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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망 |  | |
| 제목:희망
지은이:양귀자
펴낸이:살림
칠판 왼쪽에서 시작해서 오른쪽 끝까지 선을 쫙 긋고 처음은 1, 중간은 40, 끝은 80, 이라는 숫자를 적는다. 이 긴 직선이 나의 인생이라면 대충 17정도 되는 부분에 색이 다른 분필로 표시를 하고 저 뒤로 물러나 본다. 내가 지금껏 살아온 날들이 아주 작아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서 눈높이를 맞추고 0에서 17까지의 공간을 바라보면 그 직선은 이미 내 시야를 꽉 채우고 있다. 내 눈높이의 내 인생은 이만큼이나 크고 중요한 것이다. 17세, 아직 세상의 ¼도 채 다 바라보지 못했다. 나보다 많은 세상을 보고 더 많은 세월을 지낸 어른이란 사람들에게 나는 작고 우스울지도 모른다.
내 주위에 수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과 함께 지내온 날들. 지금은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에게 있어서 나의 생각에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때는 이마도 유치원 시절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때 만난 중요한 사람이 있다. 당시 우리집은 초등학교에서 3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학생들이 많으니 주위에 먹는 장사 여기엔 분식집, 콩콩이와 쥐포 그리고 소세지를 구워 먹는 집, 뽑기 파는 할머니들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유일하게 싫어하는 붕어빵 아저씨가 있었다.
붕어 아저씨, 그게 내가 그 아저씨에 대한 호칭이었다. 아마도 붕어빵 아저씨, 붕어빵 가게 아저씨보다는 붕어 아저씨가 발음하기 쉬웠을 것이다. 사실 붕어 아저씨라고 부른 적은 별로 없다. 다른 사람에게 붕어 아저씨를 말할 때 그렇게 부른 것 같다. 붕어 아저씨는 우리집 앞 골목에서 정말 초라하게 장사를 했었다. 그때 붕어빵이 얼마였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단지 종이 상자를 찢어서 거기에 붕어빵이라고 써 있었고 아저씨의 등에는 은색통이 있었다는 것이 기억난다. 내가 유치원을 다녀오면 그 아저씨가 보였고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엄마와 아빠는 일하러 나갔으니 말이다. 처음에 붕어 아저씨와 어떤 식으로 얘기를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아저씨는 자주 내게 붕어빵을 그냥 줬었다. 붕어 아저씨는 보통 붕어빵 장사하는 사람답지 않게 깔끔하게 생겼다. 머리가 짧고 안경 쓴 그 아저씨는 참 멋있었다. 초등학생 저학년 꼬마들이 이미 끝나고 그때부터 아저씨와 나의 시간은 시작된다. 유치원짝 진호 얘기도 했고 동생 얘기 강아지, 앞집 주인 아저씨, 텔레비젼 얘기 여러 이야기를 했다. 처음엔 아저씨가 여러가질 물었었고 나중엔 거의 내 말만 아저씨가 들어주는 입장이었다. 나는 그게 좋았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난 그때도 그렇게 지금도 그렇고 아빠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아빠가 무능력하고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길 바랬다. 아빠를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정도인데 얼마나 나에게 어려운 인간이었을까? 붕어아저씨께 그런 말을 했었다. 아저씨가 우리 아빠였으면 좋았을 거라고. 한참을 빙그레 웃더니 반죽통에 반죽 호스를 걸고 목장갑을 벗고 내 머리를 쓰다듬던 아저씨 쌀쌀한 가을 날씨에 어울리는 참 따뜻한 감촉이었다. 아빠는 분명 나를 아주 많이 소중히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 내가 맏딸이기 때문이라고 자신이 자신의 자식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나의 아빠도 분명히 그럴 것이라고 말하는 아저씨. 붕어 아저씨, 아마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도 나와 가장 소중함을 나눈 사람이다. 노릇한 붕어빵 모양처럼 조용히 나의 친구가 되어준 아저씨. 따뜻한 말로 세상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려준 붕어 아저씨. 그 아저씨를 지금 만날 수 있었으면......붕어 아저씬 그해 겨울 방학을 하고 며칠 후부터 보이지 않았다. 그때 괜히 서럽고 아쉽고 그리워서 울었던 것 같다. 거울 앞에서 엉엉 울었던 것 같다. 지금도 가끔 혼자 울 때 거울을 보곤 한다. 거울 속의 내가 함께 슬픔을 나눠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붕어 아저씨 이야기는 매우 재미없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런 내가 언젠가부터 호감을 갖게 되는 사람들의 타입이 붕어 아저씨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 좋아하던 선생님도, 텔레비젼 속에 들쑥날쑥하는 연예인을 좋아하던 것도, 주변의 내가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다. 소박하고 친절하고 따뜻하고 깔끔하고 그런 게 모두 같은 사람과 닮았다. 외모와 나이까지도.
