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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없는날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이라는 노래와 ´뜸뿍뜸뿍 뜸뿍새 논 에서 울고´라는 노래는 다 알고 있다. ´나의 살던 고향은´의 노랫말을 쓰신 분이 바로 이원수 선생 이시고, ´오빠 생각´ 노랫말을 쓰신 분이 바로 이원수 선생의 부인 최순애 선생이시다.

얼마전(6월 28일) 최순애 선생마저 돌아가셨으니 우리는 이제 이 두 분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1995년 5월에 문화 방송에서 아동문학의 거목, 이원수라는 제목으로 이원수 선생님에 대한 프로 그램을 보여준 적이 있다. ´아동문학의 거목´이라! 이 말만큼 우리 아동문학계에서 이원수 (1911-1981)위치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이 또 있을까 싶다.

이원수의 작품은 웅진출판사에서 30권(3권은 평론집)의 전집으로 묶여 연구자들에게는 좋지만, 아이들 손에 쉽게 갈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나마 동시집 <너를 부른다>(창작과비평사)와 동화 집 <꼬마 옥이>(창작과비평사), <오색풍선>(견지사), 장편동화 <해와 같이 달과 같이>(창작과비평사), <지혜의 언덕>(분도), <숲속나라>(웅진)가 단행본으로 출판되어 어린이들 손에 닿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오색풍선>을 빼고는 모두 고학년 대상이라 저학년들에게도 널리 이 원수의 좋은 작품들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아 이를 안타까워하던 중 <엄마없는 날>이 출판되어 여간 반갑지가 않다.

이원수선생은 생전에 100여편 넘는 단편들을 쓰셨는데 사실 그 작품들이 모두 우수했던 것은 아니다. 때로는 구성이 허술한 부분도 있고, 때로는 비슷한 작품들이 보이기도 한다. 작고하신 작가 의 작품집을 묶는 데에는 엮은이가 작가의 대표작품들을 얼마만큼 잘 뽑아내느냐가 사실 관건이 다. <엄마없는 날>은 몇 가지 점에서 흠이 있지만 저학년 대상의 국내 창작물이 턱도 없이 모자 란 상황에서 사실 단비와 같다. <엄마 없는 날>에는 모두 10작품이 실려 있다. 이 10작품들이 어떤 하나의 공통성을 갖은 것이 아니라 작품을 차례로 하나하나씩 살펴보고자 한다.

2. <도깨비 마을>

우리 옛이야기에 나오는 인물 중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인물은 누구일까?
바로 도깨비이다. 도 깨비는 무섭기도 하고, 정답기도 하다. 또 종종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기도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 도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문화가 사라지면서 지금은 도깨비 이야기도 많이 사라져 간 형편이다. <도깨비 마을>의 도깨비들 역시 이제 ´이 산´에는 두명밖에 있지 않다. ´카아´와 ´쿠우´가 그들이 다. 도깨비들은 원래 떼지어 다니며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어야 살맛이 나는데 카아와 쿠우 단 둘만 남자 심심하여 카아는 사람들을 속여서라도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자고 하고, 쿠우는 그럴 수 없다고 의견 충돌이 생겼다. 그러다 카아 혼자 산마을로 내려가버린 것이었다. 혼자 남은 쿠우 혼자서 너무 할 일이 없고, 심심하여 카아가 내려간 그 아랫마을로 내려가게 된다.

카아는 도깨비 방망이를 가지고 돼지를 나오게 하고, 돈도 나오게 하고, 쌀도 나오게 한다. 그러자 아랫마을은 쿠우에게 윗마을 도깨비처럼 돈과 쌀을 나오게 해달라고 한다.

