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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들의 계곡 |  | |
| 오토 노이바트 : <왕들의 계곡>
역자 : 이규조 / 출판사 : 일빛;(도) / 출판년월(초판) : 1999/9/15 / 면수 : 264
아름다운 그 곳, 이집트로.
누구나 한번쯤 경이로운 이집트의 신비에 관해 관심을 가져봤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한 신비에 매혹되어 온 사람이다. 거대한 피라미드나, 스핑크스, 그리고 화려한 문명의 자취들 앞에 우리는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가 없다. 나 역시 그러한 이집트의 신비에 매료되어 이집트 문명의 근원을 찾고 싶었다. 이집트란 무엇이며, 과연 그 정체는 무엇인지... 그래서 나는 여러 권의 이집트에 관한 책을 탐독하였다. ´이집트 문명과 예술´, ´잊혀진 이집트를 찾아서´와 같은 책들을 말이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알게되면 알게될수록 더 새롭기만 한 이집트의 문명과 그 밖의 모든 것을 알기란 것이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난 내가 많이 알고 있는 듯 하면서도 잘 알고 있지 못하는 이집트학에 대하여 좀더 차근차근 설명해줄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렇게 이집트와 고고학에 관심이 있는 딸을 위해 아버지가 퇴근길에 사오신 책「왕들의 계곡」. 조금이라도 더 쉽게 이집트를 이해하라고 사주신 책이었다. 왕들의 계곡이라... 제목부터 왠지 의미심장했다. 그렇지만 정작 나를 이끈 것은 〈고대 이집트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부제였다. 고대 이집트로 들어가는 문이라……. 왠지 이집트를 잘 모르거나 고고학이라는 학문을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접근 할 것 같은 편안한 느낌이었다. 이러한 흥분된 마음을 가다듬은 채 나는 차분히 첫 장을 펼쳤다. 드디어 나는 이집트로 들어가는 문을 연 것이다.
책을 처음 열었을 때 간단한 책의 소개와 옮긴이의 말이 가장먼저 눈에 띄었다. 옮긴이가 설명한 이 책의 저자 오토 노이바트라는 사람도 이 책만큼이나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노이바트는 선원으로 지중해 여러 나라를 여행하다가 고대사에 흥미를 느끼고 전문적 고고학 해설자가 된 사람이라고 한다. 고고학의 대부라고 불리우는 카터와 카나번과도, 쉴리만과도 사뭇 다른 분위기의 사람이다. 고대사에 관심을 가진 선원, 이제 막 이집트 문명의 신비에 눈을 뜬 열일곱 소녀. 아무리 봐도 이집트를 좋아하고 알고 싶어했던, 그리고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공통점 외에는 찾을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이 엉뚱한 선원 노이바트와 친구가 되기로 했다. 그가 나에게 친절히 이집트의 여행을 편안하고 즐겁게 이끌어 줄 것을 믿고 우린 드디어 이집트로 들어섰다.
우리가 처음 여행한 곳은 이집트의 어머니인 나일강과 그 주변이었다. 앞으로 우리가 가야할 열두 곳 중 첫 번째 목적지이다. 이집트의 모든 비밀을 간직하고 조용히 이집트의 성장을 지켜 봐왔던 나일강. 나는 문득 우리 나라의 한강과 나일강을 비교해 보고 싶었다. 나일강이 훨씬 비대하게 느껴졌지만 풍요롭게 느껴지는 것은 오히려 한강이다. 이집트라 하면 나와 같이 보통의 사람들은 메마른 사막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나일강이 가난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또 과연 몇이나 될까? 주기적인 범람은 이집트에게 풍족한 생활을 가능케 했고, 덕분에 우수한 문명이 꽃피워진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거대하게만 느껴지는 나일강은 폭이 약 800m밖에 되지 않는다니 생각 외의 발견이었다. 그렇게 나일강을 주욱 둘러보았다. 나일강이 이집트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것은 역사학의 아버지 헤로도토스가 말했듯 이집트가 신에게 부여받은 가장 큰 축복임이 틀림없는 듯 했다.
