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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연 |  | |
| 피천득 : <인연>
출판사 : 샘터사(사) / 출판년월(초판) : 1996/5/20 / 면수 : 306
첫 만남의 소중함
사람은 태어나고 죽을 때까지 몇 명의 사람과 만나고 헤어질까? 불연 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듯이 나는 인연을 상당히 중요시하는 사람중의 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내가 살아오면서 알고 지냈던 모든 사람들을 기억해 내라고 한다면 아마 고개부터 설레설레 할 것이다. 그 많은 사람들을 다 기억해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하지만 가족들을 제외하고 내가 만나온 사람 중에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 온다면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사람은 나에게 첫 만남의 좋은 기억을 남겼던 사람이다. 첫 만남의 기억이 소중한 만큼 그 사람에 대한 기억 역시 오래 남는 것 같다.
피천득의 소설 ´인연´은 첫 만남의 기억에 대한 소중함을 잘 말해 준다. 이 소설 속의 등장인물은 ´나´와 ´아사코´이다. 소설은 소설 속 ´나´가 ´아사코´와의 만남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는 아사코를 세 번 만나게 된다. 첫 만남은 ´나´가 열일곱 되던 해의 일이다. 첫 만남에 대한 ´나´의 기억은 스위트 피이 꽃과 하얀 운동화로 남아있다. 아사코가 책상 위에 놓아주었던 하얀 스위트 피이 꽃. 그리고 아사코가 신던 하얀 운동화. 이 모든 것이 아사코의 순수한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듯 했다.
두 번째 만남은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후였다. 눈과 웃는 모습이 예뻤던 그 꼬마 아이는 이제 다 큰 숙녀가 되 있었다. 그 두 번째 만남이 ´나´에게 남겨 놓은 것은 집 마당에 피어있던 목련과 ´아사코´가 쓰던 연두색 우산, 그리고 헤어짐의 인사로 나눈 악수에 대한 추억이었다. 두 번째 만남에서 ´나´는 예전의 모습과는 조금 변해버린 ´아사코´의 모습에서 서먹서먹함을 느끼면서도 반가워한다.
십여 년이 지난 후 ´나´는 또다시 아사코를 만난다. 그러나 ´나´는 백합같이 시들어 가는 ´아사코´의 얼굴을 보게 된다. 이제는 예전의 그 아리따운 ´아사코´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세 번째 만남은 갖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사코´의 변해버린 모습에 기대 했던 것만큼 실망도 컸기 때문이다. ´나´가 기억하고 싶은 모습은 열 일곱에 만난 순수함이 묻어나는 ´아사코´이지만 지금의 ´아사코´에게서 예전의 그 모습은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그리워하는 데도 한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예전의 ´아사코´를 잃어버린 ´나´의 아쉬움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내가 만약 소설 속 ´나´였다면 ´아사코´를 첫 번 째 만남 이후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랬더라면 ´아사코´와의 첫 만남에 대한 좋은 기억만을 간직 한 채 살아갔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사람의 인연이 자기 마음먹은 것처럼 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곤 한다. 나는 내가 만나온 그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좋은 추억을 남겨 주었는지 한번 생각해 봤다. 그 사람은 나와의 어떤 추억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을까? 나는 또 그 사람과의 어떤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까? 소설 속 ´나´처럼 소중한 기억을 남기고 헤어진 그 사람과 다시 만나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그 사람에 대한 좋은 기억을 평생 마음속에 간직한 채 살아가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만나든지 다시 만날 수 없든지 첫 만남에 대한 추억은 소중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첫 만남을 소중하게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법을 배우고 싶다.
나는 인연은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말은 부정한다. 그렇게 인연을 자신이 원하는 데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면 첫 만남에 대한 소중함이 덜하게 되고 헤어진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데로 만나고 헤어질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인연은 있는 그대로 받아드릴 때 진정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 대해 느꼈던 좋은 첫인상은 영원히 마음속에 간직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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