하지만 쿠우는 그럴 수가 없다. 왜냐면 도깨비 방망이로 나오는 것들은 무에서 유를 나오게 하는 게 아니었다. 어딘가에 있는 것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돼지야 산에 있고, 들에 있으니 나오게 할 수 있었지만 쌀과 돈은 다른 문제였다. 어느 집의 것을 가져와야 하니 말이다. 쿠우는 돈이나 쌀보다 농사일을 도와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윗마을처럼 돈과 쌀을 바랐다. 그러는 사이 아랫마을은 돈과 쌀을 도둑맞는 일이 생긴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쿠우가 온 뒤로 도둑을 맞으니 재수가 없다고까지 얘기한다. 하지만 쿠우는 알고 있었다. 그 쌀과 돈은 카아가 윗마을로 빼낸 것이라는 것을. 그러나 쿠우는 그 사실을 말할 수가 없다. 도깨비가 도둑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랫마을에서 또 닭이 없어졌다. 쿠우는 그 닭을 방망이로 찾아주었다. 한편 윗 마을에서는 잔치하려던 닭이 없어져버렸다. 카아는 아랫마을에서 훔쳤갔다고 말하고 나쁜 도깨비 와 친해진 아랫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쁜 도깨비가 되었다고 말하였다. 이때부터 윗마을은 아랫마 을을 욕하고 싫어하게 되었다. 이제 두마을은 서로 욕하고 미워하고 싫어하게 되어 마침내 마을 사이에 가시나무 울타리를 쳐서 서로 오고가지 못하게 하였다. 그 마을은 분단의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 뒤에도 마을사람들은 서로 윗마을 도깨비가 나쁘다, 아랫마을 도깨비가 나쁘다 욕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쿠우는 카아를 찾아간다.

˝우리가 서로 헤어져 있으니까 마을 사람들까지 서로 헤어져 버리지 않는가. 우리는 여기서 떠 나 도로 깊은 산으로 가서 정답게 지내는 것이 어떤가?˝(20쪽)

˝역시 자네 말이 옳아. 다시 정답게 지내세.˝(21쪽)

이 즈음에 이르면 도깨비의 역할은 분명해진다. 바로 ´화합´이요 ´통일´이다. 작가는 잊혀져간 도깨비, 사라져가는 도깨비를 등장시켜 도깨비 이야기가 많이 복원되기를 바라 고, 우리 민족의 염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 작품에서 담고 있다.

그 뒤 세월이 흘러 이 울타리를 어린이들이 허문다. 윗마을 어린이들은 아랫마을에 도깨비들만 산다고 믿었고, 아랫마을 어린이들은 윗마을에 도깨비들만 산다고 믿었다. 그 어린이들은 도깨비 가 보고 싶은 마음 반, 정말로 도깨비가 살까 하는 의심 반으로 울타리 구멍으로 상대 마을을 들여다보다가 자기와 똑같이 생긴 어린이들을 발견하게 되고, 그들은 어깨동무를 하며 노래를 부르고 신나는 시간을 갖게 된다.

모든 거짓과 위선을 뚫고 당당히 진실을 밝혀내는 무리, 그들이 바로 어린이인 것이다. 앞에서 도 깨비의 역할이 ´화합´이요 ´통일´이라 했는데 이것을 실천으로 일구어낸 것은 어린이이다. 도깨비 들은 ´화합´과 ´통일´이 되는 계기를 주고, 그 실천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이런 역할 선정에서도 성공을 이루고 있다. 이 땅에 살며, 이땅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존재는 도깨비가 아니라 바로 우리 인간이기 때문이다. 또한 가장 진보적이며 진실을 행할 무리는 어른이 아니라 어린이인 것이다. 어린이들은 온갖 선입관에 물들지 않고 그 생생한 생명력으로 우리의 미래를 올 곧게 이끌어나갈 어린이에게서 밝은 미래를 이 작품은 보여주고 있다. 어린이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왕성한 호기심, 선함, 친화력, 생명력의 소중함을 느끼기만 해도 어디인가.

