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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랫말 아이들 |  | |
| 성보여자정보산업고등학교
1학년 11반 5번
김세레나
멀리 비행장에서 시동을 거는 프로펠러 소리로 모랫말의 겨울 아침은 시작된다. 제일 먼저 성에가 두텁게 낀 유리창이 마주 보였다. 여름에 누나들이 창살에 실을 매주어 타고 오르던 나팔꽃은 시들어 말라버려 바람에 불려서 날아가고, 창문마다 예리한 얼음의 꽃이 매달렸다. 이제부터 서서히 모랫말 아이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겨울날의 모랫말 동네를 떠올리면 비행기가 엔진을 데우느라고 시동을 거는 소리, 두터운 성에의 그림, 만두파는 소년, 배추 꼬리, 양지 쪽에서 머리의 서캐를 잡는 모녀들, 코크스 줍는 아이들의 기억으로 이어진다.
이 이야기는 마른 풀에 질러놓던 쥐불놀이로 겨울 풍경이 안전해진다. 둑 밑 갈대밭에는 춘근이네 움막이 있었다. 춘근이는 먼 데서 혼자 흘러들어온 거지였는데 어른들은 그를 땅꾼이라거나 혹은 각설이라고 불렀고 흔히 땅그지 춘근이로 통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에게 꼼배라는 별명을 붙였다. 이유는 오른쪽 팔목이 호미처럼 구부러졌기 때문이었다. 춘근이는 아이들이 놀려대면 그는 늘 갖고 다니는 갈고리 달린 지팡이를 휘두르며 쫓아오는 시늉을 했다. 아이들은 문둥이를 만난 듯 흩어져 달아나고 춘근이는 커다란 입을 주욱 찢으며 힘, 웃고는 돌아섰다. 춘근이는 그러다가도 넘어지는 아이가 있으면 일으켜 세워서 옷을 털어주기도 한다. 그러다가 춘근이는 꼼배라는 별명아니 이름처럼 불렸고 마누라는 거늘며 감변 밑에 움막을 짖고 살았다. 꼼배는 항상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끼니 때마다 그 집앞에서 찬밥을 얻어 갔다. 얼마 안 되어서 춘배는 만삭이된 마누라를 위해 예전 보다 아이들의 이름이 많이 불러야 했고, 동네 사람들의 미움을 사기도 하였다.
그런 어느날 날씨가 풀린 어느 포근한 오후에 방섬서 통학하는 아이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한 시내를 건너다가 그만 얼음이 깨져서 빠진 것이다. 아이들은 얼음 구멍에서 허우적거리는 친구를 끄집어 낼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 있는 이아가 꼼배네 움막으로 달려가 살려달라고 도움을 청했다. 그라나 꼼배는 집에 없었고 만삭이된 그의 처가 몸져누워 있었다. 그네가 거북한 몸을 간신히 일으켜 밖으로 나왔을 때 물에 빠졌던 아이는 이미 자취가 보이질 않았다. 동네 사람들은 꼼배에게 책임을 지게 하고 마구 욕이란 욕을 갖다 붙였다. 그렇게 일이 묻혀질 때 쯤 꼼배 부인은 아이를 낳았고 이소식을 들은 동네 부인들은 미역을 사들고 꼼배네 움막 들리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바람이 불러오는 마른 갈대밭에서 병정놀이를 하고 나서 들쥐 사냥을 벌이기도 했다. 들쥐 구멍을 찾아내어 입구에다 마른풀을 싹아놓고 불을 지르면 견디다 못한 둘쥐 가족들이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불을 지르고는 기다리다가 한 마리씩 들쥐를 타격하는 재가 기막힌 놀이였다. 그런데 어디서였을까, 미처 밟아서 완전히 꺼놓지 못한 곳에서 번져 위쪽의 갈대밭으로 옮겨붙게 되었다. 그 불길이 꼼배네 움막까지 간 것이다. 불길은 순식간에 옮겨 붙었고 꼼배는 시장에 있어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집안에 있던 꼼배처와 아이가 문제였다. 알고보니 꼼배처는 간신히 빠져나왔지만 아이는 불에타 재가 된 것이다.
그후로 꼼배처는 미친사람처럼 정신을 잃었고, 꼼배는 술을 먹고 이렇게 말했다.
˝야 이놈들아, 느이만사람이냐, 느이말사람이야?˝
그이후로 꼼배와 꼼배처는 보이지 않았고, 꼼배가 살던 움막앞에는 돌다리가 놓여졌다. 사람들은 그다리를 꼼배다리라 불렀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참 인정머리 없는 동네 사람들 가난이라는 현실, 아픔 책이야기가 아닌 나의 가난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마음이 찌릿햇다. 나는 딱 선정 도서로 뽑힐만 하구나라는 생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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