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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감찬 |  | |
| 강감찬 장군 - 독서독후감
강감찬장군...
나는 우리나라의 역대 장군중에서 강 감찬 장군을 제일 좋아합니다,
강 감찬 장군은 키가 작고 얼굴도 못생겼지만 . 위기에 놓인 나라를 구한명장입니다,
그래서 강 감찬 장군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뛰어난 무에 에다가 검소한 생활을 하였으며 학문 또한 깊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문무를 겸비한 장군이란느 말을 다시한번 되새겨봅니다.
평시에는 문관으로서 조정의 중신이 되어 나라일을 돌보고, 나라가 위태로울 때에는
무관이 돠어 나라를 구하는 장군, 중의 한 사람이 곧 강 감찬 장군입니다,
강 감찬 장군은 948년 (고려 정종 3년)에 경기도 시흥에 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키가 작았지만, 어릴 때부터 침착하고 또 의지가 강하였습니다,
983년에 문과에 장원 급제한 강 감찬은, 27년이 지난 뒤에 거란의 성종이 4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하 공진 을 보내어 설득시켜서 되돌려 보냈습니다
그때 많은 신하들이 항복을 주장하였지만 강 감찬 장군은 끝내 반대했습니다.
나는 장군이 이를 반대하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강 감찬은 착실하게 관직이 높아졌습니다.1018년 고려를 괴롭히던
거란은 소 배압으로 하여금 10만 군사를 거느라고 고려를 치게했습니다.
그때 강 감찬 장군은71살의 노인 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 감찬은 서북면 행영 도통사로 상원수가 되어 고려군을 이끌고 가서
거란군을 물리쳤습니다.
이 때 적의 남은 군사들이 악착같이 버티다가 후퇴하기 시작했습니다.
강 감찬은 귀주에서 후퇴하는 적을 섬멸하였습니다,
이 싸움이 바로 유명한 귀주 대첩이며, 우리 나라 3대첩 중의 하나입니다,
강 감찬은 또한 문장에도 뛰어나,{구선집}이란 책을 지었으나 지금은 전하지 않다고합니다.
나는 강 감찬이 귀주 대첩 때 거란군 총대장 소 배압 에게 한 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 침략군의 최후가 어떤 것인지를 알겠느냐?......고려국은 문화 민족이며, 왕과 백성은
어질고 착하지만, 외적 침입이 있을 때는 모두 한 마음 한뜻이 되어 침략군들을
무찌르는 억센 민족 정기가 있다.˝
이 얼마나 통쾌한 말입니까?
또 강 감찬 장군이 양주 목사로 있을 때에는, 백성들과 가축들을 성가시게 굴던 호랑이도
모조리 잡았다는 지혜로운 일화들이 모두 그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흥화진의 강을 막았다가 일시에 둑을 터뜨려 물러가던 거란군을
모조리 물고기 밥이 되게 한 장군의 지혜는 영원히 내 머릿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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