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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처
단편 소설 빈처는 극도의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자본주의 사회제도에 타협하지 않고 자기의 양심과 지조를 지켜나가는 식민지 인텔리를 형상화하고 있다.
주인공 나는 일찍이 불타는 향학열을 지니고 지식의 바닷물을 마시려고 집을 떠나 해외로 나다니다 경제적인 문제로 희망을 실현하지 못하고 돌아와 있는 지식청년이다. 그는 가정에 돌아왔으나 취직을 하지 않고 오직 독서와 창작에만 전심전력한다. 아내가 시집을 올 때에 가지고 온 옷가지들을 전당포에 잡혀 간신히 그 날 그 날을 살아왔으나 그것마저 밑창이 났다. 주인공 나의 이러한 생활처지는 인간의 양심과 참된 뜻을 받아들이지 않는 당대 식민지 사회의 모순과 불합리를 보여주고 있는 동시에 그러한 불합리하고 모순된 사회와 결코 타협하려 하지 않는 양심적인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살림이 구차하고 어려워지지만 결코 양심과 지조를 저버리고 특권자들에게 아부하는 비굴한 삶을 살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모진 생활난에 시달리면서도 물질 생활의 만족을 더 없는 행복으로 여기는 친구 T의 속물 근성과 남편의 방종을 욕하다가도 그가 값비싼 물건을 사주기만 하면 대번에 기분이 돌아서는 처형의 허영심을 경멸한다. 주인공은 장인의 생일날에 술에 취한 자기를 인력거에 태워 보낼 때 그 삯을 자기에게 주었더라면 책 한 권이라도 사보았을 것이라고 몹시 안타까워한다.
이와 같은 남다른 포부와 이상을 안고 독서와 창작 수업에 열중하는 주인공 나의 정신세계는 높으며 따라서 온갖 세속적인 부귀와 영화도 그의 신념과 의지를 꺾지는 못한다. 작가는 이러한 주인공의 형상을 통하여 시대의 요구와 이상에 의해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아름답고 고귀한 정신과 이상을 적극 옹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통과 불행도 달게 이겨나가는 새로운 윤리도덕의 힘을 확인하고 있다.
핏기 없는 얼굴에 초라한 몰골로 남들의 수모를 받으며 『보수 없는 독서와 가치 없는 창작』으로 해를 보내는 남편을 바라고 살아오는 아내의 강직했던 그 성격에도 이제는 실망의 빛이 도는 듯한 감을 느끼는 주인공의 심정에는 아프고 괴로운 느낌이 없지 않다. 아내도 사람이며 더욱이 섬세하고 예민한 여성이다. 하기에 심각한 물질적인 빈곤 앞에서 때로 동요하고 고민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인공 나는 아내에게서 보다 억세고 미더운 것, 남편의 포부와 이상을 자랑하고 받드는 성실성과 신뢰를 찾았을 때 서슴없이 그를 『나에게 위안과 원조를 주는 천사』라고 부른다.
작가는 이러한 아내의 형상을 통해서 시대적 양심과 지조를 가지고 참되게 살아나가는 사람을 의지하고 따르는 강인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이 소설 빈처는 식민지 시대에 시대적 양심을 가지고 살아가려는 지식인들의 애국적인 지향과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 물론 작품에서는 그러한 지향과 입장을 구체적인 내용과 뚜렷한 목적에 따르는 적극적인 실천과 결부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작품은 불합리한 일제 식민지 통치 사회에 대한 지식인들의 울분과 반항 의식을 섬세한 내면 세계에 대한 사실주의적 묘사를 통하여 진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하는데 그 의의를 둔다.
