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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맞싸워 살아가는 ´나´

이 소설은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이다.
개인의 삶의 자취에 초점을 둔 것만은 아니다. 또 주인공이 대여섯 살부터 스무살이 될 때까지만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는 송도에서 조금 떨어진 박적골에서 코흘리개 시절을 보냈다. 그당시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면 누구나 그렇듯 풍성한 자연과 벗하여 살면서 야생의 시기를 보낸다. 실개천에서 물장구를 치고, 풀과 꽃을 뜯고, 산열매를 먹으며 컸다고 한다.
우리 아빠도 이런 경험을 하셨다고 한다.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면서 아련한 그리움과 기다림도 경험하고, 신비한 세계에 대한 두려움도 느끼며 자라던 나는 일곱살 무렵 엄마를 따라 서울로 가게 되었다
오빠를 서울에서 학교 보내겠다며 먼저 떠났던 엄마가 나를 데리러 내려온 것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서울에 첫발을 내딛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시궁창 물이 흥건한 현저동 풍경이었다.
3.서울에 온 나는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입학 시험을 치르기 위해 주소를 두 개나 외야 했다. 시내 중심에 있는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서였다. 그만큼 엄마의 교육열은 대단했다. 동네 아이들하고 어울리는 걸 싫어했고, 같은 처지이면서도 동네 사람들을 은근히 무시했다. 그러나 물장수 영감이 대학 다니는 아들을 두었다는 것 때문에 존경하고 부러워하기까지 했다.
드디어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초등학교에서 일본 말로 노래를 배우고, 신여성이라 할 만한 예쁘고 향기로운 여선생님을 만난다. 그러나 그 동네에 살지 않기에 아이들과 어울릴 수 없었다. 학교가 끝나면 인왕산을 넘어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가정 방문 때는 친척 집을 자기 집처럼 속여 선생님을 맞아야 했고,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엄마의 쌈지에서 일전 짜리를 꺼내 사탕을 사기도 했다. 굿 구경에 빠지기도 하고, 엄마가 해 주는 옛날이야기에 넋을 잃기도 했다. 나에게 서울 생활은 새콤한 싱아를 먹지 못해 속이 울렁거리는 것과 같았다.
오빠가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고 살림도 피기 시작했다. 그래도 엄마는 집을 살 때까지 삯바느질을 그만두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얼마 뒤 남의 돈을 유용해가면서까지 집을 샀다. 일을 먼저 벌여놓고 나서 할아버지에게 알려, 땅을 팔고 급전을 끌어대는 등 뒷처리를 했다. 집이 없어 자식들이 업신여김을 당하는 걸 볼 수 없었던 맹목적인 모성애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숙부는 창씨 개명을 하자는 뜻을 비친다. 그러나 오빠는 어려운 시절을 조금만 견뎌보자며 창씨 개명을 반대한다. 나는 이때 쯤부터 도서관에서 책 읽는 데 몰두했다. 복순이라는 친구와 함께였다. 내가 책읽기에 몰두하고 상급학교 입학 시험에 합격하는 동안 세상은 점점 더 어지러워졌다. 조선 청년들은 일본의 총알받이가 되어 전쟁터로 끌려가야 했고 처녀들은 정신대로 끌려갔다. 식량 사정도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일상적인 사람살이는 계속되어 오빠는 결혼을 한다. 숨막힐 듯 아름다웠지만 몸이 허약한 여자였다. 그리고 얼마 뒤 해방이 되었다.
해방 후 한바탕의 혼란을 거치고 나는 학교에 다니며 문학에 심취하기 시작한다. 올케 언니의 병으로 우울한 집안 분위기 때문에 더욱더 독서에 빠져들었다. 결국 언니는 죽고 만다.
해방 뒤에 좌우익이 갈라져 대립할 때 나는 그들의 이념을 내 나름대로 판단하고 좌익 쪽으로 기울었다. 오빠의 영향도 컸다. 학교에서는 소설가 박노갑 선생을 담임으로 만나 나도 문학에 소질이 있을 거라는 자기 발견의 계기를 갖게 된다. 결혼한 오빠는 아이도 낳고 좌익 활동에도 거리를 둔다.
1950년 스무살이 된 나는 서울대 문리대에 입학한다. 그리고 그해 6.25가 터진고 만다. 오빠는 집에 세들어 살다 잡혀간 사람을 길에서 만나, 석방된 공산주의 죄수들을 데리고 집에 온다. 나는 학교에서 민청 조직에서 일을 해야 했다. 오빠는 의용군에 나가게 되었다. 그 전쟁통에 올케는 또 아이를 낳았다. 공산주의 세상이 또 뒤집혀졌다. 반공이 애국이 되고 복수와 밀고가 줄을 이었다. 나는 끊임없이 불려다녀야 했다. 숙부 집도 심한 고초를 겪어야 했다.
1.4 후퇴로 피난을 가야할 때, 오빠가 돌아왔다. 상처를 입고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온 것이다. 식구들은 피난도 가지 못한 채 서울에 올라와 처음 자리잡았던 현저동에 몸을 숨긴다.
벌레와 같은 시간들 고통의 시간들을 되새기며 나는 언젠가 글을 써 증언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자기 삶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다
일제 말 강압적인 식민통치와 해방의 혼란, 좌우익의 대립과 민족 상잔의 전쟁 속에서 성장을 한 이야기 이다.
그는 한창 민감하던 사춘기 때 해방을 맞았지만 좌우익의 소용돌이 속에서 혼란을 느껴야 했다. 자기 자신의 생각이 서고, 세상을 판단하는 눈이 생길 때, 전쟁으로 인한 비인간적인 삶을 살아야 했다.
이같은 어두운 시대의 그늘은 그대로 한 개인의 삶에 영향을 준다. 초등학교에 들어가, 처음으로 알게 된 일본말이 천황의 칙어를 넣어 두는 ´호안덴´이라는 것이며, 창씨 개명으로 식구들 의견이 분분했던 것, 해방 직전의 급박한 식량 사정이며 흉흉한 분위기, 해방 후의 혼란과 참혹한 전쟁 체험 등이 다 그렇다.
이 작품을 통해 어두운 시대의 그늘을 조금 비껴간 개인의 체험 세계도 역시 존재한다는 걸 느낀다.
또한 이 작품에서 우리는 작가가 거리를 두고 자신의 지난 날을 돌이켜 보고 있다.
그히고 이밖에 다른 소재로 옛날의 모습을 설명해주는 것도 참 재미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이 책은 읽고 나서 감명 깊었고 옛날 생각이 문득 떠올린다고 한다.
우리 지금 살고 있는 아이들은 옛날에 무엇이 이었고 어떤놀이나 여러 가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우리 전통문화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 전통문화를 잘 보전하고 계승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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