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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유관순은 1904년, 충청 남도의 아름답고 조용한 마을지령리에서 인자하신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3월15일, 관숙의 일곱 번째 생일날때입니다. 그때는 유관순 자기 생일도 모른 채 아침 일찍 친구들과 산으로 들로 봄나물을 캐러 다녔습니다. 그러다 한낮이 되어서야 배가 고파 짐에서 돌아온것입나다. 별나게 차려진 음식을 보고 유관순은 눈이 휘둥그래져 묻자, 아버지께서 자기 생일인 줄도 모르냐며 웃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유관순이 사내였더라면 얼마나 좋겠냐구 말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아버지는 말끝을 흐리며 수저를 들었습니다. 유관순은 배가 몹시 고팠던 참이라 허겁지겁 떡을 집어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밖에서는 벌써 친구들이 몰려 와 유관순을 불러 댔습니다. 유관순은 어머니가 싸 준 두툼한 떡 꾸러미를 들고 친구들이랑 산으로 향했습니다. 어뜻 유관순의 아버지 얼굴에 그늘이 졌습니다. 유관순을 공부를 시키러는 돈이 없어서 유관순의 아버지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어머니도 몹시 걱정스러운 표정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다 잠든 고요한 밤이었습니다. 이깊은 밤에, 유관순의 아버지는 툇마루에 나와 앉아 팔장을 끼고 시름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 때, 유관순의 어머니가 잠에서 깨어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마루 밑에서 잠자던 강아지도 어느새 조르르 기어 나와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반가워했습니다. 유관순의 어머니가 ˝당신 몸도 불편하신데 왜 이러고 계세요? 유관순의 아버지가 ˝달이 하도 밝아서 달구경 하고 있었소. 옛날의 이태백을 생각하면서 말이요.˝ 그러나 어머니가 아버지의 고민을 모를 리 없었습니다. ˝또 그일이 걱정되어 참 못 이루시는 거죠? 하지만 근심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니 너무 그러지 마시오, 그러다 큰병 나시겠어요.˝ ˝염려 마오. 달 구경했을 뿐이니.˝ 어미니를 위로하려고 애써 태연한 체했지만, 사질 유관순 아버지에게는 큰 근심이었습니다. 유중권 씨는 일본 사람들한테 민족적 서러움을 당할 때마다 분함을 삼키면서 빨리 학교를 세워야 한다고 마음을 다졌습니다. 하루 빨리 자라는 세대에게 신교육을 시커야 나라의 힘을 길러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학교를 세우는 쉽지 않았습니다. 마을 어른들은새로운 학문을 무조건 반대하였습니다. 아무리 차근차근 설명해도 이해하려 들기는커녕 호통만 쳤습니다. 유중권씨는 혼자라서라도 학교를 세우기로 했습니다. 그 때부터 직접 발벗고 나섰습니다. 유중권씨는 논밭을 다팔고, 일본인 고마마에게서 300냥을 빌려 학교와 교회를 세웠습니다. 유중권씨가 세훈 홍호 학교에서는 초등과와 고등과로 나누어 신교육을 시켰습니다. 견디다 못한 유중권씨는 마침내 병이 나서 몸져 눕게 되었습니다. 유관순은 정성껏 아버지 병 구완을 하였습니다. 유관순이 정성껏 아버지 병 구완에서 아버지는 다시 일어났습니다. 공주에서 살고 있는 미국인 선교사 사부인을 만나 의논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유관순을 서울로 보내어 공부를 했습니다. 서울 정동에 있는 이화 학당(지금의 이화 여자고등학교)은1886년에 미국 선교사들리 세운 나라 최초의 여자 학교입니다. 유관순은 거기서 공부만 열심히 했습니다. 유관순은 활발하고 슬기로운 아이였습니다. 1919년, 유관순은 16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던 어느 날 유관순의 친한 친구와 함께 학교 뒤쪽에 있는 동산에 올라갔습니다. 드디어 이틀날 오후 사감 선생님은 기숙사 학생들을 모아 고종 황제께서 돌아가셨다는 슬픈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더 놀랍고 기막힌 것은, 임금님께서 잡수신 음식에 독약이 들어 있었다는 소문이 돈 것입니다. 국민들의 분노는 하늘 끝을 찌를 듯이 대단했습니다. 한 달이 지나 유관순은 2월 마지막 날 저녁이었습니다. 나뭇가지로 힘없이 퍽하고 쓰러질뿐입니다. 그러나 여러 개가 합치면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드디어 3월 1일은 토요일..수업은 없었습니다. 오후 2시쯤 되자 ˝대한 독립 만세!˝ 소리가 울렸습니다. 유관순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열심히 공부하고 별렀습니다. 유관순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총을 맞고 돌아가 셨습니다. 그리고 유관순은 잡혀 감옥에서 심한 폭행을 당하고 마지막으로 유관순은 ˝대한독립만세!˝ 하고있었습이다, 1920년 10월 12일 이 땅에 아름다운 가을이 한창 물들어 가고 있을 때 유관순은 17세 꽃다운 나이로 감옥에서 참혹하게 일생을 마쳤습니다.
저는 이책을 읽고 많은 걸 배웠습니다. 유관순 누나의 애국심이 하늘까지 우주까지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유관순의 아버지도 참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자신의 논과 밭을 다 팔고 학교를 세운 그 정신을 본받아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다음에 커서 유관순 누나처럼 용기 있고 지혜롭고 끈기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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