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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기억하는한이길을가리라
˝MBC 기자가 어린 딸에게 보여 주고 싶어하는 책˝이라는 책표지의 글귀를 보고 내가 전에 읽었던 어떤 책처럼 가슴 따뜻한 이야기구나 라는 생각으로 책장을 넘겼다. 그러나 책을 읽어갈수록 내 예상과는 다른 전쟁이야기들로 책장 가득 꾸며져 있었다. 솔직히 내가 너무 무지한 탓일까? 이란―이라크 분쟁, 레바논 내전, 이라크 내분, 이란―아프가니스탄 분쟁, 이스라엘―시리아 분쟁, 팔레스타인 분쟁, 걸프전에 이르기까지…. 귀에 익지 않은 나라들의 생존 싸움들.... 걸프전이 일어날 당시 나는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세상모르는 어린아이였는데... 그것이 왜 일어났는지도 몰랐던 나였다.

책의 중반을 넘기고 나서야 차츰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전자 수첩의 입력한 연락처를 그들이 죽은 뒤에도 절대로 지우지 않는다는 대목을 읽고 나답지 않게 조금의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책의 저자인 카트린느 장틸은 그녀의 동료이자 친구인 이반과 페트릭의 죽음을 겪고 나서도 그들의 연락처를 지우지 않았다. 그녀는 종군기자로써 여러 분쟁 지역을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생사가 오가는 분쟁지역에서 ´봉봉´ 만을 외치면 돌아다니는 어린 여자아이에서부터, 그녀의 무릎을 붙잡고 죽어 가는 부상병, 억압되어 있는 샤틸라 난민촌의 여인들... 생전에 다시 보지 못할 사람들 조차 연락처가 아닌 그녀의 기억 속에서 지우지 않았던 것이다.

현대사회는 태어남과 동시에 전쟁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는 어머니의 다리 밑에서 주워지고 나서부터는 살기 위해 먹어야하고, 살기 위해 벌어야하고, 살기 위해 일해야하고, 누군가를 이겨 짓밟아야하고... 너무도 바쁘고 각박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스치는 사람은 물론이고, 용건이라면 용건이 끝난 과거의 사람들은 기억조차 하지 않는다.
지금 전 세계는 ˝NO WAR˝를 외치고 있다. 이라크인의 인권을 찾아 주겠노라고 외치며 전쟁을 하는 미국이 진정 이라크국민을 위한 일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생명. 그 전쟁 속에서 아스라이 스러져간 수많은 무고한 서민들의 생명 말이다.
전쟁 상태에 놓여 있는 중동 지역의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우리가 듣는 건, 각 나라간의 정치적 대립과 이해관계일 뿐 그 속에서 고통받고 희생당하는 서민들의 참다운 실상은 가려지고 만다.

특히 미국의 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유태인과 팔레스타인인과의 팔레스타인 분쟁에서 언제나 테러리스트로 비춰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죽음은 당연하게만 비춰져 왔다. 진실은 ‘미국적 시각’에 의해 왜곡되고 재편성되어 매스컴을 타고 전 세계에 전파돼 온 것이다. 책 속에서 보게 되는 전쟁 지역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가 여지껏 보아왔고 알아왔던 팔레스타인 사람들과는 사뭇 다르다. 왜 그들이 자살 폭탄테러를 감행하게 됐는지, 그들 역시 전쟁 상황에서 얼마나 고통받고 신음하고 있는지, 언제나 분쟁을 일삼는 이들로만 생각됐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실상을 그녀만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해관계나 편견에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바라본 팔레스타인의 진실인 셈이다.

그리고 그 진실을 바라보게 해준 것은 바로 기자라는 직업이었다. 생명을 내어놓아야만 하는 종군 기자. 전쟁 지역을 드나들며 수없이 생명을 잃을 위기에 처하고 동료들의 죽음을 지켜봐야만 했지만 그것은 다시 그녀를 전장으로 가게 했고, 그 속에서 전쟁의 참상과 진실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했던 것이다. 비록 “결국에는 역사의 방관자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욕구불만을 느끼게 되곤 하지만, 우리의 삶과 역학의 골자요 명분인 ‘산 증인의 역할’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정세 변동에 따라 수시로 분쟁지역을 넘나들어야 하고, 때로는 비밀리에 입 출국하고 하나의 인터뷰를 따기 위해, 단 5분의 생방송을 하기 위해 벌여야 하는 사투 등 책을 통해 엿보는 종군기자의 모습은 매우 생동감 있다. 또 ‘기자’라는 그럴듯한(?) 이름에 붙은 화려한 수식어는 모두 걷힌, 치열하고 때로는 고된 삶의 현장을 그려낸 것은 매우 진한 감동을 준다. 더불어 스스로 여성임을 잊지 않고 취재의 현장 속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문제들을 대처하는 그녀의 모습 또한 또 하나의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감동과 배울 것은 저자 카트린느 장틸이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훌륭한 종군기자로서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군대, 전쟁 이야기와 거리가 먼 여자인 나는 하품을 쌕쌕해가면서 읽었던 군사 잡지와는 다르게 흥미와 감동에 젖은 채 마지막 책장을 넘겼다. 나는 책을 덮고 나서야 왜 이 책이 어린 딸에게 보여주고 싶은 책인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을 읽고 가슴에 도는 따뜻한 여운을 딸아이에게도 맛보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우스운 이야기지만 어린 딸이 이 책을 이해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by 반디앤루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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