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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조선대학교 개교 54주년 기념>
중앙도서관 사이버 독후감 현상 공모 수상작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미술대학 디자인학부 3년 김성현(우수상 수상작)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이 사랑이 아니였음을 확인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이 소설을 읽게 되었고, 그래서 내 가슴이 더욱 애잔하다. 하지만 감명을 받은 것은 아니다. 사랑을 이루지 못한 베르테르와 로테가 측은할 뿐,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전개가 진부했고 등장 인물의 소심함에 실망 했으며, 소설이 사랑과 죽음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왠지 가볍고, 소설의 밀도가 약하다. 마치, 감정이 가슴 깊은 곳으로 고요히 흐르는게 아니라, 둥둥 떠있는 느낌이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난 어떠한 독백을 여러번 했는데 그건 바로 ´재미없다´였다.
내가 이렇게 느낀 것은 번역가의 책임이 크다. 괴테가 아무리 풍부한 감정으로 글을 쓰더라도 우리말로 번역하는 번역가의 감정이 메말라 있다면, 그 글은 딱딱한 형이하학에 불과하다. 번역가에 의해 작가의 순수하고 예민한 감수성이 파괴되고, 변형되고, 약간의 왜곡되어 외국 독자에게 소개 되는 것이고 외국 독자는 작가의 진실한 감정을 알지 못하고, 아니 느끼지 못하고 작가의 감수성을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번역하는 일은 (특히, 문학 분야에서...) 아무나 해서는 안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예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수상 소감을 읽어 본적이 있는데 그는 무엇보다도 번역가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가 아무리 훌륭한 글을 쓰더라도 변역가의 본능적인 감수성이 약하다면 작가의 느낌과 생각을 외국의 독자 및 심사위원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지 않을 것이고 깊은 감명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의 뒤부분에 옮긴이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평론한 글이 있어서 잠깐 소개 한다.
˝서간체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가장 두드러진 특색은 괴테 자신의 감정과 주관적 색체가 짙게 배어 있다는 점이다. 서간체의 자유로운 구성으로 개인적인 고백을 서술 하고 있는 이 소설로 했기 때문에 서정적이며 극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따라서 그 감동도 매우 절절하게 읽는이의 가슴을 파고 들 수 있다. ...... <중략>...... 이처럼 마력적인 힘을 가지고 세계인의 마음을 울렸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그 비극적인 내용 외에도 뛰어난 예술적 구성, 인간 심리의 완벽한 해부, 청춘의 싱싱한 표현, 아름다운 자연의 정확한 묘사 등등의 빼어난 문학적 가치로 인해 아직까지도 수많은 청춘 남녀들의 마을을 매료 시키며, 근대 이후 독일의 서구 소설의 한 원형에서 높이 평가 되고 있는 것이다.˝
옮긴이의 이러한 평론을 읽으며 아쉬운 감정이 스친다. 즉. 이 소설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이처럼 높이 평가 하거나, 감동을 받지는 않은 텐데, 이런 평론은 독자들로 하여금 이 소설의 높은 수준과 평가를 의심없이 받아 들이도록 무의식적으로 강요 하는 듯 하다. 이는 독자들을 향한 폭력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독자들에게 애초부터 생각을 못 하게 만든다. 그로 인해 우리는 조금씩 생각하는 방법을 잃어 가는 데도 아무도 느끼지 못 하고 있다.
독자들은 소설의 내면 보다는, 이러한 어떤이의 평론 만으로 그 소설을 평가는 경향이 있다. 스스로 평가하지 못 하는 것이다. 자지 자신의 생각과, 비판하는 능력과 시각이 주관적이지 못 하고 객관화 되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소설을 읽을 때 그 소설 뒷면 내지는 앞면에 버젓이 끼워져 있는 평론을 잘 읽지 않는다. 그것은 내 생각의 자유를 포박하고, 스스로 평가는 능력을 약하게 만들뿐 아니라, 고의적으로 소설의 위선과 허영의 편견으로 나를 인도하기 때문이다.
난 우리 넒은 이들이 기성세대의 계산적인 편집을 거부 할 수 있는 지혜를 갖기 바란다. 또한 개인적으로 우리 세대가 지금의 기성세대의 위치에 서게 될 때 소설이나 시집, 수필집을 출판 할 때 절대적이고, 주관적인 어느 한 개인의 평론을 넣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 후세들에게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을 키워 줘야 하는 이유 때문이다.
창작을 하는 어떤 사람이 후배들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는 후배들에게 본인들의 창작품 (글, 그림, 음악 등)을 세상에 내놓기 전에 평론가, 또는 기자 한 명 정도와는 반드시 친분을 가지라고 했다. 그 이유는 세상 사람들은 평론가나 기자가 ´좋다´ 라고 하면 ´좋다´ 라고 따라하고, 또 ´나쁘거나 싫다´라고 하면 생각 없는 대중들은 ´나쁘거나 싫다´라고 따라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말인가.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조종당하면 않된다. 이곳은 공산 국가가 아니다. 한 개인인 평론가나 기자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이 될 수는 없다.
소설 중에서 베르테르는 자유를 찾아 중앙 관직을 버리고 시골로 내려 왔지만, 그는 모르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인간은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나역시 자유를 무척 사랑한다. 난 모든 것이 절대적으로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 또한 자유이다. 구속하면 않된다. 어떤 사람은 새장 속의 새를 날려 보내는 것이 새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라고 내게 말하지만, 그건 새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지 않은 죽음을 주는 것 밖에 되진 않는다. 내가 새를 사랑한다면, 다만 새장의 문을 조용히 열어 주겠다. 새가 훨훨 날아가든지, 아니면 이곳에 머물든지 그 선택을 새에게 주겠다. 그리고 나는 가능하면 모든 것에 자신을 가두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다 못해 꽉끼는 옷 속에라도 날 가두지 않는다. 이처럼 자유를 사랑하는 내가 인간은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고 단언한다. 물론 조금이라도 자유롭고 싶어하는 베르테르의 몸부림은 이해가 가지만, 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성숙한 행동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인간은 안정을 바라면서 변화를 추구한다. 인간의 이러한 모순은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모든 것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해주진 않는다. 자유롭다고 느끼는 순간 새로운 모순과 갈등에 부딪히게 된다. 때문에 인간의 발달도 일정한 한계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인간은 자신의 모든 결정을 이 한계 안에서 맞추어 나가야 한다. 아무리 자연을 비롯한 모든 것의 주인이 되고 싶어하는 인간이지만 인간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계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베르테르의 7월16일 편지는 로테에 대한 그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짐작 할 수 있게 한다. 비록 길지는 않았지만 사랑이라고 느꼈던 시절에 나 역시 이러한 감정을 가졌었다. 그는 로테와 함께 있는 시간을 천국이라고 표현했다. 왜 천국이라고 표현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것은 사랑이 없는, 참 사랑이 없는 이 세상이 그만큼 남루하기 때문이다. 본인의 습작 노트에 천구이라는 제목으로 예전에 지은 시가 있기에 여기에 소개해 볼까 한다.

