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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년 문화일보 당선 동화 (누렁이 자살하다-강정연) |  | |
| 누렁이가 죽었다.
모두들 사고라고 말하지만, 난 누렁이가 자살했다고 생각한다.
“선웅아 선웅아 집에 없어?”
동현이의 목소리였다. 난 그때 부엌에서 누렁이가 먹을 것을 급하게 찾던 중이라 동현이의 부름을 그저 건성으로 듣고 있었다.
“야 누렁이가 죽었어 누렁이가 죽었다고!”
나는 놀라서 그만 손에 든 반찬 그릇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러고는 엉망이 된 부엌바닥을 그대로 놓아둔 채 마루로 뛰어 나왔다.
“누렁이가 죽었다고?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조금 전까지 나랑 옥상에 같이 있었는데……. 너, 지금 장난치는 거지? 장난이면 너…….”
‘장난’이란 말이 입에서 계속 나왔지만 가슴은 나도 모르게 ‘쿵쿵’ 방망이질 치고 있었다. 나는 동현이를 밀치고 대문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런 나를 동현이가 재빠르게 뒤따랐다.
“너 신발이 그게 뭐야? 짝짝이로 신었잖아!”
나는 자꾸만 벗겨지는 슬리퍼를 집어들어 동현이 쪽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운동화 한 짝만을 신은 채 사진관 쪽으로 정신 없이 뛰었다.
사진관 앞 건널목에 다다르자 사람들이 서넛쯤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난 다리가 굳은 듯 그 자리에 섰다. 내가 갑자기 멈추는 바람에 동현이가 내 등에 부딪쳤다.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사진관 쪽으로 다가갔다. 마음 같아서는 단숨에 뛰어가고 싶었지만 왠지 불안해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사람들 다리 사이로 언뜻 누렁이가 보였다. 누렁이는 몸을 축 늘어뜨린 채 도로 위에 누워 있었다. 까만 물이 가득 고인 누렁이의 한쪽 눈을 보자 마치 내 심장이 발 밑으로 내려앉는 듯했다. 그리고 동시에 머릿속에서 웅웅대는 벌 소리가 났다.
“이 놈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옥상에서 까불다가 발을 헛디딘 게지. 어째 위험하다 싶더니만…….”
“거참, 별일이 다 생기네.”
사람들은 한 마디씩 던지며 그 자리를 떠났다.
“선웅아?”
“어?”
동현이가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면 난 아마도 그 자리에서 발끝에는 심장을, 머릿속엔 벌을 놓아둔 채 멍하니 서 있기만 했을 것이다.
“내가 이 앞을 지나는데 사람들이 모여 있더라고. 그래서 와 봤더니 누렁이가 저렇게 쓰러져 있잖아. 그래서 너한테 바로 달려간 거야.”
동현이는 말을 이었지만 내게는 동현이의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난 천천히 다가가 앉아 누렁이를 조심스럽게 가슴에 안았다. 겉으로는 다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누렁이의 심장은 멈추어 있었지만 몸은 여전히 따뜻했다.
누렁이와 지낸 지 반 년이 넘도록 이렇게 내 품에 안아 본 건 처음이었다. 누렁이는 언제나 은지 품에 안겨 있었다. 지난 봄 그날부터.
저녁때가 다 되어서였다. 사진관 집 딸인 은지가 우리집에 찾아왔다.
“선웅아. 잠깐만 나 좀 따라와 봐.”
은지는 비밀 얘기라도 하려는지 날 조용히 불러냈다.
“우리 금방 저녁 먹어. 엄마가 아무데도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은지의 간절한 눈빛에 나는 결국 은지를 따라 나섰다.
“어디 가는데?”
은지는 대답 대신 뛰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그냥 은지를 따라 뛰었다. 다시 물어봤자 대답하지 않을 걸 알기 때문이었다. 은지는 그런 아이였다. 어떤 때는 벙어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 없다. 이제는 그런 은지에게 익숙해져서 아무렇지도 않지만 처음에는 화가 날 정도로 답답한 적이 많았다.
