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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람은 나를 보고 웃고, 나는 세상을 보고 웃는다


이정석의

.........´세상 사람은 나를 보고 웃고,

나는 세상을 보고 웃는다





어느새 1900년대가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진지 3년..., 대망의 2000년대의 몇 해가 훌쩍 세월의 뒷담을 뛰어 넘은 2003년이다.
무엇보다도 요즘 시기는 ´새로운 천년을 시작하는 시기´의 시초라는 차원에서 뭔가 의미있는 해석을 하고 싶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 이러한 시기는 오히려 더욱 외롭고 쓸쓸한 의미로 다가설 것이 틀림없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창문 밖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무심코 맑은 하늘 높이 두둥실 떠가는 새하얀 구름 한 점을 발견하고는 문득 ´공해에 찌든 도심(都心)이 아닌 자연 속에서 저런 하늘을 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새 천년 초기의 어느 땐가..., 아마 모 방송국 토크쇼의 한 장면으로 기억된다.
지리산 청학동에 살고 있는 훈장이 TV 화면을 통해 소개된 적이 있었다.
그 때 비 온 뒤 근처를 감싸고 있는 안개 속에서 더욱 운치가 더한 청학동 마을을 배경으로 늘어 선 때묻지 않은 사람들의 해맑은 웃음을 보고 무척이나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 기억나서 청학동 훈장 「이정석」씨가 쓴 이 책을 애써 구해 읽고 그 느낌을 남긴다.
「이정석」씨는 낙안 읍성에서 태어나 이십 여 년 동안 구례, 남원, 논산 등지에서 한학(漢學)을 수학한 후, 현재 청학동 훈장으로서 후학지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동안 그는 업체, 대학, 사회단체 등에서 수십 회의 특강을 한 바 있고, ´91년, ´95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교민들에게 강의를 통하여 한민족(韓民族)의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세상 사람은 나를 보고 웃고, 나는 세상을 보고 웃는다´는 제목부터가 인생을 달관한 듯한 이 책은 크게 다섯 마당으로 글을 전개했다.
첫 번째 마당이 곧 ´역설의 사랑법´이란 부분이다.
우리 주위엔 결혼을 앞두고 궁합을 보는 커플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물론 궁합이 잘 맞는 커플에 대해서는 결혼에 첨가되는 아주 좋은 예물이요, 선물이 될 것이다. 하지만 궁합이 좋지 않다 하여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자기들의 사랑을 속이며 살아가고 있는가.
요즈음엔 궁합을 보지 않는 커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지만, 아직도 우리 주위의 어른들이나 결혼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궁합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궁합 자체를 구시대적인 유물로 간주하고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역시 이런 사람들조차 극단적인 궁합의 결과에 대해서는 사랑이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궁합은 상당히 나름대로 과학적이며, 두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궁합을 단지 생년월일을 가지고 점술가들이 하늘의 뜻을 속이며 말하는 불확실한 통계적 결과라고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나름대로의 이름이 있듯이 그 사람 나름대로의 기(氣)라는 것이 존재한다.
서로 다른 기가 만나 부딪히는데 마땅히 그 기를 조절하고 서로의 기에 잘 맞추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작가는 궁합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아무리 궁합의 중요성을 말해도 고개를 돌리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확실하게 연애를 하는 것이다. 제대로 연애를 하는 쌍은 서로 기(氣)가 맞는 것이고 그것은 궁합도 결국 좋다는 것이다´라고...
이런 식으로 「이정석」 훈장은 남녀간의 사랑에서부터 시작하여 심봉사의 뜻을 어겨 그것이 결국은 효(孝)가 된 심청전의 부녀지간의 사랑과 친구들간의 끈끈한 우정에 이르기까지 예를 들어가며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두 번째는 ´마음으로 그리는 인생´으로써 인생에 대한 사람들의 잘못된 관점과 나름대로 깨달은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준다.
그는 제일 좋은 스승으로 ´여행´을 꼽는다. 자신만이 살고있는 곳은 특수한 한 곳에 지니지 않으며, 자기가 가본 곳의 넓이만큼 자신의 가슴도 넓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유교적인 분위기가 다분히 보이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향기나는 인생´을 위하여 살아가는 방법들은 역시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 한번쯤 상념의 기회를 가지게끔 한다.

