 헤치고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고추 잎사귀를 훑어 삶아 말릴 생각입니다.
 참 고맙습니다. 모든 게 다 고맙지만 특히 밭이 고맙습니다.
 지난 봄부터 지금껏 참 많은 시간을 그 곳에서 보냈지요. 아이와 함께 호미를 들고 흙을 쪼개고 있으면 자신이 자연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어 참으로 기뻤습니다.
 ˝스님.˝
 일을 하다 때때로 아이는 허리를 펴고 스님을 부르며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가리켰습니다.
 하늘을 가리킬 때도 있었고 나무나 풀꽃을 가리킬 때도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아이가 가리킨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맑고 푸르렀으며 나무와 풀꽃은 투명한 모습으로 가슴 안에 한 발짝 다가서곤 하였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았을 때 자연스레 이는 마음 속의 감흥을 아이는 이런 식으로 표현했습니다.
 아이가 알고 있는 말은 아주 적습니다.
 아마 아이는 ´하늘´이나 ´풀꽃´이란 말을 모를 것입니다. 물론 ´아름답다´란 말도 모를 거구요. 스님이 아이에게 가르친 말은 둘의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단 몇 개의 말뿐입니다. 예를 들면 그것은 ´스님, 공양, 햇살, 그릇, 이 곳, 저 곳´ 따위 몇 개의 동사들입니다.
 하늘은 글자 ´하늘´이 아니고 있는 그대로의 하늘일 뿐이고 ´아름답다´는 가슴으로 느끼면 될 뿐이므로 또한 말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이 깊은 암자에는 찾아오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이가 이만큼 크도록 만난 사람이라고는 몇 해 전 약초 캐러 왔다가 길을 잃어 잠깐 들린 노인 둘 뿐입니다. 그런 사실도 말이 필요 없을 한 가지 이유가 될 듯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신 몫의 삶을 살고 있는데 아이의 몫은 들꽃처럼 살다가 바람처럼 가 버리는 그런 삶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기에 말이나 글 또는 세상의 온갖 지식은 아이에게 거추장스러울 뿐이지요.
 스님은 흙을 한 줌 집어 위에서 아래로 술술 흘려 보냈습니다.
 부드러운 흙의 감촉이 기분 좋게 느껴집니다.
 지금껏 밥상에 오른 호박, 오이, 가지, 시금치, 배추, 무, 파들은 이 흙이 거두어 키웠습니다.
 쌀을 제외한 먹거리는 모두 이 밭에서 얻었지요. 그것도 흙의 덕분입니다.
 잠시, 앞으로 할 일을 떠올려 봅니다.
 무말랭이와 시래기를 만들어야 하고, 고들빼기 김치도 담가야 합니다. 산초열매 장아찌도 준비해야 하고 고추와 깻잎도 삭혀야지요. 산나물은 지난 봄에 충분히 말려 두었으니 걱정없습니다. 쌀도 어제 꽤 많이 구해다 놓았으니 이제 두어 번 더 탁발을 다녀오면 될 것입니다.
 그 정도만 준비되면 겨울 동안 이 암자에서는 왕처럼 살 수 있지요. 그런 생각을 하니 이 곳 생활이 무척 편안하고 행복하게 느껴집니다.
 문득 어제 집을 나서기 전, 지난 여름 광에 치워 두었던 옹기 그릇을 꺼내 장독대에 옮겨 놓았던 사실이 생각납니다. 보얗게 쌓인 먼지를 털어 내고 깨끗이 씻어 졸로리 세워 놓고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았지요. 그리고 옆에 서 있는 아이에게 말했지요.
 ˝아침 햇살 오르거든 뒤집어 놓거라.˝
 물기를 빼기 위해 거꾸로 엎어 놓은 것을 바로 놓으라는 거지요.
 며칠 동안 햇살을 담아 두었다가 용기로 사용해야 무엇을 담든 맛이 익는 법입니다.
 스님은 천천히 걸어 장독대로 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릇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겉과 속이 뒤바뀌어 뒤집혀 있었습니다. 쭈글쭈글한 주름이 뒤집힐 때의 모습을 생생하게 떠오르게 해 줍니다.
 스님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채 서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옹기 그릇을 깨뜨리지 않고 속옷 뒤집듯 뒤집을 수 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문득 어느 노스님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마음에 털끝만한 의심도 없다면 무엇이든 다 이루어지리라.˝
 노스님은 의심을 버리기 위해서 부처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지요.
 아이는 ´뒤집다´는 말을 거꾸로 놓은 게 아니라 안과 밖을 바꾸어 놓는 것으로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아이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한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렇지.˝
 도무지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아 혼란스럽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얼른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스님은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암자 앞마당으로 나왔습니다.
 하늘을 보았습니다. 파란 하늘빛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고춧잎을 따서 말리기로 한 계획을 바꾸어 오늘도 다시 탁발을 나가기로 마음을 굳힙니다.
 서둘러 아침 공양을 준비합니다.
 아이가 식간으로 들어와 인사를 하고 나갑니다.
 밖에서 마당을 쓰는 비질 소리가 사르락사그락 들립니다.
 ˝마음에 털끝만한 의심도 없다면........˝
 의심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생각하면 지금껏 살아온 세월이 의심의 덩어리였지요.
 마음 속의 안개가 걷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아침 공양을 마치고 바랑을 챙겨 밖으로 나왔습니다.
 ˝따라 오너라.˝
 스님은 아이를 데리고 장독대 앞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손가락을 옹기 그릇들을 가리켰습니다.
 ˝아침 햇살 오르거든....˝
 스님은 침을 꿀꺽 삼키고 말을 이었습니다.
 ˝처음대로 뒤집어 놓거라.˝
 ˝예.˝
 아이는 두 손을 모으고 절을 했습니다.
 스님은 종종걸음으로 산을 내려갔습니다.
 장삼자락이 나비의 날개처럼 나풀거립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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