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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들의 풀잎노래 |  | |
| 지금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는 이곳
<아이들의 풀잎노래>를 읽고
지명석 (고3)
<양정자,/창작과비평사>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국어선생님의 권유가 첫번째 동기였고, 만화책 외에는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시집이라는 것에 왠지 느낌이 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10년 이상을 학교에서 보내고, 하루의 10시간 이상을 학교 생활에 소비한다.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여러 선생님들과 집 생활처럼 야단도 맞고, 맞기도 하면서 익숙해지지 못해도 익숙해져야 한다. 초등학교 시절엔 학교가 무섭고 친구들은 좋다. 또 짓궂고, 장난꾸러기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것에도 기쁘고 그렇다.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에 우리들을 보고 어른들은 어린이라고 하는 것 같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여자아이들이 고무줄을 하고 있음, 중간을 뚝 끊어놓고 신나게 줄행랑을 치고 또 여자아이들의 치마를 들추는 등 어쩜 우리 부모님들께서도 했음직한 개구쟁이짓을 나도 똑같이 하고 자라왔다.
나의 이런 모습은 옛시절 나의 초등학교 때 선생님들을 어떻게 보셨을까?
짓궂은 이런 모습들도 다 선생님의 눈에는 한없이 사랑스럽고 귀여웠을까?
이 시집에 이런 글이 있다. “그 녀석 소리없이 엉금엉금 기어가서 화장실에 살짝 다녀온다 나는 까마득히 모른 척 해준다 화가 나기는커녕 오히려 그 녀석 귀여워 죽을 지경이니 나야말로 정말 문제교사 아닌가!”
우리의 스승들은 이렇다. 항상 우리를 사랑이라는 울타리 안에 가두고 여지없이 넓은 초원 벗삼아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고 울타리와 함께하는 삶을 알게 해주신다. 중학교 시절 나는 코흘리개 시절의 티를 벗고 생각도 많이 하고, 조금씩 나라는 존재를 인식했던 시기였다. 방황이라는 것도 일찍 경험해보았다. 그때 나의 스승은 나에게 따뜻한 충고로 더 이상의 방황이 없도록 방패역할을 해주셨다. 그때 나의 스승의 눈에 난 마치 자신의 친아들이나 되는 듯 그렇게 항상 내 마음의 사다리 역할을 해주셨다. 이 즈음에서 또한편의 시가 생각이 난다. 「종이비행기」 라는 시에서 이런 부분이 있다.
“저렇게 미련없이 날려버릴까? 부러진 아이들의 상한 날개, 추락한 아이들의 꿈을 보는 것 같아 한없이 애처러운 저 종이비행기, 비행기들…”
어쩜 중학교 선생님께서는 내 마음에 종이비행기를 접어주셨는지 모른다. 헛된 생각을 날려버릴 수 있는….
그리고 지금 나는 어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고등학교를 사랑과 행복…좌절과 실패를 배우며 1년 앞으로 다가온 나의 사회생활을 설계하며 늦은 적응을 시작했다.
1학년 1학기초에 나는 중압감에 사로잡혀 앞으로 3년의 고교시절을 걱정했다.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듯 친구들이랑 노는 것은 좋은데, 학교에 적응하기는 하늘의 별을 따오는 것보다 힘들었다. 하지만 좋은 스승님 덕분에 작은 흔들림도 없이 일년을 그렇게 보냈다. 그리고 지금 나 왠지 불안해보이긴 하지만 좋은 친구들과 생활을 하면서 내 모습을 되돌아보고 있다.
이제는 마냥 철부지이기엔 내 나이가 허락치를 않는다. 때로는 조용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아이들과 부딪치고, 선생님들과 부딪치면서 삶이라는 것, 미래라는 것에 대한 설계를 한다. 이 설계는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이면 완성이 될 것이다. 아마 그 때쯤이면 내가 걸어온 12년이라는 시간이 내 머리속에 하나의 필름으로 남아 나중에 중년이 되었을 때 지금의 모습에 웃음지을 것이다.
지금 조금 힘들다고 좌절한다면 나에게는 지우지 못할 상처뿐…중년의 내 모습에는 얼룩진 필름들만이 기억될 것이다. 내가 걸어온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반 아이들만큼이나 많은 선생님들이나 지명석을 보살펴주셨다. 그분들을 모두 어머니․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싶다. 내가 걸어온 앞길의 가로등이신 어머니․아버지 감사합니다.
[애듀넷/전북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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