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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부전선 이상없다 |  | |
| 이름:박승범
◎ 도서명:서부전선 이상없다
◎ 저자:E.M.레마르크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읽고
내가 이제껏 보아온 전쟁에 관한 영화나 다큐멘터리들은 나에게 전쟁의 비참함과 허무함들을 잘 가르쳐주었다. 하지만 이번에 이 책을 보며 나는 전쟁의 그러한 것들뿐만 아니라 더 깊은 것을 느끼고 더 많은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18세에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레마르크가 자신이 체험했던 그 숱한 죽음의 고비들을 토대로 쓴 이 책은 전쟁의 잔인함과 무의미함을 알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쟁과 그 영향에 대하여 이야기해주고 있다. 처음은 입대한 지 얼마 안되는 19세의 청년 파울과 그 동료들이 운좋게 한끼를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되어 만족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다지 대수롭지 않을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피를 말리는 긴장감 속에서 사는 그들에겐 이미 큰, 그리고 매우 오래간만의 행복이다. 그러나 친구 켐머리히가 아수라장같은 야전병원 한 켠에서 눈물을 흘리며 죽으면서 현실은 냉정히 돌아온다.
제1차 세계대전. 그 광기의 폭풍우로. 처음 입영 당시, 국가와 학교는 그들을 전쟁을 내몰고 있었다. 전쟁이 어떤 건지 잘 모른 채 입대한 그들은 전혀 다른 세계에 적응해야만 했다. 그들이 들어온 곳은 군대 속, 그리고 전쟁 속이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10주간의 훈련으로 그들은 ´병사´가 되었다. 그리고 서부전선 최전방에 배치되었다. 그 때부터 그들은 전쟁에게서 인간다움을 빼앗겨 갔다. 전선에서의 긴장감과 불안감,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다는 그 외로움. 익숙해져버린 포탄소리와 총탄 소리.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배고픔과 전우의 죽음. 그렇기에 그들은 술 한잔, 담배, 통조림 하나에도 웃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웃음 역시 진실은 아니다. 그러한 일상 중의 어느 날, 평화가 찾아온 후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파울과 친구들은 문득 깨닫는다. 이미 그들은 이 전쟁에서 멀어질 수 없다고. 세상에 아직 그 무엇과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채 입대한 그들로서는 이 전쟁이 모든 것이다. 이 생활과 이 전투가. 전쟁 중에도,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들은 전쟁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이미 전쟁은 이들 청년들로부터 희망을 앗아가버렸다. 지금은 그저 죽지 않기 위해 적을 죽이고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이러한 전쟁에서 인간의 감정과 이성은 이미 사라져버렸다. 무엇이 누구에게 더 득이 되는가. 그들이 전쟁을 해야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미 그들은 전쟁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었다. 휴가를 나온 파울은 그러한 점을 깨닫는다. 이미 상실되어 버린 자신의 삶을 느낀 것이다. 자신은 전쟁 속에 있다. 집에는 자신이 없다. 어떨까? 전쟁이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망가뜨린 것을 알았을 때, 그 때의 참담함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난 느꼈다. ´그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아니,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이미 그는 마음이, 정신이 죽어버렸기에.
결국 다시 전장으로 돌아온 그는 어느 전투 중, 포탄 구멍 속에서 적에게 휩싸이는 위기를 맞는다. 그러다가 자신에게 다가온 프랑스군인을 반사적으로 칼로 찌르고는 그가 죽을 때까지 바라봐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 동안, 파울은 무엇을 느꼈을까? 자신이 죽인 자가 눈앞에 있다. 꺼져가는 생명이 눈앞에 있다. 그 때, 여러 가지가 그의 머리를 스친다. 어느 프랑스인의 죽음, 그의 가족들, 그자신의 가족들. ´무엇때문일까...?´
그 한없이 밀려오는 허무함과 그 허무함 속에 자신이 죽인 사람, 그러한 삶이라도 살기 위한 본능적인 살인. 전쟁은 그 모든 것을 낳는 것이다. 죽음. 그것은 이미 고통이 아니다. 유일한 해방구이다. 스스로 죽을 수 없다면 끝까지 싸울 수밖에 없다. 그는 마침내 죽었다. 만족한 얼굴로. 전쟁이 이끈 죽음 속에서. 그의 얼굴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또한 그러한 한 병사의 죽음에 ´서부전선 이상없다´라고 말하는 현실에서는 또 무엇이 느껴지는가? 전쟁에 대하여 잔인하리만큼 사실적인, 그래서 더 슬프기까지한 이 소설은 사실 이상이다.
과거에, 분명 전세계에는 수십만의 파울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최후 역시 파울과 마찬가지이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전쟁에 대한 강인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전쟁, 그 인류의 광적인 역사의 흐름은 절대로 또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분명 죽어갔을 수만, 수십만의 파울들을 위해서라도.
<이규태의 ´국어사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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