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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
신주현 : <의자왕>

출판사 : 민성사 / 출판일 : 2000년 6월 30일 / 페이지수 : 392

백제의 마지막 임금. 의자왕은 백제 제30대 무왕의 맏아들이다. 대개의 다른 왕들은 휘가 따로 있고, 또 사후에 공덕을 기리어서 주던 시호가 따로 있어 후세에는 시호로 불리지만, 의자왕의 경우는 마지막 임금이므로 시호가 없었기 때문에, ´의자´라는 휘에 의하여 의자왕이라 불리게 되었다.
의자왕은 천성이 용감하고, 담력과 결단성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부모에게 효성스럽고 형제간에 우애가 지극하여 일찍부터 ´해동증자´라 불렸다. 해동은 우리 나라를 가리키는 말이요, 증자는 옛날 중국의 대철학자인 공자의 제자로서 효도의 중요함을 역설하던 사람으로, 해동 증자는 흔히 우리 나라의 효자를 가리키는 데 쓰이던 말이다. 641년 아버지인 무왕이 죽자, 그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의자왕은 초기에는 당나라, 고구려와 화친을 맺고 동쪽이 신라를 공격하는 데 열중했다. 642년, 의자왕이 직접 군사를 지휘하여 신라의 40여성을 함락시켰고, 곧이어 장군 윤충이 신라의 대야성을 함락시켰다. 또한 그 다음 해에도 신라의 주요 항구의 당항성을 쳐서, 신라가 당나라와 접속하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 645년에도 신라의 일곡성을 쳐서 빼앗고, 647년에는 장군 의직으로 하여금 무산성에서 신라로 쳐들어가게 하였으나 오히려 패하였다.
의자왕의 이런 의욕도 한때였다. 그는 말년에 이르러서는 사치와 향락을 일삼았다. 태자궁을 화려하게 수리하고, 망해정이라는 정자를 세웠다. 그러고는 날마다 연회를 열어 간신배와 궁녀들과 함께 즐기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해, 좌평 성충이 왕의 잘못을 아뢰자,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화를 내고, 그를 감옥에 가두어 죽게 했다. 뿐만 아니라 왕의 실정을 간한 좌평 흥수도 이 무렵에 유배되었다. 660년, 나·당 연합군이 백제로 쳐들어오자 의자왕은 계백 장군에게 5천 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황산벌에 나아가 싸우게 했다.
계백 장군과 그의 결사대는 신라군을 맞아 용감하게 싸웠지만 네 번을 이긴 뒤에 지칠 대로 지쳐, 다섯 번째의 싸움에서 그만 전멸하고 말았다. 다른 백제 군사들도 웅진 근처에서 당 나라 군사에게 패하였다. 의자왕과 태자, 다른 여러 왕자들 및 신하 등 88명과, 백제 백성1만 3천여 명은 소정방에 의해 당나라로 압송되었다.
일찍이 신라를 자주 공격하여 위세를 보이다가, 나중에는 사치와 향락에 빠져 스스로 자기 자신과 나라까지 망하게 만든 의자왕은 그 해, 낯선 당 나라 서울 장안에서 병들어 죽었다고 전한다.
나는 의자왕처럼 처음에는 잘하다가 나중에 망하는 것을 조심해야겠다. 처음에 잘했으면 끝까지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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