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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덴 동산 |  | |
| 삶 과 예 술 의 모 순
―헤밍웨이의 ˝에덴 동산˝을 읽고―
현 종 헌
작가는 사람을 예술의 지선(至善)으로 추구하지만 스스로 실천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천재다. 어쩌면 문학 자체가 인생의 묘한 모순이라는 이율 배반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운명처럼 깊은 고통 속에 뿌리내려야 할 작가의 혼이 평범한 생활 속에서 사랑에 젖어들겠다는 태도는 신의 계시를 뒷전으로 밀쳐둔 채 안유와 향락에 빠져들고자 하는 구도자의 정신자세와 별다를 바 없다. 그것은 타락이요 자기를 버리는 위험한 일이다. 작가는 오로지 원고지 메우는 일에 매달릴 때 정신과 유체가 동시에 살아남는다.
젊은 작가 데이빗 본의 삶과 문학에 대한 감동은 차라리 피치 못할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함이 옳으리라. 하여, 그는 자신이 작가의 길을 걷게 된 동기를 굳이 캐물으려 하지 않으며, 앞날에 대한 불안에 대비하려 하지 않는다. 현실이 가장 중요한 시기이며 지금 무엇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것인가, 하는 예술혼만이 불타오를 따름이다.
종전의 작품스타일을 완전히 탈피한 미국의 대문호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에덴동산˝(The Garden of Eden)은 한 마디로 어찌할 수 없는 예술가의 고독을 그리고 있다. 헤밍웨이 사후 25년이 지난 최근에 유작으로 선보인 본서를 통하여 거두어들인 가장 큰 공적이라면 바로 이 점이다. 즉, 문학의 속성인 문학을 말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빗으로 하여금 한 작가의 평범한 생활 속에서 예술의 본질을 극명히 드러내 보인다는 것이다.
탁월한 문학적 감각을 지닌 헤밍웨이는 초장 무대부터 환상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하여 예술론을 펼친다.
명암의 분위기가 한 데 어울려 신비로움으로 둘러싸인 운하 하구, 그로뒤르와 ― 갓 결혼한 데이빗은 21세의 아리따운 신부 캐더린과 함께 이곳으로 여행 와 신혼의 꿈을 즐긴다.
방파제가 길게 뻗은 해안가에서 낚시하고 수영하다 지치면 백사장에 올라 와 나뒹굴며 사랑행위를 한다. 다시 사지를 편안히 뻗어 눈을 붙이고, 깨어나면 마시고 또 쾌락을 향유한다. 마치 먹고 마시고 즐기는 가운데 조화로운 하루를 보내자던 로마인들의 향락주의에 편승하겠다는 듯이 그들의 신혼 초 생활은 낭만의 절정을 이룬다. 영원히 헤어지지 말자고 굳은 맹세까지 나누며 지칠 줄 모르게 젊음을 불사른다.
그러나 데이빗은 선천적으로 불행한 사람이었다. 이미 책을 두 권까지 펴 낸 기성작가였다. 반면에 캐더린은 평범한 여자다. 착한 신부가 되고 싶고, 남자에게 의지하고 싶고, 어느 여자들처럼 남자로부터 완전한 사랑을 받고 싶어한다. 그리고 자기와 결혼한 남자로 하여금 미래를 확실하게 보장받고자 한다.
이렇듯 평범한 여자와 비범한 남자가 만드는 사건은 극적일 수밖에 없는 그 만큼 당사자들은 긴장된 세계에서 살아야 한다. 늘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이는 모순의 벽을 무너뜨리고자 노력하면서 상대방을 사랑하고 때로는 견제한다. 숨막히는 생활의 연속이 아닐 수 없다.
두 사람의 팽팽한 대결은 처음부터 시작된다. 데이빗의 작품평이 실린 신문기사를 놓고 실랑이를 벌인다. 데이빗은 자신이 혼신의 힘을 기울여 썼던 분신에 대한 평가이니만치 신경을 곤두세워 아끼지만, 캐더린은 아예 관심 밖이다. 오히려 그런 데이빗을 향하여 가증스런 눈빛을 보낸다.
비범한 남자와 만나기 위하여 평범한 여자 또한 평범치 못한 남자와의 일면의 공통분모를 지니게 마련인가 보다. 검정색 속에서 노란색이 돋보이듯이 데이빗이 작품쓰기에 빠져들면 들수록 캐더린의 개성은 한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어쩌면 그녀의 개성이 데이빗보다 강할는지 모른다.
캐더린은 본시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나서 가진 돈이 많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빈곤하다. 그녀는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데이빗에게 열등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애쓴다. 최신 패션감각을 지니고 소비에 몰두하는 것만이 구원의 길이다.