작가 현진건은 특히 식민지 시대의 지식 계급의 양심을 굳게 지킨 인물이다. 동아 일보에서 일할 당시 베를린 올림픽 대회에서 마라톤에 우승한 손기정의 일장기 말살 보도 사건에 관련되어 복역한 사실만을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의 소설은 1인칭 화자의 자기 고백적 형식과 반어적인 대립 구조로 인하여 사실주의적 경향을 짙게 띠고 있다. 작가 스스로도 ´시간과 장소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 문학인인 다음에야 조선의 땅을 든든히 디디고 서야 할 줄 안다.´라고 밝히고 있듯이 현실 재현에 깊은 문학적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문학적 특징은 사실주의의 확립에 있다. 치밀하고 섬세한 사실주의적 묘사, 조화의 극치를 이루는 구성, 반전의 수법을 쓴 기교의 확립, ´나´라는 1인칭의 자기 고백적 시점의 사용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글 역시 이러한 현진건의 문학적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나´라는 1인칭을 사용한 점, 자기 고백적이고 섬세한 심리 묘사, ´나´라고 하는 확고한 이상을 지닌 인물과 T나 처형과 같은 물질의 향락 속에 사는 인물,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아내와 같은 삼각형 구조는 글의 조화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자본주의의 사회제도에 타협하지 않고 꿋꿋한 신념을 지켜 나갔다는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동시에 당시 지식인들의 한계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현실 세계에서뿐만 아니라 작품 세계 속에서도 당시 지식인들의 삐뚤어진 교육을 볼 수 있다. 식민지 시대라는 극한 상황이긴 하지만 외곬으로 자신의 신념만을 위해 살았다는 점,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고 혼자만이 고고한 척 살았다는 점이나 현실과 투쟁하려 하지 않고 현실을 도피했다는 점, 등은 실제적인 면에서 나약했던 지식인을 나타내고 있다. 정신적으로 식민지 시대를 헤쳐나가는 점은 정말 칭찬할 만 하지만 현실적인 면에서는 그들은 낙오자이다.
친구 T의 경우는 훌륭하게 현실을 살아갔다는 점에서는 칭찬할 만 하지만 정신적인 면에서는 그는 철저한 낙오자이다. 현진건은 이렇듯 완전하지 않은 인물들을 등장시킴으로써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건 아닐까. 단순히 식민지 시대의 저항을 담았다거나 하는 등의 평가는 너무나 식상하다. 이제 다른 관점에서 그의 작품을 해석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이렇게 보면 빈처에 등장하는 정말로 인간다운 인간은 ´나´의 아내가 아닐까 한다. 인간적인 고민과 번뇌를 통해 결국 남편을 의지한다. 아마도 대부분의 당시 사람들이 그와 같았으리라. ´나´나 T처럼 확고한 자신만의 뭔가를 지닌 채 살았던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지 의문이다.
빈처의 한문 표기는 본 적이 없어서 나름대로 이 제목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빈처(貧妻)는 『가난한 아내』라는 뜻으로 아내의 힘든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단어이다. 제목을 이렇게 해석하면 이 작품의 주인공은 ´나´인 것이 아니라 나의 아내가 된다. 정신적인 가치만을 추구하는 내가 현실 세계에서 어느 정도 견뎌낼 수 있는 것은 아내의 무한한 사랑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식민지하의 자본주의가 널리 퍼진 상황에서도 의지할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그 상황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거 같다.
단순한 스토리 라인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자칫 심각해질 수 있는 문제를 가볍게 언급하고 넘어가는 듯한 노련미를 구사했고 물 흐르는 듯한 문장은 독자를 위한 배려가 아닌가 생각된다. 초기 작품인 빈처에서도 그랬지만 문학적 완숙기에 접어든 때에 집필한 운수좋은 날 역시 물 흐르는 듯한 문체로 읽는 이로 하여금 책으로 빨려 들게 한다.
빈처는 식민지 사회에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나름대로의 길을 택해 삶을 이끌어 나가는 이야기이다라고 결론 내리고 싶다. 정신적 신념을 지킨 대단한 글이라는 건 너무나 식상하다. 신문학 발생에 얼마 지나지 않아 쓰여진 작품이라서 현대 소설과 여러 가지 차이점이 많고 작품 구성이 허술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전하려고 한 메시지가 분명하다. 비록 나는 다른 해석을 내리긴 했고 어거지적인 면이 없잖아 있지만 언제까지나 작품을 획일적으로 평가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억지를 좀 부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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