세 번째 마당은 ´청학은 어디로 날아갔나´라는 제목으로 청학동의 현재 위치를 현대 도시인들이 바라보는 시점과 청학동 훈장으로서 느끼는 점을 비교해가며 이야기 해 주고 있다.
몇 년 전 NHK 방송국에서 청학동을 촬영하러 왔다가 벌인 해프닝은 한 나라의 문화적 유산을 간단한 볼거리로 생각하는 외국인의 문화에 대한 잘못된 시각을 여실히 보여주었으며, 우리들이 무관심한 반면 오히려 외국의 인류학자들이 청학동에 관해 더욱 관심을 갖고 있음을 알게 해 주었다.

네 번째는 ´흔들리는 세상풍경´이라는 제목으로 전통적인 생활을 고수하고 있는 청학동의 훈장으로서 바라 본 세상풍경이 잘 드러나 있다.
배꼽티 입은 아가씨를 보았을 때 얼마나 놀랐겠으며, 게다가 부모를 폭행하거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체를 함부로 훼손하고 다니는 요즘 세대를 볼 때 어떤 생각이 들었겠는가. 특히 요즘 세상에서 그런대로 개방적이라고 자부해온 40대 중반인 내가 보기에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유교적인 생활관을 가진 훈장의 입장에선 오죽했겠는가.

다섯 번째는 ´세계의 꽃으로 필 우리´라는 제목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고 있다. 저마다 사람들은 자만심이나 열등감, 또는 콤플렉스가 있다.
´옆 집의 누가 무얼했고, 뒷 집의 누구는 무얼했고...,´ 하며 자신의 의지로 자신만의 기쁨을 찾기보다는 남들이 이룩한 업적에 자신의 이름만 담길 바라고, 또 나만의 행복을 남들의 행복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세계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예를 들면 모든 사물마다 가지고 있는 개성을 존중하고, 그 개성에 맞는 역할과 기대를 갖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결코 어렵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왠지 조금은 숙연해진 듯한 기분을 느끼며, 부끄러운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나는 누구인가 ?´를 물어 본다.
´어떤 친구가 성공의 과실을 따게 되었을 때, 당연히 친구로서 축하를 하게 된다.
하지만 돌아서면 축하를 해주는 마음 한구석에 경쟁심리가 발동되어 스스로를 괴롭히게 된다. 참으로 부끄러운 노릇이지만 또 하나의 얼굴이 그렇게 끝내 모습을 드러내니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

이런 면에서 볼 때 이 책에서 가장 감명있게 읽었던 부분이 바로 ´마음으로 그리는 인생´이라는 두 번째 마당을 꼽을 수 있다.
흔히들 유교적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은 구시대적인 사람이며, 생각이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진정한 유교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미덕에 있는 것이 아닌가 ?
청학동 훈장의 말처럼 어김없이 돌고있는 이 지구에 살고있는 우리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한, 나 아닌 다른 존재도 생각해야 된다는 것은 오늘날 점점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사회현상을 볼 때 더욱 되새겨 볼만하다.
요즈음 사회는 너무나 빨리, 그리고 험악하게 변해가고 있다.
성적이 떨어졌다고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여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애인이 변심했다고 총을 들고 뛰어나가 사고를 치지를 않나, 전화하는데 쳐다보았다고 칼로 찌르고, 꾸중하는 부모에 반항하여 그 부모를 살해하는 등, 이러한 사회현상이 우리에게 무언가 요구하고 있는 듯하다.
그게 과연 무엇일까 ? 게다가 우리는 어떤 사회를 원하는가 ?
「허준」의 ´율도국´을..., 아니면 「콜럼버스」의 ´신대륙´을...?
밀 알이 썩어야만 새싹이 돋아나듯 우리 역사에서도 한풀이가 끝나면 사랑과 화합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밀 알이 썩지 않으면 새싹이 돋아나지 않듯, 우리 역사의 아픈, 아니 너무나 안타까운 아픔의 한(恨) 역시 풀지 않으면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요즘 힘들고 어렵지만 한풀이의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다.
깨어나 빛이 되기 위해 스스로 담금질하고, 좀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채찍질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꽃으로 당당히 피어나기 위해 개화(開花)의 고통을 겪어야 하겠다.
청학동(靑鶴洞) !
글자 그대로 푸른(靑) 학(鶴)이 사는 마을이다.
과연 푸른 학이 세상에 존재할까 ?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푸른(靑) 학(鶴)은 살아 있다.
우리의 정신세계 안에서 훨훨 날아다니고 있다.
푸른(靑) 학(鶴)이 사는 마을, 그것은 우리의 이상향(理想鄕)이자 마음의 고향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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