나일강을 잠시 둘러본 후 본격적인 이집트 여행이 시작되기 전 잠시 이집트학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자고 노이바트가 제안했다. 이집트학이라... 나는 내가 꽤 이집트에 대해서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피식 하고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대뜸 노이바트는
˝병사들이여, 저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4000년 역사가 그대들을 내려보고 있다.˝
라고 말했다. 이 말은 프랑스의 장군 나폴레옹이 카이로를 점령한 후 했던 말이라고 한다. 그는 나폴레옹의 이 말 한마디서부터 이집트학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나폴레옹이 이집트와 관련이 있다는 소리는 전부터 들어와 알고 있었지만, 막상 나폴레옹의 한마디가 이집트학을 탄생시켰다고 생각하니 조금 이상했다. 장군과 학문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 말이다. 내가 그 두 가지에 대해 관련성을 찾으려고 애쓸 때쯤 노이바트는 또 다른 사람을 소개 시켜 주었다. 이집트의 문자를 로제타스톤으로 푼 어학의 대가이자 이집트학의 문리를 튼 샹폴리옹의 모습을 노이바트는 1972년 이집트에서 발행된 우표로 보여주었다. 우표 속에는 샹폴리옹과 로제타 스톤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고, 그 뒤에는 이집트 문자들이 배경으로 되어있었다. 그리고 이집트의 문자가 하나가 아니라는 것도 설명해 주었는데 이집트의 문자는 신성 문자와 민용 문자로 나뉜다고 한다. 노이바트는 내게 민용 문자로 쓰인 이야기 한 대목을 들려주었다. ´사자가 길을 가다가 가죽이 벗겨진 표범을 만났다. 사자가 표범에게 왜 가죽이 벗겨졌냐고 묻자 표범은 인간들이 자신의 가죽을 벗겼다고 말하고 인간처럼 교활한 동물은 없다며 인간을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그 길로 사자는 인간을 찾아 나선다.´ 는 상당히 철학적인 내용이었다. 그 시대에도 이렇게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이 발달해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노이바트는 또 왕조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왕조라니... 맙소사! 나는 그 동안 내가 무엇을 믿고 이집트를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왕조라고는, 아니 왕조도 아닌 왕이라고는 기껏해야 세티, 클래오파트라, 람세스 정도였다. 그런데 왕조라니...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태연한 척 노이바트의 설명을 들었다. 그 역시 그 긴 이집트 왕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지는 못하고, 마네토가 분류한 이집트 왕조에 대해 간단한 도표를 그려 설명해 주었는데 생각보다도 훨씬 많은 왕조가 있었고, 또 많은 왕이 있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그 안에 왕좌를 놓고 벌여졌을 피 터지는 전쟁을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오싹해졌다. 이렇게 대강 왕조를 설명하고 노이바트는 다음 목적지로 떠나자고 멍해있는 나를 부추겼다. 아-. 도대체 얼마나 많은 비밀들이 이집트에 숨겨져 있는 것일까. 다시 한번 이집트의 신비에 매료되었다.
노이바트는 내가 심심하지 않게 다음 목적지인 피라미드까지 왕조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영국인 고고학자 에머리가 제 1왕조 시대 관리 헤마카의 무덤을 발굴했지만 모두 도굴된 후였고 또 제 2왕조시대 무덤에선 완벽하게 보존된 식탁(고기, 야채 등이 한껏 차려진)을 보았다던가 하는 것 등의 자잘한 발굴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나는 노이바트의 이야기를 들으며 열심히 모래를 밟았다.