은지는 공원에 다다르자 천천히 숨을 고르며 공원 안쪽으로 걸어갔다.
“누렁이가 많이 다쳤어.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할 것 같은데, 나 혼자 어쩌지 못하겠어서…….”
그제야 은지가 입을 열었다.
누렁이는 공원의 긴 의자 밑에 누워 있었다. 얼굴 한쪽이 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고, 깊은 숨을 힘겹게 몰아쉬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작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어휴, 누렁이 왜 이래?”
“몰라. 나도 우연히 발견한 거야. 빨리 누렁이 좀 들어 봐. 병원에 데리고 가게.”
누렁이를 들란 말에 난 흠칫 놀랐다. 피범벅이 된 누렁이를 드는 게 왠지 겁도 나고 싫었다. 은지는 이런 내 마음을 눈치 챘는지 먼저 누렁이의 머리 쪽을 안아 올렸다. 나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엉덩이 부분을 안았다. 누렁이는 생각보다 꽤 무거웠다. 우리는 가까운 동물병원으로 누렁이를 서둘러 옮겼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누렁이를 보자 인상을 잔뜩 찌푸리시며 진료침대에 뉘였다.
“어쩌다 이렇게 다친 거냐? 에그그그……, 눈을 다쳤구나. 피를 너무 많이 흘린 것 같은데, 우선 치료를 해 보자. 너희는 나가서 기다려라.”
우리는 진료실 밖으로 나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은지의 이마와 콧등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고, 분홍색 티셔츠는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은지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누렁이는 떠돌이 개다. 누가 처음 ‘누렁이’란 이름을 붙여줬는지 모르지만 동네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불렀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누렁이에게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은지는 달랐다. 가끔 누렁이가 은지네 사진관 간판사이로 기어 들어와 엎드려 있으면 꼬박꼬박 먹을 것을 챙겨다 주기도 하고, 동네 아이들이 누렁이를 괴롭히는 걸 보면 모른 척하지 않고 혼을 내주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누렁이 역시 다른 사람에게는 가지 않아도 은지 곁에는 곧잘 다가갔다. 은지는 사진관 앞에서 누렁이를 쓰다듬고 있다가 아빠한테 꾸중을 듣는 적도 많았다.
“다 끝났다.”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렁이가 눈을 많이 다쳤구나. 내가 보기에는 돌 같은 것에 아주 세게 맞은 것 같은데……. 안됐지만 앞으로는 한쪽 눈으로 살아가야 할 것 같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하마터면 위험할 뻔했는데. 너희 덕분에 누렁이가 살았다.”
의사선생님도 누렁이를 알고 계셨던 모양이었다. 은지와 나는 침대에 누워 있는 누렁이에게 다가갔다.
“누렁이 지금 데리고 가도 되나요? 그리고 치료비는…….”
“지금 데리고 가도 된다. 그런데 오늘 하루쯤은 옆에서 누군가가 돌봐 줘야 하는데…….”
“걱정 마세요. 제가 그렇게 할게요.”
은지는 작지만 힘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치료비는 외상으로 해 주마. 너희 마음이 예뻐서 이렇게 해 주는 거야. 나중에 어른 되면 꼭 갚아야 한다. 허허허. ”
우리는 의사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연거푸 하고는 누렁이를 안고 밖으로 나왔다.
“어디로 데리고 가게?”
“어, 우리 집 옥상.”
“아빠한테 들키면 어쩌려고. 너희 아빠, 누렁이 무지 싫어하시잖아.”
“아빠는 옥상에 잘 안 올라오셔. 그리고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잖아.”
우리는 서둘러 누렁이를 옥상으로 옮겼다.
은지네 집은 4층짜리 상가건물이다. 1층에는 은지네 아빠가 하시는 사진관이 있고, 2층에는 음식점, 3층에는 교회 그리고 4층이 은지네 살림집이다. 그러니까 옥상은 5층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은지네 집에 종종 놀러 다니곤 했지만 옥상에 올라가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옥상은 생각보다 넓었다. 빈 상자, 헌 가구들이 지저분하게 널려 있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옥상 문 위에 달린 백열등은 따뜻하게 느껴졌다. 내가 옥상을 구경하는 동안 은지는 누렁이의 잠자리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도 거들고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서 집으로 서둘러 돌아왔다.
