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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고래섬에는(김덕종)
산중턱 민주네 판잣집 위로 봄 나라의 꽃님들이 찾아왔습니다.

민주가 처음 교회에 나왔을 때, 키가 큰 훌쭉이 선생님이 예배당 입구에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키다리 선생님`이라고 친구들이 놀려도 `이 놈들`하고 웃기만 하셨지요.

“민주야! 오랜만이구나! 그 동안 잘 지냈니?”

선생님은 민주의 어깨를 감싸주면서 3층의 어린이 예배당으로 안내하였습니다. 재작년 크리스마스 때 교회에 처음 나와 한 달 전 까지 잘 다녔는데, 그 동안 결석한 민주는 왠지 쭈뼛 쭈뼛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예배당에 가득 찬 아이들은, 일주일 동안 쌓인 이야기보따리를 슬금슬금 풀어놓았습니다.

예배가 시작됨을 알리는 강대상 위의 종소리가 울리고 학생들을 대표하여 미영이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릴 수 있도록 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배울 성경 말씀 잘 깨닫게 하여 주시고 결석한 친구들과 몸이 아픈 친구들 하나님께서 지켜 주셔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이들은 `아멘`을 큰 소리로 `아아- 메엔-`하고 목청을 높였습니다.

기도가 끝났을 때 떠드는 아이들이 몇 명 있었지만, 빨간색 넥타이에 까만 뿔테안경을 쓴 젊은 전도사님이 강대상으로 나와, 예배당에 가득 찬 아이들을 향해 살며시 눈을 감자 모두들 조용해졌습니다.

“옛날에 부자 한 사람이 살고 있었어요! 이 사람은 돈만 아는 지독한 구두쇠였는데, 이 부잣집 앞에 어느 날 `나사로`라는 거지 한 사람이 찾아갔답니다. 이 나사로는 굶기를 밥먹듯 하다 보니 배가 몹시 고팠어요!

나사로는 부자가 배불리 먹고 버리는 음식 부스러기를 얻어먹고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이었...!”

설교 중간 중간에 전도사님은 새까만 뿔테안경을 치켜올리면서 학생들을 비잉 둘러보곤 했습니다.

민주는 숨을 죽이며 조용히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 때 문득 작년 겨울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부모님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리어카에 채소를 가득 싣고 시장바닥에서 이리저리 쫓기면서 장사를 해 오시던 부모님은,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집으로 돌아오다가 큰 화물트럭에 치여 세상을 떠났습니다.

민주에겐 태어나서 처음 겪는 가장 슬픈 일이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4학년인 민주와 1학년 민규는 뭐가 뭔지 통 몰랐습니다. 민규는 부모님이 세상을 떠났다는 말과 죽었다는 말을 잘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산동네 이웃들이 자기 일처럼 장례식을 치러 주었고, 학교와 교회의 선생님과 어린이들이 찾아와 성금을 전달해 주었습니다.

사람들의 출입이 별로 없었던 산동네엔 민주 부모님의 장례식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 북적댔습니다.

민주는 장례식 날 너무너무 슬펐지만, 왠지 눈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엄마, 아빠가 어디로 떠나는지 통 알 수가 없었고, 동네사람들이 단지 `좋은 곳`으로 찾아간다고 말했습니다.

장례식이 끝난 뒤에도 학교와 교회 선생님은 매일 번갈아 찾아 왔습니다. 쌀과 반찬거리를 사 가지고서... 그 때마다 엄마, 아빠의 얼굴이 떠올라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교회에서 산동네 집까지 단숨에 달려온 민주의 가슴은 자꾸만 `쿵더꿍 쿵더꿍` 소리 질을 합니다. 머리 속엔 온통 나사로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배고파 쓰러져 있는 모습과 천사들 품에 안긴 너무나 행복한 모습이...

방안에 걸린 가족사진에선 엄마 아빠가 환한 모습으로 웃고 계십니다. 작년 어린이날, 고래섬에 놀러가서 찍은 사진입니다. 민주네 산동네에서도 보이는 고래섬은 작은 섬입니다.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넘실대는 푸른 물결 위에 떠 있는 모습이 꼭 고래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입니다. 머리부분에 해당하는 섬에는 높은 철탑이 세워져 있어서, 고래가 바다를 헤엄치면서 하늘로 뿜어내는 허연 물줄기를 연상시키기도 하지요.

아빠는 금방이라도 민주의 손을 잡아줄 듯 민주를 부르는 것 같습니다.

`민주야! 어디 갔다 이제 오니?`

“아빠! 저 교회에 갔다 와요. 오늘 설교시간에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들었어요! 제가 이야기 해 드릴 까요...?”

아빠는 옆에 계신 엄마의 얼굴을 쳐다봤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슬프게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습니다.