한사람은 정신으로, 다른 한 사람은 물질적으로 풍요를 누리지만 근본적으로 질이 틀리다. 또한 그 기쁨들은 어느 한 가지든 두 사람이 공유할 수 없으며 서로가 상대방의 기쁨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쓸 때 괴로워하고 아파하지만 일단 작품을 마무리짓고 나면 새로운 탄생에 대한 환희를 맛보는 게 작가만의 숭고한 낙이다. 그리고 그 작업은 수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시간이란 한계가 있다. 하나의 구상은 오래도록 머리 속에 머무르지 않는다. 착상이 떠오르면 집필에 들어가야 하며 그 시간만큼은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값진 진통의 순간 순간이다.
데이빗은 이런 과정을 익히 알고 있으며 하나의 스토리를 끝맺음하기 위하여 몸부림친다. 이 때 캐더린이 가만 있을 리 없다. 그녀의 영혼이 텅 비어있으니만치 자기를 보살펴주지 못하는 비현실적인 그가 야속하게 느껴진다.
소비로 눈을 돌린다. 데이빗이 집필할 동안 그녀는 저자에 나가 외양 치장에 바쁘다.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장신구를 산다.
한편, 데이빗은 아프리카를 무대로 소설을 쓰고 있다. 사냥에 대한 상세한 지식은 헤밍웨이가 평소 즐기던 수렵생활에서 얻은 소재라고 본다. 1954년 풀리쳐 상과 노벨문학상을 동시에 안겨다 준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에서도 바다와 낚시, 그리고 식인상어와 싸우는 일종의 사냥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그가 1961년 아이다호 주에서 쌍연발 엽총으로 자살할 때까지 퍽 사냥을 좋아했으며 본서의 코끼리 사냥에서 그 과정이 치밀하게 묘사된다.
죄 없는 코끼리를 살상하는 아버지를 데이빗은 미워하지 않는다. 데이빗은 아버지의 과거 평판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오히려 그를 포근한 감정으로 감싼다.
데이빗은 이 작품을 쓰는 데 온 정열을 쏟아 넣는다. 그러다가 불현듯 좋은 소재거리가 떠오르면 중단하고 단편을 집필한다. 영감을 놓치지 않으려는 그의 집념은 빛나는 작품을 창조해 내려는 치열한 작가정신의 발로이다.
이러한 고통과 기쁨을 보며 캐더린은 질투를 느낀다. 시내 쇼핑에서 얻은 자신의 다양한 변화를 데이빗에서 뽐내려 하지만 그는 심각히 거들떠보려 하지 않는다. 만약 그들이 공유할 수 있는 한 가지 쾌락이 있다면 그것은 섹스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작품 전편에 흐르는 에로티시즘의 분위기는 지중해의 뜨거운 열기와 함께 독자들을 잠시도 긴장에서 떼어놓지 못하게 만든다. 포르노 필름을 능가하리만치 자극적인 장면의 빈번한 등장은 에로티시즘의 예술성에 관한 백지 한 장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캐더린은 지나칠 정도로 섹스를 즐긴다. 다양한 체위를 요구하고 할 때마다 신선한 자극을 느끼고자 한다. 느낌이 고르지 못할 때는 서슴찮고 스스로 남자가 되어 본다.
이런 변태적인 사랑 행위는 마리따라는 새로운 여자를 끌어들임으로써 고조화된다. 어느 날 레스토랑에서 만난 젊고 예쁜 마리따를 캐더린은 데이빗 옆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그로 하여금 마리따를 사랑하도록 강요한다.
데이빗은 주로 오전이 원고 집필 시간이다. 이때만큼은 그의 강한 의지를 꺾을 수 없었던지 캐터린은 조용히 자리를 비켜 주어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하지만 마리따의 등장으로 하여 이제 그녀는 외롭게 놀아야 하는 잉여의 시간을 죽일 수가 있다. 데이빗이 작품에 골몰하는 동안 그녀는 마리따에게 빠진다. 데이빗이 진정 자기를 사랑해 주는 마음이 있다면, 자기를 위하여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주도록 희생한 마리따를 또한 사랑해 주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리고 실천에 옮긴다. ˝에덴 동산˝이라는 본서 제목에 걸맞게 그들은 이 아름다운 동산 위에서 각자 나름대로 희열로 충만된 완벽한 인생을 구가하고 있다.
그것은 곧 헤밍웨이 자신의 이야기이다. 1899년 일리노이주의 오크파크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자극적이고 열정적인 스포츠를 좋아했다. 고등하고 졸업 후 신문기자 및 앰블런스 운전병으로 세계제1차대전 종군, 스페인 내란 참전, 등의 이력만 보더라도 소위 행동주의 작가로서 삶 자체가 바로 문학으로 직결되어 나타난다. 본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해들리와 폴린과의 두 번에 걸친 결혼 생활의 추억을 더듬고 있다. 그는 <인생=소설>이라 생각하며, 이런 등식이 성립되는 한 자신은 에덴동산에 머물러 있다고 상징적으로 묘사한다. 만년에 보여준 그의 의문의 자살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비운의 아이러니로 해석하여 마땅하리라.
