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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를 위한 소설> (김연경, 문학과지성사, 1997
<고양이의,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를 위한 소설> (김연경, 문학과지성사, 1997)을 읽다.



이 책의 표지에 있는 ´작가 후기´에 더해진 김연경의 사진 -눈을 치켜서 크게 뜨고 동공을 최대로 확대해서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는 모습에, 마구 자란 단발머리와 오른쪽 눈썹 끝의 점, 그리고 코 끝까지 내려온 알이 두꺼운 안경과 펜을 쥐고 있으면서 안경을 올리려는지 내리려는지 모를 손이 특히 인상적인 모습이다. 특히 보름달같은 동공은 흡사 고양이와도 같은 희번덕거림이 있는 모습- 이 꽤나 인상적이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누나를 닮은 모습이다.



이 작품집에는 8개의 소설이 담겨있다. 각 소설의 분량이 그리 크지 않음을 감안한다면 편 당 읽어 내린 속도는 꽤나 늦다. 분량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게가 있기 때문일까. 물의 비중은 기름보다 높은 1이라서 기름을 수면위로 밀어올리듯, 내용의 비중이 주는 중량감으로 인해 다른 소설과는 읽는 속도가 조금 차이가 나는 듯하다.



<´우리는 헤어졌지만, 너의 초상은´ 그 시를 찾아서>라는 조금은 긴 제목의 소설은 작품집의 두 번째에 실렸지만, 실은 작가가 96년 ´문학과 사회´ 여름호에 발표했던 데뷔작이다. 작가든, 가수든, 화가든 초기적이나 처녀작은 곧 대표작이나 자전작, 최고 수작이 되기 쉽다는 위험한 논리를 눈을 질끈 감고 믿으면서 살펴보자.



두 번의 만남 후, ´영원한 이별´을 한 ´보연´과 ´정후´의 이야기인 이 소설은 존재의 거리감과, 거리감만큼 확보된 공간에 위치한 ´초상´에 관한 이야기다. 존재와 존재의 합일의 어려움, 혹은 나와 타자의 동질화에 대한 불가능에서 연출되는 안타까움이란 그리 신선한 소재는 아니다. 따라서 문제는 이야기를 끝고 나가는 힘과 주변 장치들의 참신함일 것인데, 김연경은 이 지점에서 나름의 성공을 보인다. 타자의, 나에 의해서 조작되어 결국 내 모습이 투영된 ´정후´의 초상만을 사랑에 대한 유일한 보상이라고 여기는 ´보연´은 왕가위 감독의 ´타락천사´에 등장하는 이가흔이란 배우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영화 속 그녀의 자위 행위는 전혀 에로틱하지도 않고, 아주 처절할 뿐이다. 그리워 할뿐 결코 다가서지 못하면서 괴로워하는 인간의 모습. 누군가와 가까워진다는 것은, 상처 받을 것을 각오하지 않는다면, 어려운 일이다.



어느 저명한 사회 학자는, ´내가 인지하는 나 = 남이 보는 나 = 남들이 그렇게 볼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 = 내가 생각하는 남 = 일반화된 타자(Generalized Other)´라고 했는데, 이는 사회 속에서 남들과 관계 맺으면서 살아야 하는 인간의 운명을 잘 드러내는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일반화된 ´타자´로 인식하면서 살아야 하는 인간, 그리고 그 괴리. 그 괴리 속에서 ´보연´은 ´정후´의 초상을 그리면서 괴로워했던 것 같다.



그러나 실연을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군가의 초상을 그리는 것이 때로는 아주 적절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래, 적적할 뿐이다.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을지라도 최소한 적절하다.



<아 베, 혹은 생존의 방식>은 이른바 모범생의 전형을 보여주는 ´베´와 그의 친구이자 자유로운 방탕한 영혼을 가진 ´아´의 동거담이다. 이 얘기가 말해주는 바가, 모범생의 전형을 주정하고자 함인지, 인생지사 새옹지마임을 얘기하는 것인지, 오래 견디는 생존의 방식을 부각시키고자 함인지, 강한 것은 부러진다는 교훈을 주고자 함인지...... 난감하다.



<바스러지는, 어그러지는 하루>는 지극히 현실적인 고통을 느끼는 육체 덩어리에 대한 글이다.



´나´는 아프다.

봄이면 나는 앓는다, 라는 식의 멜랑콜리한 향수병이 아니다. 육체의 구석구석이 추함과 더러움과 동물성을 속속 드러내면서, 그렇게 아프다. (p.284)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다. 인간은 육체 덩어리며, 육체로서 존재하는 동물일 뿐이다. 법의학이란 책을 사서 집에서 본 일이 있는데, 그 책 속에는 인간의 죽음에 대한 온갖 종류의 추함이 천연색 칼라 사진으로 보여진다. 아니, 이런 식의 표현은 적절치 않다. 모든 형태의 시체 사진이 실려 있다는 이야기다. 구더기가 이미 터를 잡은 사람의 머리, 병에 찍힌 두개골, 칼에 찔려서 환부가 쩍 벌어진 시체, 교사 당한 여자의 풀린 동공 등 모든 종류의 사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결국 인간은 육체 덩어리일 뿐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겸허히 받아들이게 된다.



<언제나 없는 여자>는 김호경과 김영하의 작품 성향을 합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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