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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여비고 |  | |
| 숙종 8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고지도는 경북대학교가 발굴한 유일본이다. 함경도부터 제주도까지의 우리 나라 전국을 포괄하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는 행기도(行基圖)까지를 포함한 아주 세밀하고 체계적인 지도이며, 특히 앞 부분에는 삼한시대부터 삼국시대, 고려시대까지의 영토와 지역별 통치 단위를 구분하였다. 또 역사적 사건 기록은 물론 다르게 표기된 다양한 옛 지명, 각 지역의 특색, 사찰과 읍치, 성곽 및 군사 요충지 등의 표기가 대단히 상세하여 역사, 지리학, 지명학은 물론 국어국문학 등 한국학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최근 본교 영남문화연구원에서는 “동여비고의 종합적 연구”란 이름의 심포지움을 개최하였으며, 그 결과를 영남학 제2호(2002. 6.)에 체계적으로 실고 있을 정도로 이 책은 학문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東輿備攷(동여비고)라는 제목은 東國輿地勝覽(동국여지승람)에서 따온 듯 하다. 동국의 東(동)자와 여지승람의 輿(여)자를 취하고 ˝備攷˝라는 명칭은 동국여지승람을 이용하는데 참고가 되는 지도라는 뜻인 듯 하다. 동여비고의 구성과 체제를 살펴보면 32종의 지도를 한 책에 수록한 지도집으로 가로가 38cm -68cm 이고 세로는37cm - 42cm인 지도의 크기가 일정하지 않는 일종의 도별도이며 군현도이다. 앞부분은 역사지도이고 그 뒤에 도성도 등의 특수지역도가 있고 대부분 도별도와 군현도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편찬시기는 첫째 도성도의 내용중 경덕궁 이나 소덕문으로 표기되었고 1711년에 북한산에 축조되는 북한산성의 표시가 없는 점으로 미루어 그 이전에 제작되었으며, 둘째 강화도의 돈대가 49개인데 강화도의 돈대는 숙종4년(1678)에 쌓기 시작하여 숙종8년(1682년)에 49개의 돈대가 완성된다 그러므로 본 지도는 1682년 이후에 제작되었을 것이다.셋째 경상도 북부주현도에 영양현은 기록되어 있는데 순흥부는 표시가 없다. 영양현은 숙종7년(1681)에 설치되고 순흥부는 세조때 폐지 었다가 숙종8년(1682)에 다시 설치된다. 위의 세 가지 역사적 사실들을 종합하면 본지도는 숙종 8년(1682)에 제작된 듯 하다. 본도에는 도별총도 다음에 각 군현별 지도가 남부, 중부, 북부 등으로 나누어 각 군현별 중요한 내용을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이 한 특색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각 군현의 명칭을 적소 붉은 선으로 둘러 읍치(邑治)를 표시하였으며 강은 청색, 산맥은 녹색으로 그렸는데 조선시대 대부분의 고지도에 나타나는 도로 표시가 없는 점이 특이하다. 이는 본도가 다른 고지도보다 비교적 빠른 시기에 제작되었음을 의미한다.둘째 각 군현의 명칭을 적고 그 군현의 별칭을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모두 병기(倂記)하고 있다. 셋째 각 군현에서 서울까지의 거리를 숫자로 적었다. 예를 들면 삭령의 경우 京百九十五˝라고 표시하여 삭령군에 서울까지의 도리(道里)가 190리임을 나타내고 있다. 넷째 산을 표기하고 그 산이 읍치(邑治)로부터의 거리와 방향을 기록하였다. 적성현 치악산의 경우 ˝東二十˝이라고 적었는데 이는 읍치로부터 동쪽으로 20리 떨어진 곳에 감악산이 위치한다는 표시이다. 다섯째 강에는 나룻터인 도(渡), 탄(灘), 진(津) 등이 거의 표시되어 있다. 여섯째 크고 작은 사원(寺院)의 명칭이 정성스럽게 기록되어 있어 불교사 연구에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일곱째 역(驛), 원(院)의 위치와 명칭이 일일이 표시되어 있다. 동여비고의 구성과 체제는 다음과 같다.동여비고는 60여종의 지도를 한 책에 수록한 지도집이다. 가로33㎝-68㎝이고 세로는 37㎝-42㎝이므로 지도의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일종의 도별도이며 군현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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