두 번째로 우리가 도착한 곳은 아까도 말했듯이 이집트를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건축물 피라미드였다. 피라미드는 여러 번 사진으로도, TV에서도 봐와서 그런지 낯선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찬찬히 각각의 피라미드 모양을 살펴보며 설명을 들었다.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 최초의 피라미드 형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스네프루의 무덤, 또 보기만 해도 숨넘어갈 것 같은 기자의 멘카우레, 카프레, 쿠푸의 피라미드... 끝없는 사막과 하늘과 피라미드. 너무나도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특히 나는 ´대피라미드´ 그러니까 쿠푸의 피라미드에 대해 노이바트가 설명하는 것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피라미드는 이집트인의 건축학뿐만 아닌 수학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근래에 와서 생긴 원주율 개념을 지금 우리가 쓰는 3.14 보다도 더 정확한 3.1416으로 계산했다고 하니 이집트 문명이 얼마나 발전 된 것인가를 보여주는 예라고 들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또한 대피라미드의 밑변은 정확하게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이집트는 철학, 수학, 건축학, 지리학까지 발전된 찾아보기 힘든 문명의 근원지라 할 수 있다. 한참을 넋을 놓고 피라미드를 구경하는데 노이바트가 내 어깨를 툭치며 미이라 만드는 과정이 궁금하지 않냐고 물어왔다. 미이라 만드는 과정이라... 얼마전 한 TV 프로그램에서도 미이라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 적이 있어서인지 들려주는 설명이 별로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과정 하나하나에도 섬세함을 잃지 않은 이집트인들의 솜씨. 한번은 이런 미이라를 약으로 만들어 팔려는 움직임도 있었다고 한다. 어떤 의사는 미이라로 약을 만드는 조제법까지 만들었으며, 프랑스의 한 의사는 ˝냄새가 나는, 충분히 검은 미라를 고르는 것이 좋다.˝ 고 말할 정도까지 이 특효약의 인기는 대단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지만 그 때문에 많은 미이라들이 죽어서까지 편히 쉬지 못하고 도굴꾼들에게 당했을 일을 생각하면 안타깝기도 하다. 미이라의 종류는 생각보다 여러 가지였다. 계층마다 차이를 두었고, 또 동물 미라까지도 만들었다고 한다. 사람의 미이라는 그렇다 치지만 동물의 미이라라니, 믿겨지지가 않았다. 노이바트는 원숭이, 고양이, 매, 악어의 미이라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고대 이집트인들이 성스러운 존재로 여겼던 동물들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동물들을 신성한 존재로 여긴 다는 것. 지금과 같이 종교의 형태 속에서 자라난 나로서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이들 동물 가운데서 가장 성스럽다고 여겨진 동물은 소이다. 성스러운 소는 인간과 마찬가지고 죽은 뒤에 오시리스의 양자가 되고, 죽은 사람들의 신으로 추앙되며 몇천 m나 되는 천으로 감쌌다는 것은 이집트라는 문명의 나라에서 믿기 어렵기까지 했다.
피라미드 주위를 돌면서 노이바트는 피라미드를 만들 때 동원된 엄청난 인력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보통 피라미드 하면 피라미드의 장대한 기골이나 기술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 피라미드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노예들이 동원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사람은 쉽지가 않다. 얼마 전에 들었는데 이 수많은 노예들은 모두들 피라미드 입구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사막에서 죽는다고 들었다. 과거의 거의 대부분의 국가가 그랬듯이 이집트 역시 많은 수의 노예들이 있었다. 아마 이집트를 움직이는 그 힘의 반은 노예들로부터 나왔을지도 모르는 일이겠다. 노예들은 아주 힘든 생활을 했다고 들었다. 노예라는 것이 다 그렇듯이. 노예들은 주로 전쟁 포로였고, 어떤 노예들은 주인이 받아야 할 수술을 자신이 대신 모의 수술도 받았는데 실패하면 성공할 때까지 수많은 노예들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신비롭고 아름답다고만 느꼈던 이집트의 속사정을 알고 난 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니, 오히려 피라미드나 스핑크스와 같은 대형 건축물의 모습이 아름답고 경의로워 보였던 것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과 생명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을 노예들의 애틋한 마음이 담겨져있어서였을지도 모른다.
