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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아도 연구를 계속한 오일러
오일러는 ´계산법´을 고안해내는 수학자로 재능을 발휘하였다. 계산법의 예를 들어보자. 모든 자연수는 약수를 갖는다. 그러면 그 약수는 어떻게 찾을까? 또, 모든 자연수는 실수인 제곱근을 가진다. 그러면 그 제곱근은 어떻게 계산할 수 있을까? 이와 같이 어떤 문제에서 요구되는 실제적인 계산을 해내는 방법을 찾는데 오일러는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수학을 공부하다보면 어떤 정교하고 기묘한 기술을 써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종종 있고, 그 절묘한 기술은 우리를 감탄하게 한다. 오일러는 바로 그 기술을 찾아내는 능력을 천부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수학자였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기호도 일정하게 규칙을 갖고 사용하게 되었는데 함수를 f(x)라고 표기하는 것, 삼각형 ABC의 세 변읙 길이를 a, b, c라고 하는 것, 삼각형의 내접원의 반지름을 r, 외접원의 반지름을 R이라고 하는 것 등은 모두 오일러에 의하여 정하여진 것이다.

스위스에서 태어난 오일러는 러시아와 독일에서 대부분의 생애를 보냈다. 그가 러시아에 있을 때의 일이다. 여제 에카테리나의 궁정에 토대된 프랑스의 철학자 디드로는 무신론을 주장하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에 싫증이 난 에카테리나가 오일러에게 이 철학자의 입을 막아버리도록 명하자 오일러는 디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 엄숙하고 확신에 찬 태도로 그에게 말했다.

˝각하, (a+bn)/n=x 그러므로 신은 존재합니다. 대답 해주십시오.˝

디드로가 대답을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폭소가 터졌고 디드로는 프랑스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에게 불행이 닥친 것은 파리 학사원 상을 받으려고 시도하면서이다. 저명한 수학자들이 몇 개월의 시간을 달라고 할 정도로 어려운 문제를 그는 상을 받기 위하여 사흘 만에 풀었는데 너무나 오래 긴장한 상태로 집중한 결과 오른쪽 눈이 안보이게 된 것이다. 그는 생애의 마지막 17년은 완전한 장님으로 보냈다. 그러나 베에토벤이 귀가 먼 후에도 음악 활동을 계속 했던 것처럼 눈이 안 보이게 된 후에도 오일러는 복잡한 계산은 머리 속에서 암산으로 하여 논문은 구술하면서 그 이전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살았다고 한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시력이나 청력보다는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통찰력과 그것에 매진하는 성실성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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