나는 나보다 어리거나 나와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나보다 나이가 훠얼씬 많은 사람들이 좋다. 어떻게 보면 나는 잘난 척에 건방지기가 하늘 ×구멍을 찌르는 것 같은 거다. 내 수준이 월등하고 또래의 수준이 열등하다거나 하는 생각도 약간은 있을 것이다. 그러니 잘난 척도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보다도 난 어른들에게서 따뜻한 기운을 더 발 느낀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어른들에게 실망하고 불신하게 되는 경향도 있다. 난 매일을 거짓으로 살아간다. 솔직하지 못하게......내가 만약 느낀 대로 행동하고 말한다면 내 주위엔 사람의 냄새조차 사라질 것이다. 그 정도로 나는 나쁜 생각과 나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가끔 내가 악마라는 생각이 든다. 극과 극이 끌린다고 하는 것처럼 악마인 나는 천사만큼은 아니겠지만 천사와 비슷한 정도의 순수하고 착한 사람을 좋아한다. 가끔 내 주위의 사람들을 떠올리곤 하는데 참 신기한 게 있다. 나는 일방적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확대 해석해서 스스로 상처받고 상처 입히고 그런 것 같다. 내가 나를 본 모습과 다른 사람이 날 보는 모습이 많이 다르다. 내가 궁금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붕어 아저씨에게 어떤 아이였었는지......그것이 알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오늘 하려던 이야기는 나에 대한 것도 붕어 아저씨에 관한 것도 아니다. 전에 엄마가 읽고 있던 천년의 사랑이란 소설. 그 책을 쓴 양귀자라는 여자의 또다른 소설 희망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를 하려고 누구에게도 재미없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말을 이렇게 많이 하게 된 것이다. 이 글을 읽게 될 사람에게 창피하고 미안하고 그렇다.
두 권이나 되는 장편소설 희망. 너무도 평범한 주인공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다. 내용에 큰 감동을 쥐어짜내는 그것도 없고 흐름의 큰 반전이나 톡톡 끼웃하는 웃음도 없고 아주 시린 슬픔 같은 것도 없었다. 순전히 내 생각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를 테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 훨씬 큰 그것이 있다. 뭐냐고 묻는다면 말 못하는 나는 어색하게 대답을 해야겠지. 내가 모두를 보는 눈과 주인공이 조연들을 보는 눈과 다를 게 없다는 것, 나와 같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가득차 있다는 것, 사람이 얼마나 상대방에 대해 민감한 것인지,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의 눈과 가슴, 머리속에 남는 슬픔이란 것이 얼마나 따뜻하고 새로운 것인지를 보여준다는 것이 이 소설의 단 하나뿐인 내가 느낀 즐거운 맛이었다. 희망은 아마도 누구에게나 있는 단 하나의 공통점인지 모르겠다. 주인공에게도 엄마 아빠에게도 멋쟁이 누나에게도 나도 부드러운 남자라는 형과 형의 친구들 정직한 찌르레기 아저씨께서도 뽕짝 아줌마도 그리고 나의 붕어 아저씨 어린 내게도......
형의 복수와 나의 복수. 아빠를 사랑할 수 없는 나의 마음에 언제나 있는 ´나쁨´ 그것을 욕할 수 있을까? 우연이에게 보라처럼 나에게도 누군가 이야기의 끝을 보여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나성여관인 나의 집에도 이겨가기 위해 수없이 쓰러져가는 사람들에게 따뜻함과 희망의 싹이 보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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