다음날 은지는 잠을 못 잤는지 눈이 빨개져서 학교에 왔다. 나는 동현이와 장난치던 것을 멈추고 은지에게 물었다.
“누렁이는 어떻게 됐어?”
“잘 있어.”
은지는 살짝 웃는 얼굴로 이 한 마디만 하고 자리에 앉았다.
“누렁이라니? 그 떠돌이 개가 왜?”
“넌 몰라도 돼.”
동현이가 물었지만 왠지 말해 주기 싫었다. 그냥 어제의 일이 은지와 나만의 비밀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학교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가 은지와 함께 옥상으로 갔다. 은지는 많이 피곤해 보였지만 무척 들떠 있었다.
은지가 옥상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누렁이는 은지가 만들어 놓은 잠자리에 가만히 누워있었다. 힘들어 보이긴 했지만 어제보다는 한층 나은 듯했다. 잠자리는 옆으로 뉘어 있는 헌 장롱 속에 이불과 수건들로 꾸며져 있었다. 보기만 해도 포근하게 느껴졌다.
누렁이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는 한쪽 눈으로 은지를 바라보았다. 마치 은지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은지는 그런 누렁이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함께 눈을 맞추었다.
“나 누렁이 계속 키울 거다.”
은지는 빨갛게 충혈된 눈을 반짝이며 나를 향해 웃어 보였다.
누렁이는 3일이 지난 뒤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쪽 눈으로 생활하는 것에 익숙지 않아 보이더니, 얼마 지나서는 아주 익숙하게 움직였다. 은지는 누렁이와 눈을 맞추고 곧잘 얘기를 나누곤 했다. 누렁이는 은지가 말을 하는 동안 잠시도 은지의 눈에서 눈을 떼지 않았고, 가끔은 ‘끙’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대답까지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 일주일쯤 지났을 때였다. 학교가 끝나고 교문을 나서는데, 동현이가 잔뜩 부은 목소리로 투덜댔다.
“야. 이선웅 너 도대체 매일 어딜 그렇게 다니는 거냐? 집에 놀러가도 늘 없고…….”
그동안 내가 매일 옥상에 가 있느라 동현이와 놀 시간이 없긴 했다. 나는 괜스레 미안해져서 동현이에게 누렁이 얘길 해 주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자기도 같이 가자고 졸라대기 시작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동현이와 함께 옥상에 갔다. 옥상에는 은지가 먼저 와서 누렁이의 다친 눈에 연고를 발라주고 있었다. 갑작스런 동현이의 등장에 당황했는지 은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보았다.
“동현이가 하도 같이 가자고 해서…….”
내가 머리를 긁적대며 말하자 은지는 괜찮다는 듯 웃으며 누렁이에게 약을 발라주었다. 약을 다 바르고 난 누렁이는 고마운지 은지의 얼굴을 핥아 주었고 은지는 간지럽다며 까르르 웃었다. 난 은지가 그렇게 밝게 웃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동현이도 의외라는 표정을 내게 지어보였다.
그때, 계단 쪽에서 구두소리가 났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끼익’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옥상 문이 열렸다. 은지네 아빠였다.
“도대체 너희들 여기서 뭣들 하는 거야 어? 이건 또 뭐야 어라, 누렁이잖아? 이놈이 왜 여기 있는 거야!”
은지 아빠가 쉴 새 없이 다그치는 통에 우리 셋은 잠시 멍하니 있었다.
“아빠, 저기요…….”
은지는 울먹이며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동현이와 나는 슬금슬금 뒷걸음질치며 얼른 옥상에서 내려왔다. 은지만 남겨 두는 게 미안했지만 그때는 너무 겁이 나서 어쩔 수 없었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동현이는 도망치듯 집에 가 버렸다. 난 건물 앞에서 머뭇거리다 아무래도 은지가 맘에 걸려 용기를 내어 다시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 문 앞에 다다르자 가슴이 쿵쿵 뛰었다. 문 너머로 은지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다.