3. <해바라기>, <불꽃의 깃발>, <불새의 춤>

나에겐 우리나라 나이로 4살난 조카가 있다. 어느날 이 조카와 한 시골마을을 걸은 적이 있다. 그 때 어느 집 앞에 개 한 마리가 나와 있었다. 조카는 그 개를 보더니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개를 쳐다보는 것이다. 내가 그 개를 보니 그 개도 우리 조카를 가만히 쳐다본다. 그때 느낌은 둘이 서로 뭔가를 교감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유진아, 가자.˝ 하니까 그 개를 보더니 안녕이라는 손짓을 하며 ˝안녕!˝하는 것이다.

그리고 까치가 전선줄인가에 앉아 있는 것을 보더니 또 ˝안녕!˝하는 것이다. 모든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고 그 생명도 나와 같이 생각한다고 믿는 아이들. 그래서 아동문학작품에도 물활론적 세계가 늘 소재가 되어 왔다. 이것은 특히 저학년들에게 아주 알맞은 소재이기도 하다. <엄마 없는 날>에 실려 있는 몇 개의 작품도 이런 소재를 갖고 있다. 또한 이들은 처음부터 맘껏 사랑받는 존재가 아니다. 외롭고 쓸쓸하던 이들. 그들이 어떻게 어린이 앞에 나타나는지 보자. 그리고 그들이 직접 주인공으로 나와 1인칭 시점으로 그려져 있어 읽는이로 하여금 작품에 더 깊게 들어갈 수 있게 한다.

<해바라기>의 주인공은 해바라기이다. 정이네 집에서 자라는 해바라기. 그러나 아무도 봐주는 이 없다. 정이도 정이 동생도 해바라기 아래 피어 있는 채송화를 예뻐해도 해바라기는 보지도 않는다. 그런 해바라기는 서럽다. 그러다 어느날 해바라기는 멀리 하늘높이 번쩍이는 해님을 보게 된다. 해님은 말한다.

˝해바라기야!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날마다 날마다 나를 바라보는 너는 나의 가장 사랑하는 꽃이지!˝(31쪽)

해바라기는 이제 힘을 얻는다. 이 해님의 사랑으로 해바라기는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는다. 가난한 겨울살이를 하고 있는 정이는 해바라기로 군불을 때려고 한다. 해바라기는 어떻게 했을까요? 나를 거들떠도 보지 않은 정이. 그 정이를 위해 군불이 되어 줄수 있을까요? 해바라기는 기꺼이 군불이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우리 창작 아동문학에서는 무조건적인 희생을 사랑이고, 착함이고, 아름다움이라고 그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어떨때는 이것이 아동문학의 영원한 미덕인 것처럼 착각할 때도 있다. 해바라기가 기꺼이 활활 타오르는 군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해님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외롭고, 서럽고, 기죽어 있던 해바라기는 해님의 사랑을 받음으로써 안정을 되찾고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내게도 해님이 있다!´ (32쪽)

라고 생각하고 즐거워하는 해바라기의 모습을 보면, 나도(독자)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아 즐거워 진다. 이런 사랑이 있었기에 해님에게서 받은 뜨거운 사랑을 새빨간 불덩이로 쏟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정이도 해바라기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아! 해바라기는 뜨뜻하기도 하다.˝(35쪽)

라고.

우리는 서로서로에게 사랑을 주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겠다.

<불꽃의 깃발>에서도 작가는 나무에 혼을 넣는 소재로 사랑을 얘기하고 있다. 수목이 우거진 산, 그 산 꼭대기에 우뚝 외로이 서 있는 전나무. 훤칠한 키와 멋진 가지를 자랑하 고 있지만 사실은 그 전나무는 너무나 외로워하고 있었다. 왜냐면 그 나무의 혼은 어린 혼이었기 때문이다. 어린 혼은 쓸쓸하고 외롭다. 우리 어린 독자들이 이 대목을 읽으면 어떤 마음일까? 이 전나무가 외롭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을 것이다. 드디어 작가는 이 어린 전나무가 외롭지 않을 방법을 찾아내었다. 저 아래 전나무 혼과 바꾸어보는 것이다.