민주 눈에도 어느 새 눈물이 가득 고였습니다.

“엄마 왜 그러셔요!”

엄마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금방이라도 달려와서 민주의 손을 꼬옥 잡고 안아 줄 것 같은 표정만 지을 뿐....

아빠도 웃음을 그치고 우울해져 있습니다. 아빠의 얼굴을 슬쩍 옆으로 쳐다본 엄마는, 눈물을 손으로 닦으면서 울음을 그칩니다. 아빠는 엄마의 어깨를 두 손으로 감싸주면서 아빠의 품속으로 엄마를 껴안습니다.


민주는 슬며시 눈을 감고 집밖으로 터벅터벅 걸어 나옵니다.

어제는 봄비가 가늘게 내리더니, 오늘은 해님이 환한 얼굴로 민주네 산동네로 찾아왔습니다. 따스한 햇살이 꽃샘추위를 저만치 밀어내면서.

민주는 집 뒷산 잔솔밭으로 올라갔습니다.

`휘이익` 한줄기의 바람이 민주 곁을 스쳐갑니다.
“어머! 저게 뭐야?”

민주는 황금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는 솔잎들을 쳐다보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킵니다.

“안녕! 소나무 친구들 어떻게 지냈니?”

민주의 오소소 추웠던 몸과 마음도 이제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나 봅니다.

푸드덕! 푸드덕!”

“아이쿠, 깜짝이야...!”

꿩 두 마리가 민주 바로 앞에서 눈부신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구구구! 구구구!”

“어머나...!”

비둘기 한 마리가 민주 어깨에 살포시 내려와 앉습니다. 잠시 후 고운 부리로 민주의 손등을 만져줍니다.

“쿠쿠쿡, 쿠우쿠욱.”

이 비둘기 친구는 멀리서 보면 잿빛이지만, 가까이 서 보면 여러 빛을 띠는 멋있는 옷을 입고 있지요.

민주가 한없이 슬퍼지는 날에 뒷동산 언덕에 오면, 꼭 찾아와서 위로해 주는 친구 중에 하나랍니다.

잘 다듬어진 무덤 가의 잔디밭에 앉아서 산동네와 시내를 내려다봅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이고 저 멀리 떠 있는 고래섬은 언제 보아도 그대로입니다.

내년부터 시내에서 고래 섬을 거쳐 옆 도시까지 2km가 넘는 커다란 다리를 만든다고 합니다.

민주는 어른이 되면 하늘과 땅을 잇는 거대한 다리를 만드는 기술자가 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어요!

다리를 건너서 반가운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마치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 위에서 만나는 것처럼

무엇보다 다리를 만들어서 부모님을 만나고 싶은 거예요!

아침햇살이 바다 위에 비치면 마치 하늘에서 금색 꽃가루가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아요. 그러면 바다는 한바탕 신나는 잔치를 벌이지요.

이 흥겨운 잔치를 숨죽이며 바라보는 민주의 호기심은 끝없이 이어집니다.

돌고래 떼가 어디론가 향하여 거친 파도와 싸우던 모습과, 엄마 고래가 아기 고래를 데리고 헤엄치던 커다란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고래를 생각하니까 왠지 눈물이 쏟아지려고 합니다.

재작년 여름 고래 섬의 동물원에 갔을 때, 땀을 뻘뻘 흘리며 낮잠 자던 어미 사자와 옆에서 말똥말똥한 눈으로 민주네 가족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아기 사자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무서워서 뒤로 돌아서곤 했는데, 그 때의 아기 사자는 얼마나 자랐을까 하고 궁금해집니다.

“까까깍, 까까깍.”

잔솔밭엔 어느 새 산 까치 떼들이 몰려와 무슨 놀이를 하는지 요란합니다.

어제 산동네 입구에서 비에 젖은 채 먹이를 찾아 헤매고 있던 비둘기 몇 마리, 먹이가 없는지 자꾸만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나중엔 도로까지 나와서 차에 치일 뻔한 것을 보고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던지..!

어쩌면 비가 쏟아지던 날 시장에서 장사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오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부모님 모습처럼 생각되어 슬퍼졌어요!

민주의 눈가로 그렁그렁한 눈물이 번져갑니다. 가득한 눈물로 인해 바닷가에 떠 있는 큰 배들이 자꾸만 흐릿해지고 겹쳐 보이기도 합니다.

옷소매로 눈물을 닦은 민주의 가슴속에 친구 두 명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매일 큰 도시락을 싸 와서 점심 때 같이 나눠 먹던 현지! 옷이 더럽다고 마구 놀리며 흉보던 반 친구들을 혼내주던 왕수!

저 만치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속에 안경 쓴 현지와 권투 연습하는 왕수의 모습이 어른거립니다.