“아빠. 저 누렁이 정말 키우고 싶어요. 캐나다 가기 전까지만 키우게 해 주세요. 절대로 소란 피우지 않을게요. 네?”
잠시 뒤 문이 벌컥 열렸다. 은지네 아빠는 화가 잔뜩 실린 걸음으로 내려가 버리셨다.
“은지야.”
내 부름에, 누렁이를 안고 있던 은지가 놀란 듯 날 올려다보았다.
“나 이제 누렁이 마음 놓고 키워도 돼. 아빠가 아무 말씀도 안 하시면 그건 허락하신다는 거거든.”
은지는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활짝 웃어 보이며,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만들어 보였다 .
“너 캐나다에 가?”
내가 조금 큰 목소리로 묻자, 은지는 고개만 끄덕이고는 누렁이를 더욱 꼭 껴안았다. 나는 그냥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응, 여름방학 끝나면 엄마한테 가. 엄마 아빠가 그렇게 약속 하셨대. 나한테는 한번도 물어보지 않고…….”
은지네 부모님은 1년 전에 이혼을 하셨다. 그래서 은지네 엄마는 지금 캐나다에 계신다. 그러니까 올 가을부터 은지는 엄마와 함께 살기로 한 것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도 아파 왔다.
얼마 뒤 누렁이는 완전히 건강을 되찾았고, 우린 여느 때보다 신나게 지냈다. 은지는 대부분의 시간을 옥상에서 보냈다. 누렁이 옆에서 숙제도 하고, 만화책도 읽고, 게임도 하고, 더운 여름밤이면 옥상에 돗자리를 펴놓고 놀다가 잠이 들기도 했다. 누렁이는 은지의 발뒤꿈치만 따라다녔다. 나는 누렁이의 관심 밖이었고 누렁이한테는 은지밖에 없는 듯했다. 어쩌다 은지가 옥상에 늦게 올라오는 날엔, 누렁이는 죽은 듯이 웅크리고 있다가 내가 부르면 마지못해 미적미적 다가오곤 했다. 하지만 난 그런 누렁이가 하나도 섭섭하지 않았다.
봄부터 함께한 은지와 누렁이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친구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여름방학도 끝나 가고 있었다.
은지가 떠나는 날이었다. 은지, 누렁이, 나, 이렇게 셋은 마지막으로 옥상에 모였다. 늘 축제 분위기였던 옥상은 모래바람이 휭휭거리는 사막과 같았다. 우리는 서로 말이 없었다. 은지는 누렁이를 품에 안고 쓰다듬었다.
“은지야.”
“…….”
은지는 울고 있었다. 누렁이는 마치 위로하듯 은지 발등 위에 얼굴을 얹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은지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선웅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 늘 듣던 이름이지만 내 이름이 그렇게 슬프게 들린 적은 없었다.
“선웅아, 잘 있어. 그리고 나대신 누렁이 잘 보살펴 줘.”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모르고 있던 일도 아닌데 심장이 꽉 죄어 오는 것처럼 답답해지더니 옥상이 내려앉을 만큼의 한숨이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우리 둘은, 아니 우리 셋은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바닥만 내려다보았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은지는 누렁이를 내려놓고 쫓기는 사람처럼 바쁜 발소리를 내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은지의 발소리는 마치 내 심장이 뛰는 소리 같았다. 아니, 내 심장소리가 더 컸다.
그때, 난 누렁이의 신음 소리를 들었다. 누렁이의 한쪽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고, 바닥에 납작 붙어있는 배는 심하게 들썩거렸다.
