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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말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 -라이프니쯔 |  | |
| 수학에서 함수는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함수´라는 말은 1694년 라이프니쯔(1646~1716)에 의하여 처음 수학에 도입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또 함수와 같이 연속적인 양에 대한 수학과 확률과 같이 흩어져있는 양에 대한 수학 모두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였는데 이렇게 두 방면에서 업적을 남긴 수학자는 드물다고 한다.
또, 라이프니쯔가 만든 계산기는 파스칼의 것보다 훨씬 뛰어난 것이다. 파스칼이 만든 계산기는 덧셈과 뺄셈만 할 수 있지만 그가 만든 것은 곱셈, 나눗셈도 하고, 제곱근도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발표한 수학의 대부분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바람막이도 없는 덜컹거리는 마차에서 쓴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그는 왜 그렇게 바쁘게 돌아다녔을까?
라이프니쯔는 여러 개의 생애를 살았다고도 할 수 있다. 수학 뿐만이 아니라 법률학, 정치, 역사, 문학, 논리학, 형이상학 등에서도 업적을 남겼는데, 그 각각의 분야에서 보통 사람이 평생 한 것보다 많은 성과를 남겼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는 보다 많은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하여 자신의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는 자기에게 높은 급료를 주고 있는 왕후의 사생아를 위해 죽을 때까지 헌신하였다. 또 뛰어난 법률 지식을 이용하여 왕후 귀족의 재산을 늘려 나가는 일 따위에 몰두하였다. 남들이 넘보기 힘들 정도로 수학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별로 가치없는 일에 그 재능을 낭비하고 말았다.
뉴턴은 상류계급에 들어가려고 노골적으로 노력하였다고 전해진다. 또 평민 출신인 가우스는 이미 사회적 지위를 확보한 사람들의 인정을 얻으려고 매우 노력하였다고 한다. 대수학자중에 오직 아르키메데스만 결코 현혹되지 않았다.
만약 라이프니쯔가 세속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고 수학에만 몰두하였다면 그는 지금 알려져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남겼을 것이다. 왕후 귀족을 쫒아 뛰어 다녔던 그의 생애를 보면 한 사람의 최고의 수학적 천재가 핏기도 전에 시들어버린 비극적 삶을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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