아직 반도 채 오지 않았는데 힘겨워 하는 나를 노이바트는 아무말 없이 끌어다가 이집트 신들 앞에 데려다 놓았다. 파라오가 나타나기 이전부터 이집트는 종교를 가졌다. 아까 미이라에서도 보았듯이 이집트 신중에는 동물의 모습을 한 신들이 많았다. 여러 가지 동물모양 신의 부적을 펼쳐 보여주면서 신들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어떤 신성한 동물은 신전에 모셔져 주의 깊게 관리했다고 하니, 조금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상하기도 했다. 사후세계에 유난히 관심이 많던 이집트사람. 여행을 잠시 뒤로하고 나는 그것에 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사후 세계라...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사후세계에 집착했던 이집트 사람. 그러고 보니 종교와 사후세계는 아주 밀접하다. 크리스트교는 천당과 지옥을, 불교는 극락을 사후 세계로 내세우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사후세계의 존재를 믿고 있다고 생각하니 이집트 사람들이 유달리 집착했던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영생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한숨을 돌리고 다시 우리는 여행길에 나섰다. 다음 목적지는 왕들의 계곡. 노이바트는 하트셉수트 여왕과 태양의 아들 아크나톤, 위대한 왕이라 불리우는 람세스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해주며 나를 북돋아 주었다.
여왕. 이집트의 여왕이라고 하면 보통 클레오파트라를 떠올리기가 쉽다. 그렇지만 이집트에는 많은 여왕들이 있었고, 노이바트가 들려준 여왕은 클레오파트라가 아닌 하트셉수트였다. 나의 예상외로 하트셉수트는 이집트를 효과적으로 통치한 위대한 왕이고, 또 상업적인 팽창도 중요하게 여겨 홍해 최남단에 잇는 아프리카 연안 도시 푼트에 원정대를 보냈다고 한다. 하트셉수트 역시 다른 파라오와 마찬가지로 스핑크스를 가지고 있었다. 또 재미있는 건 인공 턱수염을 포함해서 파라오가 가지는 모든 표상들을 사용했다고 하니 여왕으로서 아니 한 파라오로서 자신의 위엄과 능력을 모두 발휘하려고 한 그 노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번째로 만나본 왕은 태양의 아들 아크나톤이라 불리우는 왕이었다. 사실 나는 아크나톤보다 그의 아내이자 왕비인 네페르티티를 먼저 알았다. 그의 흉상을 우연찮게 백과사전에서 보았는데 입체적이고 사실적인 묘사가 너무나 가슴에와 닿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그녀를 기억하는 이유 중 또 하나는 그를 람세스의 아내 네파르타리와 비슷한 이름 때문에 자주 혼동했었기 때문이다. 아크나톤은 투탕카멘의 아버지이다. 투탕카멘은 대게 사람들이 잘 기억하지만 아크나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아크나톤은 유일신을 섬기는 파라오였다. 아크나톤은 또한 혁명의 왕이라고 전해진다 한다. 노이바트는 그것을 무혈 혁명이라고 말해주었다. 말 그대로 피를 흘리지 않은 혁명이었다. 구걸 행위도 금지하고, 군대 해체, 식민지의 석방 등이 혁명의 주된 내용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아크나톤은 진보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갑작스런 자유는 시민의 혼란을 가져왔고, 귀족들에게 커다란 불만을 나았다. 이런 현상이 누적되어 마침내 반란이 일어났고, 아크나톤은 시의가 건넨 독약을 먹고 죽음에 이르렀다. 처음 아크나톤의 무혈혁명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땐 아크나톤의 정책으로 이집트가 더욱 풍요로워 질 줄 알았다. 하지만 갑작스런 변화는 결국 패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 왕들의 계곡으로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노이바트가 들려준 왕은 바로 람세스다. 이집트 역사상 가장 훌륭한 파라오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위대한 왕이라 불려지는 람세스. 소설로도 아주 큰 인기를 끌었고, 그만큼 잘 알려진 왕이다. 람세스는 신전을 참 많이 세웠다. 특히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 네페르타리를 위해 세운 신전들이 멋져 보였다. 소설 람세스에서도 네페르타리와 람세스의 사랑은 각별했던 것 같다. 이제트도 가끔씩 나오지만 네페르타리의 상대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카데슈 전투를 비롯한 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람세스. 세월이 흘러 그는 이름만으로도 벅찬 존재가 되었다.
