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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에서 학생으로 산다는 것 |  | |
| 대한민국에서 학생으로 산다는 것
성보여자정보산업고등학교
김 옥 희 (1-2)
언젠부턴가 난 대형 서점을 자주 돌아본다. 그리고 난 한달에 한번씩 두어 권의 책을 산다. 언젠가 난 큰 서점에 어간 적이 있었다. 이 책, 저 책, 뒤적이며 무슨 책을 살까 고민하던 중 순간적으로 내 눈에 들어온 문구가 하나 있었다. ˝때리는 것만이 폭력은 아니다˝ 그 책이 손에 잡혔다. 표지엔 네모 반듯한 우리들의 교실이 축소되어 들어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이 책값을 계산하고 나왔다. 그리고 한 장 한 장 천천히 읽어가기 시작했다. 지은이 정명훈... 그는 ˝대한민국에서 학생으로 산다는 것˝을 하나의 크나큰 형벌이라고 표현했다.
초등학교 입학 후 처음 맞는 여름방학의 첫날. 난(지은이)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미국이라는 낯선 땅으로 향했다. 하지만 조기교육이란 건 아니었다. 단지 아빠의 인생 활주로에 따라 가족 모두가 달려나가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나와 우리 가족들은 미국땅을 밟았다.
4년 후. 미국에서 4년을 보낸 난 대한민국의 학생으로 등록되어 한 초등학교의 4학년이 되었다. 미국에서 4학년 과정까지 거쳐 5학년이 되었어야 하지만 적응을 위해 한 학년 낮춰 학교에 다니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아무말 없이 지나갔다. 그리고 처음으로 난 ˝매˝라는 걸 맞았다. 한글을 잘 모르던 나는 대부분의 시험문제를 찍어야만 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훌륭한 사람이 되겠노라 맹세했던 나의 마음 속에 맞지 않고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일. 즉 죽지 않고 살아남는 일 만이 원초적인 본능으로 가득 차 버렸다.
온갖 수난과 고난을 겪으며 초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했다. 중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중학교는 기대와 새희망에 가득 찬 곳이었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 기대와 새희망은 절망과 고독으로 변해 갈 뿐이었다. 그렇게 이방인 아닌 이방인으로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을 보내야 했다.
내가 배정된 고등학교는 알아준다는 F고. 좋은 쪽이 아니라 나쁜 쪽으로 알아주니깐 문제이긴 하지만.
고등학교를 어느 정도 다니다가 자퇴해 버렸다. 절대 학교가 아니었다. 학생 수용소였다. 그렇게 자퇴해 버리고 검정고시에 응시했다. 당당하게 합격하고 난 뉴질랜드로 유학을 갔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학생으로 사는 것보단 나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하나로 공항에서 배웅하는 엄마의 눈물을 뒤로 한 채 그 때 미국으로 향했던 것처럼 뉴질랜드로 향했다.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러나 1년 후. 난 다시 한국으로 향했다. 그땐 몰랐다. 한국은 돌아온 ˝자식을 따뜻하게 보듬어 준다는 걸.
현재 지은이 정명훈군은 그렇게 증오하던 대한민국의 국군으로 복무중이다. 나는 절대 한국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한국.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나무 만큼 나를 따뜻하게 보듬어줄 나라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학생으로 산다는 것. 어찌 보면 크나큰 축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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