`고마운 친구들...!`

`자아 이젠 일어나야지, 집에 가서 민규도 챙겨 주고 내일 숙제도 하고, 아참! 오늘은 엄마, 아빠한테 말씀드릴 게 있지...!`

뒷산 언덕에는 종달새, 뻐꾸기, 동박새, 까치 등 많은 새들로 구성된 `솔바람 합창단`이 있는데, 토끼와 노루, 다람쥐 등이 찾아와서 흥을 돋워 주고, 드문드문 무더기로 피는 진달래가 칭찬해 준다고, 온갖 들풀들이 귀를 쫑긋 세우며, 산동네의 고양이와 멍멍이까지 찾아와서 감상하는 등 이 합창단의 이름이 아주 유명하다고....

유일한 사람 방청객인 민주를, 모두들 아껴주고 사랑해 준다고...

며칠 후엔 동생을 데려가서 합창을 듣고, 그 다음엔 동네 친구들과 학교의 고마운 친구들을 데려가고, 또 그 다음엔 미운 친구들도...

`에이 안 돼! 그 친구들은...!`

“민주야! 그 친구들도 데려가야지...!”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조용히 들려옵니다.

산동네 입구에는 코끼리 흙차가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웅 웅웅! 부웅 붕붕!”

동네 꼬마들은 커다란 손으로 흙과 돌을 파서 옮기는 모습이 아주 신기한 듯, 그 옆을 떠날 줄 모릅니다.

시에서 좁은 골목길을 포장해 준다고, 동네사람 모두가 우쭐우쭐한 기분입니다.

코끼리 흙차의 큰 고함소리에 산동네는 온통 묻혀 버렸답니다.

날마다 밤늦게 장사를 마친 후, 경사지고 좁은 골목길을 아주 힘들게 리어카를 끌고 올라오시던 아빠와 엄마!

오늘은 잘 포장된 길 위로 웃으며 올라오면서, 민주와 민규를 부르시는 것 같습니다.

`핑그르르...!`

또 눈물이 민주의 볼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왜 슬픔은 눈물을 꼭 데리고 다닐까요?

`...!`

터벅터벅 집으로 내려오는 민주의 발걸음에 어둠이 묻어서 따라옵니다.

늘 초라하고 볼품 없는 판잣집 그대로이지만, 지붕꼭대기에선 “포릉, 포르릉!” 작은 새 한 마리가 민주를 반겨 줍니다.

성큼 벽에 걸린 사진 앞으로 다가서는 민주!

낡고 작은 사진틀 속의 웃으시는 부모님과 개구쟁이 남동생 민규가 행복한 모습으로 찍은 유일한 가족사진입니다. 사진 속의 얼굴들이 점점 커지면서 가족들의 얼굴이 뚜렷해집니다.

민주는 점점 사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엄마! 아빠!”

민주는 부모님의 얼굴을 올려다봅니다. 어느 새 엄마, 아빠의 얼굴은 웃음을 머금고 민주를 사랑스럽게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민주야! 철없는 민규를 데리고 얼마나 고생이 많니? 또 엄마, 아빠가 얼마나 보고 싶으니..?”

“민주야...!”

민주는 벽에 걸린 가족사진을 한참동안 뚫어져라 쳐다봅니다. 먼 나라에 여행 온 사람처럼 갑자기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해 보입니다.

민주는 입술을 깨물면서 작은 소리로 중얼거립니다.

“아아-아니! 이상하다!
엄마, 아빠가 나에게 말씀을 하셨어.
분명히 하셨단 말이야!”

`고래처럼 살아라`

민주는 다시 한 번 고래섬의 가족사진을 정신 없이 쳐다봅니다.

민주는 양손을 꽉 쥐면서 두 팔을 하늘높이 뻗어봅니다.

산동네 저 멀리서 기다란 기차가 힘차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바다 위에는 큰 배가 고동소리를 울리며 천천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 당선소감
초록 샘으로 가서 얼굴을 씻고 천천히 겨울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하늘의 별처럼 소중한 아이들에게 오래도록 마음속에 간직할 꿈 하나 씨앗 하나 심어주고 싶었다.

 정말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말해주고 싶었다.

 금빛햇살이 쏟아지는 당항만을 바라보며 역사와 생명을 얘기해 주어야지.

 흔들릴 때마다 곧추 세워주신 하나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믿음의 지체들, 학우들과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깨우쳐주신 문창과 교수님들과 산뜻한 모바일 캠퍼스로 배려해주신 학장님 고맙습니다.

 덜 영근 작품을 뽑아주신 경남신문사와 심사위원님 감사합니다.

 가슴 따뜻한 글밭을 일구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경남 고성군 동해면 양촌리 220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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