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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내가 김용택 시인의 시집 『섬진강』을 처음 접한 것은 87년 여름이었다. 무엇
보다도 여타의 글쟁이들과는 다른 수수한 인상의 표지 사진이 마음을 끌었던 이 시집이 6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내가 가장 아끼고 애독하는 책 중의 하나가 되었다.
「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밤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간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이렇게 시작되는 용택의 시집을 펴들고 전라도 실핏줄처럼 가문 섬진강을 따라
가며 보는 농촌 풍경은 나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농촌을 따뜻한 어머니의 풍속과 훈훈한 인정을 떠올리게 하는 우리들 마음의 고향이다. 그러나 용택의 섬진강 시편들은 그런 우리의 고향이 이제 더 이상 콩 심은 데서 콩 거두고, 팥 심은 데서 팥을 거두는 정직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동화와 같은 세계가 아님을 절실히 깨닫게 해준다.
「텔레비전에선
감과 농촌 풍경을 비춰주며
가을 정취를 한껏 돋궜지만
그럴 때마다 아버님은
끙끙 앓으시며
저런 오살헐 놈들
감 땜시 사람 환장허는지 모르고
저 지랄들 한다고
텔레비를 꺼버리곤 하셨다.」
-섬진강 20 중에서-
「쌀보다 나락을, 나락보다는 논 가득한 벼를
벼보다 겨울 논을 더 좋아하시는 아버지
아버지의 농사는 언제나
논에서 풍년이고
논 밖에서 흉년인데
내 농사는 논 밖에서 풍년이고
논 안에서 흉년입니다 아버지
---中略---
아버지, 논으로 울고 논으로 웃고
논으로 싸워 아버지의 세상과 눈을 지키신 아버지
아버지의 적막하게 굽은 등이
오늘 따라 왜 이리 넉넉합니까
집에 들면 강 건너 밭 지심을 걱정하시는
어머님 곁에 앉으셔야
맘이 놓이시는 아버지
우리들의 아내는 우리들의 마음을 무엇으로 안심시킬까요
아버지.」
-논 중에서-
「온 동네가 비어갈 때
조합청사 새로 짓고
기계영농 권장될 때
조합빚만 늘어간다.

복지 농촌 경제교육
비료값이 올라가고
수매값이 동결된다.
---中略---
굽은 등이 휘어질 때
빌딩들이 높이 솟고
재벌들이 살이 찔 때
뼛골들이 비어가고
다국기업 차관경제
수출 작고 수입 많고
민족자본 종속되고
매판자본 살이 찌며
임금이 동결돼도
지엔피는 성장이니
이게 무슨 소리당가
---中略---
농사 질 땅 골프치고
기름진 땅 재벌 토지
먹고 놀기 관광단지
금수강산 망가지고
저그 놀면 문화창달
우리 놀면 퇴폐풍조
먹고 놀아 개판 치며
질서질서 외쳐대니
민족문화 민족정신
민족정기 개판 된다.」 ---中略---
-밥값 중에서-
젊은 사람들은 도시로 도시로 떠나가니 농촌 인구는 노령화되고, 빈집이 늘어나며, 지엔피가 성장할 때 조합 빚이 늘어가는 등 숱한 농촌의 현실이 그의 시속에 그대로 들어 있다.
그의 시들이 80년대 초반에 쓰여졌으니 10년의 세월이 흐른 셈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강산은 변했을지 몰라도 농촌 현실을 하나 달라진 것 없이
점점 암담해져 가니 안타까운 일이다. 얼마 전 다녀온 시골집 마당에는 아직도 공판 받지 못한 볏 가마들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뉴스 시간만 되면 추곡 수매가가 어떻고 UR이 어떻고 하는 소리가 듣기 싫어 애꿎은 담배만 피워 대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들리는 소문에는 우리 나라에도 문민정부가 들어섰다고 한다. 쌀 시장 개방이 확정된 지금 농기계 반값 공급이니, 신토불이니 하는 속 빈 강정 같은 얘기들은 이제 그치고, 우리 농촌의 실질적인 문제에 관심의 눈길을 돌리 줄 아는 정부였으면 한다. 용택의 이 시를 듣고 우리 농촌이 왜 소중한지, 찍힌 발등 거듭 찍혀도 땅을 믿고 땅을 지키는 우리 농군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줬으면 한다.
