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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생전과 허생의 처 |  | |
| 박지원의 허생전은 이남희의 허생의 처란 작품을 읽기 위해 읽었다. 이남희의 허생의 처란 작품은 박지원의 허생전의 패러디 작품이기 때문이다. 패러디란 원본을 비방또는 모방한 작품이 패러디이다. 둘다 재이있는 작품이다. 우선 박지원의 허생전은 TV마당극이나 기타 책에서 한번쯤은 읽어봤거나 들어본 작품이다.
그 줄거리는 허생이 허생의 처의 바가지에 급기야 책을 덮고 떠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즉시 변씨라는 부자를 찾아가 돈 만냥을 달라하고 허생의 당당함에 변씨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돈을 내어준다. 허생은 그 돈으로 장사를 시작하는데 대추,밤,배,말총을 전국에서 수집해서 그 물량이 없기에 값이 뛰면 다시 파는식의 요즘말로 하면 매점매석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번 돈을 그 당시 도적들이 들끓자 도적들에게 가서 내가 돈을 줄터이니 모여라는 말을 남기고 간다. 다음날 도적들이 모이자 돈 삼십만냥을 들고 나타나 말하길 여자와 소를 끌고 다시 모여라한다. 도적들이 다시 여자와 소를 각자 데리고 모이자 섬으로 가서 모든 배를 태우고 다시 돌아와 남은 돈은 바다에 버리고 남은 돈 일부를 변씨에게 주는데 그 돈은 빌린 돈의 10배였다. 변씨가 이자가 많다고 하자 그럼 우리집에 가끔 들려 옷과 곡식이나 줬으면 한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변씨와의 대화에서 그 당시 문화중심이었던 사대부들을 비판하는게 그 줄거리이다.
한편 이남희의 허생의 처란 작품은 그 집나간 허생을 기다리는 허생의 처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허생의 처는 먹을게 없어 구걸하며 품삭질하며 언제 올지 모를 허생을 기다리는데 5년만에 다시 허생은 돌아온다. 원본과 어느정도 일치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돌아온 허생은 허름한 차림으로 아무것도 없이 돌아온 모습으로 능력없는 허생으로 표현하고 있다. 허생은 다시 책을 펴고 읽기에 몰두하기에 허생의 처는 그동안 참았던 가슴 속 이야기를 꺼낸다. 그리고 허생의 능력에 대해서 봉건적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는 한계에 대해 비난하다. 그리고 그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설명하는데 사람이 살고 자식을 낳고 그 자식들은 보다 좋은 세상으로 살게 하기 위해 살아야 하지 않느냐는 자신의 논리를 펼친다. 근데 허생은 허생의 처에대해 한마디의 항변없이 깨끗한 그녀의 승리로 끝난다는 것이다. 한 여인으로 한 남자를 섬기며 살아갔던 그리고 그녀의 평범한 진리와 그녀의 가치관으로 바라본 즉 허생의 아내로서 바라 본 허생은 한없이 부족한 남편이었던 것이었다. 이 마지막 대화 부분이 이 소설의 맛이 있는 부분이다. 이 소설은 그 이후 삶에 대해서는 쓰지 않았지만 나는 충분히 그녀가 그동안 잃었었던 새로운 삶을 찾을 것이라고 느낄 수 있었다. 이남희 허생의 처에선 허생의 민생에 대한 덕보다는 과 그가 가지고 있던 단점이 주로 쓰여졌다.
두 작품 다 비교하면 비교할수록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작품이다. 나는 허생의 업적에 있어서 비록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았을 수 있었다 하더라도 내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허생의 처의 항변에 충분히 공감을 느꼈다. 이 작품에서의 주제는 허생의 경제적 성공 이면에 가려진 여성의 짓밟힌 삶˝이 가장 큰 주제인 것 같다. 이 두 작품을 읽고 느낀점은 우선 패러디라는 것이 강한 비판적 성격의 문학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풍자의 강한 멧세지를 자연스러우면서도 강하게 주장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예전에는 무시되었던 여성의 입장이 상당히 새롭게 조명되는 작품들이 많이 있는데 그 어떤 작품보다 강한 비판과 호소가 있었다. 이남희의 허생의 처는 여성의 시각에서 본 허생 읽기였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작품에서 여성의 시각에서 짓밟히고 굴레 지워진 여성의 삶을 실존적 측면에서 파헤쳐 주체로서의 삶을 조명함으로써 혼자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남과 여로써 새로운 비젼을 제시한 작품이였다라고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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