고달픈 삶 속에서
가끔 천국의 순간을 본다
천국이란
군간 허락되는 너와의 행복이
영원히 지속되는 곳이겠지

버릇처럼 비가 내려
넌 또 비에 젖겠지
내 비를 맞아 줄테니
이젠 도망가지 말아라
우리 함께 할 수 없다면
천국은 거짓이었어


알베르트 못지 않게 베르테르는 로테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이루지 못 함으로 인해 결국 죽음을 선택한다. 소설에서, 더구나 이러한 비극적인 사랑의 소설에서 죽음은 흔한 소재이다. 하지만 이 소설이 발표될 당시 독일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베르테르를 예찬한 나머지 자살자가 속출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놀랐다.
어쩌면 그렇게도 생명을 가볍게 생각하는지...
알량한 자기 연민에 빠져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 삶을 장난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난 정말 싫다. 혹자는 오죽 했으면 자살 했을까 하고 동정을 하지만 난 이것 만큼은 전혀 동정 할 수 없다. 베르테르 역시 동정 할 수 없다.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주지 못한다. 또한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난 이 소설을 시대를 잘 타고난 소설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이 소설이 처음 소개된 1777년에 경건주의와 합리주의, 보수주의의 사슬에 묶여 있던 젊은이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시대의 평론이 오늘날까지 전해져서 지금까지도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이 현시대에 발표 되었다면 과연 베스트 셀러가 되었을까?
솔직히 난 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양귀자의 ´모순´ 보다 인간 심리를 완벽하게 해부하지 못 했다고 생각하고 재미없었다. 다만, 그 당시 사회 분위기에 반기를 든 작품이라 하여 오늘날까지 훌륭한 작품으로 추앙 받는 것은 인정한다.
글을 마치면서 베르테르의 6월16일자 편지를 음미하며,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해 본다


˝그렇소, 나는 단지 이 지상의 나그네에 불과 할 뿐이오...˝
그래...잠깐 잊고 있었다. 나 역시 한 해만 살다가는 꽃임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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