이 제안을 누가 했을까? 나무와 나무를 자요로이 오갈수 있는 존재, 바로 바람이다. 노인 전나무 혼은 기꺼이 자리를 바꿔주려고 한다. 거기다 노인혼은 서쪽에 바람이 세고, 번개가 심할 것 같다 며, 그러면 산꼭대기의 어린 것이 변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며 당장 자리를 바꾸자고 한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벼락이 떨어져 산꼭대의 전나무를 다 태우고 만다.

어라, 앞에서는 무조건적인 희생 어쩌고 하더니 여기서 늙은 전나무 혼은 무조건적인 희생이 아니냐고 의아해할 줄 모르겠다. <불꽃의 깃발>의 늙은 전나무 혼은 <해바라기>의 해님과 같은 존재다. 주인공은 어린 전나무 혼이고, 아이들이 동일시하는 인물은 어린 전나무 혼인 것이다. 늙은 전나무 혼의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과 같은 것이다. 그 사랑이 없었다면 어린 전나무 혼은 이 미 존재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작은 전나무 혼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고마움처럼 날마다 검은 숯의 나무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꼭대기 바위산에 한 그루, 검은 줄거리만 남은 전나무가 서 있습니다. 멋진 가지와 잎사귀를 다 태워버린 검은 나무입니다. 그 아래 산허리에 무성한 숲, 그 숲에 한 그루의 전나무가 날마다 검은 숯의 나무를 쳐다보며 오늘도 자라고 있습니다.(82쪽)

이 작품의 마지막 대목이다. 어린 전나무 혼은 노인혼에게서 받은 사랑의 힘으로 쑥쑥 힘찬 나무로 자라날 것이다. 우리 어린이들도 이 전나무처럼 쑥쑥 자라날 것이다.

<불새의 춤>에서 주인공 두루미는 해바라기와 어린 전나무 혼과는 좀 다른 위치에 있다. <불새의 춤>의 주인공 두루미는 ´두루미 무용원´의 30마리 가운데 한마디로 28호 두루미이다. 그들은 한끼에 미꾸라지 3마리를 먹는다. 아니 원장이 3마리만 준다. 그 양은 두루미들에겐 턱도 없이 모자란다. 거기다 조금만 실수해도 미꾸라지는 2마리밖에 먹지 못한다. 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춤도 예술이야. 몸이 가벼워야 춤추기도 좋거니와 먹이에만 맘을 쓰는 건 예술가의 태도가 아니 란 말야.˝(111쪽)

28호 두루미는 이렇게 생각했다.

˝친구들, 우리가 불평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니, 원장님이 좋아하도록 춤을 잘 춥시다. 힘껏 일하고 그러고서 미꾸라지 세 마리를 갑절로 늘려 달라고 합시다.˝(113쪽)

이 말을 들은 원장은 신나서 이렇게 말했다.

˝무용만 잘 하면 구경오는 손님도 늘 것이고, 그러면 수입도 늘 테지. 우리 식구들의 먹이를 늘려 주는 것도 수입이 늘고 난 뒤에 할 일이야.(114쪽)

두루미들이 춤을 잘 추자 진짜로 손님이 늘어났고, 관람료도 늘었다. 그러나 원장은 미꾸라지 여 섯 마리를 주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면서.

˝허허허! 학은 신선과 같은 것. 춤은 곧 예술이야. 먹이를 가지고 계산할 일이 아니란 말야.˝(114쪽)

이런 류의 일은 우리 세상살이에 수도 없이 많다. 나도 역시 겪어보았고. 부탁을 해도 소용없고, 춤을 잘 추어도 소용없게 되자 28호는 드디어 결심한다. 28호는 아침식사 때 나온 미꾸라지를 입에 물고, 석유통에 묻어 있는 기름을 제 몸에 발랐다. 28호는 음악소리가 나자 무대로 나가 성냥불로 담배를 붙이고 내버리는 성냥개비로 달려들어가 몸에 불을 붙였다. 불새가 된 두루미는 불새의 춤을 추면서 말한다.