「환장허겄네 환장허겄어
아, 농사는 우리가 쎄빠지게 짓고
쌀금은 저그덜이 편히 앉아 올리고 내리면서
며루땜시 농사 망치는 줄 모르고
나락도 베기 전에 풍년이라고 입맛 다시며
장구 치고 북 치며
풍년 잔치는 저그덜이 먼저 지랄이니
우리는 글먼 뭐여
신작로 내어놓응게 문뎅이가 먼저 지나간다고
기가 차고 어안이 벙벙해서 원
아, 저 지랄들 헝게 될 일도 안된다고
올 농사도 진즉 떡 쪄먹고 시루 엎었어
풍년만 들면 뭣 헐 거여
안 되면 안 되어 걱정
잘 되면 잘 되어 걱정
풍년 괴민이 더 큰 괴민이여
뭣 벼불고 뭣 벼불면 뭣만 남는당게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때놈이 따먹는 격이여
아, 그렇잖아도 환장헐 일은 수두룩허고
헐 일은 태산 같고 말여
생각허면 생각헐수록
이 갈리고 치떨리능게 전라도 논두렁이라고
말이 났응게 말이지만 말여
거, 머시기냐 동학 때나 시방이나
우리가 달라진 게 뭐여
두 눈 시퍼렇게 뜬 눈앞에서
생사람 잡아 논두렁에 눕혀놓고는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똥 뀌고 성내며
사람 환장혀 죽겄는지 모르고
곪은 데는 딴 데다 두고 딴소리 하면서
내가 헐 소리 사돈들이 혔잖여
아, 시방 저그덜이 누구 땜시 호강 호강 허간디
호감에 날나리들이 났당게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 돋고
시원찮은 귀신이 생사람 잡는다는 말이 맞는개비여
사람이 살며는 몇백 년을 사는 것도 아니겄고
사람덜이 그러능게 아녀
뭐니뭐니 혀도 말여 사람은 심성이 고와야 허고
밥 아깐지 알아야 혀
시방 이 밥이 그냥 밥이간디
우리덜 피땀이여 피땀
밥이 나라라고 나라
자고로 말여 제 땅 돌보지 않는 놈들허고
제 식구 미워하는 놈을
성헌 것 못 봤응게
아, 툭 터놓고 말혀서
쌀금이 왜 이렇게 똥금인지 우린 모르간디
우리라고 뭐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창자도 없는 줄 알어
저그덜이사 뱃속 따땃헝게
뱃속 편헌 소리들 허고 있는데
그 속 모르간디
그러고 말이시
거, 없는 집안 제사 돌아오듯 허는
그놈의 잔치는 왜 그리고 많혀
땡큐땡큐 하이하이 혀봐야
저근 저그고 우린 우리여
솔직히 말혀서 우리들 덕에
뭣 나발들 엥간히 불며 실속없이 남의 다리 긁지 말고
가려운 우리 다리나 착실히 긁어야 혀
그저 코쟁이야, 왜놈이야 허면
사족들을 못 쓴당게
사람들이 말여 쓸개가 있어야 혀 쓸개
아, 생각들 혀보드라고
여직 땅 갈라진 채로 이 지랄들이니
남 보기도 부끄럽고 창피혀서 말여
긍게 북한이 외국이여
꺼덕허면 4천만 동포, 동포 허는디
아, 그리고 말이시
우리가 어디 한두 번 농사 망쳐봤어
쩍 허면 입맛 다시는 소리고
딱 하면 매맞는 소리
철부덕 허면 똥 떨어지는 소리여
거, 제미럴 헛배 부를 소리들 작작 허라고
아, 제미럴 우리는 뭐 흙 파먹고 농사 짓간디
고름이 피 안 되고 살 안 됭께
짤 것은 짜내야 혀
하나를 보면 열을 알겠더라고
새 세상에 새 칠로 말허겠는디 말여
그 속 들여다보이는
선거만 허면 질이여
거, 뭐여 그러면 민주냐고
민주가 뭣인지 잘 모르지만 말여
제미럴, 가다오다 죽고
엎어져 뒤집혀 죽고
곧 죽어도 말여
우린 넓디넓은 평야여
두고두고 보자닝게 군대식으로 혀도 너무들 허는디
우리는 말여 옛적부텀
만백성 뱃속 채워주고
마당은 삐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 치고
논두렁은 삐뚤어졌어도
농사는 빤 듯이 짓는
전라도 농군들이랑게
고부 들판에 농군들이여
참 오래 살랑게
벼라별 험헌 꼴들 다 겪고
지금은 이렇게 사람 모양도 아님 것맹이로
늙고 병들었어도
다 우리들 덕에 이마큼이라도
모다덜 사는지 알아야 혀
아뭇소리 안 허고 있응게 다 죽은 줄 알지만 말여
아직도 이렇게 두 눈 시퍼렇게 부릅뜨고
땅을 파는 농군이여 농군.」
-마당은 비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 치자 全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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