이윽고 데이빗도 마리따와 가까워지게 된다. 그들은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두 사람씩을 사랑하는 묘한 삼각관계에 빠진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다가올 무렵 그들은 지나가는 청춘을 아쉬워 하며 해안가에서 온갖 유희에 도취된다.
얼마 후, 더 이상 신선한 기쁨을 창조해내지 못하는 캐더린은 스tm로 그들 곁을 떠난다.
캐더린이 없으므로 해서 나머지 두 사람 사이는 급진전된다. 캐더린이 거들떠 보지 않던 데이빗의 작품에 대해 마리따는 상당한 호기심을 갖고 읽는다. 그녀는 데이빗 곁에서 조언자가 되어 위대한 작품이 새롭게 탄생하기를 기원한다.
스페인에서 되돌아온 캐더린은 데이빗을 질투하다 지친 나머지 그의 서평 기사와 원고들을 남김없이 불살라 버린다. 그의 영혼의 한 귀퉁이가 가을바람과 함께 잘려져 나간다. 없음은 있음에 대한 반역이나, 없음은 있음과 있음을 공유하여 성장하다가 있음이 사라지면 없음은 없음 자체로 당당히 존재한다. 즉 작가의 작품도 없음으로 시작하여 잆음과 있음이 충돌하면서(집필) 있음을 완성하고(작품) 그것이 세상에 탄생되면(출판) 다시 작가는 원점으로 돌아간다.
없음과 있음이 충동하는 시간에는 데이빗이 에덴동산에 있지만 있음이 사라지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야 한다. 자기 작품이 잿더미로 화해버렸지만 그는 없음 위에 존재하기를 거부하고, 잘려져 나간 영혼의 한모퉁이를 보상받으려 안달하지 않는다.
마리따의 부추김에 힘입어 다시 원고지를 힘있게 쥐어 든다. 기억을 되살리자, 오히려 전보다 더 생생하고 박진감 넘치게 스토리가 재생돼 나온다. 전에 썼던 문장들도 완전히 되살아났으며 아버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도 깨닫고, 좀 더 고차원적으로 집필해 나간다.
기립박수 보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새로운 창조를 위하여 끝까지 집념을 버리지 않는 데이빗 본의 구도자적 문학 정신을 보며 한편으로 나는 허망함을 금치 못한다. 예술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생을 버려야 하는 그의 숙명적인 비극은 곧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해야 할 일들을 눈 앞에 산적해 두고 이 치밀하게 계획적인 현대를 살아간다. 그러나 짧은 시간에 목적한 바를 이룰 수는 없다. 어느 것 하나 떨쳐버리려야 하는데, 쉬 떨쳐버리기는 아깝다. 그것이 만약 사랑일 때, 순식간에 지나쳐버리는 청춘은 마냥 안타깝기 짝이 없으리라.
작품과 사랑을 놓고 볼 때 부등호는 당연히 작품 쪽으로 입을 벌려야 하는 것이 참된 작가의 생리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랑이야말로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지라고 찬양한다.
작가는 끝까지 자기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천재다. ´인간다운 인간´이라는 찬란한 수식어를 매달고 없음의 세계를 향하여 쓸쓸히 걸아가다가 미완성인 채로 끝맺음하는 불가사의한 존재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캐더린도 마리따도 작중 인물 어느 누구도 나무랄 필요가 없다. 다만 천형을 지고 태어난 데이빗의 바람 같은 운명이었을 따름이다.
˝에덴동산˝은 헤밍웨이가 종전에 보여준 작품 세계와 궤도를 달리한다.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의 대변자로서 ˝무기여 잘 있거라˝ (Farewell to Arms, 1929)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 1940)처럼 폭력과 죽음에 대한 테마가 없을뿐더러 출세작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 1926)에서 전쟁의 상흔으로 성적 불구자가 된 제이크 번즈의 니힐리즘 색채도 곁들여 있지 않다.
단지 헤밍웨이가 젊은 시절 작가로서 겪어야 했던 생활 속의 갈등을 데이빗 본이라는 가공된 작가의 이름을 빌어 썼을 뿐이다. 요는, 단순하면서도 최근 미국에서 센세이셔널한 돌풍을 일으키며 문제작으로 떠오르는 이유 중의 하나라 볼 수 있다.
간결하면서도 비정한 하드 보일드(Hard―Boiled)라는 문체적 특색이 없었던들 타인의 작품이라 의심할 만큼 독특하다. 아름다운 배경 묘사와 캐더린의 성격 묘사가 한층 돋보이는 헤밍웨이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작품이다.
˝순교자˝의 작가 김은국의 명료한 번역과 함께 이 땅의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벽을 함께 가져다 준 ˝에덴동산˝에서 우리 모두 한번쯤 음미해 보아야겠다.
(1986. 10. 8 시사영어사 주최 독후감 대회 입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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