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글 나누기
joungul.co.kr 에서 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눈먼자들의도시
199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이라는 것을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이 소설은, 다른 소설이 결코 모방할 수 없는 독특한 느낌과 소장하고픈 욕심이 생기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내 인생에서 이런 소설을 만났다는 것이 아니, 좀더 일찍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10대 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했다. 내가 읽은 책들 중 단연 최고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고 나서야 나는 내가 눈을 뜨고도 아름다운 것들의 가치, 많은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이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마음의 장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을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나는 지금과는 조금 더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고, 살아오면서 내가 제대로 볼 수 없어 놓쳐버린 많은 것들을 놓치지 않고 모두 마음 속에 차곡 차곡 담아 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왜 이 책을 좀더 일찍 알아보지 못했는가에 대해 짧은 반성도 하게 되었다. 어느날 갑자기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 그들은 마음으로 서로를 확인하고 알아볼 뿐이지만, 마음과 마음이 만난다는 것. 눈이 보일 때보다 안 보일 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가치를 더 많이 깨닫고 서로를 포용하면서 끝까지 믿고 의지한다.

단 한사람, 마음으로 세상을 볼 줄 알았던 여자는, (의사의 아내) 앞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눈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눈이 멀어버린 남편의 곁을 지키기 위해 수용소에 자진해서 들어간다. 어느날, 세상 사람들 모두가 눈이 멀고 나 혼자 눈을 뜬 상태라면 나는 과연 의사의 아내처럼 할 수 있을까.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서 주인공이 어느날 자고 일어나 갑자기 괴물이 되어 버린 것처럼, 사람들이 눈이 멀게 되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지만, 나는 그것이 마음으로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라고 믿어버리는 오만한 인간에게 신이 내린 형벌은 아닐까 생각했다.

전염병처럼 번지는 실명은 오랜기간 지속되고, 정부에서는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을 격리시킨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나도 이들처럼 눈이 멀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었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의 공포가 나를 떨게 만들었다. 그런 상상은 하기 싫었지만,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이 상황이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었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자연히 나는 책을 읽으면서 눈이 멀었다. 그들이 두려움에 떨면 같이 두려워하고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밝게 웃으면 나도 그들처럼 기뻐 웃었다. 결국 그들은 시력을 회복하게 된다. 마음의 눈이 뜨이고 나서, 세상을 다시 보게 된 그들은 분명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이 소설은 그들의 시력이 회복되고 그들을 마음을 다해 도왔던 의사의 아내에게는 실명을 안겨다 주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의사의 아내는 우리는 처음부터 눈이 멀었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그녀는 내내 시력을 상실해 수용소에 격리된 사람들을 도우면서도 안보이는 것에 대한 공포에 떨었지만 그들이 모두 시력을 되찾고나자 비로소 자신의 눈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에 안도하게 되기도 한다.

그녀에겐 눈이 안보이게 된다 하더라도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그전과 그리 다르진 않을 것이다. 그녀는 이미 마음의 눈을 뜬, 마음으로 사람을, 세상을 볼 줄 아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오히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 혼자 실명하게 되는 결말에 갑자기 눈이 멀고 편안해진 그녀처럼 나 또한 안도했다. 어쩌면 그 순간을 그녀는 내내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다고 느끼는 순간 자신의 눈이 멀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투명하지만 확실한 느낌을 갖고 있었고 그 느낌은 옳았으므로. 우린 종종 보이는 것들의 가치만을 존중하기 쉽다. 보이지 않으므로 더 소중한 빛나는 것들의 가치를 나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껍데기만을 보고 살아왔던 내 지난 시간들이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으면서 내내 부끄러웠다.

그동안 내가 보고 있었던 것이 과연 무엇이었나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내가 눈이 멀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말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장님이라고... 그렇지만, 나는 그전과는 분명 달라졌다고 느낀다. 내 자신이... 장님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그 사실을 알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과 모르고 살아가는 것의 차이는 실로 크다고 생각한다. 그 차이를 알려준, 그리고 스무해가 넘도록 모르고 있었던 사실을 가르쳐준 눈먼 자들의 도시와 이 책의 저자 주제 사라마구에게 감사한다.

by 반디앤루이스
 
비즈폼
Copyright (c) 2000-2025 by bizforms.co.kr All rights reserved.
고객센터 1588-8443. 오전9:30~12:30, 오후13:30~17:30 전화상담예약 원격지원요청
전화전 클릭
클린사이트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