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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  | |
| <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최윤, 문학과지성사, 1992)를 읽다.
최윤의 <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를 읽게 된 것은 순전히 김영하 덕분임을 밝힌다. 그의 작품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문학동네의 신인상을 타게 되어 쓴 소감문에서, 그에게 스승의 위치에 있는 작가들을 열거한 리스트 중 한 명이 바로 최윤이다. (그 외에도 김승옥, 오정희, 장정일 등이 있다)
일곱 편의 단편이 동시에 실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설집의 감동을 주관하는 것은 중편 <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이다. 새삼스레 제목에 ´꽃잎´이란 단어가 있음에 혹시 일전에 개봉했던, 아마 이정현이란 여자애가 주연으로 캐스팅되어 세간에 오르내렸던 영화의 원작이 이 소설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못 봤지만, 예고편에 보였던 광주의 모습이나, 기차의 객실과 객실 사이의 공간에서 거울을 보고 머리를 찧는 이정현의 모습에서 심증이 확신으로 변한다.
작가의 소설에서 ´나´가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경우 그 성별 여부는 실제 작가의 그것과 일치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설혹 일치하지 않더라도 문체를 통해 그런 경우는 구분이 가능하다. 여성 특유의 문체, 혹은 감수성이라 몀명될 만한 그 경향은 여성 작가가 ´나´라는 남성을 이야기에 등장시켰을 경우 (혹은 그 반대의 경우에도 ) 곳곳에 어색함을 드러나는 것을 본다. sex가 생래적으로 감정을 주관하거나, 성에 개입하는 사회적 기제들이 결국 성을 통해서 인간의 감성에 자신들을 드러낸다는 것에 동의하고 싶지 않지만, 역시 부정해야 하는 것은 그러한 결과를 조장하는 과정이지, 현실에 드러나는 경향은 아닌 듯 싶다. 타자의 성으로 살아가는 것, -구체적으로 글을 쓰는 것- 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런 성취를 이룬 작가군도 뒤져볼 만하다.
<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를 관통하는 미학은 무엇일까? 고통의 치유 혹은 드러냄일 것이다. 가슴에 응어리로 만들어진 아픔을 목 위로 끌어올려 다른 사람의 귀 속으로 집어 넣는 행위만으로도 슬픔이나 고통의 줄어들 수 있으므로 드러냄도 결국 치유의 다른 형태이다. 최윤은 그러한 치유법에 아주 능란하다. 교묘한 장치 혹은 화려한 수사로써 고통을 치유하면서도 늘 그 아픔의 진원지가 되는 사회적 관계를 높치지 않는다. 광주를, 한국 전쟁을, 70~80년대의 암울함을 떨쳐 내지 않으면서.
사족이지만 도서관에서 빌려본 책의 어느 페이지에서 잘 접은 휴지와 참외씨를 발견한 것은 처음이다. 머리카락이나 정체 불명의 털, 정액이 말라 비틀어진 자욱, 혈흔, 코딱지, 때 조각 등을 발견하기는 쉬우나 참외씨는 정말 의외다. 마치 이는 또다른 독자가 다음 번에 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 전해주는 메시지가 아닐까? 머리키탁이 빠지도록 고민하라고, 너도 심심하면 수음이나 해보라고, 재미없는 부분이니까 꼬딱지나 후비라고....각 장면마다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것은 아닐지...
집에서 여행을 다닌 얘기를 소설로 쓰는 것은 어떨까? 안방에서 건넌방으로, 거실로, 화장실로, 옥상으로, 베란다로, 다시 안방으로..실제로 내가 사는 세계의 넓이에서 내가 루틴하게 움직이는 동선의 비율을 따진다면 집 안에서의 움직임도 가히 여행이라 할 만한 것이다.
기억에 남는 구절 하나를 적어본다. (p.142, <회색눈사람 中>)
아, 이렇게 사람들은 운명을 만드는구나. 충분히 닥쳐올 파국을 감지하고 있으면서도 순간적인 방임인 양 어떤 거역할 수 없는 질서에 게으르게 몸을 맡겨버리면서 사람들은 삶의 나침반을 바꾸어 버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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