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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리오 영감 |  | |
| 작가는 책 서두에서 파리가 아닌 이외의 곳에서 이해가 될까?라고 의문을 표시하였지만 난 이 책을 읽어 가면서 작가의 의문은 괜한 것이다라는 느낌을 가졌다.
이 책의 주인공 고리오 영감은 우리가 쉽게 발견 할 수 있는 우리 주변의 어떤 인물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젊어서 재물에 욕심을 가지고 여러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재물 모으기에 급급하여 다른 어떤 이들은 돌아보려 하지 않았으나, 누구나 그렇듯이 자식들에게만은 모두 아낌없이 내주는 부성, 자신의 재물은 물론 젊음까지도 자식들에게 다 주었지만 자식들로부터 돌아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결국 자식들에게 배반을 당하고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는 고리오 영감의 생애를 통해서 나는 어떤 진실을 발견한다. 인간의 욕망은 한없이 타오르는 화산과 같은 것이며, 결국 인간은 그 욕망에 타죽고 만다는 것을, 그리고 이 책에는 고리오 영감외에도 여러 등장인물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으제니라는 젊고 미래가 있는 젊은이가 등장한다. 이 인물은 작가 발자크의 자화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젊어서 파리에 나오는 발자크는 출세라는 것에 매력을 느끼고 그 가족들을 희생시켰으며 여러 방탕한 생활을 하였는데 자기보다 연상인 백작 부인과 열애에 빠지기도 했고, 여러 가지 일에 투자하여 실패를 거듭한 후에 소설가로써 비로소 작품에 손을 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소설가로써 성공한 후에도 가족들을 돌보려 하지 않았는데, 그 일화로 어머니 편지를 인용하면 [내 아들아 빵을 달라. 지난수주일 동안 나는 친절한 사위가 주는 것으로 살아간다.~중략~ 너는 돈이 많이 드는 여행을 할 수 있을 만큼 돈이 많이 있는 모양이다. ~중략~ 너의 약속을 지켜 달라고 부탁한다 해도 별로 잘못된 일이 아닐 것이다.] 이와같이 발자크는 자신의 부모나 가족을 돌보지 않고 오직 자신의 출세에 눈이 어두웠었다. 그런데 여기 이 책의 으제느라는 인물도 부모의 희생에 반하여 역경속에서 발분하여 열심히 공부하고 부모들이 걸고 있는 기대를 이해하며 성실하게 노력하는 학생이었는데 보트랑(사회 밑바닥을 살아가는, 사회의 실정을 가장 잘아는 베터랑)과 교재한 후부터 달라져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는 부모나 가족들의 희생이 당연하다고 느끼고 가족들에게 희생을 요구하고 나서 허영과 사치가 남무하는 파리 상류 사교계의 귀부은들에게 접근하여 출세의 길을 잡으려 한다. 파리사교계는 겉으로는 화려하고 풍요럽지만 허영과 사치에 물든 사교계는 그 귀복인들을 정상적인 가정 생활에 파탄을 가져오게 하며 끝내는 파멸을 목고 오고야 만다. 파티에서의 화려한 의상과 마차 그리고 보석 자랑에 눈이 어두워 작중의 뉴씽겐 부인이나 레스또 백작부인처럼 자기 아버지 재산을 다 털어 먹고 결국 초라한 하숙방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야만다. 딸을 찾는 그 목소리응 외면하고 딸들은 무도회에서 나와 아버지의 죽음을 외면한다. 여자들은 사치와 허영에 삶의 진실이 가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숙연하여지지 못하고 그 허영을 채우는데 급급하여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고서는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있을턴지. 이런 여자들에게 접근하여 출세의 길을 찾는 으제느는 이런 사회의 비리와 풍토에 반감을 가지고 있지만 개선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파리와의 대결을 (출세하는 과정)생각하고 용감히 이 대결장에 뛰어든다. 부정한 방법이라 할 시라도 가리지 않고서 출세의 길에 이용하려한다. 나는 여기서 어떤 비감을 느꼈는데 요즈음 우리 젊은 세대는 사회의 비리와 부당성을 보고 반감을 가지고 있지만 개선의 노력은 하지않고 일단 사회에 뛰어들면 기성세대를 보다는 더 요령있게 이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즉 큰 모순을 내포하며 출세를 위해 내달리는 것이다.
그런데 고리오와 그 딸들에게 한가지 동정을 금치 못하는 것은 아버지의 끊임없는 사랑속에 자라나 젊고 순진한 나이에 뉴턴갠 남작 부인과 레스또 백작부인이 되어 부유하고 화려한 생활을 즐길 줄 알았으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상류사회의 풍토에 젖어 다시는 빠져 나올 수 없는 수령에 빠짐으로써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속으로는 고통과 눈물을 흘리는 일종의 파리의 상류회의 피해자인 셈이며, 작중에서 ˝나는 내 일생을 주었는데 저 애들은 나에게 한 시간도 주지 않는구나.˝하고 탄식하는 죽음을 앞운 고리오 영감님도 그 사회에 딸들을 빼앗겨 버린 일종의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싶다. 그 누가 고리오와 딸들에게 눈물과 고통
주었는가 생각해 볼 여기가 있다.
나는 이 책을 여러차례 읽어 가면서 작가가 서두에서 이 작품을 다 읽고 나면 한 두 방울의 눈물을 흘릴 것이라는 예언과 같이 나도 한 두방울 씩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작가가 직접 뛰어들어 껶고 경험했던 일들을 작가의 천재적인 문필로 기술하였기에 허구성의 소설이라는 이미지에 앞서 실제로 우리 눈 앞에서 직접 보고 있는 것처럼 생생한 느낌을 받았다. 시대와 지역이 다름에도 우리 가슴에 와 닿는 것은 현 시대와 어떤 의미에서 같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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