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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숙주 |  | |
| 「숙주」를 읽고
- 느려터진 죽음으로부터 자라나는 오기같은 생명
박상륭 선생님의 소설을 처음 읽으면서는, 참 구성지고 잡스럽다는 느낌이 우선 든다. 그리고, 무언가에 할퀸 듯한 ´아림´을 차마 확인할 수는 없어하며 책을 덮게 된다. 그리고, 꼭 필요한 시간이 흐른다.
필요했던 시간이 아무렇게나 흐르고, 다시 읽자고 책을 펼쳐들게 되면, 분명히 다시 읽고 있지만, 때마다 달라지는 것은 한 두 가지가 아니게 된다. 어느 틈에 생생한 이야기는 나의 머릿속을 비우고 나와선, 나의 눈 앞에 또렷이 놓이게 되고, 다시 책을 덮을 순간이면 나는 내가 숨쉬고 있는 곳이 그 곳이나 아닐까 싶어 얼결에 조심스러워진다.
「숙주」를 다시 읽기 위해, 먼저 「열명길」을 다시 읽었다.
「숙주」에서는 ´선왕(열명길)´에서 ´대제장(곱추 광대)´으로, ´시녀장´에서 ´대목수의 부인(시녀장의 딸)´으로, 그리고 여러 ´옛 몸´에서 ´새 몸´으로 독자의 시선이 옮겨지는 동안에, ´신 중심으로부터 인간 중심에로의 역사´가 그려지고 있는 듯이 보였다. 물론 이렇게 단정짓자면 작가가 (내가 배워 온)역사를 줄여 소설을 마련한 바가 되어버릴 일. 게다가 이는 진부하기까지 하므로... 확신해도 좋을 지 우선은 의심하고 싶었다. 하더라도 말하자면, 그러한 생각은 「숙주」를 뚫고 지나는 여러 이야기 가운데 ´하나´로서 인정하고 싶어졌다.
「숙주」에서 ´신의 죽음을 통한 인간의 부활´을 생각하게 된 것은 아래의 탓에서였다. 첫째, ´열무날´에 동물과 사람을 제물로 삼던 의식을 말도록 하고 대신 교양강좌의 날로 삼은 점, 둘째, ´화룡(신, 신성시 되는 대상)´으로부터 ´빨간 단추(= 눈 = 이성, 깨어있는 인간)´에로 작품의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었던 점.
... 첫째에 대해 덧붙이자면, 대제장 곱추의 주술같은 거짓말에 쓰러지고 악의식에 시달리는 꿈을 꾸던 검센 사내(새 왕)- 그 초췌하고 심심한 어린애같은 모습의, 화룡(불, 종교, 신)과 동일시 되던 왕을 섬기기에만 앎이 있는 그 -가 극도로 무지하고 황폐하게 그려진 점.
그리고, 둘째에 대해 덧붙이자면, 「열명길」의 축제에서 ´빨간 단추´를 떨어뜨리고 간 후, 아편으로 성벽 밖에 무너져 내린 백성들이, 눈들은 뜨고 있으되, 누구도 깨어있지도 않았고, 또한 졸고 있지도 않았다고 서술된 점.
(......「숙주」에서 내가 본 것은 무엇보다 작가의 꼼꼼한 상상력이었다. 주제가 낳는 사건들의 치밀한 요약과 암시에는 즐거워지기까지 했고, 인물들의 대화, 또는 독백을 통하여 드러나는 그들의 정서가 퍼뜩퍼뜩 ´살´이 되어버리는 통에 그들을 안타까워하고 사랑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
다시 ´화룡과 빨간 단추´에로 혹은 ´숙주´에로 돌아가자면, 「숙주」의 중심생각은 ´빨간 단추´ 혹은 ´화룡´과는 어쩌면 무관하게 ´숙주´ 또는 ´모성적 본질´을 향해 빨려들어가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이미 죽은 죽음이 토막내어지는 냄새, 그 번히 뜬 눈(종지기의 죽음과 관련한 『아겔다마』의「숙주」p.412 의 내용), 대제장의 뛰는 두 손목, 시녀장의 비어져나온 창자 등을 외면 못해 응시해버린 ´광대´를 들여다보고, 작품을 들여다보자면 알 수 있게 된다.
순간의 ´죽음´이 벌어지고, 순간의 ´생명´이 태어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느려터진 죽음, 즉 숙주로 삼아진 생명´으로부터 다른 ´생명´이 쑤욱쑥 오기처럼 자라나는 ´슬픈 현재´. ...... ´모성적 본질´을 숙주로 삼기는 ´몸´없는 역사조차도 마찬가지인 것이다.(p. 423에서 ´대목수의 부인´은 슬픈 교만을 지닌, 어떤 아름다운 말도 비웃어버릴 존재...로 서술되고 있다.)
(헌데, 아무래도 이대로 마무리를 하기에는... ´화룡´과 ´빨간 단추´에는 내재된 또 다른 ´기운´이 분명 있어 개운하기가 마냥 싫다. ^^;)
나로서는 이상스럽게도 그렇다. 칠조어론을 읽지 못해서인지... 내가 접한 작가(박상륭)의 모든 소설에서(만큼은)... 같은 문맥의 시구로 후렴구를 삼은 듯한 노래를 듣는다.
......
그 때 내가 본 것이 무지개라고 우기면서 내가 뿌듯해하면, 누군가 그것이 무지개가 아니었단 사실을 말하기 차마 미안해할지도 모르는데...... 난 너무 뿌듯해하며 글을 써놓고 말았다.
by http://www.ryun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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