˝얼음 같은 심장을 녹이시오.˝(117쪽)

독자들은 이 마지막 대목을 읽으면서 소망한다. 제발 원장이 강철같은 고집과 얼음 같은 마음을 녹이기를. 그래서 남아 있는 두루미들이 맘껏 식사를 할 수 있게 되고, 더 나아가 제멋대로 날아 다니며 물가에서 미꾸라지나 향긋한 미나리를 먹으며 살게 되기를 말이다.

4. <엄마 없는 날>, <은이와 나무>, <엄마의 얘기>, <비옷과 우산>

이원수는 때로 놀라운 관찰력으로 아이들의 일상사를 관찰하고, 그것을 토대로 작품으로 엮어내기도 한다. 아이들의 일상사를 토대로 작품을 쓸 경우에 문학이 아니되고, 일상 이야기로 머무는 경우를 종종 보기도 하는데 이원수는 그 부분에서 뛰어난 면을 보인다.

<엄마 없는 날>, <은이와 나무>, <엄마의 얘기>, <비옷과 우산>은 모두 일상생활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을 소재로 삼고 있으면서도 가족의 사랑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들이다.

<엄마 없는 날>은 제목 그대로 ´영이´가 엄마없는 날, 유치원에서 혼자 가는 것에서부터 그날 하루 있었던 일을 차례로 보여주고 있다.

하루, 이틀 엄마 없이 지낸 경험이 아이들에게는 다 있다. 그 때 아이들은 왠지 더 커지고, 엄마 를 기다리게 된다. <엄마 없는 날>의 영이도 그런다. 엄마 없는 날, 혼자서 큰길도 건너고, 누렁이 를 무서워하지도 않고, 장난감 가게의 인형을 부러워하지도 않은 영이. 엄마에게 자랑할 것이 많아진 영이다. 집에 돌아와서는 ´우리 영이 잘 다녀왔니?´ 하는 소리를 기대하며 큰소리로 ˝다녀왔습니다!˝를 외쳐보기도 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공연히 엄마 안 왔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엄마 없는 날의 영이 심리가 잘 그려져 읽는 이로 하여금 영이의 마음에 깊게 공감하게 한다. 그리고 내가 엄마 없는 날 어땠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저녁을 먹고 아빠라도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맘에 뜰에서 아빠를 기다리다 보름달을 보게 된 영이. 영이는 그 달이 웃음띤 엄마 얼굴이 되어 ˝영아, 저녁 먹었니?˝하고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아침에 영이는 언니가 ´엄마는 내일 오신다. 오늘 밤만 자고 나면 오시는 거야.´ 대답해주길 바라며 엄마 언제 오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 때 언니는 기껏, 알면서 왜 묻냐고 핀잔을 주었다.

달에서 엄마 얼굴을 본 영이가 언니를 불러 그 얘기를 해주자 언니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 그래. 엄마 달인가 보다. 엄마도 영이가 보고 싶어서 그랬을 거야.˝(52쪽)

언니도 영이의 마음을 꺾지 않는다.

그리고,

둥근달, 밝은 달
산들바람 타고 와
한없이 떠 가네
어디까지 가나?

하고 부르고 있던 노래를,

둥근달, 엄마달
산들바람 타고 와
영이를 부르네
우리 영일 부르네

하고 불러준다.

이제 내일 엄마가 오면 영이와 엄마의 사랑은 한층 더 두터워질 것이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임의로 소제목으로 ´낮, 저녁, 밤´이라고 붙여 놓았는데 내용과 맞지가 않아 읽는이로 하여금 혼란스럽게 한다. 아마도 낮에 있었던 일, 저녁에 있었던 일, 밤에 있었던 일로 잘 구분하여 읽기 좋게 한 배려 같은데 맞지가 않았다.