은지가 떠난 다음날 나는 옥상에 올라갔다. 누렁이는 은지가 만들어 준 잠자리에서 꼼짝 않고 웅크리고 있었다. 밥그릇을 보니 어제 준 밥 그대로였다. 하루를 꼬박 굶은 듯했다. 다음날에도 옥상에 가 보았지만 누렁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웅크리고 있었고 밥도 그대로였다. 난 누렁이에게 억지로라도 무엇을 먹여볼 참으로 누렁이를 바깥으로 끌어냈다. 그런데 누렁이가 웅크리고 있던 자리에 은지의 머리 방울이며 작은 인형들이 소복이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누렁이가 아주 사납게 내 손을 할퀴며 무는 시늉을 했다. 나는 깜짝 놀라 자리에 주저앉았다. 누렁이는 제자리로 돌아가 은지의 물건들을 다시 가슴에 품고 가만히 웅크렸다. 난 누렁이를 어쩌지 못하고 약간 기분이 상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학교가 끝나고 옥상에 가 보았을 땐, 누렁이는 보이지 않았고 누렁이가 있던 자리는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은지네 아빠가 누렁이를 쫓아내고 그 자리를 치우신 게 분명했다. 나는 서둘러 내려와 동네 이곳저곳을 다녀보았지만 누렁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보름쯤 지났다. 난 누렁이를 차츰 잊어 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오늘, 누렁이가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는데 공원에서 누렁이가 불쑥 튀어 나왔다. 누렁이는 안쓰러울 정도로 말라 있었다. 누렁이는 마치 자기를 따라오라는 듯 앞서 걸어갔다. 누렁이가 멈추어선 곳은 사진관 건물 앞이었다. 다행히 은지네 아빠는 출장 중이셨는지 사진관의 닫힌 문에는 흰 종이가 붙어 있었다. 누렁이는 상가 계단을 타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닫혀있는 문 앞에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옥상문의 아랫부분은 심하게 긁혀 있었다. 아마도 누렁이가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아무도 몰래 이곳에 와서 문을 열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을 누렁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옥상 문을 열자 누렁이는 재빨리 뛰어 들어갔다. 그러고는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여기저기 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누렁이가 먹을 음식을 챙겨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삐 건물 아래로 내려왔다. 집으로 가면서 옥상을 한번 쳐다보았는데 누렁이가 보였다. 누렁이는 두 발을 난간에 기댄 채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마치 우는 것 같기도 하고 노래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누렁이가 그저 혼자 놀고 있는 것인 줄만 알았다.
“선웅아.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동현이가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누렁이는 그새 몸이 많이 식어 있었다. 나는 그런 누렁이를 더 힘껏 안아 주었다.
“동현아 너 나 좀 도와 줄래? 내가 누렁이 데리고 뒷산 쪽으로 먼저 가고 있을 테니까 너희 집에서 삽이랑 큰 상자하나만 구해 와라.”
나는 정신을 차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동현이에게 말했다.
“누렁이 묻어 주려고 그러는구나? 알았어. 그럼 먼저 가고 있어 내가 금방 쫓아갈게.”
난 누렁이를 두 손으로 안고 뒷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예전에는 은지랑 둘이 들어도 무거웠는데 지금은 혼자 들어도 누렁이가 별로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동현이가 어느 샌가 따라 붙었다. 급하게 뛰어온 모양이었다. 숨을 고르려 멈추어선 동현이에게 내가 물었다.
“동현아. 너도 누렁이가 사고로 죽었다고 생각하니?”
갑작스런 내 질문에 당황했는지 동현이는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당연하지. 옥상 난간에서 떨어진 거잖아. 그러면 사고지 뭐.”
그 말을 끝으로 우린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고, 어느새 뒷산에 도착했다. 나와 동현이는 햇볕 잘 드는 깨끗한 곳을 찾아 누렁이를 조심스럽게 묻어 주었다. 그리고 조용히 누렁이 묻은 곳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따끔거렸다. 눈도 따끔거렸다. 콧속도 따끔거렸다.
“누렁아, 잘 가라.”
이 한 마디를 뒤로하고 우리는 산에서 내려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에도 나와 동현이는 서로에게 아무런 말을 건네지 않았다.
누렁이가 죽었다.
모두들 사고라고 말하지만, 나는 누렁이가 자살했다고 생각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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