노이바트와 한참을 파라오에 대해 이야기하며 걷다보니 어느샌가 내 앞에는 왕들의 계곡이 펼쳐져 있었다. 왕들의 계곡에 들어가자 그는 자신이 투탕카멘의 발굴 현장에 있어서인지 아주 자신 있게 안내했다. 꿈에도 그리던 투탕카멘의 무덤 속으로 우리는 들어갔다. 노이바트가 봉인을 풀고 우리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전실 안에 있는 유물들을 보고, 또 우리는 안쪽으로 들어가 투탕카메의 미이라도 볼 수 있었다. 난 터져나오는 함성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고요하게 눈을 감고 죽음을 맞이한 투탕카멘의 미이라는 사람의 감정을 자극 시킬만한 충분한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내가 투탕카멘의 미이라에 감격하고 있을 때 노이바트가 마른 꽃 한다발을 가리켰다. 아마도 투탕카멘의 왕비가 투탕카멘의 죽음을 슬퍼하며 엮었을 꽃다발이었다. 그 꽃다발은 지켜보는 모든 이를 가슴 아프게 했을 것이다. 이집트의 어느 곳을 다녀보아도 투탕카멘의 무덤만큼 감동적인 곳은 없었다. 쿠푸의 대 피라미드도, 스핑크스도, 거대한 신전들도 몇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인간애를 이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투탕카멘의 무덤 안에는 온갖 보물들이 즐비했다. 나이 어린 왕이 죽은 무덤도 이토록 화려한데 하물며 다른 왕들의 무덤이 도굴 당하기 전의 규모는 어떠했단 말인가. 투탕카멘의 무덤은 보물들뿐만이 아닌 저주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그것은 지난번 TV에서 밝혀진바 있듯 곰팡이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공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는데 곰팡이 때문이었다니 아마 고고학계에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될 것이다. 나는 노이바트가 나가자고 할 때까지 몇 번을 보고 또 둘러보았다. 내가 투탕카멘의 무덤 속에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밖으로 나왔을 때 건조한 모래 바람이 불었지만, 그것이 나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는 사막의 모래 바람이 오히려 이집트의 문화를 듬뿍 실어 나르는 봄바람 같았다.
나를 집으로 데려다주는 길에도 그는 마지막으로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가 얼마나 뛰어난 지략가인지, 그녀의 무덤 발굴에 대해서라던가, 그러나 그런 그의 말은 내 귀에는 잘 들리지 않았다. 너무 한꺼번에 많은 것을 접해서였을까. 내 가슴은 아직도 크게 뛰고 있는 것 같다. 그 벅찬 감동을 안고 그와 헤어질 때 그는 절대로 이것이 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더욱더 공부하라고 당부해 주었다. 노이바트와 인사했다. 어쩐지 헤어지는 것이 슬프지 않았다. 이제 내 가슴속에 있기 때문에 내가 부르면 언제라도 달려와 나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또 도와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책 마지막 장을 넘기며, 그 동안 내가 노이바트와 여행해 왔던 곳을 되짚어 봤다. 나일강, 피라미드, 마지막 왕들의 계곡까지. 그 동안 몰랐던 수많은 곳을 여행하고, 수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이집트 속의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까지... 마치 단잠을 잔 듯 영원히 잊지 못할 감명으로 이집트는 내게 또다시 다가왔다. 지루한 입시공부 속에서 노이바트의 말들은 나의 가슴에 단비가 되어 내렸다.
많은 학자들이 여태까지 풀지 못할 것 같았던 이집트의 많은 신비들을 해결해 왔다. 하지만 아직도 이집트는 우리가 안 것보다 알아야 할 것이 많다. 나는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이 길이 험난하고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이집트학, 고고학도 인내를 요구하는 학문이다. 차근차근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사람과 만나 이집트에 관한 지식을 넓혀서 내가 쓴 이집트에 관한 책으로 나도 노이바트처럼 나와 같이 이집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이런 연구하는 행복함을 선물로 안겨준 노이바트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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