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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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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떡갈나무 목욕탕-선안나 |  | |
| 올 겨울에는 유난히 눈이 푸집니다.
벌써 닷새째입니다. 폭설이 쏟아졌다 잠시 멈칫했다 다시 진눈깨비가 몰아치곤 하는 것이.
치악산은 하얀 눈산이 되었습니다.
산밑 마을은 하얀 눈 마을이 되었습니다.
´떡갈나무 목욕탕´ 주인 노마씨는 난로 앞 낡은 소파에 앉아 아까부터 꾸먹꾸벅 졸고있습니다. 그때 감자기 벽에 걸린 쾌종 시계가 ´댕댕´ 울립니다. 놀란 노마씨가 벌떡 일어나며 외칩니다.
˝어서 오세요!˝
그러나 시계 소리라는 것을 알자 노마씨는 멋쩍은 표정으로 소파에 도로 앉습니다. 그리곤 다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더니, 조금 뒤에는 아예 쿨쿨 잠을 잡니다. ´드러렁 푸우-´ 코까지 골면서 말입니다.
손님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데도 노마씨는 까맣게 모릅니다.
˝어험.˝
˝.......˝
˝이봐요, 주인장!˝
놀란 노마 씨가 벌떡 일어나며 외칩니다.
˝어서 오세요!˝
손님이 쯧쯧 혀를 찹니다.
˝사람이 오는지 가는지도 모르고 잠만 자면 어쩝니까. 도둑이라도 들면 어쩌려고.˝
˝뭐 훔쳐갈 게 있어야지요.˝
노마 씨는 입가의 참을 닦으며 싱긋 웃습니다.
˝목욕할 동안 이걸 맡겨 놔도 될는지, 원.˝
손님은 못 미더운 표정으로 들고 있던 사냥총을 만지작거립니다.
˝걱정 마세요. 아이들 손에 닿지 않도록 한쪽에 잘 놔두지요.˝
˝그게 아니라, 절대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겁니다.물론 누가 만져서도 안 되고요.
이거 아주 비싼 총이거든요.˝
˝그렇군요.˝
노마 씨는 손님의 총을 조심스럽게 받아듭니다.
˝겨울마다 사냥을 다니는데, 오늘처럼 운 없는 날은 처음이지 뭐요. 다 잡은 너구리를 마을 근처에서 놓쳐 버렸다니까요. 세상에, 그렇게 사나운 너구리는 난생 처음 보았소. 총을 맞고도 끄떡없이 달아나지 뭐요.˝
사냥꾼 손님은 한바탕 무용담을 늘어 놓은 뒤 목욕탕 안으로 들어갑니다.
바닥에 벗어 놓은 손님의 신발이 눈 때문에 흠뻑 젖어 있습니다.
노마 씨는 손님의 신발을 난로 불에 쬐어 말리기 시작합니다. 신발에서는 곧 하얀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며, 가죽 냄새가 솔솔 풍겨납니다.
그때 바깥에서 무슨 소리가 들립니다. 울음 소리 같기도 하고 앓는 소리 같기도 합니다. 노마 씨는 문을 열어 봅니다.
그런데 마당에 웬 짐승이 쓰러져 있는 게 아닙니까!
노마 씨는 얼른 달려나갑니다.
아직 어린 너구리인데, 뒷다리에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기운 없는 눈으로 노마 씨를 쳐다보더니, 너구리는 그만 축 늘어져 버립니다.
노마 씨는 너구리를 안아 들고 목욕탕 안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현관에 사냥꾼 손님의 총과 신발이 있습니다. 멈칫하다가 노마 씨는 도로 밖으로 나옵니다.
노마씨는 목용탕 옆 쪽문을 열고 지하 보일러실로 갑니다. 보일러실 안은 훈훈합니다. 노마 씨는 입고 있던 잠바를 벗어 너구리를 눕힙니다.
˝뜻밖의 손님이지만.˝
노마 씨는 낡은 속옷을 부욱 찢어 너구리의 다리의 상처를 동여매 줍니다.
˝아무튼 떡갈나무 목욕탕에 자알 왔네.˝
노마 씨는 노구리의 몸을 정성껏 주물러 줍니다. 그래도 깨어나지 않자, 너구리를 가만히 품에 안아 줍니다. 얼마쯤 지나자 너구리가 꼬물꼬물 움직입니다.