<은이와 나무>의 은이는 은이가 생각할 때 별일도 아닌 것에 혼이나 섭고 야속한 생각해 집을 뛰 쳐나온다. 집을 나올 때 아버지가 ˝저 녀석 잡아 감나무에 붙들어 매오.˝하고 엄마에게 말하는 소리를 은이는 듣게 된다. 은이는 뒷산 숲속 큰나무에 앉아 있다가 나무 속의 아기 나무와 엄마 나 무가 이야기 하는 것을 듣게 된다. 그러다 은이는 자기가 집에서 부러트린 나무에도 엄마와 아기가 있었다는 생각이 나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은이는 멋쩍어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혹시 엄마가 ˝은이는 어딜 갔기에 여태 안 들어오나?˝하는 목소리가 들리기를 기다린다.

그래도 집안에서 그렇게 높이 매달아 놓으면 아이가 떨어진다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은이는 집 을 나올 때 아버지가 한 말도 생각나 정신이 번쩍 나서 대문 틈으로 안을 들여다본다. 아 근데 아버지가 감나무에 밧줄을 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할까?

영이는 이런 생각을 한다.

´아! 나를 묶어 매달려나?´ (92쪽)

우리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무슨 이런 아버지가 있나 하면서.

근데 그 밧줄은 그네였다. 진작 이렇게 해줬으면 매화나무도 부러트리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멋진 반전이다. 은이는 재미있어하면서 매화나무 아기들에게 미안한 생각을 한다. 이런 자그만 사랑에서 아이들은 마음이 따뜻해지고 풍만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일부러 부러트린 나뭇가지도 아닌데 너무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려고 한 흔적이 아쉽다. 나무를 부러트리면 안된다는 교훈을 주려고 엄마 나무와 아기 나무가 이야기 하는 것을 듣게 하고, 부러진 나무를 몇 번이고 바라보게 한 점이 말이다.

<엄마의 얘기>는 일제시대를 산 순이 엄마의 어릴 적 얘기가 주요 이야기이다. 순이는 어느날 엄마에게 이야기 하나만 해달라고 조른다. 그러자 엄마는 엄마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준다. 기미꼬라는 일본 여자아이는 아버지가 경찰서장이다. 기미꼬는 세력이 제일이다 보니 우리나라 사람을 얕보고 뼈겨서 한 번은 순이 엄마, 정이가 ˝도로보오(도둑놈)야˝하고 욕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작가는 이 이야기에서 결코 그 시대의 문제를 놓치지 않는다. 세력이 센 일만 맡아하는 일본인, 우리나라 사람을 얕보는 일본인. 이것을 아이들 이야기 속에 잘 엮어내고 통쾌함까지 작가는 주고 있다.

하지만 세력 센 일본인 집에서 가만히 있을까. 경찰서장 부인이 와서 우리 애가 뭘 훔쳤냐고 따진다. 이제 엄마, 아빠한테 된통 혼나겠다는 생각이 든 정이는 도망을 쳐 동네 뒤에 있는 절간의 법당 부처님 뒤에 숨었다.

일본인 경찰서장 딸에게 도둑놈아 하고 욕해준 고참 당당하고 영악한 정이가 가장 안전한 장소로 택한 부처님 뒤. 정말 정이라면 이렇게 했을 성싶다.

한잠 자고 일어나 배고픈 정이는 염불상에서 사과 한 개를 가져다 먹는다. 다음에는 떡을. 그러다 들킨 정이는 도망쳐 산으로 들어가 속이 텅 빈 고목나무에 숨어 있었다.

그 때 할머니가 목소리가 들리고 정이는 ´할머니´하고 부르고 싶지만 도둑놈이란 욕한 것과 법당 에서 사과와 떡을 훔쳐먹은 게 겁이나 숨만 죽이고 있는데 할머니가 정이를 찾아냈다.

