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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형 |  | |
| 사람이 한 사람의 삶과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가? 언젠가부터 죽는다는 화두에 윤리적인 이슈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안락사도 그렇고 사형도 그렇고, 죽음을 대하는 행위자의 주체성/수동성 여부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인간에 의해 죽음이 선택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두 문제는 동일하지 않나 생각된다. 그리고 이들 문제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듯 하다. 특정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배경, 규범 등, 다양한 요소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의 용인/불허 여부가 결정되지 않나 생각된다. ‘사형’이라는 제목부터 웅장하게 느껴지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소름이 좌악 돋았다. 죽는다는 화두가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에게는 부디 피하고 싶은 주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금기시되는 주제를 읽어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짜릿했다. 하지만 그 짜릿함은 유쾌함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사형’이라는 제도가 이토록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는 사실부터 시작해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저항 그리고 죽음 이후의 모습들은 상상하면 할수록 나에게 끔찍하게 다가왔다. 이 책에서는 사형의 기원으로 고대인들의 애니미즘적 세계관이나 인신공양, 피의 복수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들은 신에 대한 공경이나 이미 일어난 사건들의 불길함을 다른 집단에 돌린다는 측면에서 그 사회에서 묵인된 행위였다. 또한 이는 타인의 부정가능성을 통제하는 측면 역시도 강하게 존재한다. 사회 전체적으로 공유되는 실정법이 존재치 않는 고대 사회에서 이러한 행위들은 일종의 준거틀로서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는 오늘날 사형제도의 존속을 주장하는 이들이 그들의 근거로 사용하는 일종의 ‘위협의 효과’와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죽임을 당하는 이들에게 죄가 존재치 않는 경우도 존재한다는 측면에서 오늘날의 사형제도와 조금은 다르게 이해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하지만 사람을 살해하거나 강간하는 등의 파렴치한 행위가 아님에도 사형당한 이들이 상당수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고대에 행해지던 합법적(?) 살인의 변형된 형태로 사형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가장 공포감을 느꼈던 부분은 다름 아닌 다양한 종류의 사형에 대해 열거한 부분이었다. 처음에는 어떠한 것이 가장 덜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지가 왜 중요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차피 죽는다는 측면에서는 그 결과가 같지 않은가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죽는가의 문제는 인간의 존엄성과도 연결된 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사형제도 자체가 폐지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인간 존엄성을 구현하는 길이겠지만 말이다. 하루고 이틀이고 죽을 때까지 그저 매달아놓고 서서히 죽어가는 과정 속에서 고통을 느껴야 했던 사형수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실로 끔찍했다. 특히나 사형의 집행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숨을 쉬고 살아있어 다시 교수대에 올라야 했던 몇몇 이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읽으면서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비록 그것이 국가권력에 의해 정당화되어진다 하여도 옳다고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이 확연해졌다. 물론, 정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악행을 서슴지 않고 행함으로써 사회 전반에 걸쳐 불안감을 조성하는 범죄들이 우리 사회에는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사형제도가 존재한다고 하여 그러한 범죄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유럽의 역사 속에서 전쟁 등으로 인해 인명경시 사상이 팽배하였을 때 사형 집행 수가 현격히 증가했다는 점 등이 사형제도가 범죄를 예방하는 근본적인 대책은 아님을 느끼게 해주었다.
by 영풍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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