˝이제 괜찮을 게다. 여기 가만히 있거라.˝
잠바로 너구리를 잘 감싸 준 뒤, 노마 씨는 밖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마당에 떨어진 너구리의 핏방울이 눈에 띕니다. 노마 씨는 얼른 빗자루를 가져와 마당을 쓸기 시작합니다.
핏방울이 대문 밖으로 이어집니다.
골목길을 따라 산비탈까지....... 부지런히 비질을 하는 노마 씨 머리 위로 때마침 흰눈이 포실포실 날리기 지작합니다.
노마 씨가 다시 목욕탕으로 돌아왔을 때, 사냥꾼 손님의 총과 신발은 그대로 놓여 있습니다.
˝고단해서 한숨 주무시는 게로군.˝
노마 씨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헐렁한 수웨터를 몸에 걸칩니다.
사냥꾼 손님의 신발은 여전히 젖어 있습니다. 노마 씨는 난로 불에 손님의 신발을 다시 말리기 시작합니다. 이윽고 신발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나며, 가죽 냄새가 솔솔 피어납니다.
노마 씨는 보일러실의 너구리를 떠올립니다.
´따뜻한 음식이 필요할 거야.´
노마 씨는 우유가 담긴 차 주전자를 난로 위에 올려 놓습니다. 그런 다음 손님의 신발을 이쪽저쪽으로 돌려가며 부지런히 말립니다.
난로 위의 우유가 점점 따뜻해지고 있습니다.
손님의 신발도 잘 마르고 있습니다.
마당에 흰눈이 포실포실 내려 쌓이는 초저녁입니다.
목욕.
오늘 떡갈나무 목욕탕의 마지막 목욕 손님은 꼬마 너구리입니다.
옴몸의 털이 먼지와 진흙과 피로 엉겨붙은, 무척이나 지저분한 손님입니다.
˝그래도 상처가 깊지 않아 다행이구나.˝
너구리한테 비누를 듬뿍 칠하며 노마 씨가 말합니다.
노마 씨가 털을 문지를 때마다 너구리는 점점 거품투성이가 도비니다. 그러다 거품이 코에 들어갔나 봅니다.
재채기를 하며 발버둥을 치던 너구리가 노마 씨 손을 쏙 빠져 달아나 버립니다,
˝그 꼬로 어디 가니. 어서 이리 온.˝
노마 씨가 따라갑니다.
꼬마 너구리는 도망칩니다.
텅 빈 목욕탕 안에서, 거품투성이 너구리오 팬티 차림의 노마 씨가 뱅글뱅글 맴을 돕니다.
˝이 녀석아. 거품을 씻어야지.˝
노마 씨는 욕조의 물을 떠서 너구리에게 끼얹습니다.
물벼락을 맞은 너구리는 부르르 물기를 떨어내며 계속 도망칩니다. 그 뒤를 쫓아가며 노마 씨는 계속 물세례를 줍니다. 술래잡기 끝에 비누거품이 웬만큼 씻겨졌습니다.
˝이제 네 마음대로 하려므나. 난 목욕이나 할 란다.˝
노마 씨는 물 속에 풍덩 들어갑니다.
그리곤 욕조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가만히 있습니다. 삼 분, 사 분, 오 분...
꼼짝도 하지 않는 노마씨가 아무래도 이상한 모양입니다. 너구리가 주춤주춤 다가옵니다. 노마 씨는 모른척 기다립니다. 마침내 너구리가 바짝 다가왔을 때 노마 씨는 재빨리 붙잡습니다.
˝속았지, 꼬맹아?˝
노마 씨는 노구리를 번쩍 들어 욕조에 담급니다.
˝어떠냐, 따뜻하지? 우리 떡갈나무 목욕탕이 오래되어 허름하긴 하지만, 물 하나는 정말 좋단다. 이 물에서 목욕을 하고 나면 쑤신고 아픈 게 말끔히 낫고, 피부도 매끈매끈 예뻐진단다. 그래서 말이지, 아는 사람들은 큰길가에 생긴´궁저 온천´에 가지 않고, 꼭 우리 떡갈나무 목욕탕으로 온단다.˝
처음에는 발버둥을 치더니 너구리는 가만히 있습니다.