할머니가 정이를 어떻게 찾았을까? 정이가 고목나무에 들어가면서 신을 벗고 들어간 것이다. 그 신을 보고 할머니가 정이를 찾은 것이다. 할머니는 정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까짓 일본 계집애! 겁낼 것 없다. 어서 집에 가자.˝
˝일본 놈이면 제일인감? 우리 정이가 제일이지?˝(105쪽)

이쯤되면 우리는 정이가 자랑스럽기까지 한다.

세력당당한 일본인 경찰서장 딸에게 왜 그런 소리 했냐고 혼내키지 않는 할머니. 그런 할머니에게서 우리는 기미꼬에게 느꼈던 얄미움이 해소된다. 또한 이런 든든한 사랑이 우리 마음을 더욱 든든하게 해주고 있다.

<비옷과 우산>은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다. 지금이야 자기 우산 하나씩 가지고 있는 집이 꽤 많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런 형편이 아니었다. 비오는 날이면 언니 오빠가 우산을 다 쓰고 나고 비맞고 학교가야 했던 옥이. 그런 옥이를 위해 아버지가 비옷을 장만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이상하게 비가 오지 않는 것이다. 옥이는 잠자리에서 일어나기만 하면 창을 연다. 비가 오시는지 확인 하려고. 이런 옥이의 마음. 느껴진다. 그러다 하루는 비가 왔다. 근데 그 비는 교문 앞에 이르기도 전에 그쳤다. 그날 비옷을 개켜들고 오는 옥이를 보고 아버지자 웃으며 말한다.

˝얘, 그 비옷 허탕이었지?˝

뭔가를 사면 그것을 써보고 싶은 마음이야 어디 어린이만 그럴까! 그건 어른도 마찬가지!

아버지도 새우산이 생겼다. 아버지도 새우산 쓰고 비오는 길을 걷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날 비가 내려 아버지는 새 우산을 들고 나가셨다. 그런데 그 비도 금세 멎어버렸다. 아버지는 우산을 지팡이처럼 짚고 돌아왔다. 이것을 본 옥이 뭐라고 말했을까요?

˝해해해! 아버지 우산, 허탕이야!˝

비가와도 비를 맞고 다녀야만 했던 가난한 우리 옛시절, 그러한 가난함 속에서도 이런 사랑이 있 었으니 웃으면서 행복한 시절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5. <갓난 송아지>, <장군의 화경>

주로 1인칭 시점으로 작품을 썼던 작가가 <갓난 송아지>에서는 수근이와 어미 소, 갓난 송아지 3명의 시점에서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수근이는 학교에서 돌아와 사랍문을 열자마자 송아지 낳았냐고 물어본다. 수근이는 송아지 낳았다는 말을 듣고 책보를 마루에 던지고 외양간으로 달려간다. 수근이가 얼마나 송아지 낳은 것을 기다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세상에 나오자 송아지는 어미소가 제 몸을 핥아주는 것이 기분 좋다. 그리고 송아지는 일어났고, 어두워지던 외양간이 훤해지는 것을 본다. 하늘의 저녁놀도 보고. 저녁놀이 사라진 밤을 보고, 별을 보고, 귀뚜라미 소리를 듣고, 수근이가 자기를 예뻐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하지만 이런 모든 걸 송아지 혼자서 안 게 아니다. 송아지는 엄마에게 묻고 엄마가 가르쳐 줘서 하나씩하나씩 알게 된 것이다.

어미소는 생각한다.

