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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들 |  | |
| 김상윤
첨단 엔클로져 운동에 대한 생태론자의 반격: 반다나 시바의 은유와 폭로, 그녀가 말하는 것들
손에 쥐어 들고 단숨에 끝까지 읽어 내려가게 되는 책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말초적 흥미를 자극하는 무협소설 외에, 내게 그토록 흡인력을 발휘하는 책을 만나는 일은 일년에 서너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얼마전 우연히 서점에서 마주친 작은 번역서, ‘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들’은 오랜만에 책 읽는 흥미를 북돋우어 주었다. 책의 두께와는 반비례하여 꽤나 심각한 고민거리가 남기는 했지만…
대단히 깊고 명료한 통찰과 지성의 소유자임에 틀림없을 저자는 풍부한 은유를 통해서 독자를 매우 전문적인 생태론적 사유의 자궁 안으로 이끌고 들어간다.
‘세상을 선과 악, 빛과 어둠, 진실과 허위로 재구성하는’ 유서 깊은 이원론적 은유는 한 여성 생태운동가의 저술 속에서 더욱 세련된 비판과 폭로의 칼날로 변환된다. 반다나 시바는 대비되는 명암의 은유 속에서 독자들에게 무엇인가를 줄기차게 촉구한다. 하지만 그녀의 저술은 나약한 시적 은유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 책이 단순한 지적 호기심, 환경 혹은 생태 문제, 농민들의 삶, 신자유주의, 페미니즘, 제3세계, 전통문화 등에 관심을 지닌 광범위한 독자층에 설득력 있는 호소가 될 수 있는 것은 낯익은 은유법 뒤에 냉철한 사실들에 대한 논리적 분석에 토대를 둔 번뜩이는 주장들이 개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는 생명공학과 그것에 관계된 지적재산권 규정이다.
시바에게 생명공학에 의해 조작된 생물체들은 초국적기업들의 제국주의적 수탈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들의 약탈행위를 정당화하고자 준비되고 있는 WTO의 지적재산권 협약은 범지구적 수준에서 자연과 농민들을 배제시키려는 첨단공학으로 무장된 지식의 엔클로져이다. 20세기 후반에 화려하게 등장한 생명공학과 초국적 기업의 이해를 대변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의 결탁으로 성립된 지금의 움직임들이 사실 2차 세계대전 이후 발전주의(developmentalism)의 가면을 쓰고 제3세계 농민들, 여성들을 착취해갔던 동일한 서구 자본주의의 새로운 식민지 사업임이 예리하게 파헤쳐지고 있다. 제국주의의 뼈대를 구성하는 담론이었던 오리엔탈리즘이 이제 생명체 내부의 세포질과 DNA까지도 먹어치우며 번식해가고 있음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
생명체의 자기조직능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치열한 전쟁이 이 작은 책에 묘사되고 있다. 혼작과 단작의 대결이 벌어지고 있으며, 토착 지식과 지적재산권이 결투한다. 민중의 지식이 초국적 기업의 생물자원 탐사팀의 연구와 병법을 겨루며, 지역공동체의 운동이 세계화의 공세에 저항한다. 페미니즘적 사유와 가부장제적 사유, 생태론적 담론과 발전주의적 담론이 충돌한다. 평화와 폭력, 공유와 독점, 다양성과 획일화…. 숱하게 많은 은유의 파도들을 넘어, 그녀가 우리의 손을 잡아끌어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결핍과 풍요에 대한 기존의 관념이 정반대로 뒤바뀌는 곳이다. 문화적 다양성과 생물적 다양성이 수렴하는 미래의 그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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