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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하늘소
이외수 : <장수하늘소>

출판사 : 동문선;(도) / 출판년월(초판) : 1996년 01월 15일 / 면수 : 296

어두운 세상에 한 줄기 빛이 되어
언제부터인가 난 햇빛을 싫어했다. 눈이 부셔 얼굴이 찡그려져서, 또 살갗이 까맣게 된다는 이유로 그늘을 찾아 다녔다. 이 책을 읽으려 할 때도 방안에 들어오는 가을 햇빛을 커튼으로 막아 버렸다. 하지만 그런 햇빛의 의미를, 그 따뜻함을 내게 일깨워 준 진귀한 곤충이 있다. 바로 천연기념물인 장수하늘소이다.
이 이야기의 배경인 5막 2장의 도시 ´동원´. 그 5막 2장은 삭막하고, 숨막히고, 막막하고, 기가 막히는 환장할 놈의 송장 도시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이 도시 아닌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장암산. 그 산의 정상에 있는 신령스러운 장수바위에 일본인들이 쇠침을 놓고 갔고, 그래서 그렇게 피폐한 5막 2장의 도시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곳. 그 마을에서 살아가는 형국과 형기. 형제지만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아가는 두 사람 가운데 내내 내 마음을 끌었던 인물은 역시 형기였다. 햇빛가루를 먹고 사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의 해맑고 신비로운 아이. 결국 그는 떠돌이 스님이 예언했던 것처럼 산에 가서 수도를 하게 되고, 형국은 일본인 야마다에게 우리 나라의 희귀한 곤충들을 표본용으로 팔아서 생계를 유지해 간다.
난 이런 곤충 채집을 정말 싫어한다. 곤충들의 몸 한가운데를 찌르고 있는 핀의 차가운 금속성에 늘 섬뜩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것을 이용해서 돈을 번다는 건 정말 내겐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었다. 어쩌면 형국도 장수아비에 쇠침을 꽂았다는 그 일본인들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자연에 침을 꽂아 자신들의 이익만 취하고자 하는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 그러나 자신도 바로 자연의 일부분이란 사실을 인간들은 늘 지나쳐 버린다. 돈이라면 최고인 인간들.
이 책의 정 선배라는 사람도 물욕에만 눈이 어둡다가 결국 자기 아내까지 빼앗기는, 한편으로는 불쌍한 사람이다. 형국도 우희라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지만 경제력, 역시 돈 때문에 버림을 받고 방황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장수하늘소를 잡는 행운을 누린다. 그리고 그의 동생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야마다가 정 선배의 아내와 간통하고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 밀수범이란 사실이 드러나 형국은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감옥에서 그는 신선이 되겠다던 동생이 말해 준 마음의 실체를 느끼고, 그 마음을 투명하게 만들 수 있게 된다. 형기는 결국 형에게 올바른 삶의 길을 가르쳐 준 것이다.
감옥을 나온 형국은 장수하늘소가 없어진 사실을 알고 동생을 찾아 나선다. 그는 장암산 정상에 있는 장수바위에서 정말 바위처럼 앉아 있는 동생을 발견한다. 그리고 동생의 피라미드를 깨고 찬란히 날아오르는 황금빛 장수하늘소도.... 정상으로 가는 길에 그는 녹슨 쇠막대를 -그건 바로 장수바위에 꽂혀 있던 쇠침이었다- 보게 된다. 동생은 그걸 마음으로 빼 내었던 것이다. 장수하늘소의 등에 꽂혀 있던 핀을 빼 낸 것이다. 형국은 동생의 죽음과 장수하늘소의 신비로운 부활 앞에서 자신도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체험을 하게 되고, 산을 내려오면서 장암산이 깨어나는 소리를 듣게 된다. 형기는 우리 인간이 자연에게 무자비하게 망치질해 댔던 그 커다란 못을 빼 내고, 자신은 영원의 세계로 떠나간 것이다.
영원의 세계, 아마도 여기보다 더 밝고 더 아름답게 빛나는 태양과, 여기서 인간들 때문에 천연기념물이란 숫자를 붙이고 있는 동물이나 곤충도 많이 사는, 그리고 오욕에 물들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세계, 형기는 그 곳으로 가면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고 간 것이다. 조그마한 생명에 핀을 꽂아 그 비명소리를 즐거움으로 삼고 돈에 눈이 어두워 자신조차 제대로 발견 못하는 우리. 자신의 마음도 깨끗하게 할 줄 모르는 우리 인간들에게 그는 하나의 빛이 되어 주고 있다. 피라미드를 깨고 날아오르는 장수하늘소가 뿌려 대는 찬란한 황금가루. 우리 인간이 보기엔 눈이 부셔서 제대로 볼 수도 없었던 그 신비롭고 힘찬 날갯짓을 보며, 아직도 세상엔 희망이 남아 있음을 느끼는 형국. 책장을 덮고 나서 그저 벅찬 느낌으로 생각해 보았다. 조그마한 곤충이지만 장수하늘소가 우리에게 주고 간 것은 얼마나 많은지.
형기. 나는 그가 바로 장수하늘소였다고 생각한다. 인간들 사이에서도 오욕에 물들지 않고 깨끗한 마음을 가진 천연기념물 같은 사람. 그는 사람들 손에서 죽어 가던 장수하늘소를 그 깨끗한 마음으로 살려 내었다. 돈이라는 무거운 바위에 깔려 신음하는 장수하늘소를 구해 낸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모든 티끌을 마치 장수하늘소 등에 꽂혀 있던 핀을 빼듯 빼 내어 버리고 찬란하게 날아올랐던 것이다.
말로 제대로 표현할 수도 없는 아름다운 자연의 빛깔, 그 천연의 보석을 돈의 가치로 따지고 점점 눈이 멀어 가는 인간들의 손을 이끌고 바른 길로 인도해 주려 노력하던 사람 형기.
˝지성도 사랑도 영혼도 모두 오염되어 있어요. 심지어는 가장 깨끗해야 할 종교인들까지도 때로는 신의 사업을 빙자하여 세력 다툼을 하고 재산 싸움을 하고 이기주의적인 행동들을 일삼는 수가 있습니다. 행위 자체에 너무 신경을 쓰는 것보다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우선 마음을 맑게 닦는 일에도 정성을 쏟는 일이 중요합니다. 맑은 마음만이 진정한 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가 형국에게 해 주었던 말이다. 돈과 그 밖의 모든 욕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잔잔함 목소리로 들려주던 하나의 경고가 아니었을까. 다른 사람들이 돈에 취하고 욕심에 취해서 세상을 어지럽힐 때, 그는 이 세상의 모든 이를 구원하고자 올바른 길을 택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깨끗한 마음을 살려 낸 것이다. 황금빛 장수하늘소를....
어쩐지 방안의 어둠처럼 무거웠던 내 맘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커튼을 젖혔다. 파아란 하늘에서 내 얼굴 위로 내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신비로운 햇살가루들. 어쩌면 나도 눈이 멀어 있었던 건 아닐까. 이렇게 아름다운 이렇게 예쁘게 빛나는 햇빛이 있다는 걸 예전엔 왜 몰랐을까.
어디선가 장수하늘소가 그 멋지고 위풍당당한 황금빛 날갯짓을 하며 날아오르고 있으리라. 그 찬란한 날갯짓으로 눈먼 사람들을 일깨우고 있으리라.
파아란 가을 하늘과 따뜻한 햇살이 빛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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