´우리 아기한테 가르쳐 줄 게 많은데…, 달도 보여줘야 하고, 비도 바람도 알려줘야 하고, 그뿐인가. 풀 뜯어먹기, 코 뚫리는 아픔, 멍에 메이는 일, 논밭갈이, 짐져나르기, 즐거운 일. 괴로운 일. 얼마든지 알아야 할 것이 많지. 그렇지만 이담에 팔려갈 일은 차마 알려줄순 없지.´(65쪽)

다음날 갓난 송아지는 햇볕을 알고, 수근이의 사랑을 엄마에게 배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즐겁게 다가오지도 개운하지도 않다. 왜일까? 어미소의 생각에서 우리는 언 젠가는 어미소와 갓난 송아지가 헤어질것이라는 것을 추축할 수가 있다. 수근이가 갓난 송아지를 팔에 안자 어미소가 ˝수근이가 너 사랑해주는 거다. 무서워하지 말어.˝하고 말하면서 우물우물 쇠죽을 먹고 있었습니다.(67쪽)

하는 마지막 글에서도 어미소의 슬픔이 묻어 있다. 이 갓난 송아지는 1973년에 쓰여진 작품인데 그 앞서 71년에 <떠나는 송아지>라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수근이네 갓난 송아지가 떠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이다. <갓난 송아지>는 <떠나는 송아지>의 전편과 같다. 작가는 이걸 염두에 두었는지 <갓난 송아지>에서도 이별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해도 이걸 한 작품으로 보고 이어서 읽기에는 무리가 있다. 글을 풀어가는 방식이 달라 스토리는 이어지지만 하나의 작품을 둘로 보기에는 어렵다. 그렇다면 어차피 별개의 작품인데 <갓난 송아지>에서는 송아지가 세상을 만나는 신비함, 어미소의 기쁨, 수근이의 기쁨으로만 처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다. <갓난 송아지> 안에서는 이별을 하는 것도 아닌데 그 분위기만 풍겨 개운치 않은 기분을 괜히 주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다.

<장군의 화경>

바나나국 중심부에 폭격을 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집으로 돌아온 세니발 장군은 손주들이 뜰에서 노는 것을 보게 된다. 손주들은 땅바닥에 왔다갔다하는 개미들에게 돌멩이를 떨어 트려 공격하고 있었다. 개미들은 돌멩이에 깔려 짓이겨지고 어떤 개미는 죽은 개미를 끌고 가려 고 애를 쓰고 있었다. 아이들이 준 화경으로 개미들을 보고 리시버를 꺼내어 귀에다 꽂자 장군은 폭격을 당하는 바나나국 국민들의 아우성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장군은 리시버를 빼고 화경을 아이들에게 돌려주면서 잔인하니 폭격을 중지하라고 한다. 그러자 아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녜요, 폭격을 해야 해요. 할아버지는 하면서 괜히 우리만 못 하라시지 ….˝(124쪽)

하고 끝난다. 장군은 늘 폭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그런 정신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아이 들도 약한 자에게 하는 폭격을 당연히 생각한다. 아이들이 폭격놀이를 보고서야 자기의 잘못을 깨닫는 장군. 하지만 아이들의 반응으로 봐서 그 후회는 이미 때가 늦은 것으로 보인다. 어른의 잘못으로 아이들도 이리 되었다. 어른의 잘못으로 아이들에게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어른은 그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뒤늦게 잘못을 깨닫게 된다. 이 작품을 어떻게 봐야 할까? 아무리 봐도 이 작품은 아이들이 읽는 동화로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1973년 ´샘터´ 잡지에 실린 작품인데 샘터는 어른들이 보던 잡지니 작가는 혹시 어른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이렇게 쓴 것은 아닐까. 하긴 이렇게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 작가는 ´샘터´에도 다른 동화들을 발표하였으니까.

어른의 잘못으로 빚어진 일들, 그래서 아이들도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는 이야기들이 종종 어린이를 대상으로 나오고 있는데 이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이런 잘못을 저지르면 안됩니다 하는 교훈을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모양인데 아이들이 왜 그런 교훈을 배워야 되는지 모르겠다. 그건 어른들이 배워야 할 교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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