따뜻한 물에 몸을 푹 담그고 있는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은 표정입니다.
온천을 하고, 깨끗이 샤워하고, 털까지 말끔히 빗겨 놓으니 너구리가 아주 귀엽습니다.
˝꼬맹아, 너도 가족이 있겠지? 상처가 아무는 대로 산에 보내 주마.˝
노마 씨는 너구리의 상처를 잘 소독하고 약을 발라줍니다.
그 날 밤 노마 씨는 난생 처음 너구리와 함께 잠을 잤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노마 씨가 눈을 떴을 때, 너구리는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예약.
며칠 뒤 노마 씨는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아, 거기 떡갈나무 목욕탕이죠?˝
전화 속 목소리는 참 묘합니다. 코맹맹이 같기도 하고 목이 쉰 것 같기도 합니다. 누가 장난을 치는 것도 같았지만 노마 씨는 친절히 대답합니다.
˝예, 그렇습니다.˝
˝거기 물이 그렇게 좋다는 게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땅 속에서 솟아나는 유황 온천이라 몸에 아주 좋답니다. 특히 신경통과 관절염에 효과가 있지요.˝
˝그리고....정말 예뻐지나요?˝
˝그럼요, 피부가 얼마나 촉촉하고 매끈해지는데요. 아는 사람은 다 알아요.˝
노마 씨의 목소리가 약간 높아집니다. 다른 건 몰라도, 떡갈나무 목욕탕의 물 하나만은 노마 씨의 자랑거리입니다.
˝그럼 예약을 하겠어요.˝
˝몇 분이십니까?˝
˝삼십에서 사십, 아니 그보다 훨씬 많을 겁니다.˝
˝그렇게 많이요?˝
노마 씨의 입이 저절로 벌어집니다.
떡갈나무 목욕탕에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손님이 찾아오긴 처음입니다.
˝그러면 언제 오시겠습니까?˝
˝오늘 밤.˝
˝오늘, 밤이요?˝
˝예, 그렇습니다. 오늘 밤입니다. 잊지 말고 잘 준비해 주세요.˝
˝잠깐만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그러나 전화는 벌써 끊겼습니다.
노마 씨는 시계를 봅니다. 벌써 다섯 시가 넘었습니다. 어쩌면 얼마 있지 않아 손님들이 들이닥칠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서 준비를 해야지. 서둘러야겠어.˝
노마 씨는 탈의실에 마른 수건을 한 아름 가져다 놓고, 비누와 칫솔, 치약도 넉넉히 준비합니다. 목욕탕 바닥을 말끔히 씻어낸 다음, 욕조마다 깨끗한 새 물을 가득가득 채웁니다. 탈의실 바닥도 다시 한 번 쓸고 닦고, 쓰레기통도 깨끗이 비웁니다.
˝휴우, 이만하면 되겠지?˝
노마 씨의 이마의 땀을 닦으며 시계를 봅니다. 여섯시 삼십 분입니다.
˝곧 오시겠지.˝
노마 씨는 바깥을 내다봅니다. 캄캄한 마당에 진눈깨비가 흩날리고 있습니다. 노마 씨는 손님들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현관 앞의 눈을 몇 번이고 쓸어냅니다.
일곱 시가 되었습니다. 손님들은 아직 오지 않고 있습니다.
일곱 시 삼십 분. 떡갈나무 목욕탕 문을 닫을 시간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그럴 수 없습니다. 손님이 예약을 했기 때문입니다.
˝무슨 사정이 생기셨나 보군.˝
노마씨는 계속 기다립니다.
여덟 시가 되어도 손님들은 오지 않습니다.
아홉 시가 되어도 손님들은 오지 않습니다.
´무슨 일인지 전화라도 해 주면 좋을 텐네....´
노마 씨는 시무룩해집니다.
어쩌면 장난 전화였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정말 무슨 사정이, 전화도 할 수 없는 그런 일이 벌어진 건지도 모르지.´
노마 씨는 어쨌든 저녁을 먹기도 합니다. 뜨거운 라면에 찬밥을 말아먹고 나니 한결 기운이 납니다. 따뜻한 보리차를 천천히 마시며 노마 씨는 생각합니다.,
´살다 보면, 때로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생기는 법이지. 그거야 어쩌겠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 걸.´
어느덧 열 시가 넘었습니다.
