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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중일기 |  | |
| [난중일기를 읽고 난 나의 소감]
대천중학교3학년 임한용
읽은날짜:1월22일 출판사:예림당
처음 ´난중일기´를 접하게 된것은 내가 초등학교6학년 때였다...그때 어머니께 사달라고 조른 후 어렵게 책을 구입하게 돼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이순신 장군을 존경했던 터라 읽기전에 엄청난 기대감에 서서히 읽기 시작했다.난중일기는 내 기대를 저벼렸다...정말 실망했다...어린이를 대상으로 삼은 이책이 단어 하나하나가 한자어에다가 문장도 너무 이해하기가 어려웠었다.그래서 책을 먼지속에 놔두었다.몇년후에 이제는 읽어도 대충 알아보겠지 하는 마음에 먼지를 털고 책을 접하게 되었다.내용을 보니 별로 교훈적인 말은 없었지만 개중에서 정말 이순신 장군의 우리나라에 대한 충성심과 효심을 알수있게 해주는 문장이 많았었다.기억에 남는것은 이순신장군은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때 장례식에 참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대충 내용 요약을 해보자면 이렇다...
이순신 장군은 1545년 3월 8일 자정에 한성 건천동에서 이정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따.태어날 때 어머니 변씨의 꿈에 시아버지가 와서 ´ 이 아이는 반드시 귀하게 될 것이니 이름을 순신이라 지으라; 하였으므로 남편에게 말하여 이름을 그대로 지었다 한다. 자는 여해,시호는 충무,본관은 덕수이다.
이순신은 어려서 아이들과 놀 때에도 항상 전쟁놀이를 했고,그럴 때마다 꼭 대장노릇을 했따.또한 늘 활을 가지고 다니며, 동네의 어른이라도 옳지 못한 일을 하는 것을 보면 곧 활을 당겼다고 한다.
그는 커 가면서 무예에 뜻을 두어, 말타기와 활쏘기 연습을 하는 등 온갖 재능을 연마하였다.그리하여1572년 8월,28세때훈령원의 별과 시험에 응시했다. 그 시험에서 말을 달리다가 말이 넘어지는 바람에 떨어져 왼쪽 다리가 부러졌다. 모든 사람들이 죽은 줄 알았으나 그는 곧 일어나 버드나무 껍질은 벗겨 상처를 싸매고 다시 말을 달려, 보는 사람들을 감탄케 하였다.
1576년 봄, 32세때 무과에 급제하여 12월에 함경도 동구비보의 권관이 되었다. 이것이 그의 벼슬길의 첫출발이었따.
1579년2월,35세때 훈련원 봉사가 되었고,그 해 10월에 충청 병마절도사의 군관이 되어 갔다가 1580년 7월,36세 때 전라도 발포 만호가 되었다.
1582년 1월에 파직되었다가 그 해 5월에 다시 훈련원봉사가 되었다. 1583년 7월에 함경남도 병마절도사 이용 막하의 군관이 되었고, 그해 10월에 함경도 건원보 권관이 되어 호족 울지내의 침입을 막아 공을 세웠다.다음 달 11월에 정례적 승진으로 훈련원 참운이 되었으나, 15일에 부친이 세상을 떠나 휴직하고 아산으로 달려가 3년상을 치렀다.1592년 4월14일,임진왜란이 터지자 왜군20여만 명이 물밀듯이 쳐들어와 5월2일에 한선이 함락되었다.선조는 의주로 피신하고, 6월13일에는 평양이 함락되었다.이순신은 이운룡에게 원군 요청을 받아서 원군을 보내 일본놈들에게 결정타를 입히게 돼었다.왜놈들은 분한나머지 우리 나라사정에 밝은 요시라를 이용해 갖가지 거짓 정보를 흘림으로써 이순신을 역적으로 몰려고 하였다.이순신은 결국 옥에 갖히게 되었다.
중략...
여기서 내가 얻을수 있는 교훈은 나라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충성, 뛰어난 지략과 통솔력을 지닌 이순신 장군은 우리 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며, 임진왜란 때 나라의 운명을 건진 민족의 등불었다.라는 것을 알수 있었고 나 또한 앞으로 이렇게 되고자 한다.
얼마나 이순신이 대단한 사람인지 일본사람들도 이렇게 평한다.
일본의 한 학자 토쿠도미 조이치로는 충무공의전사를 영국 넬슨 제독의 죽음에 비교하면서 ´그는 이기고 죽었으며 죽고 이겼다. 임진왜란7년 동안 공을 세운 자가 많지만 전쟁에 있어서는 이순신만을 자랑삼을 수 있다´고 치하하였다.
앞으로 나도 이순신 장군같은 훌륭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남의 잇속을 챙기지 않고,남의 간섭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한 목표만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 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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