사방은 고요하고 이따금 개 짖는 소리만 들려옵니다. 피곤에 지친 노마 씨는 소파에 누운 채 곯아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지났을까, 노마 씨는 잠결에 이상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쏴아 물 쏟아지는 소리, 첨벙첨벙 물장구 소리,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소리, 뭐라뭐라 떠들어대는 소리.....
´이상하다. 누가 목욕탕 안에 있나?´
노마 씨는 천천히 눈을 뜹니다.
분면히 목욕탕 안에 누군가 있습니다., 그것도 한 둘이 아닌, 여럿입니다.
´누구지, 이 밤중에.....아하, 예약한 손님들이 오신 게로군! 그것도 모르고 잠만 자고 있었으니.˝
안으로 들어가려던 노마 씨가 멈칫합니다. 손님들의 신발로 가득 차 있어야 할 신발장이 텅비어 있기 때문입니다.
노마 씨는 고개를 갸웃대며 탈의실에 들어갑니다. 노마 씨가 청소해 놓은 그대로 하나 흐트러짐이 없는 모습입니다.
노마 씨는 문득 이상한 예감이 듭니다. 그래서 문틈으로 살그머니 목욕탕 안을 엿봅니다.
순간 노마 씨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떡갈나무 목욕탕 이십년에 별별 손님을 다 맞아 보았지만, 그런 이상한 손님은 처음입니다.
산토끼, 오소리, 여우, 다람쥐, 살쾡이, 노루, 곰......
크고 작은 온갖 동물들이, 신나게 목욕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으스대며 다니는꼬마 너구리의 뒷다리에 감긴 붕대를 본 순간, 노마 씨는 무슨 일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녀석, 산 마을 손님들을 많이도 데려왔군. 온천 목욕을 해 보니 꽤 좋았던 모양이지?´
노마 씨는 빙긋 웃으며 지켜봅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채 만족한 표정을 짓고 있는 곰, 서로 비누칠을 해 주는 여우와 살쾌이, 샤워를 하며 간지럼을 타는 노루, 물통을 배처럼 타고 다니는 다람쥐, 수영 시합을 하고 있는 오소리 형제.....다들 무척이나 즐거운 모습입니다.
손님들이 놀라지 않도록 노마 씨는 살그머니 뒷걸음질로 나옵니다. 그리고 목욕탕 귀퉁이 따뜻한 구석방에 편하게 눕습니다.
´예약한 손님들도 왔으니 이젠 푹 자야지.´
목욕탕의 희미한 물소리를 자장가 삼아, 노마 씨는 조금씩 깊은 잠에 빠져듭니다.
향기.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노마 씨는 맨 먼저 목욕탕에 가봅니다.
욕조에 물이 찰랑찰랑 고여 있습니다. 그런데 물빛이 깊은 산 계곡 물처럼 투명하게 푸릅니다. 손을 넣었다 꺼내자 풋풋한 나뭇잎 향기가 묻어납니다.
´어찌된 일일까?´
노마 씨가 찬찬히 살펴 보니 물 위에 푸른 잎 하나가 동동 떠 있습니다. 노마 씨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잎사귀입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현관으로 나오던 노마 씨의 눈이 다시 커집니다. 낡은 소파 위에 푸른 잎사귀가 소복히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어보니 모두 마흔 여섯 잎입니다. 아니, 욕탕에 있던 잎사귀까지 합하면 마흔 일곱입니다.
˝마흔 일곱.....마흔 일곱이라.˝
노마 씨의 얼굴에 빙긋 웃음이 떠오릅니다.
´정직한 손님들이군. 주인이 없어도 목욕료를 내고 갔으니.˝
노마 씨는 마흔 여섯 개의 푸른 잎사귀를 모아 요금 통에 잘 담아둡니다.
앞으로 떡갈나무 목욕탕을 찾는 손님은 나뭇잎 향기가 묻어나느 맑은 온천수를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노마 씨는 새 날의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현관문을 활짝엽니다.
˝어서 오세요. 떡갈나무 목욕탕에 잘 오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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